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할 수 있다. 사찰 대상에 함께 오른 이성헌 한나라당 의원이 이석현 민주당 의원의 폭로 내용 일부가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으니까 굳이 정색할 필요가 없었다고 이해할 수 있다. 박근혜 전 대표의 대변인 격인 이정현 의원 또한 "우리를 뒷조사한다고 해서 여러 가지 알아봤지만 아직 사찰이나 공작이라고 할 만한 의미 있는 내용은 없었다"고 말했다.
헤아릴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정체 현상을 보이던 지지율이 상승하기 시작했기에 청와대와 각을 세우기가 쉽지 않은 형편을 헤아릴 수 있다. 배수진을 치고 차별화를 시도해야 하는 시점이 아니니까 굳이 전선을 확대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그래도 납득할 수 없다. '박근혜 사찰'을 떠나 '사찰 일반'에 대해서까지 입을 닫는 모습은 납득할 수 없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연합 |
백 번 양보해 지금까지 제기된 사찰 의혹이 파편적이고 피상적인 것이어서 자신과 같은 '거물'이 말 섞기에 부적절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해석해 보려 해도 쉽지 않다. 아직은 확신할 수 없는 의혹에 '거물'이 나서 따다부따 하는 게 격에 맞지 않는 것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해석해 보려 해도 쉽지 않다.
박근혜 전 대표가 스스로 말하지 않았는가. "그런 얘기는 많이 있었잖아요"라고 환기시키지 않았는가. 맞다. 지금까지 제기된 사찰 의혹은 정치인과 민간인, 여당 인사와 야당 인사를 가리지 않고 전방위로 진행된 것으로 돼 있다.
더구나 단순한 "얘기"가 아니다. '카더라' 급의 '설'이 아니라 구체적인 물증이 제시된 '강력한 의혹'이다. 공직윤리지원관실 조사관의 수첩이 제시됐고,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컴퓨터 폴더가 제시됐다.
이쯤 되면 입을 열어야 한다. 의혹의 진실 여부까지는 아니더라도 의혹의 철저한 규명 정도는 당연히 촉구해야 한다. 이건 정치 지도자의 의무이자 계파 수장의 도리이기도 하다.
지난 2월이었다. 세종시 갈등이 정점에 다다랐을 때 친박계 의원들이 나서 박근혜 전 대표와 자파 의원들에 대한 사찰 또는 뒷조사 의혹을 제기했었다.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이 제기되기 넉 달 전에 친박계가 먼저 사찰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그 때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그 때 제기한 사찰 의혹이 세종시 갈등국면에서 계파 입장을 강화하기 위해 동원한 일회성 정치 소재가 아니었음을 입증하기 위해서라도 입장을 밝혀야 한다. '우리'라는 개념을 계파에서 정치권, 나아가 민주주의 전체로 넓히는 데 앞장 서야 한다. 그게 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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