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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근의 최대 실책, '맥주 거품'처럼 사라진 야구 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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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정수근의 최대 실책, '맥주 거품'처럼 사라진 야구 열정

[프레시안 스포츠] 그의 비즈니스는 야구였어야

94년. 정수근은 덕수상고(현 덕수고) 3학년이었다. 그는 학교에 미운털이 단단히 박혔다. 동기들과 함께 대학에 진학하라는 학교의 권유를 뿌리치고 프로행을 일찌감치 결정해서다. 학교는 그에게 야구부 출입금지라는 징계를 내렸다.

하지만 징계는 정수근의 야구 열정을 막지 못했다. 그는 OB 이천 구장을 찾아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런 그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학교는 징계를 해제했고, 정수근은 그 해 황금사자기 대회에서 타격상과 도루상을 받았다.

▲ 2007년 프로야구 올스타전에서 '미스터 올스타'에 선정된 정수근이 세리모니를 펼치고 있다. ⓒ뉴시스

연속된 음주파동의 상처

2003년 시즌이 시작되기 전 정수근은 위기를 맞는다. 호놀룰루 전지훈련 기간에 그는 사고를 쳤다. 시내 한 식당에서 교민과 마찰을 빚었고, 현지 경찰과 승강이를 벌이다 폭행과 공무집행방해혐의로 약식 재판까지 받았다. 당시 그의 소속 구단 두산은 그에게 30만 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하지만 2003년 시즌이 끝날 때 그는 FA(자유계약) 대박을 터뜨렸다. 롯데와 계약했다. 6년 계약에 40억6000만 원이었다.

입단식에서 그는 "3년 연속 꼴찌에 빠진 롯데를 구하기 위해 왔다"고 말했다. 야구도시 부산은 열정과 스타성을 갖춘 그의 한 마디에 큰 희망을 걸었다.

1년 뒤 정수근은 물의를 일으켰다. 그는 부산 시내에서 술을 마신 뒤 야구 방망이를 엉뚱한 곳을 향해 휘둘렀다. 음주운전으로 면허도 취소됐다. 이 과정에서 사건 축소 의혹까지 불거졌다.

자체 조사를 했던 롯데 구단은 정수근이 당시 사건을 원만히 해결하기 위해 야구 방망이를 땅에 집어던진 게 튀어 올라 그와 시비가 붙었던 한 시민의 엉덩이를 맞힌 것으로 짜고 조서를 꾸민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원래 7경기 출장정지에 300만 원이라는 징계를 내렸던 KBO(한국야구위원회)는 사건을 축소시킨 사실과 함께 음주운전 사실이 확인되자 무기한 출장 정지로 징계 수위를 높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여론이 잠잠해지자 30일 만에 정수근은 징계가 해제됐다.

2008년 정수근은 롯데의 주장이었다. 1번 타자로서 좋은 활약을 하고 있었다. 팀 분위기도 좋았고, '가을에도 야구하자'고 외치는 롯데 팬들의 성원도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그에겐 명예회복의 절호의 기회를 맞은 셈.

그 기회에서 정수근은 웃지 못했다. 롯데의 포스트 시즌 진출은 남의 일이 됐다. 그는 또 다른 음주폭행 사건으로 야구 인생을 거의 날렸다. 그는 만취한 상태에서 경비원을 폭행했다. KBO는 그를 무기한 실격처리 했다.

▲ 왼쪽부터 김인식 한화 이글스 감독, 정수근 선수, 이명수 선수(현재 히어로즈 타격코치) ⓒ연합뉴스·뉴시스

김인식 감독, 이명수 그리고 정수근

귀고리 패션의 선두주자인 톡톡 튀는 개성파 정수근에게는 그의 돌출행동을 잡아 줄 2명의 스승이 있었다.

OB에서 막내 시절 정수근은 이명수와 룸메이트였다. 이명수는 원정 경기 때마다 밤에 정수근을 데리고 스윙 연습을 했다. 정수근은 진실한 땀의 의미를 이명수를 통해 배웠다.

야구에 임하는 진지한 자세를 터득한 정수근은 4년 연속 도루왕이라는 타이틀과 허슬 플레이의 대명사라는 별칭을 얻을 수 있었다.

김인식 감독은 2000년 제 몫을 해줘야 할 1번 타자 정수근이 부진하자 그를 불렀다. "요즘 뭐에 정신이 팔려 있는 거냐? 감독실에 가면 누가 보내준 보약이 있으니까 갖다 먹어라."

정수근은 김 감독의 의중을 아마 알았을 것이다. 그에게 힘이 된 건 감독이 준 보약이 아니라 김 감독의 우회적인 일침이었다. 그 뒤 정수근은 슬럼프에서 탈출했다.

2000년 한국시리즈 '미라클 두산' 일깨운 정수근

2000년 한국시리즈는 우승팀 현대보다 준우승팀 두산이 언론에 더 집중 조명을 받은 보기 드문 시리즈. 두산은 3경기를 내리 져 패색이 짙었지만 3경기를 이기며 대역전극의 1보 직전까지 갔다.

물론 두산은 7차전에서 현대에 고개를 숙였지만, 그들이 시리즈 기간 중 보여 준 야구는 희망과 감동을 줬다. 플레이오프를 거친 두산은 부상병동이었다. 주포 김동주는 손가락 수술을 해야 할 처지라 한국시리즈에는 출전할 수도 없었다.

내리 3게임을 내 준 두산의 최대 고민거리는 정수근이었다. 10타수 1안타. 팀 내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해야 할 그의 성적표는 최악이었다. 2차전부터 정수근은 톱타자 자리를 김민호에게 내줘야 했다. 하지만 두산이 벼랑 끝에 몰린 4차전부터 정수근은 달라졌다.

특히 5차전 3-5로 뒤지던 7회 말 2사 만루 상황에서 정수근은 현대 '믿을맨' 조웅천으로부터 주자 일소 3루타를 뽑아내며 경기 흐름을 바꿨다. '모두가 두산은 현대한테 안 돼'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터진 그의 3루타는 두산 선수들에게 큰 힘을 줬다.

비록 패권은 현대에 내줬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한 두산은 박수를 받을 만했다. '끈기의 베어스'라는 말도 메아리쳤다. 그 중심에는 정수근의 야구 열정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의 비즈니스는 음료납품 사업이 아닌 야구였어야

정수근은 2009년 논란 끝에 다시 야구의 품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또 술 때문에 위기에 봉착했다. 아직 이번 사건의 진실은 명쾌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가 야구에 대한 열정을 잃었다는 느낌을 강하게 줬다는 부분.

특히 그가 새벽 4시까지 비즈니스 관계로 지인과 만났다는 대목이 롯데의 퇴출 결정을 부추겼다. 포스트시즌 진출을 위해 안간힘을 다하고 있는 롯데에 "편의점 음료납품 사업이 잘 되지 않아 고민이었다"는 그의 말은 설득력을 잃었다.

지난 2005년 전직 일본 프로야구 투수 이케나가 마사아키는 35년 만에 복권됐다. 그는 1969년 일본 프로야구를 강타했던 승부조작 스캔들인 '검은 안개' 사건에 연루됐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300승까지 할 수 있는 투수'라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듬해 영구제명 선수가 됐다.

그는 승부조작 혐의를 전면 부인했지만 선배로부터 승부조작 권유와 함께 받은 100만 엔을 보관하고 있다가 씻을 수 없는 아픔을 겪었다. 그는 야구계를 떠나 있던 동안 술집을 운영했다.

그는 복권됐을 때 "술집을 운영하던 시간은 너무나도 길었다. 35년간 단 한번도 야구를 잊은 적이 없다. 그게 나의 갈 길이고 천직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팬들은 술을 마시고 폭행사건에 연루된 정수근을 싫어했다. 하지만 야구에 대한 열정을 잃은 채 재기의 기회 때마다 진지한 자세를 보여주지 못한 점을 더 싫어할지도 모른다. 이것이 그의 야구 인생에 있어 더 뼈아픈 실책이다.

그에게 비즈니스는 음료수 납품업이 아닌 야구여야 했다. 고교 야구부에서 징계를 받고도 이천 구장을 교복차림으로 찾던 야구 열정과 오기로 똘똘 뭉친 정수근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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