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시중 방통위원장의 발언이 전해지자마자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가 반발하고 나섰다. 방통위가 종편에 낮은 채널 번호를 주라고 압박하면 위헌소송까지 불사할 것이라는 취지를 밝혔다.
그로부터 이틀 뒤. 서울서부지검이 태광그룹 본사 등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섰다. 이호진 회장 등의 세금 탈루와 비자금 조성 의혹 등을 캔다며 대대적으로 공개수사에 나선 것이다. 이것만이 아니다. 다음 날인 어제는 태광그룹의 계열사인 티브로드홀딩스가 큐릭스홀딩스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방송법 개정을 위한 정관계 로비와 이호진 회장 일가의 사익 추구가 있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공교롭다. 이 세 개의 사안을 하나의 흐름으로 엮으면 '오얏나무 아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정부가 종편에 낮은 채널번호를 부여하기 위해 (M)SO에 대한 압박에 나선 것으로 볼 수도 있는 장면 말이다. 태광그룹에 쏟아지는 각종 의혹은 논외로 하고 태광그룹 수사와 종편 채널 부여문제와의 상관관계만 살피면 그렇다.
태광그룹이 계열사로 거느리고 있는 티브로드홀딩스는 전체 77개의 유선방송 권역 가운데 22개의 권역을 확보하고 있는 1위 사업체다. 게다가 태광그룹의 인사가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산하 SO협의회장을 맡고 있다. 이런 태광그룹이 궁지에 몰리면 SO의 대정부 저항력이 약화된다. 종편에 낮은 채널번호를 부여하려는 방통위에 맞서기 힘들어지는 것이다.
과잉 해석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서울서부지검이 태광그룹을 압수수색하기 1년여 전인 지난해 9월부터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부가 태광그룹의 방송법 개정 로비 의혹을 내사해 왔다니까 사건의 선후관계와 인과관계를 일방적으로 정리하는 건 무리일지 모른다.
하지만 약하다. 이 같은 점을 고려해도 '오얏나무 뿌리'는 뽑히지 않는다. 당장 반문이 나온다. 왜 내사를 1년 넘게 끌어오다가 이제야 본격 수사에 나서느냐는 반문이다. 태광그룹의 방송법 개정 로비 연장선상에서 불거진 것으로 의혹을 샀던 방통위 직원 성접대 사건이 지난해 3월에 터졌고, 서울 마포경찰서가 한 달여 뒤 '성접대는 있었지만 로비는 없었다'는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하면서 사건 수사가 사실상 종결 됐던 점을 상기하면 그렇다. 왜 그 때 뿌리를 도려내지 않고 묻어 뒀다가 다섯 달이 지난 후에야 내사에 나서게 됐는지, 왜 내사를 시작한 지 1년이 넘도록 조용히 있다가 이제야 공개수사에 나서게 됐는지를 주목하면 그렇다.
참고사항이 있다. 검찰의 내사와 비슷한 추이를 보인 움직임이다. 공정거래위가 지난해 9월초부터 조사에 나섰다. MSO가 방송채널사업자(PP)와 공정거래를 하는지 등을 캐겠다며 국내 유수의 MSO에 대한 조사에 나섰다. 하지만 감감무소식이다. 조사에 들어간 지 1년이 넘었지만 공정거래위는 아직까지 조사결과를 내놓지 않고 있다.
종합하면 겹친다. 검찰의 내사와 공정거래위의 조사를 한 데 묶으면 시점이 일치하는 걸 알 수 있다. 미디어법이 강행처리 된 직후에 두 기관이 거의 동시에 내사·조사에 들어간 점을 읽을 수 있다.
이걸 마냥 우연의 일치라고 치부해야 할까?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격이라고 흘려버려야 할까? 꼭 그렇지 만은 않다. 공정거래위의 MSO 조사에 종편 선정을 앞두고 SO의 채널 편성권을 약화시키려는 의도가 깔린 것 아니냐는 관측이 그 때부터 제기됐으니까.
우연의 일치라고 봐도 달라지는 건 별로 없을지 모른다. 선후관계가 어떻게 되든 검찰 수사와 공정거래위 조사가 MSO에 대한 '행정지도' 효과를 가져 올 개연성을 완전히 부정하지 않는 한 결과는 같을 것이라고 봐야 하니까.
▲ 최시중 방통위원장. ⓒ연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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