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거기까지였다. 친박(親朴)계 인사들의 철저한 외면 속에서 진행된 한나라당의 개헌의총이 9일 조기에 막을 내렸다.
당 안팎의 시큰둥한 시선 속에서 그렇지 않아도 힘을 받지 못하던 개헌론은 계속해서 표류하는 모습이었다. 일방적인 주장만이 앵무새처럼 되풀이된 이틀 간의 의총은 정치적 타협공간의 모색과 흥행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쳤다는 지적이다.
親朴은 '외면'·논의는 '표류'·흥행은 '저조'
125명의 의원들이 참석한 전날에 비해 참석률도 저조했다. 박근혜 전 대표는 전날에 이어 이날도 의총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는 "모 일간지는 발언 신청자가 단 한 명에 그쳤다면서 김을 빼더라"며 "발언신청은 이곳 현장에서 받겠다, 여러분의 애당심을 잘 지켜보겠다"며 애써 분위기 수습을 시도하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이날 의총에서는 모두 17명의 의원들이 발언을 했지만, 그 내용은 대체로 전날과 다르지 않았다.
친이계가 중심이 된 의원들은 "지역에서도 개헌 찬성 여론이 많더라(이화수 의원)", "모 언론사 여론조사에서도 개헌의 필요성에 동감한다는 의견이 69.4%였는데, 시기나 현실성 운운하는 것은 맞지 않다(최병국 의원)", "대통령이 소신을 갖고 일할 수 있는 기간이 2~3년에 불과한 5년 단임제보다는 지역감정이나 승자독식 정치시스템 개선을 위해서라도 4년 중임제가 맞다(윤진식 의원)" 등 '비슷한' 주문을 반복했다.
다만 친이계 조해진 의원이 "제왕적 대통령제를 비판하는 대선주자들이 바로 그러한 제왕적 대통령, 대권에 도전하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다"라고 전제한 뒤 "대통령이 현 임기동안 권력분산형 운영을 해 볼 수도 있는 게 아니냐"라고 제안한 대목 정도가 눈길을 끌었다.
전날 '집단적인 침묵'으로 일관했던 친박계에서 발언자가 나오긴 했지만 역시 내용은 싸늘했다. 이해봉 의원은 "개헌의 타당성에 대해서는 이의가 없지만 시기적으로 지금 개헌이 가능한가"라고 반문한 뒤 "임기 초 동력이 있을 때 추진했어야 했다"고 꼬집었다.
특히 이해봉 의원은 "당의 갈등을 초래할 수도 있고, (특정 세력이) 개헌을 계기로 정치세력화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도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친이계가 개헌 그 자체보다 개헌논의를 통한 '정치적 결집'을 도모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다.
역시 친박계 이경재 의원은 의총 직후 개인 성명을 통해서 "이명박 대통령의 왼팔, 오른팔이라는 분들이 오히려 제왕적 대통령제를 고치자고 하는데 앞뒤가 안 맞는다"라고 역공을 펴기도 했다.
당 내 개헌특위 구성도 親李의 '마이웨이'…순항할까?
쟁점이었던 당 내의 개헌 추진기구 구성 문제도 친이계 단독으로 추진하는 모양새가 됐다.
두 시간 가량 진행된 이날 의총 막바지에 김무성 원내대표는 당 내 개헌특위 구성 문제를 안건으로 제안하면서 "이의가 없느냐"고 물었다.
이에 친이계 의원들은 박수로 화답했지만, 친박계 등 비주류 의원들은 여전히 침묵을 지켰다. 김세연, 황영철 의원 등 당 내 소장파 의원들이 이의를 제기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한나라당 정옥임 원내대변인은 브리핑에서 "개헌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당내 특별기구를 구성하기로 의결했다"며 "의결 시점에 참석 의원은 90명이었고, 특별기구 구성은 김무성 원내대표에 위임키로 했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의총 직후 "다음 주 월요일(14일) 최고위에서 상의해 특별기구 구성을 하겠다"며 "특별기구는 정책위 산하에 둘 수도 있고, 격을 높여 최고위 의결을 통해 최고위 산하에 설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 내의 개헌특위가 구성되더라도 진통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한나라당 내 개헌논의의 핵심인 친박계가 이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방침이기 때문이다.
'용두사미(龍頭蛇尾)에 그친 이번 의총처럼, 친이계나 일부 중립성향 의원들을 끌어들여 특위를 구성하더라도 구체적인 결론을 내지 못하고 박근혜 전 대표의 입만 바라보는 상황이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한편 여권 내의 '개헌전도사' 이재오 특임장관은 이날 한나라당의 의총 결과를 보고받은 뒤 "잘 됐다, 당이 민주적으로 토론을 잘 진행해 왔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연합뉴스>가 이 장관의 한 측근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 장관은 "앞으로 개헌안에 대한 당론을 잘 모으고 야당과도 협상해서 개헌이 되도록 해 줬으면 좋겠다"며 이같은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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