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대변인이 공식적으로 밝힌 감세정책 철회 방침을 불과 몇 시간 만에 "실수였다"고 뒤집은 것. 다음 총선과 대선을 의식해 안상수 대표가 야심차게 내놓은 '중도보수' 선언도 정치적인 효과만을 노린 공허한 말잔치가 아니냐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부자감세 철회"→"고소득층 감세 철회"→"실수였다"
부자감세 기조의 철회를 제안한 것은 친이(親李)계 핵심으로 꼽히는 정두언 최고위원. 정 최고위원은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중진 연석회의에서 이같은 안을 안 대표에게 제안했다고 배은희 대변인이 전했다.
배 대변인은 "고소득층에 대한 부자감세 철회에 대해서 정두언 최고위원께서 재차 요구를 했고, 당에서는 이 제안을 받아들여 정책위에서 부자감세 철회에 대해서 검토하기로 했다"고 했다. 내용은 2012년부터 소득세와 법인세를 인하해 적용하는 방침을 철회하겠다는 것이다.
소득세 8800만 원 초과구간 세율을 현행 35%, 법인세 2억 원 초과구간 세율을 현행 22%대로 각각 부과해 2014년까지 모두 7조4000억 원의 재정 여유분을 확보하고 이를 서민복지 예산으로 사용하자는 게 정 최고위원의 주장이다.
정치권과 언론은 이를 사실상의 부자감세 철회 선언으로 받아들였다. <문화일보>는 이날 "안상수 대표가 오는 28일 부자감세 철회를 공식 발표할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곧 한나라당은 기존의 입장을 뒤집었다. 배은희 대변인은 국회 브리핑에서 "문화일보의 보도는 사실이 아니며, 결정된 것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정두언 최고위원의 제안에 대해 안상수 대표는 "한번 검토해보자"는 반응을 보였을 뿐 이같은 안이 지도부 차원에서 확정되지는 않았다는 게 배 대변인의 설명이다.
배 대변인은 앞선 자신의 브리핑에 대해서도 "실수였다"고 말을 바꿨다. 그는 또 수정 브리핑을 통해 '부자감세' 대신 '고소득층에 대한 감세'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그 동안의 정책 기조가 '부자감세'라는 것을 인정한다는 이야기냐"는 지적을 감안한 것으로 해석된다.
▲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 그가 야심차게 내놓은 '중도보수' 선언은 시작부터 구설을 낳고 있다. ⓒ뉴시스 |
당 내에선 여전히 '부자감세' 옹호론
실제 한나라당의 정책 기조가 부자감세의 철회로까지 이어질 것인지 여부도 불투명하다. 안상수 대표는 '검토'를 지시했다고는 하지만 당 내에서는 이를 불편해하는 분위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고흥길 정책위의장은 "지금 (감세 철회를) 검토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취지로 우려를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원희목 당 대표 비서실장은 이와 관련해 "현재 정책위의장과 논의도 되지 않은 상황"이라며 "이종구 정책위부의장에게 얘기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안 대표도 고 위원장 등 정책위와 앞으로 논의를 하지 않겠느냐"고 설명했다.
원 실장은 '안 대표의 정확한 발언과 의중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일단 아무 제한도 두지 않고 검토를 할 필요성은 있다는 것"이라며 "이제 논의에 들어가는 '문지방' 단계"라고 설명하며 진땀을 뺐다.
안 대표가 "검토해보겠다"고 한 대목도 정 최고위원이 주장한 방안 중에서 법인세 부분은 뺀, 소득세 부분에만 해당하는 것으로 뒤늦게 알려지는 등 혼선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한나라당 이종구 정책위부의장은 "나는 정 최고위원 소득세 부분만 제안한 것으로 들었다"며 "소득세 부분은 검토하겠지만, 법인세 부분은 국가 경쟁력 등과 관련한 것이어서 전혀 논리가 다른 영역이므로 검토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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