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 과정에서 이병기 당시 국가정보원장과 야치 쇼타로(谷內正太郞) 국가안전보장국장 간 비공개 협의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박근혜 정부는 이 협의 채널을 통해 위안부 합의를 조율한 것으로 밝혀졌다.
27일 '한‧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검토 TF'(이하 위안부 TF)는 검토 결과 보고서에서 "한국 정부는 국장급 협의의 교착상태를 풀기 위해 2014년 말 고위급 협의를 병행 추진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이 때부터 협상의 중심이 (외교부 국장급 협의에서) 고위급 비공개 협의로 옮겨가게 됐다"고 밝혔다.
위안부 TF는 "일본 쪽이 협상 대표로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국장(야치 쇼타로)을 내세움에 따라 한국 쪽은 대통령의 지시로 이병기 국가정보원장이 대표로 나섰다"고 덧붙였다. TF는 "이병기 씨는 처음부터 끝까지 고위급 협의 대표로 참여했다"고 밝혀 2015년 2월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발탁된 뒤에도 그가 협상을 진두지휘한 역할을 맡았던 것으로 보인다.
위안부 TF에 따르면 이 채널을 통해 양국은 2015년 2월 첫 고위급 협의를 시작으로 12월 28일 합의 결과 발표 때까지 총 8차례 협의를 가졌다. 양국은 수시로 고위급 대표 간 전화 및 실무급 차원의 협의도 병행했지만, 정작 주무 부처인 외교부는 이 협의에 직접 참여하지 못한 채 협의 결과를 청와대로부터 전달받고 그에 따른 검토 및 의견을 전달하는 역할만 수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위안부 TF는 "양측은 고위급 협의 개시 약 2개월 만인 2015년 4월 11일 제4차 고위급협의에서 대부분의 쟁점을 타결하여 잠정 합의했다"며 "합의 내용은 일본 정부의 책임 문제와 사죄, 금전적 조치와 같은 핵심 사항은 물론, 최종적·불가역적 해결, 소녀상 문제, 국제사회에서 상호 비난·비판 자제의 항목을 포함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 협의 채널에서는 위와 같이 공개됐던 항목 외에도 △관련 단체 설득(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이하 정대협) △ 제3국 (위안부) 기림비 설치 문제 △'성노예' 용어 등도 논의된 것으로 밝혀졌다. 위안부 합의 과정에서 비공개 부분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 셈이다.
위안부 TF는 "위안부 합의에는 (한일) 외교장관 공동기자회견 발표 내용 이외에 비공개 부분이 있었다. 이런 방식은 일본 쪽 희망에 따라 고위급 협의에서 결정됐다"며 △외교장관회담 비공개 언급 내용 △재단 설립에 관한 조치 내용 △재단 설립에 관한 논의 기록 △발표 내용에 관한 언론 질문 때 응답요령 등이 있었다고 전했다.
위안부 TF는 "비공개 언급 내용은 일본 쪽이 먼저 발언을 하고 한국 쪽이 이에 대응하는 형식으로 구성됐다"며 "정대협 등 피해자 관련 단체 설득과 소녀상, 제3국 기림비, 성노예 용어 등 국내적으로 민감한 사항들이 언급됐다"고 밝혔다.
위안부 TF에 따르면 비공개 부분에서 일본은 우선 정대협과 관련, "정대협 등 각종 단체들이 불만을 표명할 경우에도 한국 정부가 설득해주길 바란다"고 말했고 이에 대해 한국은 "관련 단체 등의 이견 표명이 있을 경우 설득을 위해 노력한다"고 답했다.
소녀상 문제에 대해 일본은 "주한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을 어떻게 이전할 것인지 한국 정부의 구체적 계획을 묻고 싶다"고 했고 한국은 "관련 단체 등의 이견 표명이 있을 경우 설득을 위해 노력한다"고 밝혔다.
제3국 위안부 기림비에 대해 일본은 "제3국에 있는 위안부 관련 상(像)·비(碑)의 설치는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했고 한국은 "제3국에서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관련 석비(石碑)·상(像)의 설치 문제는 한국 정부로서도 이러한 움직임을 지원함이 없이"라고 밝혀 일본의 요구를 수용했다.
성노예 용어 사용에 대해서 일본은 "한국 정부는 앞으로 '성노예'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기를 희망한다"라고 밝혔는데, 위안부 TF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성노예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용어인 점 등을 이유로 반대하였으나, 정부가 사용하는 공식 명칭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뿐이라고 확인했다"며 이 문제 역시 일본의 손을 들어줬다고 평가했다.
위안부 TF는 "위 내용은 한국 정부가 소녀상을 이전하거나 제3국 기림비를 설치하지 못하게 관여하거나 '성노예' 표현을 사용하지 않기로 약속한 것은 아니나, 일본 쪽이 이러한 문제에 관여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한국 정부는 공개된 내용 이외의 합의사항이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 대해 소녀상과 관련해서는 그런 것이 없다고 하면서도, 정대협 설득, 제3국 기림비, ‘성노예’ 표현과 관련한 비공개 내용이 있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았다"며 "한국은 협상 초기부터 위안부 피해자 단체와 관련한 내용을 비공개로 받아들였다. 이는 피해자 중심, 국민 중심이 아니라 정부 중심으로 합의를 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처럼 박근혜 정부가 비공개 합의를 통해 이면합의를 한 것이라는 지적에 대해 위안부 TF 오태규 위원장은 이날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TF 내에 법 전문가 분들이 계서서 의견을 교환했는데 법률 용어로 '이면합의'라고 정의되는 것이 없다"며 "그래서 있는 그대로 '비공개 내용' 이라고 쓰는 것이 가장 정확한 용어 사용 아닐까 판단했다"고 밝혔다.
한일 양측이 서명한 합의 문건은 있냐는 질문에 오 위원장은 "양쪽(한일) 외교장관이 '발표하는 내용'과 '발표하지 않는 내용'이 나뉘어져 있었다. 저희는 발표하지 않는 내용을 비공개 부분이라고 이야기했다"며 "(한일 양측이) 서로 사인한 게 아니고 구두로 발표한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구두로 발표하기 전에 발표 내용과 그렇지 않은 내용을 확인한 것"이라며 "그래서 (위안부 합의는) 법률적으로 문서 합의가 아니라 구두 합의라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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