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같은 뉴스를 접합니다.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어린 자식을 품에 안고 아파트에서 뛰어내린 어머니, 생계난을 견디다 못해 어린 자식에게 약을 먹인 뒤 남은 약봉지를 자기 입에 털어 넣은 아버지에 관한 뉴스입니다.
이런 뉴스를 접할 때마다 만감이 교차합니다. 오죽하면 저랬을까 싶어 가슴 미어지다가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린 자식들이 뭔 죄를 졌다고 목숨을 끊나 싶어 화가 나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소유물이 아니라는 생각, 아무리 부모라도 자식의 인생 결정권을 대리 행사할 수는 없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오늘 또 하나의 뉴스를 접했습니다. 12살짜리 장애 아들에게 기초생활보장 혜택이나 장애아동 부양 혜택이라도 주고 싶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버지 소식이었습니다. 건설 일용직으로 일하다가 일감이 끊겨 힘들어하다가 유서 한 장 남기고 아들 곁을 떠났다는 아버지 소식이었습니다.
다시 만감이 교차합니다.
12살 아들은 아버지의 바람대로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수 있을까요? 아니면 고아원으로 보내질까요? 아마도 고아원은 아닐 겁니다. 어머니가 살아 있으니까요. 그래도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지 못할지 모릅니다. 어머니가 노동할 수 있다면, 벌이가 법적 요건을 초과한다면 아버지의 바람은 허망하게 스러질지 모릅니다.
사실 이렇게 재는 게 무의미합니다. 아니, 호사가의 잔인한 관심인지도 모릅니다. 아들이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든 안 되든 아버지를 떠나보낸 고통을 치유할 수는 없을 테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말합니다. 일용직 아버지와 장애 아들 소식에서 우리 복지의 현주소를 짚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12살 아들은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수 있을까요? 아니, 기초생활수급자가 된다고 해서 아버지가 살아있을 때보다 더 풍족한 물질적 삶을 누릴 수 있을까요? 결코 그렇지 않을 겁니다. 어머니가 벌이가 있다면 그만큼 지원비가 깎일 것이고, 어머니가 벌이가 없다면 입에 풀칠할 정도의 지원만 받을 겁니다. 수없이 보고 들었던 '감질 나는 복지'를 아들 또한 피해가기 어려울 겁니다.
막히네요. 이 지점에 오니까 더 이상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물론 똑같은 말을 해야 할 겁니다. 자식을 남겨놓고 떠난 아버지에게도, 자식을 품에 안고 뛰어내린 어머니에게도 그 독한 마음으로 살면 뭐든 못 하겠느냐고 말해야 할 겁니다. 이런 '개별적인' 얘기 말고 '사회적인' 얘기도 할 수 있을 겁니다. 사회가 책임 지면 되지 않느냐고, 부모가 자식을 돌보지 못하면 사회가 복지를 늘려 보살피면 되지 않느냐고 말 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기만입니다. 최소한 지금 시점에서는 기만입니다. 사회가 책임 지지 않는 게 현실이니까요. 그런 사회였다면 가족 동반자살도 없었을 것이고, 아버지가 동사무소에 '잘 부탁한다'는 유서를 남기고 목을 메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테니까요.
*이 글은 뉴스블로그'미디어토씨(www.mediatossi.com)'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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