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자리에서 이 대통령은 '지난 3년간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 "그에 대한 대답은 2년 후로 미루겠다"면서 "무슨 '오르막 내리막' 개념은 너무나 권력적 측면이다. 나는 평지를 5년 간 뛰고 그 다음 선수에게 바통을 준다"고 답했다.
그는 "나는 처음부터 권력을 써 본 적이 없어서 권력을 놓을 일도 없고 땡길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레임덕 우려'에 대한 거부감의 표현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이 대통령은 등산 중 '산의 오르막과 내리막을 걸으며 지지율 생각이 안 드나'는 질문에도 "난 그렇게 정치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이 아니니까"라면서 "일에 목표를 세우고 하지. 그런 것(지지율)을 목표로 하면 포퓰리즘에 빠지고 일을 못한다"고 답했다.
이 대통령은 과학비즈니스벨트와 동남권 신공항 문제에 대해선 "상반기 중에는 종결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또한 남북관계의 전망을 묻는 질문에는 "금년이 북한도 변화를 가져와야 될 좋은 시기"라며 북측으로 공을 넘겼다.
취임 3주년을 앞두고 고려됐던 질의응답을 포함한 기자회견이 '없던 일'이 된 탓에 이날 행사에서는 최근 민감한 현안인 개헌에 대한 질문도 나왔지만 이 대통령은 "오늘 분위기에 안 맞는 질문이다. 다음에 정장하고 넥타이 매고 답변하기로 약속하겠다"면서 직답을 피했다.
▲ 취임 3주년을 앞두고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함께 북악산을 올랐다ⓒ청와대 |
"외국 정상이 김정은 이야기 꺼내니 부끄러운 일이란 생각 들어"
이날 이 대통령은 "사람들이 '3년 지났으니 이제 뭐 한다' '높은 산에 올라갔다 내려온다' 여러 가지 표현을 하더라"면서 "서울 시장 4년 해보니 4년 동안 일을 많이 할 수 있었단 말이다. 앞으로 2년이 남았으면 아직도 몇 년 치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외국에 가면 나에 대한 대우도 1년 차보다 3년 차인 지금에 와서 다르다"며 이같이 말했다.
'개헌'에 대한 질문에 "다음에"라고 답하며 넘겨버린 이 대통령은 남북관계에 대해선 "도발이 있을 땐 강력하게 대응을 하고 또 한편으로 남북이 정말 평화를 이야기할 수 있는 투 트랙의 길을 우리 국민들을 바라고 있을 것이라고 본다"면서 "금년이 북한도 변화를 가져와야 될 좋은 시기"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우리는 항상 열려있다. 금년이 좋은 기회라는 그런 메시지를 북한에 주고 싶다"면서도 남북 대화의 구체적 전망을 내놓진 않았다.
대신 이 대통령은 "작년에 모 국가 정상이 '김정은 그 친구 나이가 몇 살이냐?'고 물어보길래 '스물 여섯 살일 것'이라고 답했더니 그 정상이 '나는 사관학교 졸업해 별을 다는 데 수십 년이 걸렸는데 어떻게 26살이 하룻밤 자고 나서 대장이 됐느냐'더라"면서 "맞장구 쳐서 같이 욕하고 싶어도 언뜻 드는 생각이 같은 한 민족이 웃음거리가 되니 대한민국 국민에게 부끄러운 일이다는 생각도 했다"며 북한의 3대 세습에 대한 거부감을 우회적으로 표했다.
현안 물어보자 "분위기에 안 맞는 질문이다"
화창한 날씨 속에서 진행된 이날 산행의 분위기는 좋았다. 청와대 뒤편 민간인 출입금지 구역을 벗어나 숙정문 쪽으로 접어들었을 때 이 대통령과 조우한 일반 시민들도 반갑게 인사를 청했다.
하지만 산행이 끝난 이후 청와대로 내려와 진행된 오찬 간담회는 그리 매끄럽지 못했다. 이 대통령은 서울시장 시절 청계천 복원 공사에 반대했던 언론을 언급한 후 "세상은 내가 어떤 안경을 꼈느냐에 따라 그렇게 보인다. 뻘건 안경을 끼면 세상이 좀 불그스름하게 보이고, 검은 안경을 끼면 세상이 어두워 보이고, 밝은 안경을 끼면 이렇게…각자 안경을 벗고 세상을 보면 우리가 같은 세상을 볼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취임 3주년 기자회견을 안 하기로 하고 마련된 간담회인 탓에 현안에 대한 질문이 이어지자 이 대통령은 "분위기에 안 맞는 질문이다", "차라리 기자회견하는 것이 나을 뻔 했다"고 응수했다.
질문이 이어지자 이 대통령은 수 차례 편찮은 심사를 드러낸 끝에 준비된 질문이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직접 '오늘 기자회견은 여기서 끝"을 선언했다.
이 대통령은 취임 3주년을 맞아 출입 기자들과 편한 마음으로 산행을 하고 막걸리 잔을 기울이겠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설 연휴 직전 TV 생방송 좌담회에서 "기자회견이 너무 없는 것 아니냐"는 외부 인사의 지적이 나올 정도로 질의 응답에 목말라 있는 출입 기자들은 이날 산행과 오찬을 '기자회견 대신'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얼마 전 산행 계획을 맨 처음 전한 청와대 고위 관계자도 "기자회견도 고려했지만, 좀 더 편하고 허심탄회하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산행 자리를 만들었다"고 밝힌 바 있다.
어쨌든 이 대통령의 마지막 인사는 "가능하면 여러분들과 자주 만나서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있도록 하겠다"는 다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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