옳고 그름을 떠나 그 발언엔 최소한의 진정성이 담겨있다. 성장을 우선시 하는 한국 보수의 입장을 여과없이 드러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냥 평가하면 된다. 친절하게도 사탕발림을 하지 않고 본색을 드러냈으니 그냥 하나의 입장으로 여기고 평가하면 된다. 다가올 선거를 통해 국민의 호오 입장을 분명히 내보이면 그만이다. 어차피 총선과 대선의 큰 화두 가운데 하나가 될 게 복지다. 흐름이 그렇다.
▲ 이명박 대통령이 3일 신년 특별연설을 하고 있다. ⓒ청와대 |
2007년 대선의 화두는 경제,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성장이었다. 양극화 심화에 시름 앓던 국민이 이명박 후보의 747 성장정책에 '혹' 했다. 고용불안에 시달리던 수도권 40대가 환호했고, 생계불안에 시름앓던 자영업자들이 박수쳤다. 성장 정책으로 어장을 키울 것이라고 기대했고, '물고기보다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는 보수의 주장에 고개 끄덕였다.
하지만 파탄났다. 어장을 키울 것이라는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747공약은 일찌감치 불시착 했고, 연간 60만개씩 총 300만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공약 또한 '뻥'이었음이 드러났다. 이명박 정권 3년 동안 창출된 일자리는 매년 30만개 안팎에 지나지 않았다.
이제 몸으로 체감한다. 학자들이 언급하던 '고용없는 성장'을 몸으로 체감하면서 더 이상 성장 정책에 현혹되지 않는다. 경제지표와 장바구니 경제가 따로 노는 현실을 몸으로 겪으면서 더 이상 어장에 기대하지 않는다.
국민이 이명박 정부의 '친서민' 구호에 열광한 건 그 때문이었다. 성장에 한계가 뚜렷하다는 사실, 성장을 해봤자 일자리 창출로 환류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체감하면서 국민은 자연스레 복지로 눈을 돌렸고 용케도 그 때 청와대가 내민 게 '친서민'이었다.
이렇게 보면 복지 화두는 이명박 정권의 전유물이 될 수 있었다. 복지 화두를 선점하고 담론의 주도권을 쥘 수 있었다. 하지만 스스로 팽개쳐 버렸다. 무상급식과 같은 상징 공약에 각을 세움으로써 담론의 주도권을 야권에 넘겨버렸다.
무상급식 거부가 이명박 정권의 첫 번째 패착이라면 예산안 강행처리는 두 번째 패착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금년 전체 예산 중 복지예산의 비중과 규모는 사상 최대"라고 주장했지만 그건 그의 주장일 뿐이다. 국민은 그런 총론보다 결식아동 급식비와 청소년 공부방 예산이 삭감된 것을 더 크게 느낀다.
이명박 대통령의 "복지 포퓰리즘" 발언은 이 맥락에서 나온 것으로 사실상 종지부를 찍는 것과 진배없다. 야권의 보편적 복지에 선을 긋고, 국민의 복지 요구에 등을 돌리는 최종 선언과 진배없다. 민심의 흐름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역행 선언이다.
물론 이해한다.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4대강에 20조 원을 쏟아 붓기에 여력이 없고, 고정 보수층이 '포퓰리즘'에 진저리를 치기에 여지가 없을 것이다.
여기서 거듭 확인한다. 이명박 대통령의 "복지 포퓰리즘" 비판은 최소한 솔직하기는 하다. 한국 보수의 입장을 대변했다는 점뿐만 아니라 보수를 둘러싼 정치환경에 순응했다는 점에서도 솔직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렇게 솔직하게 임하면서 임기를 마치면 된다. 그러면 보수층으로부터 박수는 받을 테니까. 문제는 다음이다. 이명박 대통령에 이어 대권을 노리는 한나라당 주자들이 문제다. 민심의 흐름이 복지인데 대통령은 거기에 선을 긋기에 난감한 처지에 빠질 수 있다.
그래서일 것이다. 친박계 의원이 "보편 복지를 포퓰리즘으로 몰아세워 복지 논쟁을 보혁 대결로 이끄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거리를 두는 것일 것이다.
물론 예외도 있다. 무상급식 논쟁을 과도하게 키워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린 오세훈 서울시장 측이다. 그쪽은 반겼다. "보수 진영에 불리할 수 있는 '선별적 복지론'이 대세를 형성하는 데 이 대통령의 연설이 도움을 줄 것"이라고 반겼다.
"보수 진영에 불리할 수 있다"는 판단과 "대세를 형성한다"는 발언이 모순 관계를 형성하고 있음을 인지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쪽은 반겼다. 이미 잡은 길, 그냥 내달리는 것 외에 다른 방도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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