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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론화' 없이 민주주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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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론화' 없이 민주주의 없다

[기고] 주요 현안 공론화, 헌법에 명시하자

'마지노민주주의'는 왜 존재하는가?

'마지노민주주의'라는 용어가 적잖게 논의된다. 이 용어에는 양면성이 있다. 한국인들이 보여주는 불굴의 저항정신이 그 한 측면이고, 한국 민주주의의 미성숙한 현실이 다른 측면이다. 사실 이 땅의 시민에게는 선거 날 한 표 행사하는 것 이외에 그 어떠한 권리도 주어지지 않았다. 국회, 대자본, 관료, 검찰, 경찰 등등 우리 사회의 기득권 그 누구도 먼저 자기의 '권한'을 스스로 자제하고 줄여 시민에 먼저 손을 내밀어 타협하고 양보하는 곳은 존재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대학도 다른 나라에서 찾기 힘든 입학금을 한사코 징수한다. 모두 자기의 권한을 마지노선 끝까지 행사하고자 한다. 이렇듯 '탐욕스러운 기득권'을 다른 나라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이러한 객관적 조건에서 한 개인은 어떠한 작은 문제를 해결하려 해도 자신의 삶 전체를 걸고서, 몇 년 동안, 생업을 접고 투쟁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온몸을 던져도 승산은 매우 적다. 이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다. 예외적으로,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전두환 4.13호헌조치 등 권력의 극단적 행태가 나타날 때 비로소 모두가 나서 마지막으로 한번 광화문 거리와 시청앞 광장에 집결해 불의한 권력에 대한 최후의 저항을 시도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마지노민주주의'로 나타난다.

'공론화'를 헌법에 명문화하라

개헌과 관련해 최근 진행한 여론조사에서 개헌에 대한 필요성으로 43.1%의 응답자가 기본권 확대를 들었고, 이어서 직접 민주주의 확대는 29.3%의 비교적 높은 비율을 점했다. 그간 목소리가 높았던 대통령 권한분산과 견제는 15%에 머물렀다. 국가의 주인이지만 정작 권리 행사는 철저히 차단된 국민들의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갈증과 열망의 확인이다.

지금 신고리 원전 5·6기에 대한 공론화위원회가 활동 중이다. 우려도 적지 않지만, 바람직한 방향이다. '대의하지 않는' 현재 우리의 대의제도를 보완해줄 제도로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소환제와 국민발안제가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국회의원들의 반대를 뚫고 이것을 실현해내기란 실로 어려운 과정이다. 그런데 설사 실현된다고 해 완전한 국민주권주의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다. 그것들은 기껏해야 대의제에 대한 최소한의 방어 기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번 기회에 아예 시민 공론화 과정을 헌법에 규정하는 방안을 제기하고자 한다.

국론분열이 극심한 국가 정책과 국민 생활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사안은 국민의 공론에 붙인다는 조항을 이번에 개정하는 헌법에 규정해야 한다. 지난번 사드배치가 국회 비준 사항인가를 둘러싼 논쟁을 감안해 좀 더 구체적이고 분명한 규정이 필요하다. 필요할 경우, '독립된' 시민 공론화기관을 설치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이 길이 촛불집회에서 그토록 외쳤던 '국민주권주의'를 진정으로 제도화하고 실현하는 방안이다.

정부로서도 유리한 측면이 있다. 이를테면 사드배치의 경우도 만약 국민들의 공론화 과정을 거쳐 결정했었다면, 미국의 압력에 정부가 휘둘리는 것도 방지할 수 있었으리라. '정부'가 아니라 바로 '국민'이 결정하는 것이므로. 중국으로부터의 압박 역시 마찬가지다.

'공론화', 민주주의의 시금석이다

이제 우리의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해, 그리고 우리의 국민주권주의의 실현을 위해 '공공토론(public debate)'과 '숙의(deliberation)'의 개념과 그 개념이 구현되는 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

프랑스에서는 '공공토론위원회(CNDP)'가 '독립행정기관'으로 1997년에 설치됐다. 그리고 2003년부터 2008년 사이에 총 37건의 사업이 공공토론에 붙여져 80%에 이르는 사업계획이 변경되거나 취소됐다. 이 '독립행정기관'은 특정 장관의 계서적(階序的) 통제에서 벗어나 자율적으로 사무를 처리하고, 정부의 명령이나 지시로부터도 자율적이다. 예산 역시 독립성을 보장받는다. 소속 위원들의 해임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임기가 보장된다. 프랑스는 공공토론위원회만이 아니라 인권자문위원회나 권리보호청 등 시민권을 보호하는 기관을 이렇듯 독립행정기관으로 설치하고 있다.

프랑스만이 아니라 서구 여러 나라에서 숙의민주주의 제도의 시행으로 참여와 소통 그리고 합리적 공론화과정을 통해 사회적 갈등비용을 감소시키고 있다. 미국은 '협상에 의한 규칙제정법'을 통해 정부가 이해당사자들과 함께 규제관련 규칙에 대한 협상 형성을 이뤄나간다. 독일의 경우, 행정절차법상의 계획확정 절차와 연방건설법상의 이익형량 원칙 등 행정절차를 통해 주민참여와 의견 수렴을 제도화함으로서 사회적 갈등을 예방하고 있다. 영국 역시 정책과정의 초기단계에서 일반시민과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수렴해 반영하는 시민협의제도가 적극적으로 운용되고 있다.

거듭 말하지만, 이렇듯 시민의 권리를 꼼꼼하게 보장하고 시민과 함께 협치하는 이러한 '정신'과 '시스템'이 우리에게 부재한 것이다. 그리해 우리에게 민주주의란 그저 허울로만 존재하는 '빛 좋은 개살구'다.

민주주의의 요체는 한 마디로 시민의 권리 보장에 있다. 그것은 국가와 사회의 정책에 시민이 참여하고 스스로 결정하는 권리를 제도화함을 말한다. 인류 역사는 권력의 시민으로의 이양 과정이다. 하지만 이러한 민주주의란 어느 날 갑자기 오는 것은 아니다. 국가 중요정책에 대한 시민들의 공론화과정은 지금 허울뿐인 민주주의를 진정한 민주주의로 질적 전환시키고 비약시키는 시금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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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준섭

1970년대말부터 90년대 중반까지 학생운동과 민주화 운동에 몸담았으며, 1998년 중국 상하이 푸단(復旦)대학으로 유학을 떠나 2004년 국제관계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회도서관 조사관으로 일했다. <변이 국회의원의 탄생>(2019), <광주백서>(2018), <대한민국 민주주의처방전>(2015) , <사마천 사기 56>(2016), <논어>(2018), <도덕경>(2019)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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