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1일 오후 4시 경 한국연구재단에서는 '시간강사지원 사업'의 최종선정 결과를 발표했다. 예비선정에서 탈락했던 사람들 중에서 이 문자와 이메일을 받은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오후 6시경 "최종 선정과 관련하여, 받으신 문자 및 이메일은 시스템 오류로 인한 오발송"이라는 문자가 다시 왔다. '탈락-선정-오발송'이라는 롤러코스터를 탄 당사자들은 농락당한 기분이었을 것이다. 연구재단에서는 이에 대해 "전산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시스템 문제로 선정결과 문자와 이메일이 오류발송 되었습니다"고 한다. 겨우 2541명이 지원한 사업에서 오류를 일으키게 한 '시스템'은 어떤 시스템일까?
예비선정에서 탈락한 사람들만 이런 롤러코스터를 탄 것이 아니다. 예비선정된 시간강사들도 최종선정 문자를 받았는데, 이들은 이를 당연한 결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런데 두 시간 뒤 "시스템 오류로 인한 오발송"이라는 문자를 받았을 때 어땠을까? 아마 패닉 상태에 빠졌을 것이다. 선정자와 탈락자 가리지 않고 일괄적으로 "시스템 오류로 인한 오발송"이란 문자를 발송하는 시스템은 도대체 어떤 시스템일까?
이 사업에 선정되면 1년 간 1400만 원의 연구비를 받는다. 얼마 되지 않는 돈이지만 선정 여부는 지원자들의 생계뿐 아니라, 그 지원자들의 학문적 성과와 위신이 걸려 있는 문제이다. 연구재단의 그 시스템에게는 모니터 상의 한갓 이름에 불과하겠지만, 그 이름들은 살아 있는 사람들이다. 이런 수모를 당하고도 시간강사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말을 할 곳도 없는 사람들이고, 그런 곳이 있다 하더라도 앞으로 어떤 불이익을 받을지 두렵기 때문에 말을 하지 못한다. 그들은 그렇게 비참하게 살고 있는 사회적 약자들이다.
시간강사지원 사업은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으면서 최근 5년 내 연구업적이 2편 이상인 대학의 시간강사들에 한해서만 신청 자격이 주어진다. 박사학위가 없는 시간강사들도 논문을 쓰지만 그들은 제외된다. '시간강사지원 사업'이라고 하면서 박사학위 유무로 시간강사들을 차별하고 있는 것이다. 이 사업에 신청하는 박사학위를 가진 시간강사들은 선정을 목표로 연구계획서를 작성한다. 한국 학계의 바닥이 워낙 좁아 지원자와 심사자가 한정되어 있고, 누가 심사자가 될 것이지, 지원자가 누구인지 알 수도 있다. 비전공자가 전공자의 연구계획서를 심사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다. 시간강사들은 심사자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연구의 창의성'이 평가항목에 들어 있지만 애초부터 독창적인 연구는 쉽지 않다. 학계의 통설을 따르는, 심사자가 수긍할 수 있는 주제와 연구내용이 아니면 탈락의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사업의 평가기준에는 '해당분야의 학문 발전 기여도'가 있다. 시간강사가 해당 분야의 학문발전에 기여하도록 지원을 해 주고 싶다면 시간강사의 연구 성과물을 지원하면 된다. 굳이 이들의 연구계획서를 평가하고, 선정하여 지원할 필요가 없다. 국가는 학문과 연구자를 지원하는 데 그쳐야 한다. 한국연구재단은 연구자를 평가하고 선정하는 권력을 학계에 돌려주어야 한다. 학술단체협의회에서 오래 전부터 주장했듯이 학계에서 자체적으로 평가한 연구업적들에 대해 사후지원을 하면 된다.
선정 권력을 내려놓기 싫다면 심사자에게 익명성을 보장해 줌으로써 일방적으로 평가하는 현재의 심사 구조를 공개 심사로 전환하자. 누군가가 학문적 역량을 쏟아 만든 연구계획서에 대해 지원 불가 판정을 내리려면 그 연구계획서를 평가할 정도의 학문적 수준에 도달한 사람일 것이고, 자신의 학문적 역량에 자부심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공개적으로 심사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공개심사를 하면 심사자를 구할 수 없을 것이라고? 그렇다면 애초에 심사를 하면 안 되는 것을 억지로 심사하고 평가하고 지원하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
이 사업의 목적은 "연구환경이 열악한 인문사회 분야 시간강사에게 연구기회를 제공하여 고등교육의 질적 개선 유도"이다. 이 목적을 달성하는 아주 쉬운 길이 있다. 모든 시간강사에게 '연구보수'를 지급하면 된다. 이 쉬운 길을 두고 한국연구재단에서는 왜 제대로 작동하지도 않는 시스템을 고집하고 있는가? 한국연구재단은 학술계를 지배하는 권력의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 이 오랜 적폐를 이제는 청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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