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정치권 관계자의 분석이다. 한나라당에는 "친이계가 없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온다. 최근 친이직계인 정두언 최고위원, 중립 성향의 남경필 의원이 이같은 취지의 말을 한 적이 있다. 지난해 연말, 60여 명의 멤버를 자랑하는 친이계 최대 모임인 '함께내일로' 송년회에 34명이 참석한 것을 두고 "50명 넘게 전화를 돌렸는데, 바쁘다는 이유로 못 오겠다고 한 의원들이 꽤 많았다"는 뒷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이 상황에서 정치권에 두 가지 장면이 교차하고 있다. 친이계 최대 지분을 가진 이재오 특임장관을 위시한 친이계 핵심 멤버들의 개헌 주장이다. 이들이 염원했던 '개헌 의총'이 드디어 이달 말 열리게 된다. 개헌에 대한 공론장이 당 내에서 처음 마련되는 셈인데, 시작도 하기 전 친박계 이경재 의원은 이례적으로 강한 어투를 구사하며 "개헌 논의는 접자"고 찬물을 확 끼얹어 버렸다.
그리고 "예상보다 일찍"이라는 친박계 의원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신묘년 정초부터 거침없는 '대권 행보'를 시작했다. 물론 박 전 대표의 행보에 더 당황하는 쪽은 친박계보다 친이계다. 친이계 한 의원은 "너무 이르다. 마치 우리에게 '힘'을 과시하는 것 같아서 압박감도 받는다"고 말했다.
두 가지 장면을 놓고 볼 때, 미약하지만 '친이-친박'의 전선은 일단 새로 형성됐다.
"헛짓거리"라는 개헌 의총, 정말 "헛짓거리"이기만 할까?
현재 개헌은 불가능하는 게 정설이다. 한나라당 내에서는 친박계가 '결사 반대'를 천명하고 있고, 민주당 손학규 대표는 아예 "개헌은 이명박 대통령의 정권 연장 꼼수"라고 못박고 있다. 이 상황에서 한 여당 핵심 의원은 개헌 의총을 두고 "헛짓거리"라고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 박근혜 전 대표가 신묘년 정초부터 자신의 정치적 고향인 대구경북 지역을 찾았다. ⓒ연합 |
그러나 개헌 의총이 정말 "헛짓거리"일까? 주목할만한 점은 개헌을 원하는 여론 자체가 높다는 것이다. 친이계 의원들이 개헌 얘기를 꺼낼 때는 항상 "개헌을 원하는 국민 여론이 70%에 달한다"는 말을 전제해 왔다. 실제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개헌이 가능하겠느냐"는 질문과 별개로 "개헌이 필요하느냐"는 질문에 답하는 응답자들은 대개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게 사실이다. 이 때문에 개헌 의총을 밀어붙인다고 해도 친이계가 정치적 손해 볼 일은 없다.
반면 친박계 의원들은 강력히 반발하며 논의 자체를 차단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토론장에서 개헌의 내용이라기보다 '개헌 가능론' 대 '개헌 불가능론'이 맞붙을 여지가 크다는 말이다. "개헌 논의를 접자"고 했던 이경재 의원은 6일 CBS 라디오 <변상욱의 뉴스쇼>에 출연해 "일부 최고의원들이 (개헌) 내용을 토론하자는 것보다는 '논의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토론하자고) 얘기를 하는 것을 보니 (개헌이 논의가) 꼭 힘이 실리지는 않는것 같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 때문에 의총이 열리고 친박계가 '개헌 불가능론'을 주장하고 나설 경우 '개헌에 반대하는 인사들'이라는 인식이 생기게 될 수 밖에 없다.
물론 박근혜 전 대표를 '반개헌론자'로 모는 것은 정치적 실효성도 없고, 대중에게 먹힐 가능성도 적다. 다만 박 전 대표의 고집스러운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효과는 달성될 수 있다. 이는 자연스럽게 지난해 세종시 표결 논란을 연상시키게 된다. 한나라당 홍준표 최고위원이 "지금 개헌 논란을 벌이면 지난해 세종시 논란처럼 된다"고 말한 것은 뜬금없는 분석이 아니다.
결국 의총은 친이계 일부의 '판 흔들기'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즉 구심점이 사라진 친이계로서는 한나라당에 엄존하는 '반박'의 정서를 확인하고, 박근혜 전 대표의 지나치게 이른 대권 행보를 견제하려는 목적을 달성하려 할 가능성이 높다.
나아가 친이계가 '반박 정서'를 중심으로 새로운 정치적 구심점을 마련하려는 행위의 신호탄도 될 수 있다. 그것이 박 전 대표의 요란스러운 행보로 인한 이명박 대통령의 레임덕 가속화를 막을 수 있는 길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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