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조사는 창녕군이 문화재청 허가를 받아 한국문화재재단에서 발굴 조사한 유적(710㎡)으로, 농어업시설에 대한 소규모발굴조사 국비지원사업으로 복권위원회의 복권기금을 지원받아 진행됐다.
확인된 무덤은 3~4세기대 목곽묘 10기와 6세기대 석곽묘 14기다.
목곽묘(木槨墓)는 무덤 구덩이에 나무곽을 짜서 넣고, 그 안에 다시 시신을 담은 관이나 토기 등의 부장품을 안치하는 무덤이다.
이 목곽묘는 묘 간의 중복 조성과 다음 시기의 무덤인 석곽묘가 그 위에 조성되면서 많이 파괴된 상태로 확인되었다.
규모는 길이 3~4m, 너비 0.9~1.8m 정도이며, 내부에서 철모(鐵矛)와 철촉(鐵鏃) 등의 철제 무기류와 단경호(短頸壺), 양이부호(兩耳附壺) 등의 토기류가 남아있어 이 지역 비화가야(非火加耶)의 이른 시기 무덤 및 유물양상을 처음 알 수 있었다.
내부에서 유개고배(有蓋高杯, 뚜껑이 있는 굽이 높은 접시) 등의 토기류와 이식(耳飾, 금이나 은으로 만든 귀걸이) 등 여러 점의 유물 출도 토되었다.
특히 석곽묘 4호에서는 집게와 대·소망치, 모루 2개 등 단야구(鍛冶具, 철기의 제작에 있어 단조가공을 목적으로 사용되는 각종의 도구)세트가 출토되었다. 단야구는 기존 창녕 계성고분군(경상남도 기념물 제3호)과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사적 제514호)에서도 출토된 바 있지만, 이렇게 다양한 구성을 갖추어 출토된 예는 창녕에서 처음이다.
특히 ‘역L’자형 모루는 출토 예가 드문데 일본 나라현에서 확인된 것과 유사한 형태를 가지고 있어 향후 면밀한 비교검토가 필요하다. 이와 같이 다양한 단야구 세트의 출토는 당시 철기제작과 관련하여 매우 섬세한 단조기술을 가졌음을 입증하는 자료라 할 수 있다.
창녕지역에서는 대지면 석리 일원에서 수습된 두형토기(豆形土器)를 통해 비화가야 이전의 고대 정치체에 대한 가능성만 제기되었을 뿐, 이를 입증해줄 자료가 빈약한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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