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명 헬레나. 그녀는 6년 전 10월의 마지막 밤 이후로 다시는 세상을 마주하지 못했다. 27세 꽃다운 나이였던 그녀는.
이른바 노래방 ‘도우미’로 힘겨운 생활을 이어가던 그녀는, 그날 밤도 생계의 전선에 나섰다가 ‘손님’을 따라갔다. 그 길이 삶과 죽음의 경계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2011년 11월 1일 새벽. 헬레나는 경남 창원의 한 모텔 객실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손님’이었던 30대 남성은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다투다 그녀의 목을 졸랐다. 어쩌면 발버둥치다 혼미해지는 의식의 그 끝에서 미치도록 벗어나고 싶었던 세상의 굴레에 대한 미련을, 이미 그녀는 놓아버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헬레나를 힘들게 했던 세상은, 그녀의 죽음 앞에서도 애도의 국화꽃 한 송이조차 제대로 놓아주지 않았다. 어릴 때 입양과 파양을 겪은 후 보호시설에서 생활한 그녀이기에 연고가 뚜렷하지 않아 ‘행려’ 처리라는 냉혹한 세상에 직면했다. 사회에서 알고 지낸 여동생이 "소식이 닿지 않는다"며 보호시설 원장에게 알린 뒤에야 신원이 확인됐다.
이후 지역과 전국의 여성단체들이 그녀의 죽음의 처참한 의미를 알리기 시작했고, 이듬해 기일에 맞춰 첫 추모행사가 열렸다.
"나는 환하게 웃고 싶다."
그녀를 추모하며 올해로 6번째 열린 ‘성구매자에 의한 피살 여성 6주기 추모문화제’의 주제는 변함없다. 삶의 절박함이 옥죈 힘겨웠던 세상살이에서 그녀가 그토록 원했을지도 모를 소망.
김유순 경남여성회 부설 여성인권상담소 소장은 31일 오후 5시부터 창원 상남동 분수광장에서 열린 6주기 추모문화제의 의미에 대해 여전히 바뀌지 않고 있는 성매매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와 그것에 대한 간절한 바람을 전했다.
김 소장은 “어둠이 내리면 화려한 불빛으로 뒤덮이는 이런 곳에서 많은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날까 하고 생각하게 되는데, 바로 이런 현장에서 헬레나와 같은 일들이 일어났다”며 “추모제를 이곳에서 지속하고 있는 이유도 성매매에 대한 경각심을 일으켜 그런 일이 더 이상은 없는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 때문”이라고 했다.
돈으로 성을 사는 행위가 법 규정을 비웃듯 횡행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김 소장은, 불법행위임을 자각하지 못하는 것, 그리고 그에 대한 처벌수위가 너무 약하기 때문이라는 것 등을 지적했다.
그는 “지난 2004년 9월 23일 성매매 방지에 관한 특별법에 제정됐다. 보호법과 처벌법이 명확히 있다. 따라서 성매매는 명백한 불법이자 범죄행위이다”며 “그런데도 성을 사는 남성들은 이에 대한 자각 수준이 낮고 범죄행위를 시인한 사람들에 대한 법적 처벌도 낮은 형량이나 기소유예 위주인 게 문제”라고 했다.
그는 이어 “성매수라는 행위가 개인적인 선택이라거나 서로 좋아서 하는 게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을 짓밟는 인권침해라는 본질적 사실을 사람들이 기억해준다면 차츰 성매매가 사라지지 않을까 한다”는 바람도 잊지 않았다.
지난해 5주기 때 나름 상처받은 일도 소개했다. “아는 남성분들에게 추모제에 와서 발언을 해달라고 부탁했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나마 몇 분이 정말로 용기를 내서 말씀을 해주시긴 했지만, 그때 정말로 상처를 받았다.”
거절했던 그들의 속내야 알 길이 없지만, 성매매에 있어서 성매수의 절대적 위치에 있는 쪽이 남성이라는 불편한 진실이 같은 남성으로서 민망하고 죄스러워 쉽게 나서지 못하는 이유가 됐을 것이란 짐작은 어렵지 않게 하고 있는 듯했다.
김 소장은 “외국에 나가서 성매매를 하고는 합법화돼 있는 곳이니 범죄행위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는데, 우리나라는 속인주의라서 이 또한 명백한 불법이다”며 “이번 추모제 부대행사에서는 그런 부분에 대한 설명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또 “남의 문제가 아니다. 나의 문제, 내 아이의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며 “남녀가 성평등으로 잘사는 사회가 되는 것도 법을 기초로 잘사는 사회가 되는 중요한 요건 중 하나이지 않겠나”라고 생각할 거리를 던졌다.
이날 추모제는 성매매 근절과 통념 깨기 홍보물 전시, 자기인식 점검 등 참여마당 프로그램, 추모식, 헌화, 추모공연 등으로 꾸려졌다.
‘짙은 그늘에서 얼른 나와 눈부신 빛을 마주해요. 내일로 두근거리는 오늘, 소리내어 마음껏 웃어봐요.’
이날 홍보물 중 하나에 적힌 문구는 헬레나 그녀가 사람들에게 던지는 메시지일 수도, 추모하는 시민들이 그녀에게 들려주고픈 위안일 수도 있다. 그래서 성매매와 그로 인한 피해가 없는 세상이 올 때까지 추모제는 해마다 지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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