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는 24일 본회의를 열어 '사회적 참사 특별법'을 통과시켰다. 재적 의원 216명에 찬성 162표, 반대 46표, 기권 8표였다.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바른정당, 정의당이 발의한 이 법안에서 찬성률 75%를 기록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 문제가 2011년 8월 정부의 역학조사로 처음 확인된 지 무려 6년 3개월만이자,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지 3년 7개월 만이다.
'사회적 참사 특별법'은 세월호 참사와 가습기 살균제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우도록 특별조사위원회를 출범시키고, 필요하면 특별 검사를 통해 기소권과 수사권을 발동할 수 있도록 한 법안이다. 이 법안은 2016년 12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됐다.
국회법에 따라 1년 여가 지난 뒤에 본회의에 자동 상정되는 이 법안은 여야가 뒤바뀌면서 뜻밖의 암초를 만났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바뀐 여야 상황을 반영해 여야의 특조위원 추천 비율을 바꿔달라고 요구하며 전날부터 1박 2일간 국회 앞에서 노숙 농성에 돌입했다.
이에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국민의당은 전날인 23일 저녁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의 상의 속에 '사회적 참사 특별법' 수정안을 논의했다. 그러나 자유한국당이 24일 의원총회를 열어 이 법안 통과에 최종적으로 반대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은 이 수정 합의안을 받아들이겠다는 뜻을 밝혔다.
수정 합의안은 특조위원에 대한 여야 추천권 변화가 핵심이다. 2016년 12월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대표 발의한 원안에서는 특조위원 여야 추천 비율이 여당 3명, 야당 6명이었지만, 수정안에서는 바뀐 여야 상황을 반영해 여당 4명, 야당 4명(자유한국당 3명, 국민의당 1명), 국회의장 1명으로 조정했다.
협상 과정에서 원안보다 후퇴한 조항도 있었다. 원안에서 특조위 활동 기간은 기본 2년, 필요 시 1년을 추가할 수 있도록 했지만, 수정안은 1년이 기본이고 필요 시 1년을 추가하도록 바뀌었다. 대신 자유한국당의 고의적인 특조위 출범 지연을 막기 위해 특조위원 9명 중 6명만 구성해도 특조위 활동이 '자동 개시'되도록 한 조항은 지켜냈다.
끝까지 쟁점이었던 '특검 구성 요건'과 관련해서는 특검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해 구성하되, 자유한국당이 방해할 경우를 대비해 법사위에서 3개월 동안 의결하지 않으면 본회의에 특검 구성안이 자동 상정되도록 했다. 앞서 1기 특조위는 자유한국당의 반대로 특검 구성을 해보지도 못한 채 종료한 바 있다.
한국당 "특별법 통과되면 국회의 수치" 발언
이번 법안은 여야가 20대 국회 들어 최초로 세월호, 가습기 살균제 당사자가 동의하는 '협치 법안' 성과를 냈다는 의미가 있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애초에 '특조위의 조사 대상이자 수사 대상'인 자유한국당을 '적폐 정당'으로 규정하며, 자유한국당과 중재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지만, 결국 아쉬움 속에 양보안을 수용했다.
자유한국당 정유섭 의원은 토론 발언에서 '이미 진상 규명이 충분히 됐으므로 특조위 출범이 필요 없다'는 취지로 발언하며 "이 법안이 통과되면 국회의 수치"라고 말해 본회의를 방청하던 유가족들이 반발했다. 정 의원은 "세월호 사고의 원인을 모르냐. 모르면 제가 알려드리겠다"고 말해 유가족들의 야유를 사기도 했다.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자유한국당이 저희들을 농락하는 발언을 해서 화가 많이 난다"면서도 "국회는 특조위원 구성 단계부터 협상 과정에서 보여줬던 모습을 끝까지 보여주시길 바란다. 정부가 하지 못한 일을 국회가 끝까지 책임지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1박 2일 국회 노숙농성 세월호 유가족…사회적 참사법 통과에 눈물
이날 본회의에는 세월호 유가족과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 110명이 출석해 '사회적 참사법' 통과를 지켜봤다.
이 법안을 대표 발의한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법안 취지를 설명하자, 유가족들은 두 손을 모아 기도하기 시작했고, 법안이 통과되자 박수를 치고 눈물을 흘렸다.
세월호 유가족과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은 전날인 23일부터 1박 2일간 국회 본청 앞에서 노숙 농성에 돌입했다. 밤새 내리는 눈을 맞고 밤을 지새운 보낸 유가족들은 24일 아침 본회의 직전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진상 규명, 특조위 설립'이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본회의장에 입장하는 국회의원들에게 일일이 허리를 숙였다.
유가족들은 "좋은 아침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의원님", "가족이 원하는 수정안에 찬성을 부탁드립니다"라고 말했다. 자유한국당 의원은 대부분 유가족들을 지나쳐갔고,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의원들을 목례로 답하거나 일일이 유가족과 악수를 나누고 갔다.
인사를 받은 국민의당 박지원 의원은 주먹을 하늘로 들어올리며 "파이팅"이라고 말하고 갔고,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은 "오늘 이거 안 되면 국회 해산해야죠. 자유한국당 해체하고"라고 말했다. 정의당 이정미 의원이 유가족들에게 악수를 하자 한 유가족이 "의원님 사랑합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자유한국당 김도읍 의원은 입을 굳게 다물고 주위를 둘러보며 지나갔다.
본청 앞에서 손팻말을 든 단원고등학교 고 오영석 학생의 어머니 권미화 씨는 이날따라 자꾸 박근혜 전 대통령이 생각난다고 했다. "우리는 노숙 농성하면서 지난 세월을 보냈는데,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회에서 레드카펫을 밟고 갔고, 우리가 '살려달라'고 그러니까 그냥 웃고 지나갔던" 장면이 자꾸 떠오른다고 했다.
권미화 씨는 "어젯밤에 여기서 눈을 맞고 자면서 '내일은 환호의 눈물을 흘릴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며 "국회가 압도적으로 사회적 참사법을 통과시켜 반대하는 국회의원들을 고립시켰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 바람은 75%의 찬성률로 이날 법안이 통과되며 일단 이뤄졌다.
하지만 자유한국당 정유섭 의원은 토론 발언에서 '진상 규명이 충분히 됐으므로 특조위 출범이 필요 없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충분히 조사됐는데 아직 부족하냐"라는 대목에서 한 유가족은 "부족하지"라고 나지막히 말했다. 정 의원이 물러가자 유가족들은 그에게 야유를 보냈다. 한국당 의원 일부는 '사회적 참사법' 표결에 참여하지 않고 본회의장 자리를 뜨기도 했다.
이날 세월호 2기 특조위를 출범하기 위한 '사회적 참사법' 통과로, 진상규명에 첫 발을 내딛게 됐다. 1기 특조위는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새누리당의 방해로 제대로 조사조차 못해보고 끝난 바 있다.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만일 박근혜 정부 때와 마찬가지로 방해를 일삼는 일이 있다면 가족들이 기필코 막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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