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검찰청 중앙수사본부가 C&그룹을 전격 압수수색하며 칼을 빼든 21일에는 온통 사정(司正)론이 화제다.
최근 검찰이 한화그룹과 태광그룹은 물론 10위권 이내 복수의 재벌그룹에 대해 칼끝을 겨누고 있는 가운데 청와대 민정수석실 특별감찰반, 감사원 공직감찰본부장실 등은 3급 이상 고위공직자, 지방자치단체, 공기업 임원들을 대상으로 사정 작업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물밑에서 활발히 진행 중인 사정작업은 G20 이후 수면 위로 떠오를 전망이다. 내년 집권 4년차로 접어들게 되어 대선국면과 맞물리는 권력누수 현상을 조기에 방지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역풍만 거셌던 이명박 정부의 사정 전사(前史)
▲ 지난달 재벌 총수들을 청와대로 부른 자리에서 이 대통령은 "공정사회가 사정으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었다ⓒ청와대 |
물론 청와대는 공식적으로는 이같은 관측을 부인하고 있다. 김희정 대변인은 21일 정례브리핑에서 검찰의 대기업 수사에 관해선 "청와대가 언급할 사안이 아니다"고 피해나갔고 고위공직자 사정 작업에 대해선 "통상적으로 (청와대와 감사원 등이 참여하는) 감사관계관 회의가 있고 그 멤버들이 하는 일이 그런 일이다"면서 "명절 등에는 더 각별히 신경을 쓰게 마련인데 이번 분기에는 추석시즌이 포함되어 있지 않나. 일반론적으로 행해지는 것이지 특별한 감사는 없다"고 말했다.
통상적으로 대규모 사정작업은 정권의 힘이 가장 막강하고 전임 정권과 차별화가 필요한 정권 초에 이뤄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경우 2008년에는 촛불 정국으로 휘청거렸고 그 해 말부터 이어진 참여정부를 향한 사정작업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로 이어졌다. 한명숙 전 총리, 이광재 강원도지사에 대한 검찰 수사는 오히려 두 사람이 지방선거에서 약진하는 밑바탕이 됐다.
이번 사정 국면은 2008년, 2009년의 그것과는 궤가 달라 보인다. 이 대통령을 포함해 청와대는 '권력형 비리->게이트 비화->레임덕'의 악순환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야권이나 전임정권을 겨냥한 것보다는 여권의 기강잡기에 사정의 초점이 맞춰진 게 아니냐는 것.
누구한텐 솜방망이고 누구한텐 추상같은 칼날?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면의 전개는 단순치 않다. 일단 중수부가 먼저 손 댄 C&그룹의 경우 지난 정권에서 사세를 확장한 기업이다. 태광그룹의 경우, 기업 행태에 워낙에 문제가 많지만 규모에 비해 주목을 너무 많이 받는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보수언론이 각축을 벌이는 종합편성 채널 선정이 가까워지고 있는 상황과 케이블방송 1위인 태광그룹에 대한 수사와 무관하겠냐는 것.
물론 전 정권 연루자든, 현 정권 연루자든, 어떤 기업이든 불법을 저질렀다면 처벌을 받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이 대통령의 정치적 후원자인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에 잘 나타났듯이 사정작업은 정권 지지율을 반등시키는 효과도 있다.
하지만 섣부른 사정작업이 부메랑으로 돌아올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이 대통령의 측근인 천신일 세종나모 회장에 대해선 청와대가 일정한 '판단'을 내렸다는 이야기도 들리지만 민간인은 물론 여당 현역 의원까지 무차별적으로 사찰한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나 여러 의혹이 많았던 대통령 사돈기업 효성, 남상태 사장의 연임로비설이 파다한 대우조선해양 등에 대해서 지금까지 검찰은 솜방망이에 불과했다.
세간의 관심을 모았던 권력 주변에 대해 무기력했던 검찰이 정치적 부담이 덜한 사안에 대해 추상같은 면모를 보일 경우, 권력 주변의 비리를 뚜껑만 열어보고 '어마 뜨거라'라며 덮어 버릴 경우 검찰 뿐 아니라 청와대도 불신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김태호, 신재민 전 후보자들의 인사청문회와 유명환 전 장관의 딸 특채 파동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은 "이것이 청와대가 말하는 공정사회냐"는 것이었고 공정사회 드라이브의 스텝도 그 때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결국 이번 사정의 성패는 '공정하냐 불공정하냐'는 잣대로 귀결될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달 대기업 대표들과 조찬간담회에서 "공정사회가 사정과 연결되는 것 아니냐는 데 나는 그런 생각 추호도 하지 않는다"면서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본인이 공정사회와 맞지 않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현실은 달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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