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헌까지 개정해 두 사람을 '중앙정치 무대'로 불러들인 한나라당 친이계의 고민은 박근혜에 맞설 친이계 주자가 마땅치 않다는 것으로 모아진다. 아무리 봐도 6.2 선거에서 나름대로 경쟁력을 보여준 김문수, 오세훈만한 후보가 없다는 것이다. 대권주자로서 행보하기 쉽지 않은 광역단체장들인 두 사람의 정치적 한계를 당이 직접 나서서 풀어주고 있다는 점에서 박근혜 대항마에 대한 친이계의 갈증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만하다.
정몽준도 있고 이재오도 있다고 하나 이재오는 아무래도 메이커에 가깝고 정몽준은 설사 12월 초에 2022월드컵 유치에 성공해도 2002년과 같은 폭발력을 다시 끌어모으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정몽준에게 6.2 지방선거의 패배는 그만큼 치명적이었다.
오세훈의 경우
오세훈의 경쟁력은 개혁 이미지와 서울시정의 성과들이다. 정치 입문 전 활발한 언론 활동을 통해 만들어진 개혁 이미지는 17대 국회를 거치면서 '오세훈 브랜드'로 굳어졌다. 오세훈의 개혁 이미지와 서울시장 경력은 부동층이 다수인 수도권 중간층을 흡수해낼 수 있는 요소다. 그가 대권주자로서 본격 행보를 하지 않고 있음에도 6~10%대의 지지를 안정적으로 얻고 있는 것은 그의 지지도가 높은 인지도에 얹혀진 막연한 기대가 아니라 그와 일체감을 느끼는 상당한 정도의 표밭에 기반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 표들 중에는 지난 4년간의 오세훈 시정에 '감동'받은 표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디자인서울'로 표현되는 오세훈 시정은 '이명박의 청계천' 같이 다른 설명이 필요 없는 충격적 시각효과를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사실 '청계천' 같은 시각효과는 오세훈이 아니라 그 누구라도 만들어내기 어려운 일이다. 그럴만한 소재가 흔치 않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데뷔무대에서 오세훈은 자신의 강점, 즉 개혁성과 젊고 참신한 이미지를 극대화 할 수 있는 선명한 메시지를 준비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서울시의 그물형복지와 희망플러스통장 등을 예로 들면서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는 서울형 복지정책'을 열심히 설명하려 했다. 민주당이 다수인 서울시 의회 때문에 어려우니 중앙당이 도와달라는 호소와 함께. 이것은 열심히 일하는 시장으로서의 스탠스는 될지 몰라도 대권주자에 걸맞는 스탠스는 아니다. 대통령을 목표로 하는 대권주자는 행정직인 시장을 넘어서는 '무언가'를 더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다.
▲ 지난 2일 한나라당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 참석한 오세훈 서울시장(왼쪽)과 김문수 경기도지사(오른쪽)ⓒ뉴시스 |
김문수의 경우
같은 자리에서 김문수는 4대강 사업을 둘러싼 갈등을 예로 들면서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야당의 무상급식을 포퓰리즘적 복지정책으로 강하게 비판했다.
"대한민국이 다 같다는 건 여의도식 사고다. 당은 '골목민심'과 '골목정치'를 잘 아는 지자체와 함께 맞춤형 정치를 해야 한다."
김문수의 발언에는 현장을 누비는 단체장 특유의 감각과 강점이 살아 있고, 당에 대해 당당하게 할 말은 하는 대권주자의 배포가 담겨 있다. 김문수의 이런 스탠스는 사실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그는 이미 국정 전반에 대해 할 말은 하는 사람이 됐다.
"자고 일어나면 총리라고 나타나는데 누구인지 잘 모르겠다."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발언도 거침없다.
"CEO리더십만으로 국가를 운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CEO리더십은 자원을 효율적으로 조직해 이윤을 내는 기업의 방식인만큼 국가 리더십으로는 적절하지 않다. 국가는 효율성이 없더라도 복지를 챙기고 약자를 보호해야 하는 등 기업 운영과 다른 퍼블릭 리더십이 필요하다."
이렇게 김문수는 이미 '김문수의 길'을 걷고 있다.
오세훈, 김문수의 부상 이유?…"수도권 중간층이 중요하다"
김문수, 오세훈이 압도적 1위를 지키고 있는 박근혜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대권주자로 거론되는 이유가 있다. 수도권 중간층에 대한 소구력 때문이다. 과연 이 문제가 그렇게 중요한가? 박근혜 대세론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여전히 대권주자로 주목받을 만큼 중요한가? 이들이 박근혜보다 더 강한 본선경쟁력을 가진 후보일 수 있다는 기대 섞인 희망을 만들어 낼 만큼 중요한가? 결론은 '중요하다'이다. 그것도 '생각보다 훨씬 중요하다'이다.
'예선은 극으로, 본선은 가운데로', 이것은 미국의 대통령선거 때마다 나타나는 일종의 경향적 법칙이었다. 그러나 예외 없는 법칙은 없는 법이다. 부시의 선거 참모 칼 로브는 이를 정면으로 뒤집는 발상의 전환을 감행했다. "예선, 본선 모두 극으로."
칼 로브의 주도 하에 부시는 매우 공세적인 캠페인을 전개했다. 낙태, 동성애 이슈 등 보수층 입장에서는 수세적이고 방어적일 수밖에 없는 이슈들을 공세적으로 먼저 들고 나왔다. 남부지역에 산재해 있는 윤리적 근본주의자들을 자극해 투표장으로 끌어들이겠다는 칼 로브의 갈라치기 전략의 성공으로 부시는 집권에 성공했다. 그러나 부시 정권 8년은 끊임없는 갈등과 반목의 세월이었다. 선거가 아무리 치열했다해도 일단 끝나면 "함께 다 같이"를 연출하는 미국 특유의 통합적 정치력을 부시는 보여주지 못했다. 갈라치기 선거전략이 국정운영을 잠식했던 탓이다.
부시의 갈라치기 선거전략은 미국의 선거사에서 부시의 인간됨만큼이나 엉뚱하고 생뚱맞은 것이었다. 사실 부시의 아주 예외적인 케이스를 제외하면 미국의 선거는 중간층 포용전략 간의 대결이었다. 민주당도 공화당도 승패는 중간층의 선택에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일단 뽑힌 자기당 후보가 중간층 공략에 적극 나서는 것에 제동을 걸지 않는다. 오죽하면 선거전략에 무지개연합이란 말까지 붙었을까.
무지개연합은 말 그대로 빨간 것부터 노랑과 녹색을 거쳐 보라에 이르기까지 '표 되는 것이면 뭐든지 하는' 전략이다. 왜 안 그렇겠는가. 냉전시대의 전위정당도 아니고 세상의 모든 정당들은 모두 대중정당이고 국민정당이지 않은가. 표 있는 곳으로 정당이 움직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이것이 현대 정당정치의 '커먼센스(상식)'다.
오세훈·김문수, 박근혜에 맞설 '중간층 전략' 있나?
만약 중간층이 이미지로 움직인다면 정당과 주자들의 중간층 공략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미지를 몇 달 만에 이리 바꿨다 저리 바꿨다 할 수는 없으므로. 그러나 중간층이 이미지가 아니라 정책으로 움직인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중간층이 매력을 느끼는 정책이라고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그래도 정책은 이미지보다는 변신이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전문가들의 동원도 상대적으로 손이 쉽다.
중간층의 이 같은 특성을 감안할 때 누구도 이미지나 지역연고 등을 막연하게 내세우면서 중간층에 대한 소구력이 있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서울시장이나 경기도지사 경력이 수도권에 상대적으로 많은 중간층, 부동층에게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요소 중 하나인 것은 분명하나 그 이상은 아니다. 그 보다는 이들 중간층, 부동층에 어필할 정책대안을 제시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수도권 중간층, 부동층이 갖는 관심 중 첫째는 일자리, 복지 문제다. 이들이 상대적으로 젊고 서민층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정치의식이나 사회의식이 그만큼 개방적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들에게 오세훈, 김문수의 서울시장, 경기지사 경력보다 박근혜의 행복국가론이 소구력이 떨어질거라고 예단할 수 있는 근거는 아무데도 없다. 수도권 단체장이라는 경력과 개혁이미지만으로 수도권 중간층과 부동층을 공략하는데는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더구나 상대는 거의 모든 지역, 계층, 세대에서 부동의 1위를 기록하고 있는 박근혜 아닌가.
김문수, 오세훈의 잠재력에 주목하면 할수록 현실화 과정의 어려움이 더욱 구체적으로 다가온다. 선거는 상대가 있는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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