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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 비무장지대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의 수상한 여행 2] ㉙광화문 광장에서

동해안을 등지고 백두대간 진부령으로 핸들을 돌리자 완만하던 고개가 갑자기 급해지고 산허리를 깊게 돌아 다시 그 자리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급커브에 세워진 동그란 반사경이 낑낑대며 올라오는 우리를 안쓰럽게 기다리고 서 있다가 서로 머쓱하게 웃었다. 산야에 온통 붉은 단풍이 힘겨움을 조금이나마 잊게 해 준다.

▲고성·인제·양구.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고성·인제·양구.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고성·인제·양구.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동행친구가 도중에 우리와 같이 먹을 거라며 떡과 과일을 배낭에 잔뜩 짊어지고 힘들어 죽겠다며 엄살떠는 모습을 보니 즐겁다.

그 친구가 씩씩하게 앞장서며 우리를 보고 “야, 친구야! 날 봐. 이렇게 힘을 내란 말이야! 파이팅! 파이팅!” 이렇게 외치지 않아 좋다. 사실 친구는 지난달 국토종주도 끝내고 힘이 장사다. 왜 우리 옆을 홱 지나칠 기력이 없겠는가?

고성에서 23km를 달려 진부령 정상에 올랐다. 사실 자전거 평화누리길은 이곳 진부령 정상에서 향로봉을 넘어야 하는데 진입을 통제하고 있어 우회하는 길을 선택했다. 인제 원통으로 단숨에 내려 달려 진부령 아래의 황태 해장국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고성·인제·양구.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국도 46호선 매바위 인공 폭포를 지나 원통까지는 줄곧 내리막길이다. 이곳은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 살겠네.’라는 말을 떠올리게 하는 곳이다.

옛날 어느 임금이 난리를 피해서 이 고을에 와 머물렀다고 한다. 그는 서울의 형편이 궁금해 몇 차례나 사람을 보냈는데 그때마다 되돌아오는 이가 없자 다시 한 사람을 보내면서 “인제 가면 언제 오겠느냐?”라고 묻고 만일에 또 돌아오지 않는다면 “원통해서 못 보내겠다.”라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은 교통이 좋고 문화적으로도 다른 지역에 비해 뒤쳐지지 않는다.

동행친구가 저녁을 한 턱 냈다. 82일 만에 먹어 보는 삼겹살에 상추쌈을 너무 크게 싸서 입이 찢어질 뻔 했다.

감자와 호박을 썰어 넣은 구수한 된장찌개에 밥 한 그릇마저 뚝딱 해치웠다. 몇 잔 소주에 취기가 돈다. 늦은 밤 원통 산골 찬바람에 볼이 간지럽다.

▲고성·인제·양구.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10월 22일 9시. 원통에서 양구로 가는 길. 가아리 피암 터널을 지나자 경사가 급해졌다. 저단 기어로 변속하고 걷는 속도보다 조금 빠른 6~7km 속도로 올라갔다.

오가는 차량도 사람도 좀처럼 볼 수 없고 계곡 아래 폐가로 보이는 집 한 채가 보였다. 부서진 밤송이가 널려 있는 도로변 음식점 간판에 토종닭과 도토리묵, 메밀부침이라고 표시되어 있는데 문 닫은 지는 오래된 것 같았다.

가마득히 양구가 내려다보이는 광치령 정상에 오르자 ‘청춘 양구에 오면 10년이 젊어진다’는 광고판이 번뜻하다.

계산대로라면 10년에 한 번씩만 와도 더 이상 늙지 않겠다. 양구 동면 대암산 기슭에 위치한 준공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자연치유센터’ 찜질방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고성·인제·양구.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고성·인제·양구.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자연치유센터의 식당 문 여는 시간이 9시라서 화천가는 길이 늦을 것 같아 컵라면으로 아침 식사를 때우고 떠났다. 첫 번째 덕고리 고개 정상에 있는 도고 터널을 통과하고, 두 번째 오미리 고개 정상의 오천 터널 앞에서 허기가 졌다. 동네 슈퍼에서 산 빵과 캔 커피로 요기를 했다.

오후 2시. 평화의 댐까지 마중 나온 화천 자전거 동호회 회원들을 만나 세 번째 고개 함묵령을 넘기 시작했다.

우리는 고개 중턱부터 자전거를 끌고 올라갔다. 동해항에서 이곳 화천까지 일주일째 쉬지 않고 달리다 보니 나는 허리가 뻐근하고 추니는 종아리 통증을 호소했다.

▲화천.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화천.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화천.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화천.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화천.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화천.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화천.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화천.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화천읍에 거의 다다랐을 즈음 정겨운 꺼먹다리를 만났다. 2008년부터 3년 간 화천에 살 때 아침 운동으로 이곳까지 자전거 타던 기억이 난다.

이 다리는 1945년 우리나라가 광복을 맞이하던 그해 화천댐과 발전소가 준공되면서 세워졌다고 한다. 나무 상판에 검은색 타르를 칠해 ‘꺼먹다리’라는 이름이 붙여졌는데 건립 당시의 원형을 잘 간직해 근대 교량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 받고 있다.

춘천댐으로 생긴 호수에 둘러싸인 ‘물의 나라’ 화천은 깊은 산속 ‘평화의 고을, 산천어의 고장’이다. 우리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자전거를 즐겨 타는 사람은 고작 대여섯 명 정도였다.

모처럼 휴일 날 추니와 자전거에 쫄바지를 입고 현관을 나서면 마을 사람들이 우리의 이색 복장을 훔쳐보곤 했다. 이제는 만 명 정도 사는 화천 읍내에 자전거 동호회 회원들이 백여 명이 넘게 활동한단다.

10월 25일 일요일. 간밤에 살짝 비가 내려 짙은 미세먼지가 사라졌다. 청명한 가을 하늘이란 이를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

주황색 단풍과 새파란 하늘이 서로 보색 관계를 이뤄 이보다 더 이상 뚜렷할 수는 없겠다. 화천에서 철원 가는 길은 자전거 친구들 일곱 명과 높은 말고개를 함께 넘어 힘든 줄 몰랐다.

▲화천.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화천.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화천.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자전거 동북아 대장정 86일 째. 우리는 DMZ 평화누리길을 따라 동에서 서로 횡단하고 있다. 오늘 마침 남북이 오랜 긴장 상태에서 벗어나 이산가족 상봉을 하고 있다. 철조망 넘어 혈육 상봉 장면이 보이는 듯하다.

청춘을 다 보내고 이제야 마른 가죽 부비며 통곡한들 얼마나 한이 삭으랴. 그리도 연하던 이파리가 낙엽 되어 나뒹굴고, 우린 그 갈잎을 밟으며 횡단한다.

숲으로, 철조망으로, 지뢰로 가로막혀 남쪽에서 북쪽으로는 달릴 수가 없는 휴전선. 우리뿐만이 아니라 산양도, 고라니도, 멧돼지도 이산가족이 된 채 60년이 지났다. 권력일까, 이념일까, 신의 뜻일까.

▲화천.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화천.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오후 5시. 철원 동송읍에 있는 ‘국경선 평화학교’ 게스트 하우스에 도착하자 정지석 목사님 내외분이 마당에 나와 우리를 반갑게 맞이했다. 목사님과는 여행 떠나기 직전에 인연이 닿아 이번 DMZ 평화누리길을 지날 때 하룻밤 쉬어 가기로 약속했었다.

텃밭에 풍성한 채소가 허기를 더해 주고, 저만치 북녘 땅이 내다보이는 2층 게스트 하우스는 수수하고 안락했다. 날이 어두워지자 전국에서 YMCA 멤버들이 속속 도착했다. 오늘 밤 우리의 동북아 여정을 환영하고, 내일 아침 평화누리길을 함께 라이딩 할 예정이란다.

저녁 식사 메뉴 중 돼지고기 두루치기가 참 맛있었다. 그리고 크기가 작은 자연산 굴이 정말 고소해서 더 먹고 싶었는데 값이 비싸서 적게 사 온 것 같아 더 달라고 하지 못했다.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첫 질문자는 정지석 목사님.
“솔직히 이번 여행하면서 부부 싸움 몇 번 했어요?” 라고 예리하고 짓궂게 열었다.
“여행의 원칙 첫째, 절대 아내와 남편이 같이 가지 말라는 얘기가 있어요. 다행히 귀국선은 같이 탔답니다.” 라고 답하자 모두 웃음이 터졌다.

참석자 중 한 분이 ‘소이산’이라는 처음 들어 본 노래를 기타 치며 어찌나 잔잔하게 잘하는지 깜짝 놀랐다.

▲철원.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철원.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다음 날 오전 9시. 민간인 통제 구역을 통과해 철원 벌판을 달리는데 먼 데서 오신 두루미 손님들에게 미안했다.

더 이상 달릴 수 없는 기차가 부서져 녹슨 채 멈춰 선 월정리역 바로 옆에 ‘국경선 평화학교’가 있었다. 평화 통일을 위해 기도하고 그날을 준비하기 위해 ‘평화의 씨앗’들을 싹 틔우는 곳이란다.

▲철원.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광화문 광장에서

10월 30일. 드디어 자전거 동북아 대장정 91일 째 마지막 날이다. 국도 1호선을 따라 달릴 수 있는 최북단이자 민간인이 출입할 수 있는 북방한계선에 세워진 임진각을 뒤로하고 광화문으로 향했다.

▲임진각.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임진각.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임진각.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서울 광화문까지 함께 라이딩을 하겠다고 모인 전국 자전거단체협의회 회원 40명과 함께 행주대교를 경유해 오후 3시에 한강대교 남단에 모였다.

한강대교 남단에서 출발해 서울역, 남대문, 서울시청, 광화문 광장까지 40분 동안 서울경찰청 교통 지도 차량이 도로 1차선을 통제해 줘서 화려하고 과분한 시가행진이 이루어졌다.

행정자치부가 주관한 이번 ‘동북아 자전거 평화대장정’ 환영 행사에는 강원도와 원주시, 그리고 아코르 앰배서더 코리아 호텔에서도 함께했다.

▲광화문.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광화문.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광화문.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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