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과 청와대는 "정 후보자의 자진사퇴로 사태가 수습될 것이다"고 입을 모으곤 있지만 앞으로도 상황이 녹록치 않을 것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2008년 정권 출범 당시의 남주홍, 박은경, 이춘호 장관 후보자 낙마와 2009년 7월의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 낙마, 2010년 8월의 김태호 총리 후보자, 신재민 장관 후보자, 이재훈 장관 후보자 낙마 등 '인사 참사'는 이 정부의 연례행사나 다름없다. 하지만 임기 4년차의 이같은 파동은 충격이 더 할 수밖에 없다.
지난 해 후반부터 이명박 대통령이 부쩍 '레임덕'이라는 단어에 신경질적 반응을 보인 것 자체가 '레임덕의 신호탄'이라는 시각도 있다. 또 더 심각한 문제는 '변화의 가능성' 자체가 극히 낮다는 것이다.
'직언을 하는 참모가 없다', '임태희 실장이 전횡하고 있다'는 등의 책임론이 봇물처럼 터지고 있지만 결국 문제는 이명박 대통령 본인이라는 게 중론이다.
▲ 2011년 신년연설을 하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 ⓒ청와대 |
'참모 탓'이 소용 없는 이유
신년 들어 쓰나미 같은 구제역 확산에 인사파동, 물가급등 등 국정 운영 전반에 빨간 불이 들어왔지만 이 대통령의 대국민 메시지는 이와 동떨어진 것이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3일 신년연설에서는 정치권의 복지 경쟁에 대해 '포퓰리즘' 딱지를 붙였고 10일 라디오 연설에서는 "한국에서도 저커버그(페이스 북 창업자)가 나오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11일에는 종료된 지 무려 3달이 지난 G20 서울 정상회의에 대한 대규모 합동보고회의가 청와대에서 진행됐다. 이 자리에서 이 대통령은 현재의 20대를 'G20 세대'라고 규정하면서 "나도 G20 세대라는 심정으로 정책을 세우겠다. G20 세대에 맞는 정책으로 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나쁜 이야기는 아니지만, 지금 현안들하고는 전혀 동떨어진 뜬금없는 소리들 일색이었다. 보수 언론조차 이 대통령의 이런 발언들을 주목하진 않았다.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구중궁궐 이야기가 안 나올 수 없는 모습들이다"고 한숨을 쉬기도 했다.
민정수석을 지낸 정동기 정부 법무공단 이사장의 감사원장 내정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정 이사장의 경동고 후배인 임태희 대통령실장의 인사 파워, 청와대 참모들의 직언 부족에 대한 지적이 본질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이 대통령은 지난 해 마지막 날 확대비서관 회의에서 레임덕과 정치권과 소통부족에 대한 우려를 언급하는 참모를 향해 "나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고 질타했고, 2일 신년연설문 독회에서는 "자꾸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자기 일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거나 사심이 있는 사람들이다. 일하는 사람에겐 권력 누수가 없다"고 못을 박았다고 한다.
지금 청와대는 전혀 '직언'이 나올만한 분위기가 아니고 참모 탓을 해봤자 소용없음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강경파 득세할 가능성 높지만 상황 반전 어려워
정동기 후보자의 낙마로 이 대통령의 구상은 또 한 번 헝클어지게 됐다. 류우익 전 대통령실장 같이 애초 정 후보자와 같이 물망에 오른 인물을 앉힐 수도 없는 노릇이다. 김태호 전 총리후보자의 후임으로 갈등지수가 낮은 김황식 총리가 낙점됐듯 '로 키'의 인물이 지목될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국정운영의 기조가 바뀔 가능성은 극히 낮다. 일단 "경제도 살렸고 국격도 높였다. 일 열심히 하겠다는데 사사건건 발목잡는 건 비판만 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는 이 대통령의 멘탈리티가 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위기상황에서 '정면돌파'를 주장하는 강경파가 득세할 가능성도 높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앞장서고 있는 물가 전쟁의 확대, 북한에 대한 더 냉정한 태도, 정무적 사안에 대한 의도적 거리두기 등 기시감 있는 수순이 이어질 수 있다. 이동관 특보를 주목해야 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같은 이유다.
하지만 상황이 반전되긴 쉽잖아 보인다. 고공행진을 하고 있는 대통령 지지율에 대한 신뢰도는 이미 낮다. 일단은 몸을 낮추고 있지만 한나라당의 분위기가 예전과는 확연히 다르다. 최고위원회의에서 청와대 편을 들어주는 사람은 '어제의 친박 좌장' 김무성 원내대표 한 명 밖에 남지 않았다. 친박계는 이 대통령의 발목을 표나게 잡진 않겠지만 게이트 키퍼 노릇을 톡톡히 할 가능성이 있다.
또 '함바집 게이트'도 문제다. 배건기 전 청와대 감찰팀장은 사표를 냈고, 최영 강원랜드 사장, 장수만 방위사업청장 등 이 대통령의 측근들이 대거 거명되고 있다. 이들이 의혹을 받는 시점도 현 정부 출범 이후다. 집권 4년차인 2011년에도 '노무현, 김대중 정부 때 비리 운운' 하면 비웃음을 산다는 것을 검찰 스스로가 잘 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일이 계속 터질 수 있다.
이와 관련 참여정부에서 청와대 수석을 지낸 한 인사는 "검사들 입장에선 인사 한 번만 물먹으면 되는 시점이 왔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전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검찰 대규모 인사가 한 번 정도 밖에 안 남았으니 눈치를 덜 봐도 된다는 이야기다. 마지막 인사에서 어중간하게 영전해서 차기 정부 5년 간 눈 밖에 나느니 차라리 물 먹는 게 나을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5년 찬밥을 각오해야 했던 정권 초와는 분위기가 다르다는 것.
이에 대해선 경찰의 한 중견간부도 "이강덕 경기청장 같은 사람이야 차기 청장 내정자나 다름없지만 다른 중간 간부들은 다음 정권에서 잘 나갈 생각을 하게 되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명박의 '문재인'이 있을까?
민정수석실, 국정원 등에서 이런 흐름을 제어하려 나서겠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정동기 전 수석의 감사원장 내정 역시 이런 기류에 대한 대응책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재판 진행도 권력기관의 누수에 한 몫 할 수 있다. '정권 보위보다 내가 안 다 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막긴 어렵다.
참여정부 시절, 임기 후반기로 가면서 당청 관계는 단절되다시피 했고 노무현 당시 대통령의 지지율도 현재 이명박 대통령에 비해 훨씬 낮았다. 하지만 청와대 분위기가 어수선하진 않았다.
어떤 면에선 노 대통령 보다 신뢰가 높았고 '왕수석'으로 불리던 문재인 전 민정수석이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컴백해 분위기를 다잡았다. 관료출신 각료들의 국정운영도 안정적인 편이었다. 검찰이나 국정원에 대한 기대치가 원래 낮았기 때문에 권력기관과 청와대의 갈등도 덜했다. 정권재창출에 너무 신경쓰지 않는다는 당의 반발이 높았을 정도로 오히려 청와대는 욕심을 안 부리거나 혹은 못 부렸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청와대는? 문재인 자리에 임태희 현 실장 혹은 백용호 정책실장, 나아가 이동관 특보를 대입해봐도 답이 잘 안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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