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숙 보건의료노조 위원장 직무대리는 21일 국회에서 열린 '병원 내 갑질 문화 현장 증언 및 긴급 대책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림대학교 성심병원은 체육대회 장기 자랑을 위해 간호사들에게 선정적인 옷을 입고 야한 춤을 추도록 강요해 '간호사 갑질' 논란을 일으킨 곳이다.
이날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와 강병원, 남인순, 유은혜, 이학영 의원의 주최로 모인 성심 계열 병원, 을지대학교 병원 소속 간호사들은 '야한 춤 강요'는 병원 측이 간호사에게 벌어진 갑질의 한 단면일 뿐이라고 입을 모았다. 병원 측의 '인건비 절감' 정책이 간호사들을 '임신 순번제' 등 부당한 갑질로 내몰고 있다는 것이다.
"1년 동안 임신 금지령…임산부, 새벽 3시에도 동원"
춘천성심병원 11년 차 간호사인 ㄱ 씨는 얼마 전 근로계약서에 휴게 시간 한 시간이 적혀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ㄱ 씨는 지난 10년 동안 일하면서 단 한 번도 휴게 시간 1시간을 가져본 적이 없다. 밥은 5~10분 내 먹고 업무에 복귀해야 했고, 화장실에 갈 시간이 부족해 생리대도 교체하지 못하거나 방광염에 걸리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했다.
병원에는 장기 자랑, 체육대회, 바자회, 환자 워크숍과 같은 외부 행사가 많았다. 그런 행사가 있을 때마다 하루 12시간 일하는 것은 기본이었다. 하지만 ㄱ 씨는 '시간 외 근로 수당'을 제대로 받아 본 적이 없다. 오히려 병원 측은 "병원 인증 평가 가산점을 받기 위해 심폐소생술 교육 등록비 12만 원, 갱신비 5만 원을 간호사에게 내라고 강요했다"고 한다.
대전을지병원 16년 차 간호사인 ㄴ 씨는 수년간 중환자실에서 근무하다가 결혼 4년 차에 타부서로 발령 났다. 난임으로 고생하던 ㄴ 씨는 상사로부터 "타부서 업무에 완벽히 적응할 때까지 1년 동안 아이를 갖지 말라"는 지시를 듣고 눈물을 삼켜야 했다. 하지만 그토록 생기지 않았던 아이가 그해 10월에 생겼고, 수간호사는 "네가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냐. 내가 뒤통수 제대로 맞았다"고 면박을 줬다.
임신한 ㄴ 씨는 주말이든, 새벽 2, 3시이든 병원이 부르면 언제든 달려가야 했다. 만삭이 됐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하루에도 수십 번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되뇌었지만 버텼다. 90일간의 출산 휴가가 끝나고 육아 휴직은 쓰지 못했다. 육아 휴직을 쓰는 간호사는 '이기적인 사람'으로 찍혔기 때문이다. 생후 80일짜리 핏덩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업무에 복귀했다.
둘째를 낳고 싶었지만, 부서 내 임신 순번제에 가로막혔다. ㄴ 씨는 "같은 해에 결혼하면 가족계획을 부서장과 상의해야 한다"며 "먼저 임신한 후배가 저에게 울며 (먼저 임신해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누가 누구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 하느냐"고 울먹였다. 동시에 임신한 경우에는 부서장과 상의하에 다른 시기에 출산 휴가를 가야 했다.
"환자 의료용품 구매, 간호사 사비 차출"
서울의 을지병원에서 일하는 ㄷ 간호사는 병원 측이 '강제 구매 갑질'을 했다고 말했다. 병원에서 바자회가 열리면 간호부가 주도하는 바자회 물품 비용을 회비에서 거둬간다는 것이다. 부서별로 간호사에게 사비를 2만 원씩 걷어서 환자 의료용품과 같은 소모품을 쓰게 했다고 한다.
'병원 인증 평가'가 있는 날이면 간호사들이 병동 청소, 환경 미화에 동원됐다. ㄷ 간호사는 "간호사 회비로 페인트를 사서 칠하고, 이동 침대를 철 수세미로 닦았다"며 "임신 7개월 차 임산부에게 높은 창문을 닦게 하고, 임산부에게 몸에 나쁜 락스로 쪼그려 앉아 이동 침대를 닦게 했다"고 말했다.
을지대학교병원과 을지병원은 파업 43일 차를 맞고 있다. ㄴ 씨는 "임신 순번제를 못 견뎌서 떠날 준비를 하다가 2015년 노조가 설립되고 많은 점이 개선됐다. 파업 43일째인데, 임신한 여성 노동자가 야간 근로를 하지 않을 수 있도록, 눈치 안 보고 육아 휴직을 가도록, 충분한 인력 충원으로 누구나 원하는 때 임신할 수 있도록 끝까지 싸우겠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간호사한테 물티슈 나눠주고 환자 유치 시켜"
박민숙 보건의료노조 위원장 직무대행은 특히 "인천성모병원은 외래 환자 3000명을 달성하는 날을 정해놓고 신규 환자 유치를 간호사들에게 할당했다"고 비판했다. 박 위원장 직무대행은 "병원 측은 간호사에게 (병원 홍보용) 물티슈를 나눠주고 인구 밀집 지역에서 환자를 유치하는 일을 시켰다. 간호사를 영업 사원으로 내몬 것"이라고 비판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이날 환자 치료에 필요한 의료 용품을 간호사 사비로 사도록 한 '비품 갑질', 시간 외 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임금 갑질', '성희롱 갑질', 임신 순번제를 강요하는 '모성 갑질' 사례 등을 보고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이러한 병원 내 '갑질 문화'가 을지병원이나 성심 계열 병원만의 문제가 아니라, 과도한 비용 절감을 추구하는 병원 전반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는 "문제 된 병원들에 대해서는 인권 침해 시정 조치를 시급히 취하고, 국회 차원에서 '보건의료인력지원특별법', '간호 인력 종합 대책 지원'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약속했다.
대책 회의에서 책임 의원을 맡은 강병원 의원은 "한림대학교 성심병원, 을지대학교병원, 을지병원뿐 아니라, 전국 모든 병원에서 벌어질 시간 외 수당 미지급, 최저 임금 위반, 각종 갑질로 인한 인권 침해를 청산하고 국회에서 반드시 이 문제 해결에 앞장서겠다"며 "고용노동부가 법 위반 사례를 일벌백계할 수 있도록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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