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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의 뿔' 박근혜, '계파 정치'의 비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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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무소의 뿔' 박근혜, '계파 정치'의 비밀은?

[고성국의 박근혜論]<5>박근혜와 '친박계'

박근혜는 생래적으로 '패도정치'를 경계한다. 권력을 두고 벌이는 측근들간의 암투와 경쟁이 얼마나 위험한지, 그 결과가 얼마나 파괴적일 수 있는지를 어릴 때부터 보아왔기 때문이다. 아버지 박정희도 결국은 측근들간의 암투로 비극적 최후를 맞지 않았던가.

박근혜는 누군가를 중용하고 누군가에게 힘을 실어주는 순간 '패도정치'의 메커니즘이 작동될 수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이다. 그가 정치권의 상식과는 달리 어떤 경우에도 '좌장', '2인자'를 인정하지 않는 이유다. 박근혜는 모든 정치인을 여러 정치인 중 한 사람으로 대한다. 나의 정치가 있으면 그의 정치가 있을 것이고, 각각의 정치는 존중되어야 한다. 함께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러지 못해도 어쩔 수 없다. 각자의 선택에 대한 책임 또한 각자가 지는 것이므로.

박근혜와 다른 정치인들간의 관계는 본질적으로 일을 매개로 하는 공적이고 기능적이고 일시적인 관계다. 정치 자체가 공적인 일이기도 하지만 정치가 그 이상을 넘어서는 순간 '패도정치'의 위험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 박근혜의 생각인 듯하다.

박근혜의 이 같은 관계 설정 방식은 본능적으로 권력의 독점을 지향하는 모든 정치인들에게 참으로 견디기 힘든 시련이고 넘을 수 없는 벽이다. 특히 자신의 선택에 충실한 올인형 정치인인 김무성 같은 승부사에게 박근혜의 일응 무미건조한 공식적 관계맺음은 기질적으로 잘 맞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박근혜와 김무성의 결별은 어느 정도 예정되었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김무성이 특유의 승부사 기질을 드러내는 순간 두 사람은 함께 하기 어려운 관계가 되었을 것이다.

▲ 지난 2월 '세종시 정국' 당시 친박계 의원(왼쪽 현기환, 오른쪽 구상찬)들의 '엄호'속에 취재진을 피해 국회로 들어오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연합

'박근혜 정권'이 나와도 '친박계 정권'은 아닐 것

박근혜는 조직을 믿지 않는다. 조직보다는 대중의 마음을 믿고 정치적 세보다는 바닥의 민심을 믿는다. 박근혜는 시골장터에서 만난 이름 모를 아주머니들을 믿는다. 어머니가 죽었을 때, 아버지가 죽었을 때 뜨거운 눈물을 같이 흘렸던 저자거리의 장삼이사를 더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박근혜는 본질적으로 대중 정치인이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는 대중 정치인이다. 이는 박근혜가 겪어온 곡절 많고 굴곡진 정치역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제 2의 천성과 같은 것이다.

박근혜는 신뢰를 가장 중요한 인생철학으로 생각한다. 그가 청와대를 나와 정치를 시작하기 전까지의 어려운 시기동안 썼던 일기에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가 바로 신뢰다. 이는 그만큼 그가 많은 배신을 보고 겪었다는 뜻이고, 배신과 모멸의 참담한 세월을 견뎌냈다는 뜻이다. 박근혜가 겪은 배신은 대중의 배신이 아니었다. 바닥 민심의 배신이 아니었다. 배신은 늘 높은 자리, 조직의 위세를 즐기던 사람들에 의해 자행되었던 것이다.

박근혜에게 친박계는 길을 함께 가는 좋은 동반자이지만 그 이상은 아니다. 길을 가면서 만나게 되는 무수히 많은 갈림길에서 어떤 길을 갈 것인가는 전적으로 각자의 선택에 달려 있다. 같은 길을 가는 한 서로는 존중의 대상이고 '상의'의 상대다. 그러나 명령하고 복종하는 상하관계는 아니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다고 해서 친박계가 곧 정권의 주체세력이 되는 것도 아니다. 친박계 중 여건이 맞는 사람들은 역할을 하겠지만 그저 그 뿐, 더 이상의 정치적 의미를 부여할 일이 아니다. 박근혜 정권이 곧 친박계 정권은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글에서 제기한 문제, 즉 박근혜와 함께 할 사람들의 면면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박근혜가 가진 것은 '권력'이 아니라 '영향력'

권력은 다른 사람을 나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능력이다. 다른 사람을 나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강제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유도하는 것이다. 앞에 것을 권력(power)라 하고 뒤에 것을 영향력(influence)라 한다.

권력(power)은 직접적이고 영향력(influence)은 간접적이다. 권력(power)은 단도직입적이고 영향력(influence)는 우회적이다. 역대 대통령들이나 제왕적 총재의 권력은 '파워'(power)였다. 사람들을 강제할 수 있는 물리력과 정보기관의 동원력이 있었고 정치자금과 정치인에게는 생사여탈권이나 다름없는 공천권을 독점했다. 이들의 권력은 매우 직접적이고 단도직입적이었다. 그러나 권력(power)에는 반작용이 따르는 법이다. 권력을 휘두른 역대 대통령이나 제왕적 총재들의 말로가 비극적이고 허망한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박근혜의 힘은 권력(power)이라기보다는 영향력(influence)에 가깝다. 그는 대통령도 아니고 제왕적 총재도 아니기 때문에 권력(power)을 행사하려야 행사할 권력(power)이 없다. 그럼에도 그의 의지대로 수십명의 국회의원들이 움직인다면 그에게 어떤 형태로든 힘이 있는 것 또한 분명하다. 우리는 이를 영향력(influence)이라 부른다.

영향력(influence)의 핵심은 설득력이다. 그가 제시하는 길이 옳은 길이고 이기는 길일 때 영향력(influence)은 커진다. 영향력(influence)을 통한 힘은 언제든 회수될 수 있으므로 힘의 유지를 위해서는 늘 눈을 뜨고 있어야 한다. 상황을 파악하고 현실의 합리적 핵심을 움켜쥘 수 있는 통찰력을 가져야 한다. 동시에 '패도가 아니라 왕도로 간다'는 자신감과 당당함을 가져야 한다. 영향력(influence)은 좋은 의미의 권위(authority)를 가져야 하는 것이다. 박근혜와 친박계의 관계를 주군과 신하로 볼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이처럼 박근혜의 힘이 권력(power)이 아니라 영향력(influence)이기 때문이다.

'친박계'는 박근혜의 '문제점'을 보는가, 보지 않는가

박근혜가 친박계 의원들과 맺는 관계 양식은 통상적인 권력정치에서 보여지는 계파정치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박근혜와 친박계 의원들은 계파의 결속력을 보여주는 집단적 행동, 이벤트, 모임, 회의체계가 없다. 친박계 의원들끼리 자주 만나고, 특정 정치 사안에 대해 의논도 하겠지만, '계파 보스'라 할 박근혜가 이들과 함께 회의를 하거나 어떤 입장을 정해 통보하고 지시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매우 예민한 문제, 예컨대 세종시 문제나 미디어법 같은 문제 또는 친박계 의원의 입각 문제가 발생했을 때도 박근혜는 개인 의견을 밝히거나 물어오는 의원들의 질문에 짧게 답하는 정도 이상을 넘어서지 않는다. 친박계 의원 누구라도 박근혜를 만날 수 있고 어떤 문제든 얘기할 수 있으나 최종적 판단과 선택은 철저하게 각자의 몫이다.

박근혜에게는 통상적 의미의 캠프도 없고 계보도 없다. 박근혜는 계보관리를 위해 돈을 쓰지 않으며 그들의 공천을 보장하지도 않는다. 문제가 발생하면 관심을 갖고 지켜보거나 한 두마디 하는 것이 고작이다. 재미있는 것은 친박계 의원들도 박근혜에게 그 이상의 적극적 행동을 바라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들은 박근혜가 자신의 문제에 관심을 가져주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박근혜는 자신의 관심을 표현할 때는 매우 구체적이고 분명하게 표현한다. 에둘러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직접적인 방식으로 표현한다. 박근혜의 표현은 단순 명쾌해서 누구나 알 수 있을 정도다. 경주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정수성 후보의 출판기념회에 참석하거나 경쟁자였던 정종복 후보가 청하는 악수를 분명하게 거절하는 것처럼. 친박계 의원들은 이런 정도의 행동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미디어법 절충안을 낼 때나 국회 본회의에서 세종시 수정안 반대토론을 할 때나 박근혜는 친박계 의원들과 사전에 상의하거나 입장을 조율하지 않았다. 단추만 누르면 해답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역량 있는 전문가들을 얼마나 많이, 얼마나 가까이 두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박근혜가 이 문제들과 관련해 적어도 친박계 의원 모두와 직접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지 않았던 것은 분명하다.

재미있는 것은 친박계 의원들이 박근혜의 이 같은 태도를 문제라고 느끼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신들은 박근혜의 생각과 가치에 동의해서 더불어 함께 하는 것이므로 박근혜의 생각과 자신의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고 또 구체적인 부분에서 약간 이견이 있더라도 큰 방향에서 문제가 없으면 함께 하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는 것이다.

거의 대부분의 친박계 의원들이 이렇게 말하고 있으므로 이러한 관계가 사실이 아니거나 잘 작동되지 않는다고 논박하기 어렵다. 실제로 친박계 의원들은 이런 방식의 의사소통과 행동 통일에서 별다른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각자 생각이 있고 각자의 판단에 따라 행동하면서도 '자연스럽게' 박근혜의 생각과 판단을 공유하고 박근혜와 함께 행동하는데 부자연스러움이나 억지스러움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심지어 친박계 인사의 개별적 입각 같은 매우 예민한 사안의 경우에도 박근혜는 '당사자가 알아서 할 일'이라는 입장이고 나머지 친박계 의원들도 찬반양론이 있을 경우 대체로 본인의 최종적 선택을 존중하는 선에서 마무리한다.

친이계, '느슨한' 친박계 비웃을 때 아니다.

친이계는 친박계의 이 같은 행태를 비웃는다. 제대로 된 회의체계 하나 없는 집단이 무슨 세력이며 계보냐는 비아냥을 보내기도 하고, 모든 의원들이 오로지 박근혜의 입만 바라보고 있다고 공박하기도 한다. 친이계는 박근혜와 친박계 의원들간의 이러한 관계를 소통부재의 권위주의적 관계로 규정하길 좋아한다. 박근혜는 다른 의원들과 일체의 대화와 소통 없이 독단적으로 결정하며, 한 번 박근혜가 결정하면 친박계는 그걸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친박계의 이 같은 행태를 소통부재라 공격하는 것은 다소 작위적인 정치공세로 보인다. 소통부재라기 보다는 소통방식이 다른 것이다. 적어도 친박계 의원들은 이러한 소통방식 즉 일종의 텔레파시 소통이라 할까, 이심전심의 소통 방식에 별로 불편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박근혜와 친박계 의원들이 그렇게 느끼는데 그걸 밖에서 아무리 아니라 한들 이들에게 무슨 실제적인 의미를 가질 것인가.

정치인들에게 회의란 어떤 것일까? 여야 최고위원회의 광경을 보면 회의란 정치인들이 언론을 향해 자기 얘기를 하는 자리지, 열린 마음으로 안건을 토론하고 차이를 해소해가는 통상적 의미의 회의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떤 회의건 회의에는 입장이 다른 사람이 있기 마련이고 정치권에서 입장이 다르다는 것은 단순히 생각이 다른 것이 아니라 이해관계가 엇갈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정치권에서는 회의의 결론이 표 대결로 나는 경우가 가장 일반적이다. 설사 표 대결까지 가지 않더라도 서로 다른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사람들의 머릿수를 점검해보고 불리한 쪽이 고집을 꺾는 방식으로 회의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계파회의도 그렇고 대선후보를 중심으로 구성된 선거대책위원회 회의도 그렇다. 다시 말해 정치권에서는 회의를 통해 순수하게 화쟁적 방식으로 어떤 결정을 내리는 경우는 사실상 없다고 할 수 있다. 거의 모든 결정은 최종적으로 힘 있는 사람 또는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지며 그에 대한 조언과 직언, 충언과 간언의 형태로 정치인들의 참여가 이루어지지 '계급장 떼고 토론하는' 형태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박근혜와 친박계 의원들의 관계를 회의체계가 없음을 근거로 소통부재의 권위주의적 관계로 규정하는 것이야말로 전형적인 정략적 공세다. 친이계 또한 이명박 대통령과 더불어 한 자리에 앉아 제대로 된 토론형 회의를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지 않았던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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