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은 서울 삼청동 안가에서 23일 있었던 한나라당 지도부와 만찬에서 "당정청은 역사와 국민 앞에 공동운명체로서 무한책임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안상수 대표는 2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전날 안 대표, 김무성 원내대표, 원희룡 사무총장, 심재철 정책위의장이 이 대통령 초청으로 전날 저녁 만찬 자리를 가졌다고 밝히며 이같은 이 대통령의 발언을 전했다.
안 대표는 "당정청이 함께 협력해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를 성공시켜 정권 재창출을 이루자고 다짐하는 등 당청 간 소통을 강화하는 화합의 시간이었다"고 전했다. 만찬에는 이재오 특임장관과 임태희 대통령실장, 정진석 정무수석 등도 자리를 함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만찬은 '정동기 낙마' 등 인사 파동 과정에서 사이가 벌어진 당청간 불편함을 해소하고자 한 목적인 것으로 보인다. 인사 파동이 지나간 후 청와대가 26일 예정됐던 당 지도부와 만찬을 일방적으로 취소한 것도 이 대통령의 심기가 그간 얼마나 불편했는지 보여주는 사례였다. 한 신문은 "이명박 대통령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고 전하기도 했었다.
이 때문에 안 대표는 그간 청와대에 비공식적으로 '사과'의 뜻을 내비쳐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발행된 <서울신문>과 인터뷰를 통해 안 대표는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 사퇴 요구가) 청와대에 큰 충격을 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나중에 충격이 컸다고 들으니 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고 심경을 털어놓기도 했다.
"정동기 낙마 파문으로 이 대통령의 '레임덕'이 시작됐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과 관련해 안 대표는 "전혀 그렇게 보지 않는다. 우리는 (부적격 결정이) 당과 대통령을 모두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대통령의 뜻을 거슬러 공격하겠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23일 밤에는 어떤 대화가?…개헌·대권 관련 논의 오간 듯
"당정청은 운명공동체"라는 말의 의미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설왕설래 하고 있다. 이번 인사 파동 과정을 거치며 레임덕에 빠져드는 기미가 보이자, 이 대통령이 당 지도부 단속에 나섰다는 얘기도 나온다. 친이계 중에서 이 대통령에게 가장 협조적인 안 대표와 관계를 나쁘게 가져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당내 소장 개혁파를 중심으로 '대통령 탈당' 얘기가 나오는 것과 관련해 '불안감'도 작용했을 거라는 분석도 나온다. 26일 예정된 만찬을 팽개쳐 놓고, 뜬금없이 23일 만난 상황을 보면 '이 대통령 쪽이 더 급했다'는 추측도 가능하다.
안 대표는 인터뷰를 통해 '역대 대통령이 모두 임기 말에 탈당했다. 당에서 탈당 요구 목소리가 커지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절대 그런 불행한 일 있어서는 안 된다"며 "민심이 그렇게(대통령의 탈당을 요구하게) 되지 않도록 사전에 당과 청와대가 잘해야 한다. 민심이 이반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게 당의 의무"라고 말했다.
"정권 재창출"에 관한 얘기가 나온 것도 주목할만한 부분이다. 박근혜 전 대표가 사실상 '대권행보'를 시작했고, 김문수 경기도지사, 오세훈 서울시장, 정몽준 한나라당 전 대표가 각각 자기 '브랜드'를 내세우며 '경쟁'에 돌입한 시기에 나온 발언이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이 대권 구도와 관련해 당 지도부에게 모종의 '주문'을 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안 대표의 인터뷰 발언을 보면 이날 오간 대화 내용 일부를 추측할 수도 있다. '청와대도 여전히 개헌을 원하고 있다고 보는가'라는 질문에 안 대표는 "대통령도 몇 차례 (개헌을) 언급했다. 청와대는 지금도 개헌을 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개헌 추진에 '의지'를 갖고 있다는 말이다.
이 대통령을 만나고 온 당 지도부가 이날 비공개 회의에서 개헌 의총을 설연휴 이후로 미루는데 만장일치로 찬성한 것 역시 이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개헌 논의는 하되 당장 있을 수 있는 당내 반발을 달래는 등, 설득 기간을 늘리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개헌 의총 반대"를 외쳤던 한 소장파 의원은 "일단 개헌 의총이 연기된 것은 긍정 평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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