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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유시민·이정희·정세균·조승수 "복지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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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이해찬·유시민·이정희·정세균·조승수 "복지를 말한다"

[<계간 광장>신년좌담] "증세논쟁 맞서야" vs "국민 공감대 우선"

재단법인 광장(이사장 이해찬)이 발행하는 <계간 광장>이 '2011년 복지국가를 말한다'는 제목으로 신년호 특집 좌담을 실었다.

이해찬 재단법인 광장 이사장, 유시민 국민참여당 참여정책연구원 원장,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 정세균 민주당 최고위원, 조승수 진보신당 대표이 참석한 이 좌담은 최근 급부상한 복지 이슈를 주제로 했다. 특히 이 좌담은 2012년 대선에서 복지가 핵심 정책 쟁점으로 떠오를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에서 '연대'를 도모하는 야당들이 한 자리에 모여 이 문제에 대한 서로간의 차이와 공통점을 처음으로 확인해보았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지난 1월 19일 오후 4시부터 2시간 동안 재단법인 광장에서 진행된 좌담 전문을 <계간광장>와 공동 게재한다. 편집자

ⓒ광장

이해찬 : 제가 최근에 몇 군데에서 말씀을 드렸는데 열린우리당이 145석이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 153석이 되는 바람에 민노당이 소중한 지를 전혀 몰랐던 것 같습니다. 민노당도 153석 정당 근처에 가봐야 들러리가 되고 자신의 고유한 역할이 확보가 안 되니까, 한나라당보다 더 야당을 하는 것으로 위상을 찾았던 것 같습니다. 지나고 나서 보니까 그 시절이 대단히 중요했던 때인데 서로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못하고 지나간 잘못이 있습니다. 지나고 나서 반성을 많이 합니다. 약자의 연대라고 하는 것이 얼마만큼 겸허하게 해야 하는 지를 생각했어야 합니다. 이번에는 단순한 연대가 아니고 정말로 정책적인 공감을 가진 연대여야 실질적인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금년에 내년 총선, 대선의 연대 기반을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신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좌담은 계간광장의 신년호 특집 좌담으로 복지문제를 다루고자 합니다. 복지가 작년부터 시작해서 가장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는 상황이어서 각 당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그 이야기를 시원하게 털어놓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이렇게 모셨습니다. 요즘 같은 정책 패러다임의 전환기에는 서로 차이는 있지만 정책에 대한 공유를 확인하고 조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우선 정세균 민주당 최고위원님께서 오랫동안 정책을 다뤄오셨고 이 문제로 고민을 많이 해 오셨는데 서두를 꺼내주셨으면 합니다.

복지는 베푸는 시혜가 아닌 인간의 보편적 권리,
복지국가는 삶의 불안을 사회연대를 통해 해결해야 하는 국가의 의무


정세균 : 저는 1999년에 제3정조위원장을 했습니다. 그 때 故 김대중 대통령께서 말씀을 하셔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초안을 준비하는 기획단을 맡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복지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이 전문가 20여분을 모시고 초안을 만들었는데 제가 정치를 하면서 가장 보람 있는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대단히 중요한 일을 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이후에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사회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 양극화를 해소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항상 하면서도 현실적인 제약이나 경우에 따라서는 우선 순위에서 밀려서, 더 솔직히는 철학의 부재 때문이겠지요, 복지를 당의 핵심 문제로 과제화하거나 다루지 못했던 것을 매우 불만스럽고 부끄럽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작년부터 복지문제가 공론화되기 시작하면서 가장 큰 화두가 되었습니다. 매우 반갑고 다행스럽기는 하지만 충분히 준비되지 않는 측면도 있는 것 같아서 진보개혁진영의 여러 세력과 정당들이 공론의 장을 만들어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어떤 것이고 힘을 합칠 것은 어떤 것인지에 대한 논의를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작년 6·2지방선거에서는 제가 연대를 직접 지휘했습니다. 그 전에 정책연대를 먼저 했는데 일부 합의를 못한 것도 있지만 12가지 정책에 대한 합의를 해서 이 정책연대가 튼튼한 뒷받침이 돼서 부족하지만 연대와 단일화를 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중요한 정책에 대한 공감대를 만들고 정책연대를 하는 것은 선거 승리를 위해서도 그렇고 우리가 추구하는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6·2지방선거 때 무상급식에 다 합의를 했었는데 당시 민주당에서는 사실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여러 공약 중에서 최우선 공약을 일자리 창출로 할 것이냐 무상급식으로 할 것이냐 고민을 했는데 과감히 무상급식을 1번으로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1번으로 무상급식을 결정하고 다 함께 추진한 것이 지방선거에서 승리의 요인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2012년에는 총선과 대선이 있는데 우리가 어떻게 국민의 신뢰를 얻고 진보진영이 어떻게 승리할 수 있겠느냐고 생각해 보면 민주주의 문제가 더 클 수도 있지만 복지문제도 매우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최근에 여러 가지 정책을 내놓는 노력도 하고 있는데 보수진영의 반격도 만만치 않아서 우리가 같이 스크럼을 짜고 거기에 공동대응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정희 : 민주당에서 연초에 복지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해 주셔서 얼마나 고마운지요. 대단히 환영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무상교육, 무상의료 등 복지문제를 10년 전부터 주장해 왔는데 드디어 무상급식, '건강보험 하나로'와 같이 어떤 것부터 시작할 것인가 하는 방향으로 정리가 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무상급식 문제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보편적 복지의 단초에 대해서는 이미 국민의 큰 공감대가 있었다고 봅니다. 또 그것이 야권연대를 만들어 내는 큰 힘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이것을 어떻게 확장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무상급식은 사실 재원을 많이 필요로 하지 않았죠. 정책 판단의 문제였고 어느 정도 조정을 통해서 가능했는데 다른 문제들은 좀 더 확장되면 재원이 상당히 필요할 수 있기 때문에 그 문제들을 어떻게 책임 있게 논의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앞으로 공공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복지정책 전반을 만들어 나가야 할 텐데 이전에 있었던 문제들에 대해 잘 평가하고 야권이 함께 나아갔으면 하는 생각을 합니다. 2012년에 복지가 가장 중요한 이슈가 될 것이라는 것은 다들 비슷한 생각일 것 같습니다.

조승수 : 제가 좀 편하게 말씀 드리면 1997년 IMF 금융위기가 우리 사회에 미친 영향은 상당히 컸습니다. 그 결과로 비정규직이 양산되고 우리 사회의 양극화가 심화되었습니다. 그러나 기존의 복지는 보통 가족복지나 정규직 대기업의 기업복지가 중심이었습니다. 그리고 국민의정부나 참여정부도 대체적인 평가는 시장 메커니즘에 기반을 한 복지체제였다고 보는데 이런 구조가 한계에 봉착했습니다. 세대로 보면 '55년부터 '63년 사이에 출생한 이른바 전후 베이비붐 세대들이 2009년,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퇴직하기 시작하는데 그 동안에는 베이비붐 세대의 정상적인 중산층 정도 사는 집안의 사람이 실업을 하거나 사회적으로 문제가 생겼을 때는 가족에게 손을 벌리는 것이 어느 정도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이 세대들이 본격적으로 퇴직하는 시대가 되면서 이제는 시골에 있는 전원가족이 갖고 있는 부동산처럼 완충역할을 해줄 수 있는 여지도 매우 적어졌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가족복지나 소수 대기업의 복지만으로는 도저히 헤쳐나갈 수 없는 조건이 되었습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이 국민들에게 호응을 받았던 이유는 단지 이명박 정권에 대한 반사적인 정책적 결절점(結節點)으로써만이 아니라 이미 이 문제들을 해결해 달라는 목소리가 광범위하게 형성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하나의 선거를 위한 개념보다 철학에서부터 재원 마련, 정치 전략에 이르기까지 정교하게 논의하고 풍부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민주당이 최근에 복지정책을 많이 제시하고 강령까지도 그에 맞추는 것을 보면서 환영도 하지만 긴장도 하고 있습니다.

유시민 : 저희 당이 1년 전에 창당했습니다. 2009년도에 창당 준비를 위한 당원들의 당명 투표에서 국민참여당이 1등을 해서 당명이 되었는데 유력 후보가 참여복지당이었습니다. 참여정부를 계승하고 복지에 신경을 쓰는 당이라는 의미였습니다. 국민 참여는 과정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복지라는 것은 목표를 말하는 것인데 당은 목표를 앞세우는 것이 좋다는 주장이 많았습니다. 창당 준비위원회에서 신당의 가칭을 국민참여당이라고 써서 그런지 투표에서는 국민참여당이 되었습니만 요즘 많이 아쉬워들 하고 있습니다.

참여당은 기본적으로 리버럴 자유주의 정당입니다. 당원들의 기본적인 사고방식이 개인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주어진 규범에서 자기 삶의 행동원칙을 꺼내기보다는 내가 원하는 것을 확장해서 사회적 규범으로 접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복지 문제도 역시 그렇게 접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복지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복지는 안심하고 살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살면서 보면 개개인의 삶은 위험의 바다를 항해하는 돛단배처럼 보입니다. 실직, 질병, 사고, 고령 등이 우리 삶을 불안하게 만들고 실제로 그런 사태가 생기기도 합니다. 한번 가난해지면 영영 벗어나기 힘들다는 생각도 포함해서 개개인의 삶이 너무나 불안하다는 것이고 이러한 삶의 불안을 혼자서 해결할 수 없는 시대이기 때문에 연대해서 해결해보자는 생각입니다.

이해찬 재단법인 광장 이사장

우리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갖는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헌법에서 강조하고 있는 겁니다. 저는 복지는 인간의 품위, 인격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을 갖춰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상급식을 해 줄 테니까 증명서를 받아오라고 아이들을 내모는 것은 밥 주는 것보다 아픈 상처를 주는 것입니다.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복지문제를 생각해야 합니다.

저희 연구원에서 지금까지 복지에 대해 내놓은 것은 첫 번째로 보편적 보육수당제도를 제안했고 둘째는 서민 주거안정을 위한 전월세 임대시장 합리화 문제를 발표했습니다. 셋째로 준비하는 비정규직 보완 입법은 민주노동당과 함께 토론을 진행합니다. 그밖에 건강투자정책에 관한 문제, 대학등록금 문제 등등 순차적으로 10개 정도를 금년 중에 제시해서 2012년 총선 후보들이 갖고 나갈 당의 공약으로 만들 계획입니다. 여기서 초점은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사회', 두려움을 덜 느끼면서 '이 사회 속에서 내가 혼자가 아니다'라는 느낌을 갖고 사회에 대한 귀속감을 느끼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국가 정책이 바뀌어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최근 복지 관련 토론이 지나치게 한 건주의 식으로 가는 위험이 있는 것 아니냐 하는 문제의식도 있습니다.

전통적인 의미의 복지국가는 사회적 연대 기능을 국가가 독점하는 시스템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든 사회적 연대라는 차원에서 국가가 실시하는 복지정책의 카테고리는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가 사회보험이고 두 번째는 보편적 사회서비스이고 세 번째는 공적 부조입니다. 무상급식은 보편적 서비스에 해당되는 겁니다. 우리의 경우에 국민 개개인이 살아가면서 느끼는 불안감, 두려움, 위험 이런 것들로부터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사회보험의 개선과 보완이 필요합니다. 보편적 사회서비스는 너무나 미약하기 때문에 이 분야는 대폭적인 투자가 필요합니다. 공적부조는 故 김대중 대통령께서 만드신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참여정부에서 만든 기초노령연금 제도들이 있지만 아직 불충분합니다.

지금은 이렇게 전체 틀을 놓고 어떤 정책들이 필요한지를 보면서 우선순위를 보아 가면서 하나하나 토론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인데 의외로 건강보험, 무상급식, 무상교육, 반값등록금 문제 등 개별정책 사안들이 두드러지면서 논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런 와중에 증세문제까지 겹치면서 '상당히 혼돈스럽지 않느냐'라고 생각합니다. 진보개혁진영의 정당과 전문가, 시민사회가 머리를 맞대고 생각들은 조금씩 다르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어떤 국가를 실현하려고 하는가에 대한 포괄적인 공감대를 이루는 것이 충분히 되어야 그 다음에 개별 현안에 대해 논의와 뜻을 쉽게 모을 수 있지 않느냐 하는 아쉬움이 좀 있습니다.

▲ 이해찬 재단법인 광장 이사장. ⓒ광장
이해찬 :
우리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갖는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헌법에서 강조하고 있는 겁니다. 저는 복지는 인간의 품위, 인격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을 갖춰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 아이들 급식문제를 다룬 EBS 방송 프로그램을 보면서 공짜밥, 즉 공짜로 먹는다는 부끄러움, 자괴감을 안 주기 위해서라도 무상급식을 해야 한다는 것에 공감했습니다. 제가 예전에 지구당을 할 때 보면 요즘 아이들은 장학금을 준다고 해도 돈 받으러 오는 것을 부끄러워합니다. 밥 먹는 것도 아니고 장학금을 준다고 해도 마지못해 옵니다. 이럴 정도로 아이들의 인생관이라든가 마음이 바뀐 것입니다. 무상급식을 해 줄 테니까 증명서를 받아오라고 아이들을 내모는 것은 밥 주는 것보다 아픈 상처를 주는 것입니다. 그만큼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복지문제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절감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이 쟁점으로 떠오른 배경에는 아이들의 인격을 보호하는 측면도 있지만 서민들의 경제적 부담도 관련이 있습니다. 아이가 2명이면 급식비가 10만 원이 넘습니다. 1년이면 120만 원 정도 됩니다. 서민들에게는 적은 돈이 아닙니다. 이처럼 무상급식은 인권 측면도 있고 경제적 측면도 있어서 지방선거의 중요한 쟁점이 되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지금 정부가 4대강, 뉴타운 등 토건경제와 관련해서 예산을 터무니없이 낭비하는 것에 대한 반사적, 비판적 기능도 있는 것입니다. 한쪽에서는 터무니없는 낭비를 하면서도 무상급식은 큰 자금도 아닌데 포퓰리즘으로 몰아가는 데에 대한 반사적으로 여론이 작동한 점도 있습니다. 그리고 원래 복지문제는 2만 불 정도의 국민소득이 되면 새로운 정책적 과제로 크게 대두되게 됩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접근 하는 게 좋을지 계속 말씀을 나눠주시죠.

정세균 : 유시민 원장께서 복지부장관 경험이 있으셔서 체계적으로 말씀을 해 주셨는데 덜 중요한 부분이 크게 부각이 되고 있고 4대 보험의 사각지대가 더 중요할 수 있다는 데 공감합니다. 최근 당에서 발표해서 논란이 된 정책들은 사실은 작년에 발표한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어요. 제1 야당이 정책을 발표했는데 아무도 보도를 안 했습니다. 그런데 박근혜 의원이 복지정책을 발표하니까 그것만 쓸 수 없으니까 저희 내용이 부각이 된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박근혜 의원이 기여를 한 것이지만 진보진영의 언론 환경이 이렇게 나쁘다는 현실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정책위 의장이 머리를 잘 쓴 것입니다. 타이밍을 잘 맞춘 것이죠.

생각해 보면 무상급식은 이미 작년 것이고 무상의료는 제목이 그렇게 붙었지만 사실 보장성을 강화하는 것입니다. 제목을 그렇게 붙여서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또 그렇게 붙였기 때문에 논의의 초점이 되고 있어서 그 점은 저희는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또 보육문제나 반값등록금 문제들은 사실은 한나라당에서도 공약으로 70%를 한다고 입장을 밝혔기 때문에 선별적 복지로 보기 어렵고 어떻게 보면 크게 차이가 나지는 않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일자리, 비정규직 문제가 중요하고 복지의 사각지대의 문제, 4대 보험문제도 중요합니다. 그동안 4대 보험에 대해서는 당내에서 논의가 별로 없었는데 저도 이 부분은 충실하게 리뷰하고 개선해야 한다는 데 공감을 합니다.

지금 민주당이 내놓고 있는 정책들은 전체 큰 그림으로 보면 조금 단편적이고 부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데 진보개혁정당들이 어차피 총선, 대선을 위해 정책연대를 해야 한다면 좀 더 체계적이고 포괄적으로 논의해서 종합적인 정책세트를 내놓을 수 있다면 국민들로부터 호응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해찬 : 복지를 생애주기로 보면 출산, 보육, 교육, 일자리, 주거, 건강, 연금, 사회안전망, 재취업 할 수 있는 평생교육 등으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하나 소홀히 할 수 없지만 우리 국가의 현실에서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어디에 경중과 완급을 두고, 선후를 둘 것이냐가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 점에 대해 진보개혁진영 내에서 서로 간에 공감을 해야 할 것입니다. 어디다 역점을 둘 것이냐? 이것이 연정의 가장 중요한 토대가 될 것 같고 그 점에 대해 당마다 차이를 가질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서로 간에 이야기해보면 좋겠습니다.

복지담론이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증세논쟁에 정면으로 맞서야 vs
그것 보다는 현재 꼭 필요한 정책을 선후와 완급, 경중에 따라 가려나가야 vs
세부 재원방안의 구체화 보다는 국민의 공감대를 얻는 것이 먼저

조승수 : 최근 논쟁 자체가 증세로 가는 것은 방향이 잘못 잡혀가고 있다고 유시민 원장께서 말씀하셨는데, 저는 최근에 민주당이 그렇게 말하는 것은 어쨌든 복지국가에 대한 관심이나 실현 가능성을 높이는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한나라당이 '복지 포퓰리즘'이다, '세금폭탄'이라고 하니까 민주당이 약간 주춤하는 느낌을 받습니다. 하지만 몇 년 전에 출간된 조지 레이코프의 '코끼리는 생각하지마'의 프레임론에서 보듯이 사실은 보수세력까지도 복지프레임에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 중요한 정치적 계기가 놓여 있는 것이고 저는 이 때 민주당이 주춤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복지국가에 대한 진단이나 접근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만 사실 재원이 핵심이기 때문에 증세를 이야기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부자증세'로부터 '보편증세'로 가야 한다든지 사회보험 확대로 가야 한다든지 식의 단계적인 논리구성을 잘 하고 설득력 있게 만드는 것은 필요하지만 증세논쟁을 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한국사회에서는 한 번도 주요 정치세력들이 세금문제를 놓고 논쟁을 한 적이 없습니다. 종부세 등 보유자산에 대한 논쟁은 있었지만 주로 그것은 부자들이 반발해서 논쟁이 된 것이고 보편적 복지로 가기 위한 증세에 대한 논의는 제대로 된 것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이명박 정부가 부자감세를 해서 줄어든 세수가 1년에 19조 원, 5년간 96조 원 정도 됩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보면 민주주의 훼손 등 여러 문제가 있었지만 우리 주민들과 이야기 해보면 이명박 정부에게 가장 정서적으로 반발한 것은 부자감세에 대한 것입니다. 실제에서도 부자감세는 지방재정에도 여파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제대로 된 복지국가로 가기 위해서는 증세가 필요한데 일단 부자감세를 철회하고 부자들에게 증세시켜야 한다고 얘기해야 합니다. 제가 제출한 사회복지세 도입안의 경우에는 소득을 기준으로는 고소득자의 5%, 법인세 같은 경우는 기업의 1%가 대상입니다. 거기서 만들어 지는 비용이 연간 15조 원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부자감세 철회하고 오히려 부자들이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부자증세로부터 보편적 복지국가로 가는 재원을 확보하자' 이렇게 공격적으로 가야 합니다. 그래서 '복지국가가 실현될 수 있겠네'를 보여 주어야 합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기본적인 복지국가의 수혜를 입은 사람들을 민주주의 정착처럼 역진불가의 형태로, '더 이상 옛날로 돌아갈 수 없다'는 광범위한 지지층으로 만든다면 보편증세로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희 작은 정당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만 오히려 민주당에서 주춤할 것이 아니고 증세논쟁에 대단히 공세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해찬 : 복지 수요에 대한 이야기를 말씀 드렸는데 재원 쪽으로 시작되었으니 이야기를 좀 더 해 보지요. 복지를 위해서는 국가재정의 투입은 불가피한 것입니다. 시장에서 안 되는 부분을 국가에서 담당하는 것이 복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경제규모와 앞으로의 세수 전망을 생각해 보면서 재원을 봐야 하고 복지수요의 규모도 같이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참여정부는 소위 '세금폭탄론' 때문에 엄청나게 비난을 받았었죠. 재원 없는 복지는 불가능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세심하게 보아야 할 것은 증세를 주장하다가 쫓겨난 정권이 많다는 것입니다. 저는 스웨덴의 사민당을 12년 동안 이끌었던 페르손 총리를 진보정상회의에서 가끔 만났는데, 그에게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당신네들은 어떻게 증세를 해서 복지정책을 잘 펼치느냐?', 이렇게 물어봤더니 '맛을 먼저 보여주고 필요성을 느끼게끔 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먼저 증세를 주장하다 쫓겨나면 맛도 못 보여 주고 쫒겨난다'는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재원은 우리가 염출할 수 있는 부분이 여러 군데 있습니다. 제가 정부를 운영해본 경험으로 먼저 말씀을 드리면 우리나라 재정은 중앙정부가 300조 원, 지방정부가 100조 원으로 약 400조 원 정도 됩니다. 그 중에서 인건비 등 경직성 경비를 빼면 약 300조 원이 편성재원입니다. 이 300조 원의 세출예산에서 5% 정도에 해당하는 15조 원~20조 원은 구조조정이 가능한 재원입니다. 또 세출 구조 중에서 토목분야에 잘 못 쓰이고 있는 재원이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착공위주로 편성된 재원이 문제입니다. 먼저 착공을 하고 비용을 계속 편성하는 방식은 결국 재원이 분산되기 때문에 효율적이지도 못하고 금융비용으로 소모되는 재원이 많습니다. 이런 부분에서 조달할 수 있는 재원이 최소 15조 원에서 20조 원이 가능합니다.

세입부문에서는 새로운 재원으로 재벌에 특혜를 주고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는 수출 위주로 국가재정을 집중적으로 지원하다 보니까 수출과 관련된 감세제도, 세액공제들이 대단히 많습니다. 임시투자공제세액을 비롯해서 다 합치면 30조 원 정도 되는데, 그 중에서 불가피하게 유지하는 것도 있지만 일몰시켜도 되는 조세감면 조항도 있습니다. 그것만 해도 최소한 절반 가까이는 가능합니다. 이런 문제가 바로 정책 방향과 의지의 문제인 것입니다. 새로운 세제를 만드는 것이 아니고 있는 세제를 엄격하게 집행만 해도 세출에서 15조 원, 세입에서 15조 원 등 30조 원은 만들 수 있습니다. 또 새로운 세제를 만들어야 하는데 못 만드는 분야도 있습니다. 이런 것을 만들려고 하면 정치적인 압력이 작동합니다. 언론을 통해서 작동하고 재벌들이 준동하고 해서 우리가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고 주저앉고, 주저앉고 해서 이렇게 넘어 온 것입니다. 이런 부분을 구체화해서 설득력 있게 뽑아내면 국민에게 얼마든지 실상을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제가 교육부 장관을 할 때 보니까 교실 건축비가 아파트 건축비와 맞먹었습니다. 아파트 건축비가 265만 원이었는데 교실도 같았습니다. 교실을 짓는 평당 단가가 아파트 짓는 것과 같다는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서 면밀히 원가 분석을 해서 결국 15%를 줄였습니다. 그래도 아무런 질적인 저하가 없었습니다. 50만 원만큼 원가계산이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그런 일들이 토건산업 여러 분야에 작동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전면 복지예산으로는 부족하더라도 수요에 맞는 단계적 예산은 증세가 아니라도 현재로서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부분에 대한 확실한 정리가 있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정세균 민주당 최고위원. ⓒ광장
정세균
: 요새 신문을 보면 민주당 내에 이견이 큰 것처럼 보도가 되는데 사실보다 과장된 측면이 있습니다. 그 부분을 좀 말씀을 드리면 이러이러한 곳에 지출을 늘리자 하는 데까지는 공감을 했는데 '그럼 어떻게 돈을 만들 것이냐'에 대해 처음에 정책위에서 제시한 안을 '다시 좀 검토해보자'는 논의를 하면서 재원 대책에 대해 경제통 의원들이 비판한 내용이 조금 비틀어지고 확대가 되서 보도된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보편적 복지의 큰 원칙이나 각론에 들어가서 이러저러한 것을 해보자는 데에 대한 공감을 만드는 데는 큰 어려움 없다고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고 저는 이해찬 총리님이 말씀하신 것에 다 공감합니다. '돈을 먼저 만들어 놓고 지출할 것이냐' 아니면 '지출할 부분의 필요한 재원을 어떻게 확보할 것이냐'는 순서는, 원래 재정이라는 게 양출제입(量出制入)인데요, 그러니까 재원대책은 당연히 있어야 하지만 그것을 걱정하느라고 꼭 필요한 복지 향상 문제를 주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떤 정책을 채택하든 하루아침에 시행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발표한 정책들은 집권하면 5년 동안 추진하겠다는 취지인데 민주진영이 집권에 성공해도 2013년 이후부터 돈이 들어가는 것이니까 기존의 재정을 개혁하고 세원을 발굴하는 것으로도 새로운 세목 없이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세목을 신설하고 부유세를 먼저 들고 나가면 이러이러한 정책을 채택하자는 제안까지 날아갈 위험이 있습니다. 돈이 들어간다는 것을 정직하게 말하자는 것은 공감합니다만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지혜롭게 대처해 나가야 합니다.

어떤 복지정책이든, 재원대책이든 결국은 국민 공감대를 만들어야 하고 국민들의 승인을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지혜롭게 접근하지 못하면 정권교체를 하지도 못하고 정책을 시행할 수 있는 기회도 갖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바둑의 수순을 따지듯이 아주 정교하게 설계해서 실행하는 것이 실현가능성과 승산을 높이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데 이런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정희 : 저는 유시민 원장님께서 큰 틀에서 사회보험, 보편적 서비스, 공적부조처럼 전체적인 구조에서 보자는 것에 공감하고 아주 중요한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지난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처럼 정말 돈이 많이 들지 않는 작은 영역으로 야권의 공동연대를 만들고 선거 전체를 바꿨습니다. 야당은 국민들에게 큰 틀을 이야기하면서 '다 맞죠?'식으로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것보다는 '정말 이것 하나는 하고 싶습니다. 이것 하나 우리에게 정말 대단히 중요한 것 아닙니까? 이것만큼은 꼭 하겠습니다.'라는 것이 어떻게 보면 국민들에게는 보다 가깝게 느껴지고 현실에 대한 전망을 갖게 하는 것일 수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복지서비스 전체를 함께 합의하는 것은 개별사안에 대한 합의와 이것을 실현시키기 위한 방도의 문제보다는 좀 더 여유 있게 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또 하나 재원마련 문제와 관련해서 사실 작년 정부정책 중에 칭찬한 것이 있는데 임시투자공제세액을 폐지하겠다는 안을 정부가 2년째 국회에 가지고 왔습니다. 저는 '제발 꼭 해라. 이건 꼭 해야 된다'라고 했는데 한나라당 의원들은 굉장히 반대를 하셨고 민주당도 강하게 폐지를 주장하지 않아서 정부가 안을 들고 왔는데도 결국 폐지하지 못했습니다. 비과세 감면을 줄이는 것도 증세하는 것만큼 굉장히 어렵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어쨌든 비과세 감면, 조세지출이라는 것 자체가 지금 세제 혜택이 고소득층, 대기업에 집중되고 있는 것처럼 일종의 왜곡된 구조를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보편적 복지를 이야기하고자 한다면 '다자녀 추가소득 공제'라든가 '교육비 공제'와 같이 사실상 상위 50%에게만 혜택이 주어지는 부분을 조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문제는 우리가 정권을 교체하기 전에도 국민들께 충분히 공감을 얻어가면서 논의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것부터 먼저 논의하고 실현시켜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저도 소득세, 법인세 증세안을 냈고 여러 가지 증세안을 고민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증세 법안을 통과시키는 것은 2013년은 지나고 실제로 새로운 정부가 주도하기 시작했을 때, 앞으로 1~2년은 흘러야 가능하지 않겠는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때까지는 일정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고 그때의 재원마련 대책을 위해서는 비과세 감면문제, 그리고 증세를 적극적으로 통과시킬 수 있는 몇 가지 사회복지의 쟁점들에 대한 집중적인 동의를 구해가는 것이 더 안전하지 않겠나하고 생각합니다.

유시민 : 이정희 대표님 말씀에 상당히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민들과 세미나를 할 수는 없는 것이니까요. 결국 국민들께 말씀드릴 때는 중요한 정책 중심으로 무엇을 하겠다고 말씀드리는 것이 맞겠죠. 그런데 제게는 일종의 트라우마, 악몽이 있습니다.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이 겪은 두 가지 사건 때문에 갖고 있는 악몽입니다.

먼저 우리끼리 합의를 못해서 권력을 잡고도 아무것도 못했던 상황이 굉장히 큰 상처로 남아 있습니다. 대단히 심각한 문제입니다. 국민이 국회 의석의 과반수를 주었는데 우리 내부에서 무엇을 할지에 대해 합의를 모으지 못했습니다. 또 그렇게 되면 곤란합니다. 이제는 무엇을 할 때, 밖으로 내세우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우리가 향후에 함께 일을 하기 위한 생각의 준거가 될 수 있는 공감대를 먼저 이뤄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국민들께 다 말씀 드리자는 것은 아니고 각 당의 정책을 담당하는 분들이나 당의 주요 인사들 간에는 향후 야권연대라든가 선거공조, 연립정권 수립을 염두에 둔다고 할 때, 이러한 공감대 마련을 위한 깊은 논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는 제가 격세지감을 느끼는 것인데 2007년에 참여정부에서 '국가비전 2030'을 발표했습니다. 그 내용은 발표 당시 수준의 OECD 평균 국가복지 지출을 2030년까지 이룩하자는 장기 재정계획이었습니다. 2030년의 OECD 평균으로 가자는 것도 아니고 발표 당시인 2007년 수준의 OECD 평균 국가지출까지 늘리자는 매우 온건하고 어떻게 보면 대단히 소심해 보이는 복지 확대 안이었습니다. 그런데 '국가비전 2030' 발표장에 열린우리당에서 아무도 오지 않았습니다. 집권당에서 참석을 거부한 것입니다. 왜 그랬느냐 하면, 그 때 좌우를 막론하고 언론에서 '세금폭탄론'을 들고 나오고 사방에서 지식인들이 '장밋빛 전망'이라며 집권당과 정부를 공격했기 때문에 열린우리당은 거기에 눌려 말도 할 수 없는 분위기였습니다. '비전 2030'에는 증세안도 없었습니다. 그냥 국가의 세출구조 조정안과 이에 부수되는 제도개혁안이 포함되어 있을 뿐이었습니다. 당시 정부는 책임성 있게 25년 치의 재정계획을 내놓은 것이고 故 노무현 대통령께서는 "2020년까지는 증세는 필요 없을 것 같다. 2020년 이후에는 증세 없이 갈 수 있을 지를 따져봐야 할 것 같다. 별도의 논의가 필요하다"며 완전히 돌려서 재원대책 문제를 얘기했습니다. 그런데도 어디 가서 말도 못 붙일 정도였습니다. 그게 불과 3년 반 전입니다. 이것도 트라우마로 남아 있습니다.

지금 여야를 막론하고 복지국가가 정치권 전체의 화두가 되어 있는 이런 상황을 보면, '지금 이렇게 보이지만 또 잘못되면 나중에 가서 일본 하토야마 정부처럼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하토야마 정권이 야당 때는 정말 떵떵거리며 집권했지만 불과 2년이 못돼서 파산해 버렸습니다. 정치적으로도 파산하고 정책적으로도 파산해서 아무 것도 이행하지 못하는 정권이 됐습니다. 참여정부 때 한 번 기대를 모았다가 국민들을 만족시키지 못하고 충분한 기쁨을 드리지 못해 이렇게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야권이 다 모여서 복지국가를 한다고 해놓고 또 그 모양이 되면 그다음에는 회복하는 데 또 얼마가 걸릴 것인가 하는 우려가 있습니다.

지금 시민사회에서 제기되는 요구를 생각해 봅시다. 무상의료라는 이름아래 보장의 수준에 따라 8조원에서 약 30조 원까지 돈이 들어가는 다양한 정책들이 제안되고 있습니다. 무상보육에 대해서는 저는 9조 원 정도로 보았는데 민주당에서는 11조 원으로 확대되어 있고, 반값등록금은 또 얼마인가요? 이것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거문제, 장애인연금 등등을 포함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정치세력들이 모여서 정책 합의를 하고 공약을 발표할 때 어느 부문의 요구를 누그러뜨릴 것입니까? 이런 식으로 정책 패키지를 만들어서는 지금 야권이 겪고 있는 '신뢰의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이런 지적이 전부 옳은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정책 패키지를 만들어 나갈 때는 때로는 지나친 비판과 지적 속에 들어있는 일리 있는 우려도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국민참여당은 '이번에 국가운영을 맡아 놓고 또 이행을 못하면 이를 회복하는 데에는 참여정부 때보다 몇 배 더 걸릴 지도 모른다'라는 공포감이 사실 커서 복지문제에 대해 민주당보다 더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습니다.

유시민 국민참여당 참여정책연구원 원장

저에게 국가는 무엇인가 물어본다면 국가는 정의를 실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의 실현을 정책문제로 보면, 결국 복지문제는 사회 연대입니다. 국가가 사회 연대를 적극적으로 실현하는 것이 복지입니다. 사회 연대의 원리는 기본적으로 비용은 능력대로 부담하되 그 혜택은 필요에 따라 받는 것입니다. 돈 많은 사람은 많이 내고, 돈이 적은 사람은 적게 내고, 돈 없는 사람은 내지 않되 혜택은 필요에 따라 가져가는 것이 근본 원리라고 생각합니다.


이해찬 : 복지는 국민부담하고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복지의 수요와 당면 요구를 인정하면서도 거기에서 선호와 경중, 완급을 어떻게 가릴 것인가가 핵심입니다. 불가역적인 것부터 시작했다가 굉장히 어려워지는 상황이 올 수도 있습니다. 복지 수요에도 탄력성이 많은 것과 적은 것이 있는데 수요 탄력성 문제도 섬세하게 판단해야 할 것입니다. 지속가능해야 하고요. 지속가능하지 않으면, 말하자면 중간에 포기하면 굉장한 공격을 받게 됩니다. 현실성, 지속가능성을 종합적으로 고민해야 합니다.

얼마 전에 각 당의 정책을 담당하는 분들이 모였던데 내년 선거 전에 이런 분들이 모여서 충분히 논의해야 한다고 봅니다. 경중과 선후와 완급이 잘 가려지지 않으면 구심점을 잃고 막 퍼져나가게 됩니다. 현재의 재정을 가지고 할 수 있는 분야, 가장 시급한 분야를 공유해야 나중에 연정을 할 적에 연대의 토대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내년 총선, 대선에서 연대 없이는 집권 못한다고 봅니다. 민주당이든 민노당이든, 진보신당이든, 국민참여당이든 하나의 당으로는 집권하지 못합니다. 지금까지는 말로 연대를 했지만 구체적인 정책으로 확인하는 연대를 해야 합니다. 정책 연대를 통해서 충분히 토의하고 경중과 완급을 가리는 합의절차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당 내에서도 이견이 있는데 다른 당하고 하려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정말로 진정성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 ⓒ광장
이정희
: 2012년 총선, 대선 전에 무엇부터 할 것이냐를 합의하는 과정에서 논의할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닐 것 같습니다. 무엇을 가장 먼저 할 것이고, 어디에 예산을 배치할 것이냐, 어떤 법을 가장 집중해서 먼저 바꿀 것이냐 등등이 있습니다. 여기에 각 정당들의 논의가 필요한데 당들의 논의가 흩어지지 않게 하는 힘은 결국 국민의 참여와 통제죠. 흩어지지 않을 단단한 토대를 만드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도화가 필요합니다. 가령 '주민 참여 예산제' 같은 것은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는 지금 논의를 하고 있는데 그렇게 되면 의회가 아무리 의원들이 있어도 자기 맘대로 하는 것이 불가능 해질 것입니다. 의석수만으로 모든 것을 한다는 것이 어려워집니다. 주민 참여 예산제와 같이 서로 참여하고 통제받는 기구를 설치하고 그 힘에 근거해서 야당의 연합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봅니다.

유 원장님께서 트라우마를 말씀하셨는데 그때 저는 국회 밖에 있었지만 트라우마가 만들어진 배경을 보면 서로간의 기대수준이 많이 다르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많은 것을 이루리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느린 것 같고, 그런데 왜 느린지 정확한 설명 안 되는 것 같고, 뭔가 배제 당한다는 생각 등, 서로 간에 불편함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저는 2012년에 정권을 바꾼다면 정말 필요한 것은 장기 집권이라고 생각합니다(다 같이 웃음). 이런 논의는 5년 만에 끝나는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복지문제에 대한 법을 바꾸고 새로 만드는 조세 하나가 안정되려면 상당히 오랜 시간 사회적 합의와 안정화 그리고 그만큼 돈을 내시는 분들에 대한 설득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복지논의에 대해 계획표를 세워서 '앞으로 10년, 15년을 어떻게 갈 것이냐'에 대한 사회적 협의를 해나가면서 서로 대화해 나가고 때로는 참고 인내하면서, 때로는 이끌고 가는 사람에게 이끌려 가기도 하는 과정들이 초기 단계에는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조승수 : 아무래도 집권경험이 있는 분이라서 트라우마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자칫하면 '자기검열의 기제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냐'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저는 이해찬 총리님께서 세출 구조조정과 세원을 발굴하면, 아까 말씀하신 것만 합산하더라도 75조 원~80조 원이 되는데 과연 이것이 가능할까 생각합니다.

과연 증세 없이 가능한 것인가? 우리가 유럽식의 복지구조를 일정 정도 만들기 위해서는 100조 원 정도는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 전에 적어도 수 십 조원 정도는 있어야 당장 시급한 의료나 보육부분을 진행할 수 있다고 한다면 증세 없이 가능할 것이냐 하는 문제의식이 있습니다. 아까 이해찬 총리님께서 말씀을 짧게 하셔서 그렇지 세출 조정도 굉장히 많은 전제들이 있고, 다양한 이해당사자가 있기 때문에 그것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대단히 제한적으로 지출에 대한 조정이 될 수밖에 없다면 일정 정도 증세가 불가피할 것입니다. 그리고 부자감세로 인해 이미 재정위기가 와있기 때문에 부자증세에 대한 국민적 합의는 상당 부분 있을 수 있는 것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보편적 증세까지 다 이야기하기는 힘들다 하더라도 증세에 관한 논의는 피하려 한다고 해도 피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소한의 부자증세와 지출조정을 통해서 마련된 재원을 가지고 가장 핵심적인 교육, 의료의 일정 부분을 해 나가다 보면 결국 그것이 복지국가 시스템으로 가는 방안이 아닌가 합니다. 연정 이야기도 나왔습니다만, 조세학자들도 어느 정도 수준의 단계적인 복지국가를 설정하더라도 증세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진단하고 있습니다. 물론 집권도 중요하지만 결국 집권의 목표는 복지국가입니다. 그 과정에서 일정 정도는 돌파해야 합니다. 결국 세금을 이야기하지 않으면 않을수록 보수진영으로부터 오히려 세금폭탄이라는 역공을 당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

2012년 총선, 대선 전에 논의할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닐 것 같습니다. 무엇을 먼저 할 것이고, 어디에 예산을 배치하고, 어떤 법을 먼저 바꿀 것이냐 등등이 있습니다. 여기에 각 정당들의 논의가 필요한데 논의가 흩어지지 않게 하는 힘은 결국 국민의 참여와 통제죠. 단단한 토대를 만드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도화가 필요합니다. 가령 '주민 참여 예산제'와 같이 국민이 참여하고 통제하는 기구를 설치하고 그 힘에 근거해서 야당의 연합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해찬 : '부자증세'라고 말하면 부자들에게는 공격적이 됩니다. 실제 개인 소득세는 증세할 여지가 많지 않습니다. 반면에 법인 소득세는 여유가 있습니다. 먼저 이명박 정부가 낮춘 법인세율을 높여야 합니다. 법인세율을 낮추는 것은 기업이 여러 나라에서 경쟁하려면 세제가 좋아야 한다는 신자유주의 논리에 따른 겁니다. 실제 이명박 정부에서 법인세, 종부세를 전부 합쳐서 연간 19조 원을 낮췄습니다. 그런데 법인세를 낮췄다고 해서 기업들이 투자를 많이 하나요? 대기업들은 유보금을 더 많이 쌓아놓고 있습니다. 신자유주의는 현실에서는 전혀 맞지 않습니다.

그리고 근본적인 부분인데 우리가 국방비 구조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국방비가 245억 불로 GDP의 2.8%를 쓰고 있습니다. 독일, 프랑스는 GDP의 1.3%밖에 안 됩니다. 우리가 245억 불을 쓴다고 중국, 일본에 대한 전투력을 강화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남북한 대립구조 때문에 60년째 쓰고 있는 것입니다. 한반도평화체제를 구축하면 100억 불 정도의 군비 감축을 통해 재원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교통시설특별회계의 경우도 10조 원 이상을 쓰고 있습니다. 이건 휘발유세를 중심으로 마련되고 있는데, 무한정 도로를 확장하는 것처럼 이 돈이, 돈을 쓰기 위한 사업에 많이 낭비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세출구조조정을 통해서도 보편적 복지를 단계적으로 실시하는 규모는 얼마든지 확보할 수 있습니다. 그런 부분을 분명하게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유시민 : 세부적인 재원조달 대책을 논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에 대한 근원적인 사회적 합의가 필요합니다. 복지는 국가에게 요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가란 무엇이냐, 나에게 국가가 뭐지라는 생각부터 해야 합니다. 제가 트위터에 '국가에게 바라는 단 한 가지가 무엇이냐'고 올렸더니, '나를 좀 내버려 달라'가 제일 많았습니다. 우리 국가가 국민을 속박하는 것이 많았구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대답이 정의를 요구했습니다. 복지국가논의든 무엇이든 가장 근원적인 질문은 국가가 무엇을 해야 하느냐, 국가가 과연 뭐냐, 이 질문에 대한 포괄적인 공감대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게 국가는 무엇인가 물어본다면 여러 가지 대답이 있겠지만, 국가는 정의를 실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의 실현을 정책문제로 보면, 결국 복지문제는 사회 연대입니다. 국가가 사회 연대를 적극적으로 실현하는 것이 복지입니다. 사회 연대의 원리는 기본적으로 비용은 능력대로 부담하되 그 혜택은 필요에 따라 받는 것입니다. 돈 많은 사람은 많이 내고, 돈이 적은 사람은 적게 내고, 돈 없는 사람은 내지 않되 혜택은 필요에 따라 가져가는 것이 근본 원리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부자급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수 없습니다. 부자는 세금을 많이 내는 것이고 부자든, 가난한 아이든 다 같이 밥을 먹는 것입니다. 사회 연대의 범위에 들어오는 과제들은 이런 식으로 해결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재원 조달 문제도 '부자 증세'는 누구를 공격하는 것 같습니다. 그것 보다는 '조세 정의 실현'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사회 연대, 복지국가라는 틀에서 생각할 때 정의는 부담이든, 혜택이든 받을만한 사람에게, 감당할만한 사람에게, 자격이 있는 사람에게 준다는 관점에서 보자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세입분야에서 정의는 능력대로 조세를 납부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능력대로 안 하고 있고 너무 많이 빠져나가고 있어서 복지재정 조달 면에서는 조세정의 원칙을 세워야 합니다.

그리고 정치하는 사람들이 지켜야 할 윤리적 규범, 준거는 칸트적인 도덕관념이 아닙니다. 칸트적인 것은 지식인들처럼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하면 되는 것입니다. 결과는 책임이 아닙니다. 하지만 정치하는 사람들은 막스 베버식의 윤리관을 가져야 합니다. 결과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이야기라 하더라도 종국적으로 좋은 결과를 낳게 하려면 집권을 해야 합니다. 집권을 하려면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신념에 따른 것도 열심히 해야 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의 요구와 소망에 부합하는 것을 해줌으로서 결국 정치에서 좋은 결과가 나오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 복지정책 논의의 초점을 이론적으로 올바른 것을 찾는 것에 두기보다는 현 단계에서 국민들에게 많은 공감대를 받을 수 있는 논리와 정책 내용, 우선순위를 발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많은 논의를 해야 되겠지만 제가 앞서 말씀드렸듯이 개별 사항으로 논의를 시작하게 되면 위험하다는 것은 공감의 폭이 좁아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정당 사이에서, 각 정당을 뒷받침하고 있는 지식인 사이에서 논의를 할 때, 이런 관점에서 노력을 더하면 굉장히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해찬 : 유시민 원장님 말에 공감하는데 그동안은 복지가 시혜의 관점에서 나왔지만 이제는 권리로서 복지가 나옵니다. 그것이 정의입니다. 복지는 권리입니다. 20%가 80%에게 베푸는 시혜가 아니고 그 20%까지를 포함한 기본적 권리입니다. 전에 이정전 교수가 '복지는 가치다. 복지는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에서의 기본적 가치다. 그러기 때문에 보편성을 갖는 것이다'라는 글을 쓴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보편적 가치로써의 복지, 인간의 기본적인 인권을 담지해 주는 기본적인 가치로써의 복지. 이런 부분들을 금년도에 당당하게 담론으로 정립해서 그걸 가지고 보수세력하고 맞서야 합니다.

이정희 : 개헌 논쟁하고도 연결될 수 있는데요, 우리 헌법학의 주류 논의는 '나한테 간섭하지마'라고 하는 자유권적 정치적 기본권과 사회경제적·문화적 기본권의 두 가지로 가르고 앞에 것은 완벽한 권리이지만 뒤의 것은 하나의 프로그램적 규정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자유권은 국가가 보장해야 하는 것이지만 경제적·문화적 권리는 국가가 노력해야 할 의무를 지는 것이라고 두 가지를 갈라서 보는 시각이 많죠. 이 문제에 대해 국제사회에서는 두 개가 연결되어 있고 특히 경제적·문화적 권리는 실제로 국가가 적극적으로 노력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는 논의들이 이미 나와 있고 선진적인 국가들의 헌법에는 반영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최근 개헌 논의를 보면서 권력구조뿐만 아니라 경제민주화 논의를 담은 119조 2항을 날리고 싶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굉장히 우려하고 있습니다. 경제적·문화적 권리는 국가의 의무가 아니라 그저 '국가가 노력하면 되는 것이다' 정도로 하고 싶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권리라고 보기 때문에 보편적이 되는 것이고 누구나 행사할 수 있는 것이고 행사하는데 어려움이 없어야 합니다. 행사할 때 모욕을 당한다거나 낙인이 찍힌다거나하는 장애물이 없어야 하고, 권리를 행사하고자 할 때 부당한 이유로, 공정하지 못한 이유로 거절되는 일이 없어야 하는 것이 권리의 보편성 문제입니다. 저는 최근 박근혜 전 대표의 맞춤형 복지, 한국형 복지를 담은 사회보장기본법 개정안을 보고 놀랐습니다. 물론 좋은 문제의식이 담겨있지만, 그 개정안의 많은 조문은 전산시스템을 만들고 복지 수혜를 받는 사람들은 정보를 제공할 의무를 지고, 복지를 공급하는 기관과 별도로 독립한 기관이 모니터링하는 시스템을 두겠다는 것이 이 법안의 가장 구체화된 내용입니다. 이건 복지를 권리로 보는 것이 아니라 시혜로 보는 것입니다.

정세균 : 제가 보기에는 국민적인 정서, 국민들의 가치를 진보진영이 생각하는 쪽으로 어떻게 공감대를 만들어 가고 승인받을 것이냐가 매우 큰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복지정책에 대해 국민들의 승인을 받으면,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국민들이 동의할 것입니다. 그러나 승인을 받기도 전에 증세부터 들고 나가면 저항에 직면할 수 있습니다.

부자감세를 철회하고 감면제도를 개선하는 것만으로도 전체적으로는 상당한 규모가 됩니다. 그런데 새로운 세목을 신설하고 거기서 5조에서 10조 원 정도를 확보하려면 시간도 많이 걸리고 저항도 무지하게 클 것입니다. 그것이 선거 패배의 결정적인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보다는 법인세를 원래대로 되돌리는 것이 현명합니다. 법인세의 경우 1년에 35조 원 정도가 들어오는데 원래 세율이 28%였는데 이명박 정부가 현재 22%까지 깎았고 한나라당안은 20%까지 내리는 겁니다. 지금 우리 보다 법인세가 낮은 나라는 대만, 싱가폴 정도뿐입니다. 최소한 24%, 25% 정도까지는 복원해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어떤 정책을 채택하는 것을 가지고 논의가 되어야지 재원문제가 논란이 되면 정책 자체도 안 된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정책위 안을 유보하고 대신 TF를 만들어서 TF가 재원대책을 마련하는 것으로 했습니다. 민주당 내부적으로는 당장 세목을 신설하자는 것에는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개혁진영뿐 아니라 보수진영에서도 복지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면 분위기는 무르익은 것 같습니다. 우리가 무상급식을 확실하게 실천해서 국민들한테 그거 괜찮은 것이구나 하고 승인받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세균 민주당 최고위원

어떤 복지정책이든, 재원대책이든 결국은 국민 공감대를 만들어야 하고 국민들의 승인을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지혜롭게 접근하지 못하면 정권교체를 하지도 못하고 정책을 시행할 수 있는 기회도 갖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바둑의 수순을 따지듯이 아주 정교하게 설계해서 실행하는 것이 실현가능성과 승산을 높이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데 이런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해찬 : 궁극적으로는 35%정도의 조세부담률이 이루어져야 보편적 복지체제가 갖추어지는 건 사실입니다. 현재보다 10%정도 조세부담률이 높아져야 합니다. 우리가 1조 불 정도의 GDP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결국 100조 원 정도가 궁극적으로 필요합니다. 이 문제를 회피하는 것은 정직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수요 자체는 단계적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경제수준에서 필요로 하는 보편적 복지의 수준에 맞는 재원을 찾아야 합니다. 현재 수준에서는 2008년도에 잘못한 조세제도를 복구하고 세출을 구조조정하고 1년에 3~4% 성장하는 경제규모에 맞추어 신규 세원을 확보하고 배분해 나가야 합니다. 지금 정부는 제대로 실시를 안 하는데 참여정부 때에는 예산 총액을 부분별로 관리하는 예산실링제를 했었습니다. 그렇게 해나가면 현재 재원으로도 상당 수준을 채워나갈 수 있다.

그리고 국가재정도 도덕성이 있어야 합니다. 기초노령연금의 경우 우리 경제성장을 뒷받침해 온 노동세력을 위한 것입니다. 이런 분들이 연금도 없이 노령을 맞이해야 하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자기를 헌신해서 경제를 발전시켜 놓은 분들이 땡전 한 푼 없이 노령사회로 들어가서 공짜로 지하철이나 타고 다니는 이런 사회체계는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분들에게 최소한의 연금을 줘서 당당하게 노후생활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은 정치의 책임입니다. 그 분들이 현재 9만 원, 부부는 13만 원 정도를 받게 되면서 굉장한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동안 아무 지원도 못 받던 분들이 '국가가 나를 챙겨주고 있구나, 기억하고 있구나'하는 마음을 느꼈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이러한 마음이 다른 정책에 대한 신뢰도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당시에 한나라당이 터무니없는 주장을 했지만 타협을 통해 만들어 냈습니다. 이런 경험을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정세균 : 그 때 한나라당에서는 기초연금제를 도입하자고 주장했었는데 민노당도 찬성을 해서 난감했었습니다. 제 기억에는 35만 원의 기초연금을 70%까지 주자는 것이었는데 이는 원래 IMF 위기 때 민주노총에서 주장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재원이 없으니 엄두를 못내는 것인데 한나라당이 그 주장을 해서 우리는 노령연금으로 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한나라당이 집권하고 있는데 기초연금에 대한 이야기는 다 날아가고 없습니다. 기초연금 주장을 이행하라고 한나라당에 요구해야 합니다.

이해찬 : 우리가 기초노령연금제를 도입할 적에 최소액부터 시작하자, 부담할 수 있는 최소액으로 추진하면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것은 가능할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복지정책을 펼 때, 전면적으로 실시할 것을 전제로 재정을 확보하는 것하고 단계적으로 시작해서 점차적으로 확대할 정책을 구분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건강보험의 경우에는 처음에 전면 실시가 어려울 것으로 봤기 때문에 단계적으로 확대해 온 것입니다. 그 결과 부족한 부분도 있지만 비교적 안정된 건보체계를 만들었습니다. 복지정책은 정착시키는 과정에 대해서 섬세하게 접근해야 합니다.

조승수 : 저는 단지 복지가 좋은 것이라고 그냥 설명할 것이 아니라 경제적 측면도 함께 고려해 볼 때, 결국 복지를 통해 우리 경제의 장기 성장측면에서 내수시장을 넓히고 가처분소득을 높이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는 총체적 설명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큰 틀의 증세, '세금을 내라'가 아니라 '우리도 장기적으로 세금을 내고 안전한 사회로 가자'라는 논리를 일관되게 가져가는 것이 오히려 신뢰성을 높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 말씀드리면 '일자리가 복지'라는 주장은 악용되는 점이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비정규직문제가 있기 때문에 일자리문제를 복지문제와 체계적으로 연계해서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정희 : 증세 논의는 재정 책임측면에서 당연히 필요하다고 보고 '부유세' 논의는 우리에게 여러 면을 생각해 봐야 하는 여지를 남겼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다만, 우리가 실제 재원을 마련하려고 할 때, 국민들의 수용성도 있지만 새로운 세목을 만들면 당연히 헌법재판소로 갈 것이라는 것도 생각해야 한다고 봅니다. 헌법재판소는 이미 정치기관이 되었습니다. 가장 강력하고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으며 제2의 여지도 없는 곳이 되었습니다.

저는 특히 조세문제, 사유재산에 대한 제한, 경제에 대한 규제와 관련한 헌법재판소에서의 논의는 다음 정권 내내 매우 불리하고 어려운 환경이 될 것 이라고 생각합니다. 올해 대법원도 마찬가지지만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이 바뀌게 됩니다. 저는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세목을 만든다면 헌법재판소에서 합헌 결정을 받을 수 있는 안전하고 이론의 여지가 없는 세금이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려면 방법이 두 가지가 있을 수 있는데 하나는 기존 세금에서 최고구간을 만들거나 세율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해서 '이것은 정책판단의 문제다'라고 논의되고 '충분히 변화의 여지가 있다'라고 받아들여지는 방법입니다. 다른 하나는 '상장 주식거래의 양도 차익 과세문제'처럼 다른 것은 과세하는데 빠져있는 부분에 대해 빈틈을 메우는 방식인데 이것은 실제 세수는 크지 않지만 불리한 사법제도 환경을 생각해보면 '소득이 있는 곳에서 과세한다'라는 원칙에 따라 수용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법인세, 소득세 문제는 정 최고위원께서도 말씀하셨듯이 당장 올해 말에는 논의를 해야 하기 때문에 야권 전체에서 어떤 안을 가지고 논의할 건가에 대해 공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율을 22%가 아니라 좀 더 올리든, 아니면 최고구간을 만들어서 올리든 좀 더 논의해야 하겠지만 어쨌든 시한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야권이 공동으로 모여질 수 있는 재원마련 대책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조승수 진보신당 대표

저는 단지 복지가 좋은 것이라고 그냥 설명할 것이 아니라 경제적 측면도 함께 고려해 볼 때, 결국 복지를 통해 우리 경제의 장기 성장측면에서 내수시장을 넓히고 가처분소득을 높이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는 총체적 설명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큰 틀의 증세, '세금을 내라'가 아니라 '우리도 장기적으로 세금을 내고 안전한 사회로 가자'라는 논리를 일관되게 가져가는 것이 오히려 신뢰성을 높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복지담론을 통해 쌓은 신뢰와 협력이 '12년 진보개혁 연대의 토대가 될 것,
선진복지국가의 경험과 사례를 우리 현실에 접목시키는 공동의 노력도 강화해야


▲ 유시민 국민참여당 참여정책연구원장. ⓒ광장
유시민
: 복지를 강조하고 사회연대에 대한 국가의 개입, 국가의 책임을 키우자고 이야기하고 이것이 공동체 전체의 발전과 국민 개개인의 안전한 삶을 위해 훨씬 유익하고 합리적인 제도라고 계속 말해야 합니다. 그런데 정치적인 면에서 한 가지는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최근 복지를 강조하는 것이 자꾸 차이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복지라는 어젠다를 내세우는 건 국민 개개인에게 좋고 공동체에 좋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지금 정권을 잡고 있는 사람들과 다르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런데 복지담론이 형성되는 전반적인 분위기를 보면 자꾸만 차이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경쟁적으로 펼쳐지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복지 문제에 대해 포괄적으로 같은 의견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각자가 잘 알고 있는 분야가 있고 관심분야가 다르기 때문에 조금씩 강조점이 다릅니다. 또한 공동의 목표를 추구한다고 할지라도 어떤 방법을 쓰는 것이 가장 목적에 맞고 합리적인가에 대한 생각도 사람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논의는 정책의 목표, 방법, 재원조달 방식, 이행하는 메커니즘에 대해서 공통점을 찾아가기보다는 차이점을 드러내는 것이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해서는 일이 제대로 되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복지담론을 펼치는 과정 속에서 되도록 많은 사람들을 담론의 범위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해야 하고 보다 큰 틀 안에서 각자의 경험과 인식, 개별적 이해관계의 차이들을 보완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복지담론을 가지고 정치를 해나가고 선거를 치루고 논쟁을 해나가는 과정 속에서 더 많은 국민들을 하나로 통합시켜나가는 모습으로 담론이 펼쳐져야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해찬 : 복지수요의 선후, 완급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복지수요가 여러 가지 부문에서 다양하게 나오는데, 현재 시점에서 국민들이 요구하는 가장 긴급한 수요가 뭐냐, 그리고 그것을 어느 정도의 완급으로 다룰 것이냐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선후, 경중이 가려져야 그 다음부터 구체화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한 합의가 없이 나열식으로 나오니까 혼돈이 생기는 것입니다. 당 정책위원회 모임과 같은 것을 정례화해서 선후, 완급에 관해 좀 더 체계적이고 심층적인 논의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웬만큼 말씀들을 나눈 것 같은데 마무리 말씀들을 해주시죠.

정세균 : 오늘 좌담회는 매우 의미 있었습니다. 단지 재원대책과 관련해서 약간 이견이 있는데, 그것도 자꾸 자리를 함께하고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으면 공감대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국민의 마음을 얻을 것인가에 대한 공동 목표와 지향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잘 될 것입니다. 민주당이 과거에 비해서는 훨씬 더 과감하고 진보적인 생각들을 하게 된 것도 우리가 공감대를 만들고 정책연대를 만드는 데 촉진제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물론 통합이 되면 좋겠지만 어떻게든 정책연대부터 출발해서 선거연대를 이루어 국민 여망인 정권교체를 달성해야 합니다. 내년 총선에서 못 이기면 정권교체는 멀어집니다. 우선 총선 승리를 위해서 복지문제뿐만 아니라 선거연대 논의를 빨리 시작해서 틀을 만들고 연대가 성사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각 정당의 후보자들이 여기저기 뿌리를 내리고 깃발을 꽂으면 정리하기가 어려워집니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도 함께 노력합시다.

이정희 : 복지문제를 지금 시계열로 잘라 놓고 a냐, b냐는 선택의 문제로 보면 합의점을 찾기 어려운데, 장기적으로 같이 간다고 생각하고 어떤 것을 앞, 뒤로 배치할 것이냐, 어떤 방법까지를 열어놓을 것이냐에 대해서 논의를 한다면 충분히 합의할 수 있고 국민들이 '그래도 작은 차이와 의견의 대립들을 극복하고 하나로 정리하는 능력이 있구나'하는 면을 보여드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능력을 보여드리는 것이 결국 2012년의 큰 변화를 만드는 토대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4월 재보선에서 야당이 잘 연대를 해서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내년 4월 총선의 토대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조승수 진보신당 대표 ⓒ광장
조승수
: 제가 오늘 고집스럽게 세금문제를 말씀드렸던 것은 이런 고민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 중요한 시대적 전환기의 판이 열렸다고 봅니다. 그런데 외국 선진복지국가들은 대체로 조직된 노동의 힘을 기반으로 노동당, 사민당을 중심으로 사회적 타협이 가능했는데, 우리 사회에서는 복지국가를 추동할 조직된 힘은 어디로부터 나올 것인가? 우리는 선진 유럽국가들과 다른 조건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진보정당이 중요하고 진보정당의 포지션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한국형 복지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그리고 그것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동력을 어디서 확보할 것인가 하는 차원에서 지금 국면에서는 증세문제를 전략적으로 계속 제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로서도 이런 고민들이 완결되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오늘 같은 자리를 통해서 계속 논의를 하고 집권경험을 가진 분들에게서 많이 배워야겠습니다.

유시민 : 세력적 관점에서 노동세력에 기반을 둔 정치세력이 만들어지고 그런 세력이 바라는 소망을 정책으로 내는 것은 중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또 하나 생각해 볼 것은 역사는 세력사이의 경쟁이기도 하지만, 아이디어 사이에서 살아남는 경쟁이기도 합니다.

저는 독일에 유학을 갔다 와서 독일 사례를 자세히 들여다봤는데요, 독일 헌법은 우리의 복지국가와는 조금 다르지만 사회국가(Sozialstaat)라는 개념이 헌법에 규정되어 있고 그것에 대해 국민들이 국가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점에 대해서는 논의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런데 사회국가의 근원을 보면 처음 시작된 것은 비스마르크 시대부터입니다. 독일이 통일된 직후 얼마 되지 않아서 사회연대를 사회보험의 형태로 최초로 도입된 것이 빌헬름 황제 하의 프로이센이었고 이후에 산재보험, 고용보험, 노령연금이 도입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사회국가라는 모토 하에 수립된 경제체제는 사회적 시장경제라고 하는데 이것은 아데나워 정부가 만든 거거든요. 여기에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인물들은 우파 경제학자들이었습니다. 질서 자유주의자라고 해서 독일식 네오리버럴 신자유주의자들인데 그쪽에서 사회적 시장경제의 기본 패러다임을 제공했고 에르하르트가 직접 경제장관을 맡아 그 일을 했습니다. 여기서 토대가 만들어진 다음에 '70년대 초반 사민당이 대연정을 거쳐 집권을 하면서 공동 결정법을 비롯해서 사회국가의 기반을 더 강화하는 조치들이 쌓여서 지금까지 온 것입니다.

저는 복지담론이 진보세력에 의해서만 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논의를 조직하고, 어떻게 이슈를 만들어내고, 어떻게 사람들을 설득하느냐에 따라서 누구의 손에서든 만들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지금 세력의 관점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어떤 선입견 없이 아이디어를 접촉하고 아이디어를 모으고 아이디어들끼리 교류를 시키고 거기서 실행가능성을 염두에 둔 최소한의 합의를 만들어내려는 노력이, 어찌 보면 세력 통합보다 더 중요할 수 있는 국면이라고 봅니다. 오늘 이런 자리가 하나의 작은 계기라고 생각하고 앞으로 야권의 중요한 지도자들, 정책담당자들, 당원들이 각 지역 차원에서 좀 더 논의하고 노력해서 세력과 세력의 협력, 연대뿐만 아니라, 각 세력들이 가지고 있는 이상과 아이디어 사이의 교류와 연대도 중시했으면 합니다. 이런 기회를 더 많이 만들고, 서로 이해를 깊게 하면 큰 성과를 이룰 수 있다는 소망을 말씀드립니다.

이해찬 : 유럽의 진보정당들은 당 대회때 마다 강령을 조정합니다. 기본 강령수준에서 주장하는 것과 당면과제 차원에서 제시하는 과제들을 정기적으로 정리해 나갑니다. 가령 증세문제는 강령차원에서 장기적으로 일관되게 유지해 나갑니다. 당면과제는 선거를 앞두고 현실화시킵니다. 제일 체계적으로 잘 하는 곳이 독일의 사민당인데, 사민당은 수상이나 의원들이 당의 정책적 방향을 수시로 바꿀 수 있는 구조가 아닙니다. 기본 강령을 정리해 놓고 그 다음 당면과제 차원에서 풀어 나갑니다. 우리는 아직 원칙과 당면과제 사이의 조율 경험이 일천하고 일관되지 못했습니다. 앞으로는 우리도 계속 협의하고 서로 확인하면서 정리를 해 나가야 합니다. 그 속에서 신뢰가 생기게 됩니다. 이러한 노력을 일관성을 갖고 함께 해나가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제안 말씀을 드리면, 오늘 4당에서 오셨으니까 이러한 논의를 객관화시키고 국민들에게 보편적 공감을 얻기 위한 방법으로 공동 세미나를 개최하면 어떨까 합니다. 스웨덴, 독일과 같이 그동안 복지정책을 성공적으로 추진한 나라들의 페르손 총리처럼 정책을 집행하고 이론을 뒷받침해주었던 분들을 공동으로 초청하면 어떨까요. 이분들과 함께 우리 사회의 새로운 발전 전망, 공동체의 새로운 진로를 모색하는 국제학술세미나를 추진하는 방안을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제가 가끔 만나서 듣는 이야기가 한국은 경제가 이렇게 커졌는데 복지체제가 왜 이렇게 낮게 되어 있느냐는 것입니다. 오늘 나눈 우리의 주장과 그분들의 주장이 같이 나가면 복지담론이 보편적으로 확산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오늘 오랜 시간 좋은 말씀을 잘 해주셨습니다. 이상으로 좌담을 모두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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