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조선소 부지를 새로운 관광명소로 만드는 산업구조 개편으로 조선업 위기를 타개한다?
경남도가 통영의 폐조선소인 신아sb 부지에 해양관광 시설을 조성한다는 발표를 하면서 붙인 명분이다. 통영시가 지난 2월의 정부 발표안 ‘남해안 발전거점 조성 방안’을 토대로 신아sb 부지를 활용한 문화·관광형 기반조성 사업을 진행한 것의 연장선상이다.
하지만, 위기에 처한 조선업계가 절박한 심정으로 중형조선소 회생방안에 대한 정부의 정책 마련과 실질적 지원의 조속한 결단을 요구하고 있는 가운데 나온 발표이고, 내세운 명분도 쉽게 납득하기 힘든 것이어서 생뚱맞다는 지적이다.
■“5,000억 원 들여 폐조선소에 해양관광시설 조성”
경남도는 지난 25일 통영시·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함께 통영의 폐조선소인 신아sb 부지 14만5,010㎡에 오는 2026년까지 5,000억 원을 투입해 국제적인 해양관광 거점시설을 만들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국비와 도비·시비·LH자금 1,500억 원과 민간자본 3,500억 원을 들여 스페인의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과 같은 랜드마크 건축물과 아쿠아리움 등을 갖추고 쇼핑몰과 숙박시설 등을 유치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통영케이블카와 통영국제음악당, 박경리와 윤이상의 자취 등 통영의 다양한 문화·관광자원과 연계해 남해안 관광거점이 되도록 한다는 밑거름도 제시했다.
또, 이 사업이 실행될 경우 건설과 운영단계에서 6,000개 이상의 일자리가 생기고, 조선업 위기 극복과 새로운 산업 창출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경남도는 그 첫 단계로 지난 25일 국토부가 진행하는 도시재생 뉴딜사업에 공공기관 제안방식으로 공모했다. 발표는 오는 12월에 있을 예정이며, 선정될 경우 오는 2022년까지 417억 원의 재정지원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경호 경남도지사 권한대행(행정부지사)은 “폐조선소 부지를 활용한 관광명소화 사업은 통영시 장기발전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고 성공해야 할 사업”이라며 “일자리 창출과 산업구조 개편의 모범이 될 수 있도록 사업선정에 모든 행정력을 집중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최찬용 LH 국책사업기획처장도 “이 사업은 LH의 수익보다는 사회공헌, 지역공헌을 위해 참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살얼음판 조선업계 “하필 이때, 대체산업이라고?”
선수금환급보증(RG) 발급과 중형조선소 회생방안 마련을 요구하며 지난 25일부터 더불어민주당 경남도당에서 철야농성에 돌입(25일자 보도)한 STX조선해양과 성동조선해양의 노동자들을 비롯해 조선산업살리기경남대책위원회는 경남도의 발표에 대해 조선업 위기의 심각성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고 볼멘소리를 했다.
STX조선해양은 오는 31일이 수주한 선박 4척에 대한 RG 발급 기한이다. 만약, 산업은행이 발급을 하지 않을 경우 계약 자체가 취소돼 심각한 경영위기에 빠질 처지이다. 또, 다음달 24일이 기한이 6척에 대한 RG 발급도 장담할 수 없게 된다.
성동조선해양의 경우도 한국수출입은행 측이 생존 결정 여부를 오는 11~12월 일감 공백기 안에 결정하겠다는 방침을 내비쳐, 올해 수주한 선박 5척의 건조에 들어가기 전에 문을 닫을지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조선업계의 위기감이 이토록 일촉즉발에 처해 있는 데도 경남도의 적극적인 역할은 미흡하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더구나, 이런 시기에 경남도가 폐조선소 부지에 관광시설을 짓겠다며 조선업 위기 타개 방안을 운운하는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발상이라는 지적이다.
김정광 조선산업살리기경남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은 26일 “경남도의 발표가 조선산업 회생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의아스럽다”며 “폐조선소 인근 주민들의 입장도 얼마나 수렴했는지조차 의문”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 9월 21일 경남도와 중형조선소 회생 간담회 후 세종시를 방문했을 때 정부는 10월말에서 11월에 방안이 나온다고 했다”며 “그런데, 보고서 자체를 10월말까지 만든다고 하는 바람에 정부 방안은 일러야 12월쯤 나올 것으로 보인다”고 질타했다.
그는 또 “정부 방안이야 그렇다손 치더라도 당장 STX조선해양의 경우는 사안별로 접근하는 유연성을 보여야 한다”며 “정부가 보증을 서는 형식으로라도 RG 발급이 되게 해 선박 건조와 기업회생을 보장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금속노조 성동조선해양지회 강기성 지회장도 “신아sb의 경우도 RG 발급을 해주지 않아서 결국 문을 닫게 됐다”며 “폐조선소를 관광지로 개발한다고 해서 이전만큼 고용창출이 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 침체된 지역주민 경제를 얼마만큼 되살릴 수 있을지도 의문스럽다”고 말했다.
강 지회장은 또 “어차피 관광지를 만든다는 건 정부에서 정책적으로 추진하는 것이고, 지자체가 판단할 상황이기 때문에 더 이상 뭐라 말할 것은 없는 것도 사실”이라며 “단지, 우리의 요구는 조선소의 경쟁력 유지 없이 인적 구조조정만 계속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정부 정책은 소형조선소에 대해 연간 250억 원씩 4년간 지원하겠다는 것 외에는 제시된 게 없다”며 “중·장기 정책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단기적인 지원 정책이 급선무이며, 그 이후 조선업 생태계 전체에 대한 가닥을 잡아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성동조선해양은 추가 수주가 없는 상황이므로 RG 발급 없이도 얼마간은 버틸 수 있지만 STX조선해양은 사정이 다르다”며 “급박한 상황이므로 당장이라도 RG를 발급하고 운영자금을 지원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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