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의 포탄이 연평도를 강타한 순간 지난 10년 동안 대한민국 국민들이 확고하게 믿었던 상식 하나가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 한반도에서 전쟁 재발이 가능하지 않다는 상식이 그것이다. 북한군 무기체계 가운데 방사포 및 곡사포 등의 중포가 차지하는 위치 및 포격의 방식, 타격지점이 대한민국 영토라는 점, 표적에 민간인들이 포함되었다는 점 등을 감안할 때 북한군의 연평도 포격은 한국전쟁 종전 이후 북한이 남한에 가한 군사행동 가운에 가장 직접적이고 엄중한 도발임에 틀림없다.
평양의 지시나 결심 없이 북한군 단독으로 이런 수준의 도발을 감행했을리는 만무하다. 자칫 전면전으로 치닫을 수도 있는 무력도발을, 지금 이 시점에 평양이 결심한 이유를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분명한 것 한 가지는 남한에 대한 엄중한 군사도발이 김정일, 김정은 체제 유지에 도움이 될 것이고, 연평도 포격이 전면전으로 확전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 평양에 있었을 거라는 사실이다. 이 말을 뒤집으면 연평도 사태가 남한에 대한 북한의 군사행동의 끝이 아니라 시작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정부와 미국이 북한과의 대화를 거부한 채 북한에 대한 제재와 군사적 압박을 계속 가할 경우 북한이 남한에 대해 가할 수 있는 군사적 옵션은 무궁무진하다. 북한군은 중장거리 미사일을 야간에 인천공항 활주로에 발사해 별다른 인명피해 없이 공항기능을 마비시길 수도 있고, 휴전선 전역에서 간단없이 소규모 충돌을 야기할 수도 있으며, 서해 5도에 대한 포격을 재개할 수도 있다. 문제는 북한의 이런 군사적 도발에 대해 남한 측이 취할 군사적 옵션이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이다. 비례의 원칙에 의한 보복이나 그 보다 강도가 센 대응-예컨대 북한군 해안포대나 미사일 기지를 전폭기의 벙커버스터나 미사일로 제거하거나 전략거점을 타격하는 등-이 가능할 것이지만 어떤 경우이든 경제와 사회에 미치는 악영향은 이루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클 것이 자명하다.
물론 남한군의 군사행동을 통해 북한군이나 북한의 주요 군사, 산업시설 역시 타격을 입겠지만, 그 파급력은 매우 제한적일 것이다. 남한에 대한 북한의 군사행동은 그 파급력이 가공할 만한 반면, 북한에 대한 남한의 군사공격이 미치는 파괴력이 제한적인 이유는 무엇보다 남한과 북한이 취하고 있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시스템의 상이함 때문이다. 남한은 국민이 주인인 민주공화국이어서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의 보호가 무엇보다 소중할 뿐 아니라, 통상대국이어서 무력충돌이나 국지적 분쟁 같은 지정학적 리스크를 극력 회피해야 할 처지이다. 반면 북한은 김정일, 김정은 체제의 유지를 위해서 모든 가치와 자원을 동원하고 희생시킬 수 있는 정치체제일 뿐 아니라, 중국의 지원만 계속된다면 군사적 충돌로 인해 입을 경제적 손실도 충분히 감내할 만한 폐쇄적 경제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사정이 이와 같다면 북한에 대한 군사적 응징 혹은 선제공격은 한반도 긴장 해소의 방법일 수 없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격언은 적어도 남북 간에 적용되기는 어려운 말이다. 남한은 북한과의 군사적 충돌을 통해 잃을 것이 너무나 많은 나라다. 남한과의 군사적 충돌을 통해 잃을 것이 현저히 적은 북한과는 형편이 전혀 다르다는 말이다. 북한에 공격을 당해도 북한을 공격해도 손해를 보는 선택을 남한이 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물론 북한과의 전면전을 통해 김정일, 김정은 체제를 붕괴시키겠다고 결심하면 양상은 달라질 것이다. 한미 연합사가 지닌 가공할 전력을 감안할 때 북한과의 전면전은 김정일, 김정은 체제의 소멸을 의미할 것이 명확하다. 그러나 그 결과 한반도는 석기시대로 돌아갈 것이다.
결국 한반도에 짙게 드리운 전운을 걷어내고 대한민국 국민들의 전쟁 걱정을 덜어 줄 유일한 해법은, 공존과 화해를 전제로 한 남북간의 조속하고도 직접적인 대화 뿐이다. 또한 미국과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남한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만약 이명박 정부가 지금과 같은 대북강경정책을 고수할 경우 북한의 모험주의적 군사도발은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고 남북은 피투성이의 나락으로 한발 한발 다가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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