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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박근혜, '역시나' 아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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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혹시나' 박근혜, '역시나' 아니었나?

[의제27 '시선'] 박근혜표 복지, 실망이다

거대한 파장이 일지 않을까하는 예상이 있었다. 보수진영이 생각할 수 있는 최대치가 어디인지 몰라도 그 상상의 한계를 뛰어넘지 않을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버지의 꿈이 복지국가였다"는 선뜻 믿기지 않는 표현을 쓴 것에 그 근거를 두기도 했었고, 보수도 복지를 외면하지 않고는 우리 사회의 망국적 위기를 돌파할 수 없기에 복지에 대한 과감한 발상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물론 박근혜표 복지에 대한 이야기다. 만일 박근혜표 복지가 지금까지 적극적 복지, 보편적 복지, 역동적 복지 등등을 주창해왔던 복지친화적 진영을 깜짝 놀라게 할만한 상황이 벌어진다면? 복지에 대해 이런저런 비전을 이야기해왔던 진보진영을 뛰어넘는 청사진을 제시하는 상황이 야기된다면?.... 꼬리를 무는 각종 물음과 그에 대한 시나리오를 생각하는 자리도 제법 있었다. 어쨌든 마침내 보수와 진보진영의 '진짜' 복지국가에 대한 논쟁이 일지 않겠냐는 기대감을 표현하는 이들도 있었고, 그동안 작은 새가슴으로 일관해왔던 진보진영이 복지에 대해 훨씬 '좌클릭'할 수밖에 없는 결과가 될 것이라는 이들도, 결국 우리나라 복지발전에는 매우 긍정적인 결과가 되고 국민들의 삶의 기반이 좀 더 안정화되는 것이기에 환영할만하다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지난 20일, 연평도의 일촉즉발 남북 포격전 위험 상황에도 불구하고 강행한 박근혜공청회에서 뚜껑이 열린 뒤의 평가는, "혹시나 했으나 역시나"라는 시쳇말로 요약된다.

물론 이날은 사회보장기본법 개정을 위한 공청회란 주제가 달렸고, 세 명의 교수들에 의해 발제문이 발표되는 형식을 빌었기에 박근혜 캠프의 공식적인 선언장이 아니었으며 또한 평가하기에도 이르다고 말할 수 있다. 박근혜 캠프의 청사진을 확정하기에는 아직 이른 것이 사실이고 뭐 그리 호들갑스레 박근혜 의원의 일거수 일투족에 대해 벌써부터 신경을 곤두세울 일이 있는지 볼맨 소리를 할 수도 있다.

그간 진보의 전유물로 여겼던 복지, 선거철만되면 온갖 정치적 수사들로 포장될 뿐 진정성을 찾아볼 수 없었던 영역이라는 복지, 그러나 대한민국의 현재 단말마적인 위기를 헤치며 진정 선진사회를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정상궤도를 타야한다는 그 복지를 위해서 유력한 한 정치인의 범상치 않은 행보에 대해 주목하는 심정은 그만큼 절박성을 반영하는 것일 수도 있다. 특히 이명박 정부 들어 능동적 복지, 휴먼뉴딜, 서민중심 등등 선언만 있을 뿐이지 실제는 반(反)복지의 경로를 밟아가는 배반적인 상황에 지쳐 있기에 그 어떤 제대로 된 보수의 복지라도 접하고픈 심리가 반영된 것일 수도 있다.

사정이야 어쨌든, 그날 박근혜 캠프의 복지정책을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진 몇몇 학자들의 입을 통해 드러난 박근혜표 복지의 실체란 대강 이렇다.

먼저 "사회지출 총량 뿐 만 아니라 구성의 수준에서도 복지선진국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열악한 수준이라 복지국가의 확장이 여전히 필요"하다는 전제하에,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그에 따른 사회 양극화의 심화, 저출산·고령화라는 인구구조의 급격한 변화, 가족의 다양화를 비롯한 사회문화적 변동 등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문제"들 때문에 복지부문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선언한다.

그리하여 "한국형 생활보장국가의 설계도를 창발적으로 마련할 필요"가 있으며, "무조건 '작은' 복지국가를 지향하기보다는 '좋은' 복지국가로의 국민통합적 개혁"이 필요하다고 보면서, 4가지 원칙으로서 첫째, "노인세대뿐만 아니라 생애주기별로 균형적인 복지수혜를 지향", 둘째, "빈곤층을 넘어 전국민 대상의 수혜그룹 균형 확보", 셋째, "사후적·소극적인 소득보장(현금이전) 중심에서 예방적이고 적극적인 사회서비스를 중심으로 전환하고 양자간의 균형을 확보", 넷째, "시장대체적인 국가역할에서 공사역할분담의 균형을 창출하고 규제자로서 보다는 통합관리자로서의 국가역할을 강화"를 제시한다.

결론적으로 "새로운 복지국가전략의 요체는 '소득보장'에서 '생활보장(주-소득보장과 서비스보장을 합친 개념)'으로의 개념적 전환"과 "사회서비스를 강화하는 다층적 사회보장 안전망의 구축"을 제시하는데, 1차의 공공서비스보장, 2차의 생애주기별 소득보장, 3차의 민간소득보장, 그리고 4차의 빈곤층을 위한 범주별 소득보장이 다층안전망 구축의 내용이다(아래의 그림 참조).
▲ <그림> 박근혜표 복지의 핵심인 다층 안전망 체계 ⓒ프레시안

그러나 이러한 이날의 발표 내용은 학자들의 현란한 복지국가 그림그리기로는 어떨지 모르지만 정치인 박근혜로서의 복지정책에 대한 대담한 선언으로서는 매우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우선 구체성이 결여된 여러 수사(修辭)로 일관한 내용에서 어떤 구체적 전망과 평가를 행하기 어렵게 되어있다. 생애주기적, 예방적, 맞춤형, 모든 국민 등등의 표현은 이미 이명박 대통령이 후보시절의 '디딤돌복지'나 취임 후의 '능동적 복지'에도 얼마든지 있었던 표현이기에 더욱 그렇다. 현재 한국사회가 직면한 양극화와 저출산, 고령화, 중산층 붕괴, 사각지대 빈곤층, 빈곤세습, 청년실업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에 필요한 매우 과감하고 혁신적인 복지정책에 대한 내용을 접하기엔 너무 추상적이고 현학적이다. 이러한 화려한 전시성 정책구호의 나열에 피로한 국민들을 감동시킬 수 없다는 일이다.

적어도 이날의 발표문 안에는 양극화의 대안으로는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를 해소한다거나, 저출산 해소를 위해 아동수당을 전격 도입한다거나, 고령화의 대비책으로 연금의 소득대체율 수준을 끌어올린다거나, 청년실업을 위해 로제타플랜을 도입하겠다거나 사각지대빈곤층을 위한 기초생활보장제의 부양의무자 폐지를 도입한다는 등등의 어떠한 내용도 없이, 그러한 힌트도 없이 이러한 정도의 말의 성찬으로 어떤 것을 기대하라는 것이지 모를 일이다.

특히나 최근 이명박 정부 내내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는 감세와 4대강사업, 이로 인해 야기된 국가채무의 급증으로 차기정부의 복지재정 확보에 암운이 낄 것이란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인데, 복지재정에 대한 어떤 청사진도 그리지 않았다는 점은 치명적이다. 복지재정에 대한 확보방안이 없다면 실현가능성은 없다. 복지재원 조달과정에서 조세정책과 재정정책을 통해 어떤 국가상을 갖고 있는지가 판가름난다는 점에서 이 부분의 누락은 박근혜표 복지국가에 대한 실체를 판단하기 어렵게 만드는 최대의 결함요인이다.

오히려 재정동원과 관련해서 노골적으로 별 의지가 없다는 흔적이 역력하다. "GDP 대비 공공재정의 급격한 확장이 힘들 것으로 예상"되고, "경제적으로 생산 친화적이며 정치적으로 국민 수용적인 전략을 마련할 경우"에만 확대될 여지가 있다고 언급함으로써 복지재정에 대한 적극적인 방책이 내부적으로 수립되어있지 않음을 고백하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실망의 그림자가 앞으로 어떻게 확인될 지 아니면 다시 반전될 지 미래의 시간 앞에 열려있다. 분명한 것은 복지국가는 진보의 전유물이 아니며, 보수층 역시 복지국가의 발전에 동력과 밑거름을 제공할 수 있음이 서구의 복지발전사에서 볼 때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의 보수층이 진정 국가의 백년대계를 설계하는 마음으로 서구 복지국가의 가치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이로부터 제대로 된 정책적 발상을 하여야 할 것이다.

진보진영이 당황할 만큼의 적극적이고 혁신적인 복지정책의 대담한 발상. 끝내 한국의 천박한 보수진영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점일지 모르지만 그 누구인가 역사적 소임을 진정 걸머진 자가 나타나길 바랄 뿐이다.

다만, 현시점에서 정치인 박근혜가 그 리스트에서 지워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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