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보기 힘들다. 어제 벌어진 풍경이 그렇게 보기 힘들다고 말한다. 정동기 사퇴 요구를 주도했던 안상수 대표가 목소리를 낮춘 것이나, 당초 사퇴 요구에 동의했던 것으로 알려진 김무성 원내대표가 "나는 동의한 적 없다"고 뒤늦게 선을 긋는 것이나 모두 '반란군'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그럼 권력투쟁일까? 일각의 분석대로 청와대와 당 인사가 두 계열로 갈려 권력투쟁에 나선 걸까?
이 또한 그렇게 보기 힘들다. 부실한 인사검증 시스템 문제가 제기된 데 대해 청와대 참모들이 했다는 얘기가 부정적으로 보는 근거다. "대통령의 의중이 처음부터 정동기 후보자에게 실려 있어 한계가 있었다"는 그들의 해명은 권력투쟁설을 일축한다. 이 해명 그대로라면 투쟁대상은 대통령이 된다.
▲이명박 대통령과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가 지난해 11월 17일 청와대 조찬 회동에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 |
그래서 새삼 살핀다. 미처 살피지 않은 하나의 가능성이다. '오판'이다. 한나라당 최고위원들이, 더 구체적으로는 '비토'를 주도한 안상수 대표가 청와대의 '시그널'을 잘못 읽었을 가능성이다.
이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물론 정황 수준에 불과하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수도 없는 세 가지 이유다.
무엇보다 안상수 대표의 언행이 눈에 띈다. 10일의 강성 입장이 다음날 온건 화법으로 바뀐 게 첫째 이유다. 하지만 이건 앞서 짚었으니 생략하자.
이것 말고도 더 있다. 안상수 대표의 캐릭터다. 잇단 '설화' 때문에 정치적 곤경에 몰려있던 그다. 게다가 '청와대 대리인'이란 이미지까지 안고 있던 그다. 그래서 그의 지도력은 거의 없었다. 당내에서 '말발'을 세우기조차 버거울 정도였다. 그런데도 최고위원들은 그의 선창에 전적으로 따랐다.
단순히 따른 게 아니라 전격적으로 따랐다. 안상수 대표의 '사퇴' 선창이 최고위원 전원의 합창으로 바뀌기까지 15분 밖에 걸리지 않았다. 사퇴 요구 이후의 정치적 파장을 고려해 정무적 숙의를 거듭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이유이자 의문사항인 이 세 가지 항목을 일거에 정리하는 게 바로 '오판' 가능성이다. 안상수 대표가 청와대의 '시그널'을 사퇴 유도로 잘못 읽었다면? 안상수 대표가 자신이 잘못 읽은 '시그널'을 최고위원회의에서 '청와대 뜻'으로 전달했다면? 안 대표의 선창을 고깝게 들을 이유도, 정치적 파장을 깊게 숙의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마침 관련된 얘기도 들린다. 최고위원회의에서 한 최고위원이 "정동기 후보자 사퇴 문제를 청와대와 조율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문제를 제기하자 안상수 대표가 "이재오 특임장관과 전화 통화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단다.<한국일보 보도>
다른 얘기도 있다. 한나라당 핵심 관계자가 전한 얘기다. "이 장관은 안 대표와 10일 아침 통화에서 '2~3일 정도 시간을 갖고 당·청 간 조율을 통해 정 후보자 거취 문제에 대한 단일한 흐름을 만드는 게 낫지 않으냐'는 의견을 냈는데 안 대표가 그렇게 급하게 할 줄은 몰랐던 것 같다"고 말했단다.<조선일보 보도>
이 전언에 따르면 안상수 대표는 이재오 장관의 개인 견해를 청와대의 뜻으로 간주한 것이 된다. 어차피 청와대도 '사퇴 불가피' 입장을 세웠다면 자신이 나서 막힌 길을 뚫어주는 게 낫다고 생각한 것이 된다. 반기를 든 게 아니라 충성을 하려 한 것이 된다. 레임덕의 전조가 아니라 코미디의 한 장면이 된다.
사태의 본질이 무엇이든 정동기 사퇴는 되돌릴 수 없는 일이 돼 버렸지만….
*이 글은 뉴스블로그'미디어토씨 (www.mediatossi.com)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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