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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좌파' 손호철의 끝나지 않은 '마이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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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좌파' 손호철의 끝나지 않은 '마이웨이'

[손호철 교수 퇴임 강연] 강단 떠나는 손호철 고별 강연

청바지와 '서강대학교'가 새겨진 야구점퍼에 검정색 스니커즈를 신었다. 그래서일까. 손호철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의 정년퇴임 강연장엔 김세균, 강내희, 조희연 등 지긋한 학자들 외에도 20대 학생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강당 300석은 대부분 자리가 찼고 강당 끝에 서서 강연 듣는 학생들도 있었다. 손 교수를 찾아온 80년대 학번 옛 제자도 있었다. 7일 서강대에서 열린 그의 퇴임강연은 인기과목으로 꼽히는 한국정치론 마지막 수업이기도 했다.


손호철 "비주류가 세 번이니 안주만 먹어야"


▲ 손호철 교수가 서강대학교에서 퇴임강연을 하고 있다. ⓒ서강대학교 학생회

비주류의 비주류의 비주류. 진보학자 손호철 교수가 걸어온 길이다. 대한민국 주류인 반공우파도 아니고, 비주류의 주류인 자유주의 개혁세력도 아니며, 그렇다고 비주류의 비주류의 주류인 민족주의 진보세력도 아니라는 뜻이다. 그는 진보운동 성지로 불린 한신대학교에서 쫓겨난 경험을 들려줬다. 자신은 비주류 중에서도 비주류의 끝자락으로 밀려나간 진보좌파라는 의미였다. 그 와중 그는 유머를 잃지 않으며 "비주류가 세 번이니 난 안주만 먹어야 한다"고 말했다.

손 교수는 "강연한 지 30년이다"라며 "이제 떠나야할 시간이 됐다"고 그간의 소회를 밝혔다. 그럼에도 그는 "유네스코가 발표한 새로운 연령 분류에 따르면 65세까지 청년"이라며 "저는 청년을 끝내고 장년에 들어가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생일만 지나면 지하철도 무료로 탈 수 있게 됐다"며 환한 미소도 지었다. 진중했던 퇴임강연이었지만 중간중간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강의 내용은 '마르크스주의', '한국예외주의', 그리고 '시대의 유물론'으로 이어졌다.


맑스주의와 한국예외주의

첫 꼭지는 '맑스주의'였다. 그는 왜 맑스주의가 아직도 유효한지를 설명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는 자유롭고 또 자유롭다. 즉 이중자유다. 우선 농노와 같은 예속적 신분에서 해방됐다. 또한 생산수단으로부터 떨어져나갔다. 노동자는 자급자족 할 수가 없다. 결국 자발적 동의에 의해 착취가 일어난다. 대한민국 청년은 이건희와 정몽구에게 스스로 착취해 달라며 몸부림 치고 스펙전쟁을 한다. 그렇게 해야 먹고 산다. 이는 손 교수가 내린 분석이다. 그는 "흙수저 담론 역시 계급문제"라며 "이 문제는 이념을 넘어 서있다"고 말했다.

두 번째 꼭지는 한국 예외주의였다. 한국에는 유럽과 다르게 진보정당이 없다. 왜 한국정치는 좌우 날개로 날지 못하는가. 이는 그가 포착한 한국 예외주의를 관통하는 질문이다. 그는 "거지부터 재벌까지 호남은 호남 찍고 영남은 영남을 찍는다""우리 정치란 초계급적 지역연합이었다"고 말했다. 게다가 신자유주의는 혁명주체가 될 노동자 힘을 약화시켰다. 대기업 정규직은 전략적 힘은 있지만 혁명에 대한 이해관계가 없다. 반면 비정규직은 이해관계는 있지만 찢기고 나뉘어 전략적 힘이 없다. 손 교수는 한국 예외주의의 원인을 지역주의와 신자유주의의 결합에서 찾았다.

전방위적인 정치평론을 해온 학자답게 한국 정치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현재 선거제도는) 독일식 선거제도로 바꿔야 한다"며 "그린 생태주의, 보라색 페미니즘, 빨간색 노동운동 등이 무지개로 연합한 7가지 색깔 정당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다소 어려운 이론 강의 때는 꾸벅꾸벅 조는 학생들이 나왔다. 다시 한 번 유머 타임. 역대 대통령들이 코끼리를 냉장고에 집어넣는 다양한 방법을 소개했다.

"나를 중심으로 단결해서 미국에게 코끼리를 넣어달라고 청원합시다"(이승만).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기 위한 5개년 계획을 세워라. 반대하는 놈들을 긴급조치로 잡아 넣는다."(박정희)

"코끼리를 잡아서 보안사 지하실로 들어간다. '너는 코끼리지' 묻는다. '아닌데요'라고 답하면 전기고문과 물고문 해서 '저는 코끼리입니다'라는 자술서를 써내어 냉장고에 넣는다."(전두환)

"제가 어젯밤에 분명히 코끼리 냉장고에 넣었어요. 믿어주세요."(노태우)

"본인이 냉장고에 들어간다. 괘안타 괘안타 믿어줘 임마."(김영삼)

이건 그가 97년에 정치평론 소재로 썼던 유머다. 현시점에서 한 명 더 추가. 박근혜는 어떻게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을까? 답은 "순실이에게 부탁한다."

시대의 유물론, 손호철의 삶에 대해


▲ 시대의 유물론을 강연하고 있는 손호철 교수 ⓒ서강대학교 학생회

고별강연 마지막 꼭지는 '시대의 유물론'이었다. 이 순서는 인간 손호철이 살아온 삶. 그가 앞으로 걸어갈 삶에 대한 이야기였다.

호모 파베르(작업인)에서 호모루덴스로(유희인)서의 삶. 이는 그가 은퇴 이후 바라는 삶이다. 손 교수는 한 때 승용차에 책을 넣어 다녔다. 신호등 빨간불이 들어오면 책을 읽다가 몇 번이고 사고를 냈다. 그는 "앞으로 사람들은 정말 즐겁게 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촛불이 즐거운 혁명을 보여줬다"며 "페미니스트 엠마 골드만의 어구인 "내가 춤출 수 없으면 그것은 혁명이 아니다"를 덧 붙였다.

경제사회를 넘어선 문화사회. 이는 손 교수가 바라는 한국사회 모습이다. 그는 "즐거운 좌파가 되려면 세미나만 해서는 안 되고 놀 줄 알아야 한다""(사람들은) 덜 일하고 덜 생산하고 덜 부유하고 덜 소비하면서도 삶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끝나지 않은 손호철의 마이웨이


▲ 손호철 교수가 가사를 틀리지 않으려 PPT를 보며 팝송 마이웨이를 무반주로 부르고 있다. ⓒ 이정규

강의를 마치며 손 교수는 팝송 마이웨이를 무반주로 불렀다. 몇몇 학생들은 뜻밖의 열창에 당황한 기색도 보였지만, 이내 강단을 떠나는 스승의 만감을 함께 교감했다.


손 교수가 부른 '마이웨이'는 이렇게 끝난다. "나는 손호철의 방식대로 살아갔다(And did it Son's way)." 그가 마지막 강연에서 진짜로 하고 싶었던 한마디처럼 울렸다. '비주류의 비주류의 비주류'이면서도 낭만과 유머를 잃지 않은 '즐거운 좌파'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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