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해 본 사람은 손이 가려울거여. 그랑게 장갑을 두 개 끼고 토란대를 뜯어갖고 껍질 베껴서 말려. 말려서 해묵으면 맛있응게."
송정댁 할머니가 자분자분 일러준다. 그제사 보니 마을 여기저기 담벼락 같은 데에 토란대를 세워놓았다. 지금이 토란대를 말릴 때인가 보다. 그렇게까지 일러주시는데 안하면 미안해진다.
나는 커다란 토란잎이 보기 좋아서 언젠가 한번 토란을 심어보리라 벼르기만 하다가 드디어 이번 봄에 토란을 두 줄 심었다.
토란을 심어놓고 기다리면 되는 줄 알았더니, 고랑의 풀도 매주어야 하고, 잔잎이며 밑에 누래진 잎은 뜯어주어야 한다. 북도 돋아야 한다고, 아랫집 김 씨 아저씨가 나를 보기만 하면 성화지만, 웬만한 일은 생략하고 넘어간다.
그런데 얌전하신 송정댁 할머니 말은 그냥 넘어갈 수가 없다.
"토란대 뜯어와. 여기서 말리게."
'에구, 풀하고 토란이 같이 자라고 있어서 토란대가 잘 안 보이는데.'
"뜯어갖고 조금 시들어진 담에 베껴야 해."
"그래요?"
"하먼. 싱싱한 토란대를 어치케 벳긴단가."
정자 옆에 서있는 느티나무도 알 일은 나는 처음 듣는다.
하여 다음날 아침에 큰맘 먹고 토란 밭으로 가서 먼저 풀을 베고 (풀이 너무 자라서 호미로 매지 못하고 낫으로 벤다) 토란대를 뜯었다.
"토란대 말릴라고?"
토란잎을 뜯고 나서 연일 비가 줄줄 오더니 웬일로 반짝 날이 갰다. 날이 좋으니 여기저기서 경운기 엔진 소리가 요란하다. 모두들 논으로 밭으로 가는 것이다. 나도 무언가 일을 해야 할 것 같다.
'아 참 토란대를 벗겨야지.'
뜯어다가 부려놓고 잊고 있던 토란대가 생각났다. 그런데... 토란대를 보니 한심하다. 이것을 언제 벗기나. 시장에서 말린 토란대를 본 적은 있지만 직접 벗기는 것은 생각도 못해본 일이다. 에라 혼자서는 심심한데 정자에나 가지고 가서 벗길까.
토란대를 핑계 삼아 시원한 정자에 앉아 놀기가 절반이다. 여기저기 주위를 본다. 아 정말 좋다.
"토란대 벗기요?"
밭에서 오는 이장댁 얼굴이 벌겋다.
"토란대는 딴 지 나흘만에 벳기면 잘벳개져. 졸졸 통째로 벳개져."
나흘. 이제 제대로 알았다.
"이거 적 부쳐 묵으면 맛있어."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망태기에서 굵은 가지 네 개를 내놓는다.
"아이고, 가져가서 잡수셔요."
"아, 먹어봐. 소금하고 마늘 좀 뿌려서 적 부쳐. 목말라서 나는 집에 가야겄네."
위에서 또 동네아주머니가 내려와 정자에서 잠간 걸음을 쉬며 웃고 가고 멀리 전 이장부부가 일하는 것이 보인다.
조용한 정자에 있으니 문득 계곡물 소리가 귀에 가득 찬다. 물소리 속에 물소리가. 또 물소리가 들어있다. 이 마을에서는 물도 일을 한다. 논에서 밭에서 일을 하고 난 물이 여기저기서 계곡으로 흘러들어간다.
잠깐 정자 바로 밑 계곡으로 내려가 본다. 물이 참 맑기도 하다. 이 물이 저 아래 섬진강으로 바로 들어가는 것이다.
모처럼 볕이 난 오후, 토란대 덕에 한나절을 잘 보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