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현지시간) 미 공군의 전략폭격기 B-1B 랜서가 북한 동해 국제공역에 출격한 파장이 북한의 정면 반발로 이어지는 등 한반도 위기가 급속도로 고조되고 있다.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25일(현지시각) 기자회견을 갖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에 대한 '완전한 파괴'를 언급한 대목을 "선전포고"로 규정했다.
그는 B-1B 출격과 관련해선 "앞으로는 미국 전략 폭격기들이 설사 우리 영공 경계선을 넘어서지 않는다고 해도 임의의 시각에 쏘아 떨굴 권리를 포함해 모든 자위적 대응 권리를 보유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향후 미국이 무력 시위를 벌일 경우 군사적 대응을 불사하겠다는 위협이다.
리 외무상의 발언은 트럼프 정부가 한반도에서 독자적인 무력 시위를 벌인 데 이어 미국 입국을 제한하는 '반(反)이민 행정명령' 대상국에 북한을 추가하는 등 다방면으로 실력 행사에 돌입한 데 따른 반발로 풀이된다.
리 외무상의 기자회견에 앞서 스티브 므누신 재무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은 핵전쟁에 참여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면서도 "우리는 그것이 일어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겠다"고 압박을 가하기도 했다.
이처럼 예측가능성이 없는 북한과 트럼프 정부의 상호 자극이 자칫 돌발적 상황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상황 전개지만, 문재인 정부의 통제력이 제한되어 있다는 점이 우려를 증폭시킨다.
미국의 전략폭격기가 비무장지대(DMZ) 최북단으로 날아간 일촉즉발의 상황에서도 우리 정부가 이렇다 할 대응을 하지 못한 것이 단적인 사례다.
청와대는 B-1B의 북한 공해상 비행이 한미 간 충분한 협의와 긴밀한 공조 하에 수행된 작전이라면서도 공동작전이 아닌 미국의 단독 작전으로 수행된 경위, 협의 과정에서 우리 정부가 미국 측에 어떤 입장을 피력했는지 등에 대한 명쾌한 설명을 하지 않고 있다.
다만 25일 저녁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NLL(북방한계선) 이북의 공해상 작전과 관련해 NLL을 준수하는 차원에서 한국군이 참가하지 않은 것"이라고 밝혔다.
박 대변인은 "전략폭격기의 NLL 이북 공해상 비행 훈련은 미국과 한국의 충분한 사전 협의를 거쳤다"며 "비행 훈련이 진행되는 동안 비행작전 전 과정이 한미의 공조 하에 진행됐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우리로서는 (작전을) 함께 할 수 없는 현실적 이유가 있었다"면서 "NLL은 우리로서는 지켜야 할 선이지만 제3국이 지켜야 하는 것은 아니다"고 부연했다.
NLL을 넘어 최북단까지 전략폭격기를 전개하는 작전을 미국과 사전에 협의했으나, NLL 효력에 구속받는 한국군의 특성상 작전을 함께 수행했을 경우의 파장을 고려할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으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청와대가 미국이 주도하는 위험한 작전을 암묵적으로 용인하면서도 공동 작전에는 불참함으로써 한미 공조와 상황 악화 방지 사이에서 절충을 선택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지나치게 긴장을 격화시키거나 우발적인 군사 충돌로 평화가 파괴되는 일이 없도록 북핵 문제를 둘러싼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해 나가야 한다"고 천명한 만큼, 이 같은 소극적 공조가 불가피했던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우리 정부의 제한된 행보는 향후에도 반복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미 북한은 태평양 상에서 역대급 수소탄 시험을 할 수 있다는 초강경 조치를 언급했으며, 내달 10일 노동당 창건일을 전후해 모종의 도발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또한 10월 중순 경에는 미 전략무기인 핵추진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호를 비롯한 핵추진 잠수함, 이지스 구축함, 미사일 순양함 등 항모강습단의 한반도에 출격해 우리 해군과의 연합훈련이 예고되어 있다. 북한이 실제로 추가 도발을 감행할 경우, 항모강습단의 연합훈련 강도와 북상 범위도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
통제 불가능한 북한의 추가 도발 변수와 한반도에서 독자적인 군사 작전도 가능하다는 점을 확인한 미국의 강경 대응 사이에서 '안정적 상황 관리'를 위한 문재인 정부의 의지와 실력이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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