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학계와 정계를 막론, 미국을 지배했던 아시아-태평양 전략이 인도-태평양 전략으로 선회하는 모양새다. 국제정치 영역에서 이 전략이 처음 등장한 것은 2007년이다. 인도의 해군 장교가 인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인도-태평양 구상'을 제안했고, 자신의 중국 견제란 뜻에 적합하다 판단한 일본이 그에 적극 동조한다. 그리고 최근 2016년 8월 아베 총리는 케냐에서 자유와 개방을 공유하는 일본, 호주, 미국, 인도 중심의 인도-태평양 개념을 재차 피력한다.
미국이 처음부터 인도-태평양 전략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지난 오바마 정부 시기 미국은 '아시아로의 회귀'나 '아태 재균형 전략'을 통해서 아시아 지역에 간여할 충분한 명분과 기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경우는 달랐다. 그는 '신고립주의' 행보를 이어가다가 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점차 줄어들고 중국이 그 공백을 메워가자 위기감을 느낀 뒤 기회를 모색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이에 지난 10월 18일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이 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 연설에서 "미국과 인도가 인도-태평양 동쪽과 서쪽의 등대로 기여해야 한다"며 화두를 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서 11월 6일 미일 정상회담 및 7일 한미 정상회담 직후 공동 기자 회견을 통해, 그리고 10일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참석차 방문한 베트남 다낭에서 기조연설을 통해 인도-태평양 지역을 중요성을 다시 언급하며, 이 지역의 번영, 자유, 개방, 질서의 수호를 위한 다자간 협력을 호소했다.
인도-태평양 전략을 바라보는 당사국들
지난 2007년부터 2016년까지 인도-태평양 전략의 구상과 추진에 가장 열을 올렸던 나라는 일본이다. 동북아 지역에서 중국에 잃어버린 패권을 회복하고 미국이나 다자간 협력으로 상대적 열세를 만회하려 노력하는 것이다.
특히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오랜 기간 공을 들였던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가 미국의 탈퇴로 수포로 돌아가자 다른 기회를 노린 것이다. 부단하게 자유, 번영, 개방 등을 언급하며 미국, 인도, 호주 등을 설득하고 반중 연맹을 구축하려 시도하는 실정이다.
인도-태평양 전략에 두드러지는 변화는 인도 혹은 인도양의 부각이다. 사실 근래 인도와 중국의 관계는 그리 원만치 않았다. 국경을 둘러싼 양측 대치 이후 인도는 중국이 개최한 일대일로 포럼에 참석하지 않았고, 중국과 파키스탄 사이의 경제회랑 건설에는 분명한 반감을 표시했다. 이에 중국은 미일 양국이 중국과 인도 간 역사, 영토, 안보, 경제 등의 우려와 갈등을 이용해 인도를 자신들의 그룹에 포섭하여 중국에 대한 봉쇄를 강화하려 한다고 주장한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아시아 순방과 APEC 참석 기간에 관련 구상을 재차 강조하고 참여를 독려하자 관련 국가들의 이에 대한 반응도 뜨거웠다.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에 대응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새로운 외교안보전략이라는 의견까지 나오며 그 진의나 함의, 그리고 향후 추진 및 성공의 가능성을 전망했다. 나아가 각국은 미국의 참여 제안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 내지는 중국의 부정적 반응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그 득실을 분석하기 바빴다.
이에 대한 중국의 반응은
인도-태평양 전략은 아직 미국 국가 안보 보고서 등으로 구체화 되지는 않았고, 현재 그 중심국가인 미국, 일본, 인도, 호주 등이 실제적 행동에 나서지도 않았다. 하지만 중국이 보기에 인도-태평양 전략을 주도하는 미국과 일본의 목표‧의도는 명확하다. 다국적 협력을 구축해 제해권, 나아가 중국의 봉쇄와 영향력 견제로 향하고 있음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중국 국방대학 국가안보학원 량방(梁芳) 교수는 미국의 의도를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과 그 영향력이 인도양 부근까지 확대되는 것을 방지하고 △인도와 중국의 역사나 국익의 갈등을 자신의 전략조정 기회로 활용하며 △중국과 직접적 대결을 피하며 전략적 혼돈과 대리인을 이용하고 △재균형 전략이 중국의 봉쇄에 실패하자 새로운 전략을 구상해 중국에 대응하려는 것이라 분석하며, 이는 주변의 안보 환경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주장하였다.
그러나 중국 인민대학 진찬롱(金燦榮) 교수는 그 전략이 최종적으로 성공하기엔 많은 어려움과 불확실성이 따른다고 주장하였다. 우선, 인도의 경우 그 경제적 성과로 자신에 차 있으나 그 기반이 단단하지 못하다는 의견이다. 그리고 미국은 이를 외교 전략으로 확정하지 않았으며 북핵 문제 등에 중국의 협조를 필요로 한다는 지적이다. 마지막으로 중국의 대응에 따라서 그 결과가 달라질 수 있기에 중국은 긴장할 필요가 없으며 자신의 일에 집중할 것을 강조했다.
또다시 한국에 던져진 딜레마
미국의 중요한 동맹국 한국도 관련 논란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지난 11월 7일 한미 정상회담 이후 양국은 공동 발표문을 통해 “한미 동맹이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보, 안정, 번영을 위한 핵심축”이라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각계에서 추측이 이어지며 논란이 벌어지고, 해명의 과정에 청와대, 외교부 측에서 엇박자가 이어지자, 청와대는 결국 “(한미 간에) 좀 더 협의가 필요하다”며 진화에 나섰다. 한국은 다시금 곤란한 상황을 마주한 것이다.
사실 지난 1~2년 한국과 중국의 사이는 평탄치 않았다. 2016년 7월 박근혜 정부가 사드 배치를 선언한 이후로 중국의 반발과 노골적 압박이 끊이지 않았다. 1992년 수교 이래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의 다양한 영역에서 성장을 거듭했던 관계가 한순간에 나락에 떨어졌다. 최근의 상황들을 한국의 입장에서 보자면 근래에 들어서야 봉합과 회복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 현실에 한숨을 돌렸는데, 금새 그에 못지않은 어려운 선택지가 또 다시 주어진 상황이다.
상술한 것처럼 해명과 번복을 반복한 이유는, 미국의 진의와 상황의 파악이 그리고 관련한 중국의 인식과 대응의 고려가 필요할 수밖에 없었던 한국의 입장 때문일 것이다. 한국이 아직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은 상황에도 중국은 그의 대응을 예의 주시해, 과거와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바란다며 압력을 행사한다. 뿐만 아니라 한국 내에도 정부의 명확한 입장과 모호한 태도를 요구하는 서로 다른 입장이 엇갈리며, 각계의 신중한 판단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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