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검찰청법은 검사동일체의 원칙을 이렇게 천명했다.
"검사는 검찰사무에 관하여 상사의 명령에 복종한다."(제7조 제1항)
'복종(服從)'의 사전적 의미는 '남의 명령이나 의사, 또는 규칙 따위에 조금도 어긋남이 없이 그대로 따름'을 말한다. 노무현 정부는 바로 저 검사동일체의 원칙을 폐기한다고 선언하며 검찰청법 일부를 개정했다. 강금실 법무부 장관을 배석시킨 검사들과의 대화에서, 대통령이 수사와 관련된 청탁을 했다는 한 검사의 말에 '이쯤 되면 막 하자는 거지요'라고 응수한 바로 그 즈음이었다.
검찰청법 검사동일체 조항 폐지의 의미
2004년 개정된 검찰청법은 다음과 같다.
"검사는 검찰사무에 관하여 소속 상급자의 지휘·감독에 따른다."(제7조 제1항)
"검사는 구체적 사건과 관련된 제1항의 지휘·감독의 적법성 또는 정당성 여부에 대하여 이견이 있는 때에는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제7조 제2항)
복종 대신 지휘·감독으로 표현이 바뀌었고, 개별 검사의 상급자에 대한 이의제기권이 도입되었다. 그렇다면, 위 법률의 개정이 있기 전에 검사는 상급자의 검찰사무 지휘에 대한 이의제기를 할 수 없었는가.
개정 전 검찰청법 제4조는 이미 검사를 "공익의 대표자"로 명기하고, "그 직무를 수행할 때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며 주어진 권한을 남용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었다. 공소를 제기하고 수행하는 공소권의 주체인 검사는 이미 단독제 행정관청에 해당하며 독자적인 권한을 가지므로 별도로 위와 같은 법률 개정을 할 필요는 없었다. 노무현 정부가 검찰청법을 개정하면서까지 검사의 이의제기권을 명문화한 것은, 검찰 조직 안에서도 구성원들의 합리적인 토론을 통해 사건의 결론을 내볼 것을 강하게 기대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다.
외부에서 보는 검사의 이미지와 달리 검사들은 단일한 생각을 가진 인격 없는 무생물적 존재가 아니다. 그들 역시 다양한 출신 배경과 그 만큼 다양한 정치적 견해를 가진 시민의 일원인 것이다. <검사님의 속사정>(씨네21북스 펴냄)은 그러한 검사들이 도대체 어떻게 일상을 보내는지, 어떤 고민을 하면서 검사 일을 하는지 상세하게 기록한 '현장 르포'다. 평소 신문 사회면에 짧게 기소(불기소) 결과로만 보였던 겉모습과 달리, 한겨레신문 법조기자 출신 저자 이순혁은 수년 간 검사들과 부대끼며 옆에서 지켜본 그들의 속사정을 생생하게 들려준다.
이를테면, 잘 나가는 검사들만 모인다는 서울중앙지검 검사들 사이에서도, '잡범'을 취급하는 형사부에서 인지수사를 하는 공안부, 특수부 등으로 보직 이동을 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이 벌어진다는 이야기가 그렇다. 저자는 검사라도 다 같은 검사가 아니라고 단언한다. 검사 사회도 철저하게 20대 80의 법칙이 관철되는데, 검찰 요직만을 도는 소수 엘리트 검사와 지방 검찰청을 전전하는 소외된 검사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특히, 부장검사 이상부터는 아예 동기 전체가 서열이 매겨져, 매년 이동하는 보직에 따라 검사 동기들 중 몇 등인지, 그래서 검사장 승진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지 본인과 주변이 다 안다고 한다. 엘리트 검사들을 선별하는 인사 요인으로 학연과 지연, 근무연과 혈연 등을 지적하는데, 각종 연줄로 매개된 검찰 인사가 조직을 망친다는 결론에 이른다.
회사원동일체도 존재한다
저자는 검찰 인사가 전근대적인 연줄이 아니라 업무 성과나 능력에 따라 공평하고 합리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백 번 맞는 말이지만 공허하다. 묻고 싶다. 승진을 포함한 인사 시스템이 정량적으로 측정될 만큼 공정한 조직이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지. 화이트칼라들 역시 회사 정치의 비정함과 아부의 효과성을 충분히 체득하고 있다(사실 '회사원동일체'도 존재한다). 검사들도 사회의 다른 구성원만큼이나 한국적 현실에 맞게 진화해왔을 뿐이다.
저자도 아마 이러한 사정을 알았던 것 같다. 그래서 책의 마지막에, 출입 초기 검사들은 보통 사람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들이라는 선입견 같은 게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에게서 평범한 직장인의 모습을 많이 보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다만, 개별 구성원인 일부 검사들은 신뢰하게 되었지만 검사들의 집합인 검찰 조직에 대해서만큼은 문제의식이 더욱 강해졌다고 덧붙인다.
그렇다면 한국 검찰 조직의 진정한 문제는 무엇인가? 저자의 의견과 같이 검사 개인에게 어떤 책임을 모두 지우는 것은 부당하다고 본다. 검사동일체라는 슬로건이 아니라 그것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조직'이 문제다. 나아가 나는 검찰의 기능에 어떤 문제가 있다면, 그 문제가 전적으로 검찰 자체에서부터 비롯되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검찰은 오히려 지금까지 자신의 직분에 충실했으며, 정권의 요구에 따라 '물으라면 물었'을 뿐이다. 단언컨대 본질적인 문제는 검찰의 존재를 확대하여 부각시키는 검찰의 외부, 정치에 있다고 본다.
사법을 축소시키고 정치는 키우자
결국, 정치관계법 개악은 정치 부패 문제를 일소하지도 못하면서 정치 경쟁을 도덕과 법률의 위반 문제로 제한시키는 외부 효과를 불러일으켰을 뿐이다. 2004년 정치관계법 개정은, 여당 소수파였던 노무현 계열의 정치적 계산과 이미 충분한 기득권을 보유한 한나라당의 포퓰리즘 추구의 이해관계가 일치한 결과라고 보는 설명이 설득력 있다. 2009년, 그렇게 정치에서 자신의 지분을 확대한 검찰이 이명박 정부의 이해를 대변하여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 망신주기 수사를 하고 비극을 촉발시킨 역사는 아이러니하다.
이제, 정치권 어느 곳에서 비밀스러운 정보가 흘러가거나 이를 미리 감지한 언론이 폭로한 후, 검찰이 범죄 사실에 대해 수사하고 기소하며 법원이 이를 단죄하는 폭로-조사-기소의 "RIP 과정"(revelation, investigation, and prosecution)이 한국의 주된 정치 과정으로 자리매김하였다(이른바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 정치는 시민들의 동의를 구하거나 조직하는 본래의 경쟁에서 벗어나 상대방을 고소·고발하고 수사 기관을 활용하여 정적을 제거하는 극한의 대립 구도로 변질되고 있는 것이다. 사법의 영역에서 검찰의 '정치 행위'가 커지면서 상대적으로 정치인과 정당의 역할이 작아졌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단순하게 말하면, 정치는 더 키우고 사법은 축소시켜야 한다. 필요하다면 정치관계법부터 개정하는 것은 어떤가.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는 것은 공익의 대표자로서 검찰의 본래 지위를 회복하는 차원에서도 당연한 조치다. 그러나, 거기에만 그쳐서는 안 된다. 검찰 개혁은 수사권 조정에서 나아가 정치의 공간에서 수사기관에게 원래의 몫을 찾아주는 것으로 귀결되어야 한다. 그래서, 아쉽다. 지금 문재인 정부가 검찰 개혁을 얘기하면서도 모든 사안을 수사로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의도와 달리 앞으로 더욱 검찰에 의존하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들기 때문이다. 과거의 잘못을 모두 덮자는 얘기가 아니다. 정치의 몫을 키우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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