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경비구역(JSA)에서 귀순한 북한 병사의 상태를 알리는 브리핑에서 이국종 아주대 중증의료센터장이 한국의 응급 의료 현실을 적나라하게 질타했다.
그간 여러 차례 한국 의료 현실을 비판해 온 이 센터장이 여론이 초미의 관심을 가진 이번 일을 예로 들어 다시금 비판의 날을 세움에 따라 향후 응급 의료계를 둘러싼 논란이 되살아날 것으로 보인다.
22일 이 센터장은 아주대 중증의료센터에서 2차 브리핑을 열어 "환자를 치료하는 건 이벤트가 아니"라며 "중증외상센터가 더는 환자를 받지 못하는 상황인데, (여론이 관심을 가지는) 귀순 병사 말고 (치료가 필요한) 다른 환자가 여전히 많다"고 말했다.
이어 적절한 응급 치료가 어려운 다른 환자를 두고 "지금 목숨과 사투를 벌이는 이가 많다"며 "기자 여러분이 지엽적인 것만 보지 말고, 의료 현실의 이면을 들여다보시라"고 강조했다.
취재진이 궁금해 한 귀순 병사의 상태 말고 부족한 응급 의료 현실을 강하게 강조한 셈이다.
이 센터장은 작심한 듯 "제가 얘기해 보니 북한 병사는 자기 의사로 (남한으로) 넘어왔는데, 그 사람이 빗발치는 총알을 뚫고 내려온 이유는 한국의 긍정적 모습을 기대해서지, 응급 환자를 병원이 수용하지 못해 죽어가는 모습을 보려고 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제 대한민국 청년으로 살아갈 북한 군인이 한국에 기대하는 모습은 자기가 어디서든 일하다가 위험한 일을 당해 다쳤을 때 30분 내로 응급 수술적 치료가 이뤄지는 나라"라며 "한국에 살면서 사고 났는데, 정작 그때는 갈 곳도 없고, 전화 걸 데도 없고, 아는 끈이 없어서 병원에 전화 한 통 못해 허무하게 생명을 잃는다면 그가 왜 여기 넘어왔겠느냐"고 강하게 질타했다.
이 센터장은 아덴만 작전 등을 통해 이름이 알려지자 기회가 되는 대로 한국의 부족한 응급 의료 현실을 지적한 바 있다. 이 때문에 그는 자신이 의료계에서 '왕따'에 가까운 존재라고 자괴감을 표하기도 했다.
이 센터장이 이처럼 의료 현실을 지적하는 이유는 한국의 중증의료센터가 열악한 상황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 교수에 따르면, 중증외상센터가 태부족하고 의료진도 부족해 살릴 수 있었음에도 살리지 못한 환자 비율이 35%에 이른다. 사고 현장에서부터 이송 단계에 이르기까지 골든아워를 지키지 못해, 사망한 이들이 많다는 뜻이다.
중증외상센터를 찾는 이 대부분은 비정규직 노동이나 위험 노동에 종사하는 이들로 알려졌다. 이 센터장이 중증외상센터를 "국가가 국민에게 반드시 제공해야 할 사회안전망"이라고 그간 강조한 이유다.
하지만 노동 환경이 열악하고 선호하는 의료진도 부족해 전문의부터 태부족한 게 중증외상센터의 현실이다. 이 센터장도 고된 중노동으로 인해 건강에 크게 손실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헬기로 인해 인근 주민의 원성이 높고, 병원으로서도 흑자를 내지 못하는 센터를 애물단지로 생각하는 등 중증외상센터의 입지는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증외상센터의 어려움을 그린 MBC 드라마 <골든타임> 등이 이런 현실을 그린 바 있다.
이 센터장은 한편 귀순 병사의 건강 상황에 관해서는 "해당 병사는 주한 미군이 30분 만에 현장에서 센터로 이송해 왔다. 이것이 미국, 일본, 영국의 스탠더드"라며 "현재 환자의 의식은 명료한 상태"라고 밝혔다.
이 교수는 다만 "환자가 심리적 스트레스로 인해 우울증세를 보이고 있다"며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관한 평가와 조사를 할 예정"이라고 언급했다.
이어 "적어도 수일 이상 중환자실 치료를 이어갈 예정"이라며 "이후 환자의 이송과 치료에 관해서는 관계 기관과 협의해 결정할 문제"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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