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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합의 '서명'이 없다고? 더 조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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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위안부 합의 '서명'이 없다고? 더 조사해야 한다"

[인터뷰] 송기호 변호사

최순실 씨의 태블릿PC가 공개되기 한참 전에, '박근혜 탄핵 사유'를 조목조목 지적한 변호사가 있었다. 식품 안전,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문제 등을 다뤘던 그에겐 자연스런 흐름이었다.

국가는 개인의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 이런 상식을 뒤집는 행태를, 그는 용납할 수 없다. 식품 안전에 소홀한 태도,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가 쏟아지도록 방치한 행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짓. 모두 '국익'으로 포장된 특정한 이해관계를 인권에 앞세웠던 결과였다. 어쩌면 박정희 유신 체제가 새긴 자국이 지워지지 않은 탓이다. 국가는 언제든 개인 혹은 소수의 희생을 요구할 수 있다는 발상. '그래서는 안 된다'라는 입장을 움켜쥔 채, 2년 전 그날을 맞았던 변호사는 '박근혜 탄핵 사유'에 매끄럽게 도달했다. <프레시안>을 꾸준히 봤던 독자라면, 눈치 챘으리라. 그는 송기호 변호사다. (☞관련 기사 : "위안부 합의, 국제법상 조약이면 대통령 탄핵 사유")

"12. 28 발표가 조약이라고 주장하면, 박근혜 탄핵 사유"

지난 2015년 12월 28일, 한국과 일본 외교장관 회담이 열렸다. 이어 진행된 공동기자회견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이 발표됐다. 일본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해 10억 엔을 내놓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윤병세 당시 외교부 장관은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고 밝혔다.

정말 그런가? 위안부 피해자 문제는 이제 더 거론하면 안 되는 건가? 한국과 일본 외교 장관의 발표는 어떻게 자리매김해야 하나?

송기호 변호사가 가장 빠르고 명료한 답을 내놨다.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한 한일 외교장관의 공동발표문이) 국제법상 조약 형식이라고 주장한다면, (박근혜 당시) 대통령 탄핵 사유"라고 밝혔다. 국가 간 조약은 국회 동의를 거쳐야 한다. 조약 체결과 공포에 대해선 헌법과 법률이 규정한 절차가 있다. 이를 생략하고 발효된 조약이 있다면, 행정부가 헌법과 법률을 깡그리 무시했다는 뜻이다. 대통령 탄핵 사유다.

국제법상 조약이 아니라면, 어떻게 되나. 정치적인 약속일뿐인데, 이는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는 윤병세 당시 장관의 발언과 배치된다. 윤 전 장관의 말은, 위안부 피해자들과 한국 정부가 국제 인권법이 보장한 권리까지 포기한다는 뜻이다. 당시 발표 내용 이외의 다른 피해 구제 요구를 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므로. 이는 중대한 주권 제약인데, 조약이 아닌 정치적인 약속으로 보장할 수는 없다. 아울러 정치적인 약속일뿐이라면, 약속을 해제하는 조건도 함께 명시해야 한다. 대개의 계약이 이런 식이다. 하지만 해제 조건은 없었다. 또 국제법상 조약이 아니라면, 일본 정부 입장에선 '소녀상 철거 혹은 이전' 등 명시적인 조건을 내거는 게 자연스럽다. 그래야 일본 정부가 예산을 쓸 명분이 생긴다. 하지만 당시 한국 정부는 이런 가능성에 대해 "유언비어"라고 했었다.

요컨대 2년 전 나온 공동발표문이 국제법상 조약이 아니라면, 어떻게 해석하건 당시 한국 정부 입장과 상충한다. 국제법상 조약이라고 하면, 박근혜 당시 대통령을 탄핵할 사유가 된다.


▲ 송기호 변호사. ⓒ프레시안(최형락)

"인권을 부정하는 약속은 무효"

이후 송 변호사는 2014년 4월 제1차 한·일 외교부 국장급 협의 개시 이후 2015년 12월 27일 제12차 한·일 국장급 협의까지의 문서를 공개해달라는 정보공개청구를 외교부에 냈다. 2015년 12월 28일 공동 발표문이 나오기 전날까지의 문서를 공개하라는 게다. 외교부가 거절하자, 결국 소송이 벌어졌다. 1심 법원은 원고인 송 변호사의 손을 들어줬다. 외교부가 관련 문서를 공개하라는 게 법원 판결이었다. 그러나 외교부는 불복해서 항소했고, 현재 2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송 변호사는 2015년 12월 28일 공동 발표문이 원천 무효라는 입장이다. 국제 인권법과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본다. 단지 정서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이런 입장에 서면, 일제 강점기에 일본군과 관리들이 위안부 피해자들을 '강제 연행'했는지 여부가 핵심 쟁점이 된다. '강제 연행' 사실을 일본이 부인한 채 진행된 발표라면, 한국과 일본의 '합의'라고 볼 수 없다. 일본이 '강제 연행'을 사실로 인정했는데도, "최종적이고 비가역적인 해결"이라는 말로 피해자 구제 통로를 막았다면, 이는 인권에 대한 부정이다. 따라서 성립할 수 없다.

그리고 지난 27일과 28일, 중대한 진전이 있었다. '한·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검토 태스크포스(TF)'가 27일 결과 보고서를 공개했다. 한국 정부는 위안부 피해자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고 일본과 협상했다. 또 일본 측이 위안부 소녀상 이전을 요구한 건 사실이었다. 소녀상 이전 요구가 "유언비어"라던 박근혜 정부의 발표는 거짓이었다.

아울러 지난 28일, 문재인 대통령은 "저는 대통령으로서 국민과 함께 이 합의(2년 전 한일 외무 장관 공동발표)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점을 다시금 분명히 밝힌다"라고 말했다. 사실상 파기를 시사했다.

같은 날, 송기호 변호사를 만났다. 서울 송파구 수륜아시아법률사무소에서 만난 그는 인터뷰 내내 '12.28 공동 발표'라는 표현을 썼다. 2년 전 한일 외무장관 회담 결과에 대해 언론과 정부는 대체로 '12.28 합의'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송 변호사는 당시 회담 결과가 구속력 있는 합의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국제법상 조약과 같은 위상은 물론 아니라고 본다. (☞관련 기사 : 새 정부가 파기해야 할 '위안부' 합의는 없다)


▲ 송기호 변호사. ⓒ프레시안(최형락)

"위안부 소송 실패하면, 변호사 관둘 생각이었다"


프레시안 : 한일 외교부 장관 공동발표까지 진행한 협상에서 위안부 '강제 연행' 사실 인정 등에 대해 협의한 문서를 공개하라는 소송이 진행 중이다. 1심에서 원고인 송기호 변호사가 승소했다.

송기호 : '12.28 공동 발표' 직후 외교부에 정보 공개를 요청했다. 그게 받아들여지지 않자, 소송을 하게 됐다. 2년 전,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대통령 탄핵 사유"라는 표현을 썼다. 당시는 최순실 사태가 불거지기 한참 전이라서, '탄핵'은 아주 센 표현이었다. 하지만 정당한 표현이었다고 본다. 그 뒤로도 기고 등을 통해 '12.28 공동 발표'는 구속력이 없다는 주장을 해 왔다.

위안부 피해자 문제는 일본이 '강제 연행' 사실을 부인하므로 불거졌다. 일본군과 관리들이 일제 강점기에 피해자들을 '강제 연행' 했다는 게 핵심이다. 따라서 '12.28 공동 발표'에서 일본이 이 사실을 인정했는지를 밝혀야 한다. 이처럼 본질적인 문제를 회피한 채 "최종적이고 비가역적인 해결"이라고 했다면, 피해자와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

국가의 이익이라는 명분이 개인의 인권보다 앞설 수는 없다. 국가는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 인권과 배치되는 국가 간 약속이란 있을 수 없다. 일본이 위안부 피해자 강제 연행을 부인한 채로 나온 '12.28 공동 발표'라면, 이는 국제 인권법에 배치된다. 중대한 국가 인권 범죄에 대해서는 역사적 사실에 기초한 배상과 사과가 전제돼야 한다는 게 국제 인권법의 내용이다. 일제 강점기 위안부 문제와 같은 국가 인권 범죄는 국제 사회에서 이미 합의가 돼 있다. 유엔총회의 결의 역시 같은 내용이다.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인정하는 게 시작이다.

그래서 외교부에 정보 공개를 요청했다. '12.28 공동 발표' 도출 과정에서 일본이 강제 연행 등 역사적 사실을 인정했는지를 확인하자는 취지다. 공통의 역사 인식이 위안부 피해자 인권 문제를 푸는 첫 걸음이다. 외교부가 정보 공개를 거부하면서, 소송을 하게 됐다. 당시 이런 생각을 했다.

"위안부 피해자의 인권조자 보장하지 못한다면, 누구 인권인들 보장할 수 있겠나."

그렇다. 이 문제는 우리 사회가 스스로 성립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이다. 아울러 1972년 성립된 유신 체제를 극복하는 과정이라고도 봤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유신을 선포했던 논리가 이른바 '국민 총화'였다. 국가의 이익을 내세워 개인의 인권을 무시하는 걸 정당화하는 논리다. 이런 태도가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서도 반복됐다. 박근혜 정부는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다루면서, 주변 강대국의 입장만 살폈다. 가장 중요한 피해자 인권은 고려되지 않았다. 이게 민주주의인가? 아니다.

사법부는 인권의 최후 보루여야 한다. 그래서 소송을 제기했다. 만약 실패한다면, 변호사 면허를 반납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농사를 지을 계획이었다. 법률가로선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봤다. (실제로 송 변호사는 대학을 마치고 군 복무를 한 뒤 농사를 직접 지으며 농민운동을 했다.) (☞관련 기사 : "'제2의 박상표'가 나와야 합니다")

"고문이 사라졌을 뿐, 민주주의와 법치는 아직 멀었다"

프레시안 : '한·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검토 태스크포스'가 보고서를 공개한 다음 날, 문재인 대통령이 '12.28 공동 발표'를 사실상 파기하는 취지로 말했다.

▲ 송기호 변호사. ⓒ프레시안(최형락)
송기호 : 대통령의 발언을 적극 지지한다. 촛불 시민 혁명으로 대통령은 바뀌었지만, 관료들의 태도는 그대로다. 외교부는 '12.28 공동 발표' 관련 문서를 공개하라는 1심 법원 판결을 받아들이지 않고, 항소했다. 관료들이 대통령 발언 취지를 따른다면, 항소를 취하해야 한다.

'한·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검토 태스크포스'의 발표 직후,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이 입장 발표를 했다. "외교 관례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공개했다"는 내용이다. 사과하고 책임져야 할 사람인데, 부적절한 논평을 했다. 애초 "최종적이고 비가역적인 해결" 등의 표현을 한 것 자체가 관례와 동떨어진 일이었다. 그게 외교 관례인가? 아니다.

정부는 '12.28 공동 발표' 사건을 제대로 조사해야 한다. 예컨대 '한·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검토 태스크포스'는 보고서를 공개하며, 한일 양국 대표가 서명한 문서가 없다고 했다. 이는 더 조사해야 한다고 본다. 일본 정부가 10억 엔을 쓰기로 했는데, 아무런 서명이 없다면, 그것도 이상하다.

프레시안 : 한일 양국 대표가 서명한 문서가 있다면, 한국이 외교적으로 불리해지지 않을까.

송기호 : 그렇지 않다. 앞서 말한 대로, 국제 인권법에 어긋나는 합의는 무효다. 거듭 이야기하지만, 이는 민주주의와 법치의 문제다. 고문이 사라졌다고 해서,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한다고 볼 수 있나? 아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일방적 지시만으로 개성공단이 폐쇄된 사실도 드러났다. 위안부 피해자 문제와 마찬가지로, 법에 따른 절차가 생략됐다. 이는 법치주의 훼손이다. 인권을 제대로 보장할 수 없었던 건 당연하다.


▲ 송기호 변호사. ⓒ프레시안(최형락)

"삶이 달라지고 골목이 바뀌는 정치"


프레시안 : 송기호 변호사는 국익, 혹은 그렇게 포장된 대기업의 이익 때문에 인권이 희생되는 상황에 맞서는 활동을 주로 해 왔다. 식품 안전,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문제 등을 다뤘다. 위안부 피해자 관련 활동도 그 연장선 위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송기호 : 환경부가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위원회에서 천식피해 조사·판정 결과를 심의한 결과가 나왔다. 천식 피해를 입은 6명이 처음으로 피해자로 인정받았다. 이 문제가 불거진 지 6년이 지나도록 정부는 폐섬유화 피해만 인정한다는 방침을 고집했다.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피해가 오로지 한 가지 유형만 있다는 게 말이 되나. 안 된다. 피해 유형은 아주 다양할 수 있다. 결국 지난 9월에야 천식이 가습기 살균제 피해 질환에 새로 포함됐다. 그리고 그 피해자가 인정된 것이다.

대통령을 바꾼 것으론 부족하다. 삶이 달라지고, 골목이 바뀌는 정치가 필요하다. 정부는 보다 적극적으로 시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한다. 제천 참사를 보라. 언제까지 이런 일이 반복돼야 하나. 시민의 요구에 더 민감하고, 더 신속하게 반응하는 정부가 돼야 한다.

프레시안 : 결국 정치 이야기를 하게 됐다. 송 변호사는 최근 더불어민주당 서울시 송파을 지역위원장을 맡았다. 변호사로서 현실에 개입하던 수준을 넘어, 정치에 직접 뛰어들었다.

송기호 : 송파구에 23년 동안 살았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활동을 했는데, 그것만으론 부족한 느낌이었다. 지난 정부 시기, 세월호 사건과 대통령 탄핵 등을 지켜보며 정치 참여 결심을 굳혔다. 지금껏 해 왔던 활동처럼, 시민의 안전을 지키는 정치를 하고 싶다. 아울러 시민 주권을 실제로 구현하는 일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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