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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대운하'라 고백하는 게 순서다

[오홍근의 '그레샴 법칙의 나라']<7>삽질에 우는 낙동강(상)

사전에 보면 보(洑)는 '논에 물을 대기 위하여 둑을 쌓고, 흐르는 냇물을 가두어 두는 곳'으로 되어 있다. 그렇다. 어릴 적 시골에서 놀던 '보'도 그랬다. 시내를 가로질러 길이 50여m쯤에 높이는 1m 남짓이었다. 그 보를 오르내리며 우리는 멱을 감고 고기도 잡았다. 시골출신이라면 누구에게나 그런 유년기의 추억이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지금 우리 눈앞에 세워지고 있는 이 엄청난 구조물은 무엇인가. 이게 '보'라면 이건 아니다. 믿을 수가 없다.

경남 창녕군 길곡면 오호리, 낙동강의 8개 '보' 가운데 가장 하류 쪽에 들어서는 함안보 공사 현장. 온갖 건설장비들의 굉음이 요란하고, 현장으로 드나드는 트럭들이 꼬리를 문다. 강을 가로막고 들어설 '보'는 길이 567.5m, 강둑을 거의 다 막아가고 있었다. 공사가 끝나면 '보'는 높이 13.2m로 아파트 4개 층보다 높아진다. 폭 40m에 높이 9.58m인 수문도 3개, 완공되면 소수력 발전소와 함께 '보'위로 646m 길이의 다리가 놓인다고 했다. 이것은 결코 '보'일수가 없다. 분명한 '댐'이다.

22조 원이나 드는 단군이래 초대형 토목공사인데도 정부는 당초 비용지출과 관련해 반드시 지켜야할 절차인 예비타당성 조사를 거치지 않았다. "국가 재정법 '시행령'에 따라 '보'설치, 하천준설 등은 '재해예방사업'이기 때문에 예비타당성 조사대상이 아니다." 정부의 변명은 그랬다. '보'가 강조되었다. 게다가 이 엄청난 공사의 막무가내식 밀어붙이기 명분을 '법'도 아닌 '시행령'에 의존했다. 거대한 구조물이 아니라는 인상을 국민들에게 심어줄 필요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댐'은 '보'가 되었을 것이다.

함안보 건설현장에서 낙동강은 서쪽이 상류이고 동쪽이 하류가 된다. '보'의 서쪽 상류 쪽으로 200m쯤 떨어진 곳에 모래섬이 있다. 강의 중심부에서 남쪽에 약간 치우친 상태로 자리를 잡았다. 오랜 세월 모래가 쌓였다. 지도에는 이름이 없으나 관청에선 하중도(河中島), 주민들은 밀포섬이라 불렀다. 상류쪽 서쪽 끝에서 하류 쪽 동쪽 끝까지 길이가 어림잡아 2km, 남북 최대 폭이 500여m는 됨직한 제법 큰 섬이다. 이 섬의 북쪽 옆구리 부분을 사정없이 깎아내는 준설작업이 한창이었다.

이 섬에서 농사를 짓던 함안군 칠북면 사람들은 모두 쫓겨났다. 칠북면 봉촌리의 김 아무개씨는 몇 년 전 12억 원을 투자해 이 섬에 비닐하우스 320여 채를 세웠으나 제대로 된 보상도 못 받고 '철수'했다고 했다. 마산·창원·진해 환경운동연합 임희자 사무국장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작업이 "물길을 넓히면서 수심을 확보하기 위한 것임에 틀림없다"고 설명했다. 뱃길을 내는 작업이라는 의혹은 여기에도 있다. '운하작업'일 것이라는 이야기다. 공사 현장에는 <하중도(밀포섬) 준설 중이며 일부 구간은 소생물 서식공간으로 조성할 계획입니다>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정부는 4대강사업의 목적을 ▲물 확보 ▲수질개선 ▲홍수방어 등이라고 홍보해왔다. 그러나 필자가 들여다 본 4대강사업 어디에도 이 셋 가운데 단 하나라도 수긍이 가는 대목은 없었다. 이미 다 드러난 이야기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4대강 사업으로 많은 물은 확보된다. 그러나 지금 물이 부족하지는 않다. 따라서 용도가 분명치 않은, 당장은 필요치도 않은 그 많은 양의 물을 왜 새로 확보하는지 정부는 그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사업이 끝나면 수질은 더 나빠지게 돼 있다. 홍수방어도 4대강 사업과는 상관이 없는 이야기다. 지천과 지류의 문제일 뿐이다. 오히려 새로운 홍수위험이 생겨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는 왜 전국토를 후벼 파는 데 돈을 쏟아 붓고 있는지 납득할 수가 없다.
▲ 경남 창녕군 길곡면 오호리 함안보 건설현장. 이것은 '보'가 아니다. 댐이다. ⓒ 마산·창원·진해 환경운동연합 제공

아무리 고민을 해봐도 답은 하나다. 대운하 사업이다. 그게 아니고서는 저렇게 서둘러 '보'를 세우고, 강바닥을 긁어내 수심을 깊게 하면서, 물길을 반듯반듯하게 잡아가야할 아무런 까닭이 없다.

강 따라 자전거 길을 내고 수변공원도 만드느니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4대강사업은 한마디로 뱃길조성 사업이다. 대통령이 "안하겠다"고 두 번씩이나 국민에게 약속한 '한반도 대운하사업'이 간판만 바꿔 단 '배 띄우기 사업'이 된 것임에 틀림없다.

사업의 핵심은 '보'의 건설과 강바닥 준설공사다. 특히 지금의 강바닥에서 평균깊이 4m 이상을 파내는 준설공사는, 뱃길을 내는 데는 반드시 필요하겠지만 심각한 부작용이 우려된다. "강을, 자연을 함부로 손대서는 안 됩니다." '맑은 물 사랑사람들'의 이현규 사무처장은 몇 번이고 말했다. 당장 수생물 서식처와 산란처가 파괴되는 환경문제도 그렇지만 그 준설과 연관해서 예기치 못한 재앙이 닥칠 수도 있다고 했다.

그 실증적 사례로 보이는 사고가 났다. 지난 9월 21일 경기도 여주군 여주읍 연양천 하류 신진교(길이 36m 교각 2개, 왕복 2차선)의 붕괴다.

신진교는 연양천의 남한강 본류와 만나는 지점의 400여m 상류 쪽에 세워진 다리다. 추석전날인 이날 이 지역에는 224mm의 폭우가 내렸다. 이전 최대 강우량은 2006년 7월 16일의 216mm였다. 문제는 연양천과 남한강이 만나는 지점의 수위가 설명해준다. 강우량은 비슷했다. 하지만 2006년 폭우 때 44.64m였던 그 지점의 수위가 2010년 폭우 때는 39.73m를 나타냈다. 무려 4.91m나 낮아졌다.

4대강 사업 준설공사로 남한강 본류의 강바닥이 팼기 때문이다. 갑자기 낮아진 강바닥으로 연양천 물이 급속히 덤비면서 유속이 빨라져 신진교가 무너졌다고 했다. 관동대 박창근 교수(토목공학·환경연합 4대강 특위 공동위원장)는 "준설공사로 합류지점 남한강 본류의 강바닥이 낮아져 난 사고"라고 단정했다. 이날 신진교 하류의 유속은 2배 이상 빨라졌고 물의 힘은 5배 이상으로 세졌다고 했다.

정부 측은 다리가 낡아 무너졌다 했으나 이 지역 여주신문 보도는 다르다. 9월 27일자 기사는 7개월 전인 올해 2월 구조안전진단결과 D급(위험)판정이 나왔으나, 여주군청의 보강공사로 한 등급 높은 C급 다리가 된 상태였다고 적었다.

'보'의 건설과 대규모 바닥파기로 4대강의 수위는 턱없이 높아질 것이다. 낙동강의 경우 7~9m의 수위가 유지될 것이라 했다. 강의 제방 바깥지역에서 지하수의 높이가 달라져 많은 침수지역이 생길 것이다. 이 대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함안보 상류 쪽 함안군엔 어림잡아 4㎢ 남짓(약 135만평) 정도의 침수지역이 예상된다는 진단이 나왔다. 인제대 박재현 교수(토목공학)의 분석이다. 그런데도 정부 측 대응 방식은 주먹구구다. 정밀한 설계도 없어 보인다.

정부 측은 엄청난 양의 준설토 처리와 침수지역 문제를 해결하는 방편으로, 강 주변의 논 등 저지대에 3~8m 두께로 준설토를 덮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현지에서는 농경지 리모델링사업이라 칭한다. 준설토를 덮는 논은 2년 동안 농사를 지을 수 없을 것으로 보고 보상도 해준다.

4대강 사업 추진본부는 이와 함께 침수대책으로 배수장을 늘리고 배수관로를 정비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리모델링사업은 이미 시작돼 진행 중이다. 함안보 피해주민대책위원장 조현기씨는 침수가 우려되는 지역과 리모델링 사업지역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했다. 강에서 스며나온 지하수가 영향을 주게 될 높이나 범위에 대한 예측조사가 전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그냥 추진되고 있을 뿐이라고 우려했다. 주먹구구 수준이라 했다. 문제다.

지하수가 영향을 주는 높이와 범위는 흙의 형질에 따라서도 다를 수밖에 없다. 점토에서의 높이와 범위가 다르고, 사질토에서의 높이와 범위가 다르기 때문에 그렇다. 땅의 속사정을 조사·예측하지 않고, 자의적으로 눈에 띄는 상태만 보고 준설토를 덮는 데는 문제가 있다는 게 박재현 교수의 지적이다.

예컨대 8m는 덮어줘야 할 곳에 3m의 준설토를 덮는다면 안 된다는 얘기다. 정부 측은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은 일을 지금 서둘러서 하고 있다. 게다가 일부 지역에서는 특정한 땅을 나중에 지목변경하여 개발하기 위해서, '리모델링' 해달라고 요구하는 국회의원 등 정치인까지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당초 취지와는 상관없이 그런다고 했다. 그런 사례가 적지 않다고 했다. 놀라운 일이다.

지금 준설토를 덮은 논이 2년 뒤 다시 논으로서 기능할 것인지 걱정하는 농민도 물론 있다. 적어도 5년은 손질해야 논이 될 것이라는 견해도 나온다.

'보'가 생기면 수량이 늘고 수면이 넓어진다. 따라서 4대강 전역의 안개피해도 심각한 문제다. 안개 끼는 날이 부쩍 늘 것이다. 일조량이 줄어들 것이다. 농작물 피해가 늘 것이다.

함안 농민들에게는 다른 지역에 없는 고민거리가 하나 더 있다. 갑자기 큰 비가 내려 함안보보다 상류 쪽에 있는 낙동강 7개 '보'에서 일제히 수문을 열면 그 물이 어디로 몰려가겠느냐고 했다. 가장 아래쪽 함안보 유역이 물벼락을 맞게 될게 틀림없다고 걱정이다.

정부의 주먹구구식 사업추진으로 지금 합천보 쪽도 난리다. 합천군 덕곡면은 3면이 강으로 둘러싸인 지역이다. 남쪽으로 낙동강이 흐르고 동쪽엔 회천강, 서쪽엔 덕곡천이 흐른다. 말하자면 물에 갇힌 강변지역이었다. 논도 별로 없었다. "처녀가 시집갈 때까지 쌀 서말 못 먹는다"는 말은 이 지역에서도 항상 하던 이야기였다.

그러던 이곳이 1963년 3개 강변에 둑을 쌓으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논도 많이 생겼다. 허리도 좀 폈다. 그 덕곡면이 절반도 넘게 물에 잠기게 생겼다. 바로 하류 쪽에 합천보가 생기고 수위가 올라가면 꼼짝없이 수중마을이 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주민들의 말로는 덕곡면 전체면적의 60%, 150ha 이상 침수될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희한한 것은 4대강 사업 추진본부나 수자원공사, 부산국토관리청 등 관청 어느 서류에도 덕곡면이 침수예상지역에 들어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당초 정부 측 현장조사에서 미스가 있었던 듯 하고, 때문에 아직도 정부 측 대책은 없는 상태다. 덕곡면 청년회장 전정휘 씨는 "안 가본 관청이 없다"고 했다. "다들 알았다고는 하는데, 덕곡면은 지금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침수고 뭐고 아무 문제없는 지역으로 되어있다"고 씁쓸해 했다.

한쪽에서는 빨리 기정사실화하기 위해 불과 4개월짜리 허겁지겁 환경영향평가가 등장하는가 하면, 또 다른 쪽에서는 덕곡면 같은 별난 일도 벌어지고 있다. 허술하기 짝이 없다.

공사는 오래 전에 시작돼 진행 중인데 설계는 아직 손도 못댄 곳이 있는 것이다. 시쳇말로 건설현장의 '노가다 십장' 방식이라 그렇다. 주먹구구라 그렇다. 투명성이 사라진 것은 그 보다 훨씬 더 오래되었다.

잘못 가고 있는 4대강 사업의 물줄기를 바로잡아보려는 노력이 일부지역에서나마 일어나고 있는 것은 불행 중 다행이다. 흙탕물 한가운데서 솟는 맑은 샘물을 보는 느낌이다. 경남에 이어 충남에서도 '보'의 건설과 강바닥 준설의 중지를 요구하고 나선 것은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국민의 70%가 4대강 사업을 반대한다고 해서 하는 이야기만은 아니다.

건강한 생각을 사업권회수라는 이름으로 꺾어보고자 하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 비겁한 일이다. 먼저 "4대강 사업이 사실은 한반도 대운하사업"이라고 진실부터 말하는 게 순서다. 그게 정직한 사회고 공정한 사회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라면 더더욱 그래야 한다. 자손들에게도 그게 부끄럽지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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