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현지 시각) 워싱턴 D.C에서 미 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운슬과 국제교류재단이 공동 주최한 '환태평양 시대의 한·미 파트너십 재구상' 토론회의 기조연설을 가진 틸러슨 장관은 이어진 문답에서 "우리는 북한이 대화할 준비가 되면 언제든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전제조건 없이 기꺼이 북한과 첫 만남을 할 것"이라며 "그냥 만나자. 당신(북한)이 원한다면 날씨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사각 테이블인지, 둥근 테이블인지에 흥미가 있다면 그것에 대해 이야기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틸러슨 장관은 "이후에 우리는 어디로 나갈지를 다루는 로드맵을 펼칠 수 있다"며 조건 없이 일단 대화 테이블에 앉아 북핵 문제를 다루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는 또 "(북한이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들을 포기해야만 대화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조건 없는 대화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틸러슨 장관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그의) 아버지나 할아버지와는 확실히 다르다. 우리는 김정은과 대화하는 것이 어떨지 알 수 없다"며 "상대가 누군지 알아야 한다.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는 북한과 협상을 시작하기 전에 상대를 탐색해야 한다는 이른바 '탐색적 대화'를 위해서라도 조건 없는 대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부각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북한은 북한이 원하는 것을 말할 수 있다"며 "북한은 대화 테이블로 나와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틸러슨 장관은 대화를 하는 도중에는 군사적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고 밝혔다. 그는 "만약 대화 도중에 (북한이)추가적인 도발을 한다면 대화가 어려워질 수 있다"며 "군사대화를 하려면 일정 기간 (도발) 휴지기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틸러슨 장관이 '북한의 핵‧미사일 동결 대 한미 연합 군사 훈련'과 같은 이른바 '행동 대 행동'의 선결조건을 제시하지 않음으로써 이번 제안으로 북미 간 대화의 문이 열릴 수 있을지 주목된다. 북한이 틸러슨 장관의 제안에 응할 경우 단번에 북핵문제 해결로 나아가지 못하더라도, 한반도의 긴장은 일시적으로나마 수그러들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핵무력 완성을 공식화한 북한이 이후 대화의 주도권 및 협상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미국에 '적대시 정책 철회' 등을 조건으로 걸어 대응한다면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 틸러슨 장관의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고 북미 간 대화의 모멘텀을 찾기도 어려워질 수 있다. 이에 따라 북핵을 둘러싼 한반도 상황이 기존보다 더 악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또 트럼프 정부 내에서 대표적인 대화‧온건파로 꼽히는 틸러슨 장관이 최근 경질될 수 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하면서 그가 이날 밝힌 입장이 트럼프 행정부의 일치된 의견인지를 두고 의구심도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허버트 맥마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이날 워싱턴 DC에서 열린 영국의 싱크탱크 '폴리시 익스체인지' 주최 행사에서 "미국 행정부는 김정은의 축출이 아니라 한반도 비핵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입장을 밝혀 틸러슨 장관이 주장하는 외교적 해법이 여전히 트럼프 정부의 우선적인 정책 방향임을 확인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