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대신 삼성전자를 이끌어 온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대표이사)이 갑작스레 사퇴 의사를 밝혔다. 권 부회장은 대표적인 반도체 전문가로,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 부문의 실적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듣는다.
13일 삼성전자는 3분기 영업이익 14조5000억 원이라는 역대 최대 실적을 발표한 직후 권 부회장 사퇴 발표를 했다. 이번 실적 역시 반도체 부문의 호황에 크게 힘입었다. 3분기 반도체 부문 영업이익은 약 10조 원이다. 지난해 같은 분기 반도체 부문 영업이익은 약 3조3000억 원이었다. 폭발적인 성장이다.
하필 이 시점에, 반도체 전문가가 갑자기 물러나는 배경은 아직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다. 이 부회장 구속 이후, 권 부회장은 사실상 삼성을 대표해 왔다. 문재인 대통령 초청행사에도 권 부회장이 참석했다.
다만 삼성전자 내부 인사 적체가 풀리는 계기는 되리라고 여겨진다. 이 부회장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깊이 가담한 사실이 드러난 지난해 말 이후, 삼성전자는 사장단 인사를 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권 부회장의 전격 퇴진으로 내부 인사이동을 미룰 수 없게 됐다.
다만 권 부회장이 맡고 있는 삼성전자 이사회 이사, 의장직은 임기가 끝나는 내년 3월까지 수행한다. 연임은 하지 않는다.
권 부회장은 이날 "급격하게 변하고 있는 IT 산업의 속성을 생각해 볼 때 지금이 바로 후배 경영진이 나서 비상한 각오로 경영을 쇄신해 새 출발할 때”라며 사퇴 이유를 밝혔다. 아울러 그는 "지금 회사는 엄중한 상황에 처해 있다"면서 "다행히 최고의 실적을 내고는 있지만 이는 과거에 이뤄진 결단과 투자의 결실일 뿐 미래의 흐름을 읽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는 일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라고도 했다.
권 부회장은 1985년 미국 삼성반도체 연구소 연구원으로 입사, 삼성전자 시스템 LSI사업부 사장과 반도체 사업부 사장을 거쳐 2012년부터 대표이사 부회장을 맡아 왔다. 2016년부터는 삼성디스플레이 대표이사 부회장도 겸해 왔다.
권 부회장이 이끈 삼성전자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사업 부문은 그림자도 짙었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반올림)'에 따르면, 지난 2007년 11월 이후 삼성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부문에서 직업병으로 사망한 이는 80명이다.
이 문제가 크게 불거지자, 권 부회장은 지난 2014년 5월 사과문을 발표했다. 삼성 직업병 문제를 알린 계기였던 고(故) 황유미 씨의 죽음 이후 7년이 지난 뒤였다. 그러나 당시 약속 내용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반올림 활동가 및 직업병 피해자들도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추석 당일인 지난 4일에도,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했던 고(故) 이혜정 씨가 세상을 떠났다. 이 씨 역시 황유미 씨처럼 고교 3학년 때 삼성 반도체 공장에 취업했다. 공장에서 독성물질을 다뤘던 이 씨는 퇴사 이후 '전신성 경화증'을 오래 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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