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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사람을 위한 4대강 사업, 후손들에게는 재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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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사람을 위한 4대강 사업, 후손들에게는 재앙"

[오홍근의 '그레샴 법칙의 나라']<8>삽질에 우는 낙동강(하)

둑에 올라서니 강이랑 드넓은 하천부지가 하나 가득 눈에 들어왔다. 제방위에서 본 낙동강은 지금 넓디넓은 공사장이다. 준설선이 부지런히 강바닥을 헤집고, 흙탕물을 걸러내기 위한 침사지(沈砂池)들 사이로 준설토를 실은 트럭들이 끝도 없이 오갔다. 경남 밀양시 하남읍 명례리 앞이다.

왼쪽으로 아득히 삼랑진 철교가 보였다. 하류인 동쪽이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서북쪽 상류다. 이 곳 제방에서 강폭은 2.5km 가량, 가운데 물이 흐르는 부분은 폭 500~600m 정도다. 함께 둑에 오른 밀양시 하천경작자 생계대책위원장 하원오씨 는 동쪽 삼랑진 철교로부터 상류 쪽으로 서북쪽 보이는 데까지, 어림잡아 150만 평의 하천부지라 했다. 밀양지역에만 낙동강 하천부지가 500만 평은 된다 했다.

전국 최대의 하천부지 감자 생산단지 165만 평도 이 지역이다. 배추, 무, 우엉 등 신선채소를 재배하는 비닐하우스가 끝도 없이 이어지던 곳이었다. 원래 이 지역은 농민들이 대대로 점용허가를 받아 채소농사를 짓던 지역이었다.

2002년 태풍 루사가 휩쓸고 지나가면서 그 점용허가가 깡그리 취소되었다. 재해로 인한 영농손실에 대한 정치적 부담과 함께, 지천인 밀양강변 도시정비와의 형평성 때문이었다.

이어져 무허가 영농행위는 묵인돼왔으나, 4대강 사업이 본격화되면서 금년 3월 시공업체 중장비가 덤벼 마지막 버티던 감자밭과 보리밭을 갈아엎었다. 노지농사는 보상도 없이 다들 쫓겨났다. 밀양 지역에서만 하천부지 농민 500여 명이 발길을 돌렸다. 김해시 한림면에서는 자살한 농민도 있다. 이들 지역 어디에서도 푸성귀 한포기 볼 수 없다.

둑을 넘어 밀양시 상남면 쪽으로 줄지어가는 준설토 트럭 먼지 사이로 <생명을 살리는 행복한 기적 낙동강에서 시작된다>는 현수막이 보였다.

올 추석이후 배추 한포기에 1만 5000원이나 가던 채소 파동은, 일부에서 말 한대로 4대강사업 때문에 일어났다는 주장이 이곳에서는 실감나게 다가온다. 현장을 보면 그렇게 믿게 되어있다. 배추 등 신선채소의 재배면적이 4대강 사업으로 엄청나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정부에서는 4대강의 채소 경작지 축소면적을 3662ha, 1098만 평으로 보았다. 전국의 채소경작지 26만3000ha의 1.4%에 불과하다고 했다. 미미해서, 4대강 지역에서의 재배면적 축소가 배추파동을 부른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계산법이라는 지적이 곧바로 나왔다. 경상대 장상환 교수(농경제학과)의 설명이다.

'1.4%'는 그 무렵까지 보상이 이뤄진 사유지 등을 중심으로 한 축소면적이라 했다. 하천부지 가운데 사실상 채소를 생산해내던 무허가 경작지까지 포함해야 바른 계산이라고 했다. 당연한 이야기다. 이에 따라 산출된 1만 500ha, 3150만 평이 4대강 사업으로 신선채소 생산을 멈춘 '축소 면적'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전국 채소 경작지 면적의 4%다.

그렇다면 줄어든 공급량도 4%였을까. 장 교수의 이야기는 다르다. 하천부지 채소농사의 경우 기본적으로 다모작(多毛作)이기 때문에, 4% 면적에서의 생산량은 6~8%정도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공급량이 평소보다 5% 정도 늘면 값은 폭락하고, 5% 정도 줄어들면 폭등할 가능성이 많다는 게 상인들의 이야기다. 폭등의 분기점을 넘어서는 '공급량의 감소'가 있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요컨대 최근의 배추파동은 '9월 폭우'의 영향도 컸지만, 4대강사업으로 인한 경작지 면적축소-생산량감소가 큰 원인을 제공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일부에서는 추석전날의 폭우가 전국에 내린 것으로 알고 '원인'의 전부인양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날 100mm이상 폭우가 온 곳은 인천(175.5) 서울(259.5) 양평(214.5) 이천(187) 제천(139.5) 원주(209) 영월(153) 정도였다. 낙동강 주변은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은 곳이 더 많았다.

어떤 사람은 유통업자들의 사재기 때문에 배추 값이 폭등했다고 말했다. 상인들은 믿지 않는다. 특히 배추는 무와도 달라서 뽑아 팔 때가 되면 밭에 심어진 상태에서도 상품성과 저장성에 금방금방 문제가 생긴다고 했다. 느긋하게 사재기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4대강 사업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듣지 않으려 했을 것이다. 국민 대다수가 반대하는 4대강 사업이 국민에게 고통을 준 원인이었다는 소리 듣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농사짓던 밭 3000만 평 이상이 사라졌는데, 채소 값이 그대로일 것이라고 믿고 우기는 건 난센스다. 4대강 지역에서 채소가 재배되고 있었다면 배추 한포기에 1만5000원이나 하는 혹독한 고통까지는 겪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도 올 김장하는 비용이 예년보다 30% 정도 더 든다는 보도가 있다. 마늘, 고추, 양파, 무 등의 수입을 늘린다는 정부 발표도 있다. 모두 4대강 사업과 무관치 않다고 보는 게 옳다.

하천부지 밭만 없어지는 게 아니다. 준설토를 갖다 '버리는' 리모델링 경작지도 따지고 보면 대부분 '절대농지'의 감소다.(이 정권 들어 그린벨트도 적지 않게 줄었다.) 리모델링 지역에 대해서는 앞으로 형질변경을 통한 땅값 상승에 관심을 두는 농민들이 더 많아 보인다. 농사짓기가 힘든 고령자들이 농촌에서 늘어나는 것도 이유일 것이다.

▲ 경남 창녕군 길곡면 수로에 폐콘크리트가 군데군데 버려져 있다. PH농도가 높아져 주변 오염 가능성이 크다. ⓒ마산·창원·진해 환경운동연합 제공

4대강 사업으로 경남지역 낙동강변에서만 그런 리모델링 지역이 2300ha 690만 평에 이른다. 정부가 농사를 못짓게 된다고 보는 2년 동안의 평당 보상가격이 1만2500원이다. 따라서 리모델링 사업이 해당농민 개개인에게는 '논일 안 해도 되는' 혜택일 수도 있다. 리모델링 지역이 다시 논이 된다는 보장도 없다.

크게 봐야 한다. 쌀 재배면적의 감소는 결코 좋아하거나 선도해갈 일이 아니다. 전국의 쌀 재배면적은 106만ha에서 89만ha로 15년 전에 비해 무려 15%이상 줄었다. 쌀은 보관이 골치 아플 정도로 남아돌고, 여차하면 반도체 팔아서 수입해다 먹으면 된다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식량안보차원의 심각성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15년 전 미국 쌀값은 우리 쌀값의 29%에 불과했다. 그게 지금은 55%에 이른다. 오른 것이다. 또 15년쯤 뒤에 어떤 상황이 닥칠지 모른다. 더구나 우리에게는 장기적으로 남북관계까지 고려해야 하는 식량문제가 있다.

내가 꼭 필요한 것을 상대방이 갖고 있으면 상대방이 부르는 게 값이 된다. 컴퓨터와 휴대전화 등 첨단제품에서 꼭 필요한 원료인 희토류 때문에, 센카쿠 영토분쟁에서 일본이 즉각적이고 단호하게 무릎을 꿇는 것을 우리는 보았다. 내게 없거나 모자라면 그러는 게 국제사회의 질서다. 식량문제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 식량안보 말고도 당장 소작농들에게도 4대강 사업은 고통이다. 빌려서 농사지을 땅이 줄었다. 하천부지 농사가 금지되고, 리모델링사업으로 논 면적이 줄었기 때문이다. 농지 임대경쟁이 심해질 수밖에 없다. 하천부지 경작금지로 소득원이 사라진 사람들은 소작료를 더 얹어주고 땅을 잡기에 바쁘다.

함안 수박생산자협의회 조명래 사무국장은 200평짜리 겨울 수박농사용 비닐하우스 한 채 빌리는 값이 예년 30만 원이었으나 요즘은 36만 원이 되었다고 했다. 20%나 비싸진 거다. 4대강 사업에 대거 투입되는 바람에 중장비도 임대료가 20%나 올랐다.

하천지형을 연구하는 세계적인 권위자들도 지금 진행되고 있는 이 나라 4대강사업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하고 있다. 20세기 중반 북미와 유럽에서 댐을 건설하고 구불구불 흐르는 강을 직선화시켰던 하천사업이 사실은 '실수'였다고 토로했다.

지금은 오히려 다들 예전의 강으로 원상회복시키는 추세라고 했다. "한국에서 이뤄지고 있는 형태의 유역관리는 미국과 유럽에서 이미 20세기에 폐기된 방식"이라며 신중한 접근을 충고하고 있다.

"4대강 사업은 주민들에게 보탬이 되도록, 치밀한 계획 아래 서두르지 말고 협의해가며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인 김두관 경남지사가 요즘 정부와 한나라당의 집중포화를 받고 있다.

낙동강사업 조정협의회의 구성을 정부에 건의했다가 거부당했다. 사업권을 회수하겠다는 정부의 엄포도 있었다. 낙동강변 하천부지에 몰래 매립된 수백만 톤의 불법 폐기물에 대한 공동조사 제의도 정부 측이 거절했다. 다 떳떳치 못한 일이다.

한나라당이 지배하는 경남 도의회의 의원들과 시장 군수들은 4대강 사업이 '대다수 국민들이 적극 찬성하고',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적 동의를 받은' 사업이라고 했다. 따라서 사업 발목 잡지 말고 지사직 사퇴하라고도 했다.

피해주민과 시민단체들은 "사업착공 전부터 주민들의 문제제기를 단 한 번도 거들떠보지 않던 정부가 이제 와서 사업권 회수를 말할 수 있느냐"고 비판하고 나섰다. 바야흐로 전쟁 중이다.

4대강 사업은 대통령 한사람의 결단에 의해 추진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앞에서는 누구도 지금의 4대강 사업에 감히 토를 달지 못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러나 이 나라 금수강산이 결단코 어느 한 사람의 것일 수는 없다. 이 땅에서 앞으로 태어나고 살아가야 할 후손들의 것이기도 하다. 그들에게 재앙이 될 가능성은 없는지도 살피고 또 살펴야 한다. 이 나라는 한 개인이 아닌 모두가 살아가야 할 하나뿐인 땅이기 때문이다. 절대로 이렇게 서두를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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