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은 낯설다
원래 이런 성격이 아닌데, 그녀가 변했다. 도도함은 어디로 갔는지 코끝을 손등에 비비적대며 친한 척을 하고, 마룻바닥에 발라당 누워 털을 빗겨 달란 눈빛을 보낸다. '꽃네'는 민들레출판사와 17년 세월을 함께해온 장수 고양이다. 모로 누워 가랑거리는 꽃네의 숨소리를 들으며 가만가만 빗질을 해주다, 야위어가는 몸이 손끝으로 느껴져 울컥한다. 우리 함께할 시간이 길지 않구나.
한 해 한 해 달라지는 꽃네를 보며 조금씩 헤어질 준비를 해보지만, 별 소용이 없다. 온몸으로 겪기 전엔 영영 남의 얘기 같은 것이 이별이니까. 쌓아놓은 새 책의 옆면을 발톱으로 박박 긁다 야단을 맞거나, 늦은 밤 원고 위에 널브러져 간간이 웃음을 안겨주던 꽃네와의 시간은 영원할 것만 같다.
이어서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은 이런 준비조차, 아니 상상조차 해보지 못하고 목숨처럼 키워온 어린 목숨을 황망하게 잃은 부모들 생각이 나서다. 열아홉에 아버지를 잃었다. 3년 동안 병석에 누웠던 아버지인데도 이별은 청천벽력 같았다. 못다 한 시간에 대한 회한이 너무 컸다. 그러니 저녁에 만날 듯 헤어져 영영 돌아오지 않는 어린 자식을 그리는 부모 심정이 어떻겠는가. 얼마 전 다녀온 목포신항에는 녹슬고 찢어진 배가 만신창이인 채로 비스듬히 누워 있었고, 정권이 바뀌고 계절이 바뀌었어도 부모들은 그 곁에서 여전히 울고 있었다.
참사를 기억하는 방법
지난 6월 2일 '416안전공원 전문가 심포지엄'이 무산되었다. 안전공원 건립을 반대하는 지역주민들이 플래카드를 들고 무대를 점거해 행사는 시작도 못 하고 취소되었다. 세월호 참사로 숨진 단원고 학생과 교사들을 추모할 안전공원 입지를 놓고 지역주민들과 1년째 팽팽히 맞서고 있다. 의견 수렴을 위한 공청회에서는 단원고 뒷산을 비롯한 다섯 개 후보 부지 중에서 정부합동분향소가 있는 화랑유원지가 상징성·접근성·부지 확보 용이성·주변 시설 연계성 측면에서 '우수' 평가를 받았지만, 민원 등으로 사업 진행이 원활하지 못할 거란 항목에서 '불리' 평가를 받았다.
부패한 국가 앞에선 거리낄 것 없던 세월호 유가족들도 지역과의 관계에서는 망설임이 크다. 서운하기도 하지만, 시대의 참사를 같이 겪어내고 있는 이웃들의 아픔을 모르는 바 아니니 미안함과 고마움이 뒤섞여 있다. 단원고 교실 존치 문제로 재학생 부모들과 부딪힐 때도 생떼 쓰듯 막무가내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전문가를 찾아다니며 조언을 구하고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며 설득해보았지만, 쉽지 않았다. 416안산시민연대의 설명에 따르면, 416안전공원은 304그루의 나무가 자라는 숲과 온실정원, 미적 요소가 더해진 지하 봉안소를 통해 누구든 편하게 찾을 수 있는 시민들의 복합문화공간으로 구상하고 있다. 시민공모 아이디어에 전문가의 손길이 보태진 상세한 조감도와 미국 맨해튼의 911 테러 장소에 조성되어 명소가 된 '그라운드 제로'나 멕시코 폭력 사태 희생자를 추모하는 아름다운 공원 '차풀페텍 메모리얼 파크' 사례를 들며 인식을 바꾸어보려 하지만, '그래 봐야 납골당 아니냐'는 반대 주민들의 반응은 냉랭하다.
우리 사회가 재난을 기억하는 방식은 늘 비슷하다.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참사, 씨랜드 화재 사고…. 대형 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재발 방지를 다짐하며 위령탑과 추모공원을 세웠지만, 대부분 지역주민들의 반대로 외곽으로 밀려나고 결국 관리도 제대로 되지 않은 채 방치되기 일쑤다. 아픈 기억을 간직하는 건 힘든 일이다. 그러나 진정한 추모란 그 죽음 안에 산 자들의 삶을 담아내는 것 아닐까?
최근 역사적으로 죽음이나 고통, 참사 등이 일어났던 지역을 방문하며 교훈을 얻는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이 눈길을 끌고 있다. 맨해튼 그라운드 제로를 비롯해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수용소, 중국 난징대학살 기념관, 핵발전의 위험성을 알려준 체르노빌 핵발전소 근처는 대표적인 다크 투어리즘 지역이다. 생과 사는 모든 인간이 필연적으로 겪는 일임에도 특히 한국사회에서 죽음은 변방으로 쫓겨났다. 서구화된 도시계획에 따라 도시는 점점 더 깨끗하고 말쑥해지고, 불쾌하고 거추장스러운 광경은 사라졌다. 최근 몇 년 사이 웰다잉(welldying)이라는 말이 유행하며 '죽음학'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긴 했지만, 여전히 세월호 망자들을 떠올리는 추모공원은 혐오시설로 분류되고, 죽음은 빨리 떨쳐야 할 부정한 것으로 여겨진다.
추모시설은 님비현상을 일으키는 대표적인 시설이다. 가까운 역사 속에서는 2003년 192명이 숨진 대구지하철 참사 추모 사업이 그렇다. 각성과 추모를 위한 시설 건립이 논의되었으나, 지역주민의 반대를 넘지 못하고 세 번의 장소 이전 끝에 대구 외곽 팔공산에 '대구시민안전 테마파크'라는 이름으로 자리를 잡았다. 지진이나 화재 등 재난에 대비한 안전교육 공간으로 학생들과 가족 방문객이 많이 찾고 있지만, 최근 다시 갈등을 겪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유족들의 오랜 염원인 추모공원 조성을 위해 명칭 변경을 검토하자 지역 상인들이 반발한 것이다. 유가족 측은 참사 이후 14년의 시간이 흘렀으므로 한층 누그러진 민심을 기대했으나 실리 속에서 타협은 쉽지 않다.
한국의 인상 깊은 다크 투어리즘의 장소는 국립4.19민주묘지다. 서울 강북의 주택가에 위치한 이 묘지는 숲과 함께 조성된 공원으로 가족들이 나들이도 하고 운동도 하고 학생들이 단체로 와서 역사 공부도 한다. 366명의 영혼이 잠들어 있지만, 조경과 분수, 벤치, 조각품들은 여느 유원지 못지않게 편안한 분위기다. 지난해 가을, 이 근처에서 숙박 연수를 한 적이 있는데 아침마다 이곳에서 산책을 했다. 묘지 사이를 걸으며 하루를 시작하는 시민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아픈 현대사의 현장인 4.19민주묘지는 영혼의 안식처일 뿐 아니라 도시인들도 지친 삶을 기대는 쉼터였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추모공원을 아이들이 시민들에게 드리는 선물로 만들 수 있게 고민"(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하고 있다. 그 고민에 시민들의 힘을 보태기 위해서는 어디에 어떤 추모시설을 조성할 것인가에 앞서, 우리 사회는 죽음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하는 물음을 먼저 던져야 할 것이다.
고개를 돌려도 피할 수 없는 것들
죽음을 바라보는 관점은 대체로 그 사회의 종교문화와 깊은 관련이 있다. 부탄이나 티베트처럼 뿌리 깊은 윤회 사상에 근거한 나라가 아니고서는 대부분 죽음을 어둡고 슬픈 것으로 여긴다. 그럼에도 그 죽음을 받아들이는 태도, 망자를 생각하는 태도는 다 다르다. 도심 속 묘지를 쉼터로 애용하는 유럽의 문화를 쉽사리 표방할 수 없는 건 죽음 문화가 그들의 역사와 궤를 같이하고 있어서다. 중세 기독교에 기반을 두고 있는 유럽의 장례문화는 죽음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는 것이고, 언젠가 부활하여 하나님 나라로 가야 하기 때문에 육신을 보존(매장)하여 부활의 때를 기다린다는 의미로 중세부터 교회 뒤뜰, 지하실, 혹은 교회나 성당 내부에 묘지를 설치했다. 영주나 귀족들은 성내에 독자적인 납골당을 설치해 망자들을 일상 가까이에 두기도 했다.
가까운 나라 일본만 해도 주택가 안에 공동묘지를 쉽게 볼 수 있다. 묘지 가까이 살았던 적이 있는 일본인 친구는 "불편한 게 있다면 향냄새가 자주 난다는 것" 정도일 뿐 다른 거부감은 없다고 했다. 이는 묘지가 혐오시설이라는 인식을 떨치기 위해 강력한 행정력을 동원한 국가 정책의 영향이 크다. 1940년대부터 일본은 도시계획에 공동묘지를 포함시켜 주변 경관을 살린 공원식 묘지와 가족 납골당을 적극 권장하며 국민들의 장례문화를 바꾸는 데 앞장섰다.
416안전공원을 반대하는 지역주민 입장에선 떨어질 땅값이며 안산 지역에 굳어질 어두운 이미지도 못마땅할 테지만, 속내에는 이 슬픔을 내내 곁에 두고 살아야 하는 일에 대한 피로도와 힘겨움이 있을 것이다. 나도 자주 광화문 세월호 광장에 나가지만 50미터 지척에 있는 분향소 앞을 지나는 일은 언제나 힘겹다. 고통스러워 때로는 외면하고 싶지만 그럼에도 이 비극을 직시하는 이유는 "고개를 돌린다고 피할 수 없는 것들이 세상에는 있음"(이광희의 시 '상처에 대하여' 중)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죽음 곁에 삶을 두고
"묘역에는 죽은 자가 있는 게 아니라 죽은 자에 대한 우리의 기억이 거주할 뿐이다. 그러니 묘역은 죽은 자의 공간이 아니라 남은 우리 산 자가 죽은 자를 기억하며 스스로를 성찰하는 장소며 풍경이다. 그래서 묘역을 찾는 일, 묘지를 가까이 두는 일은 우리 삶의 진정성을 담보하는 일이 된다."(<보이지 않는 건축, 움직이는 도시>(승효상 지음, 돌베개 펴냄)
가방에 매달린 노란리본을 보고 가까운 이가 말했다. "정권도 바뀌었는데 리본 좀 떼라"고. 하지만 보란 듯이 달고 다니던 어두운 시절의 노란리본은 저항이나 분노의 표현이었으나 이제야 비로소 애도의 상징이 되고 있음을 느낀다. 우리는 세월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생방송을 통해 수백 명이 수장되는 것을 지켜본 우리 모두는 이 참사의 목격자가 되었다. 벗어날 수 없는 운명 공동체가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600만 유대인을 학살한 홀로코스트의 주범은 히틀러나 아이히만 같은 전범이 아니라, 이 침묵에 동조한 평범한 독일 사람들이라고 지적한 정치학자 한나 아렌트는 말한다. 학살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책임의 정도는 커진다고.
작년 5월 안산 화랑유원지를 찾았다. '볕이 이렇게 좋아도 되나?' 싶은 날이었다. 정부합동분향소 옆 광장에는 나들이 나온 가족들이 많았다. 퀵보드와 인라인을 타며 재잘거리는 아이들 소리가 들려왔다. 삶과 죽음, 슬픔과 희망이 공존하는 아이러니함에 묘한 기분을 느끼며 유가족 대기실로 향하는데, 광장에서 아이 자전거를 밀어주던 젊은 부부가 분향소 쪽으로 걸어왔다. 아빠가 "자전거는 여기 세워놓고 언니오빠들한테 인사하러 가자"며 손을 내밀자, 아이는 누가 가져가면 어떡하느냐며 분홍색 자전거를 끌고 분향소로 들어갔다. 아이에게 세월호 참사를 설명하거나 유난히 슬퍼하거나 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이곳에 자주 들르는 동네 주민인 듯했다. 이웃집에 놀러 가듯 자연스레 분향소로 들어가는 가족의 뒷모습이 생경해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삶과 죽음은 그렇게 자연스러운 일이다. 터부시한다고 멀어질 수 없는 것이 나와 타인의 죽음이다.
지난겨울 촛불광장 이후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한다. 정권이 교체되고 시민단체에 후원이 늘어나고, 회사 노조에 가입하거나, 정당에 가입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한다. 그러나 세월호는 아직 갈 길이 멀다. 그간은 진실을 엄폐하려는 세력과의 싸움이었다면 지금부터는 일상에서 일어날 '망각과의 투쟁'이며, 416안전공원 건립도 그 연장선에 있다.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후 '타자'를 철학적 주제로 불러들이게 된 레비나스는 "타자의 죽음에 대한 무조건적 응답을 통해 비로소 우리는 인간·윤리적 자아가 된다"고 말한다. 우리는 죽음을 통해 삶을 배운다. 타자의 죽음을 가까이 두는 것은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내 삶의 물음에 답하는 일이다. 직면하기 힘든 이 비극을 보듬는 방식이 운명 공동체의 미래를 좌우할 것이다. 삶을 돌보는 것이 정치의 시작이라면, 망망한 타인의 죽음을 돌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민주정치의 시작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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