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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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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 산책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의 수상한 여행 2] ㉗사카이미나토 항구로

10월 10일. 히로시마 시내 정원인 슈케이엔을 찾았다. 문자 그대로 아름다운 경치를 모아 축소해 놓은 곳이다. 중국 항주의 서호를 축소해서 본 땄다고 하는데 정원의 중앙에는 연못을 파서 크고 작은 10개의 섬을 만들고 주변에는 산과 계곡, 찻집, 정자들을 교묘하게 배치해 연못을 한 바퀴 돌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

1620년에 조성된 이 정원은 1945년 원자 폭탄 투하로 파괴되었지만 다시 복원되었다고 한다. 참 오밀조밀 섬세하게 잘도 가꿔 놓았다. 소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돌멩이 하나도 자연스러운 척 놓여졌다.

▲히로시마.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히로시마.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이 정원뿐만 아니라 일본 어느 구석을 가 봐도 깨끗하고 가지런하다. 발 딛기 미안할 정도로 잘 손질해 놓았다. 남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된다는 교육을 어릴 때부터 철저히 받아서일까 조심조심, 굽신굽신, 어찌 보면 늘 쩔쩔매는 모습이다.

매사에 철저히 임하는 자세, 열심히 목숨 바쳐 일하는 자세, 한 사람 한 사람 어느 누구를 봐도 바지락거리고 무언가에 몰두하고 있다. 일의 성과를 통해 삶의 보람을 느끼는 듯하다.

10월 11일. 일본 3경 중 하나인 미야지마로 향했다. 히로시마역에서 기차로 40분간 이동해 미야지마역에 도착해 다시 거기서 15분 정도 배를 타고 건넜다. 일요일이라서 그런지 선착장에 도착하니 관광객들로 초만원이다. 멀리서도 보이는 미야지마의 상징인 붉은 색의 ‘도리이’와 인간의 창조력과 자연의 아름다움이 훌륭하게 조화를 이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츠쿠시마 신사는 만조 때라서 밀물에 떠 있었다. 사슴들은 이곳저곳에서 어슬렁거리며 관광객들이랑 같이 놀고, 신사에 들어가려는 사람들은 수도꼭지 앞에서 손부터 씻고 있었다.

▲히로시마.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히로시마.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히로시마.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미야지마의 특산품은 밥주걱과 단풍 빵, 그리고 굴이다. 이곳 미야지마에서 생산되는 단단한 목재로 만들었다는 밥주걱과 선착장 바로 뒷골목 단풍거리 이름을 딴 단풍잎 모양인, 한 개에 팔백 오십 원짜리 단풍 빵은 솔직히 우리 동네 풀빵만 못했다. 굴 구이도 이 섬에 들어온 사람은 모두 사 먹는다. 싱싱하고 비린내가 심한 걸 보니 바다에서 막 꺼내온 것 같다. 굴 두 개에 사천 오백 원. 아무 양념 없이 생굴을 화로에 살짝 익혀 준다
.
미야지마를 보러 간 건지, 사람 구경을 간 건지, 기념품 쇼핑을 간 건지 잘 모르겠다. 분명한 건 기념품 골목에 관광객이 가득 차 있다는 것과 단풍 빵과 굴 구이, 밥주걱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는 것이다.

맛이 있고 없고, 품질이 좋고 나쁘고는 나중 문제인 듯하다. 이곳을 찾은 사람들이 다 하니까 나도 해 보는 것이다. 결국 브랜드다. 브랜드 마케팅이 잘 되면 그 지역의 명성이 높아지고 저절로 돈도 잘 벌게 된다.

▲히로시마.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히로시마.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히로시마.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히로시마.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히로시마.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히로시마의 명물 오코노미야키 식당을 찾았다. 오코노미야키는 전국적으로 유명한데 원조 음식을 맛보기 위해 일부러 히로시마를 찾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고기와 달걀, 양배추, 숙주를 잔뜩 넣고 새콤달콤한 특제 소스를 듬뿍 얹어 주는데 푸짐하면서 우리 입맛에도 딱 맞아 여운이 길게 남았다.

▲히로시마.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히로시마.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히로시마.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사카이미나토 항구로

10월 12일 월요일. 히로시마시에서 돗토리시로 기차 타고 가는 날. 엊그제 자전거 박스를 미리 역 개찰구로 가져와 힘겹게 허락을 받았는데 오늘은 교대한 새 역무원이 근무하고 있어 또다시 실랑이를 벌이기 시작했다.

결국 줄자를 가져와 가로, 세로, 높이를 재고 운송 규정집을 꺼내 따지고 설명했다. 확실한 건 이렇게 자전거를 박스에 넣어 기차에 싣고 가는 예가 그동안 없었다는 것이고, 또 우리의 박스 규격이 기차 운송 규정에 적합하다는 것이다.

우린 며칠 전부터 자전거를 돗토리시로 옮기기 위해 기차뿐만 아니라, 버스, 화물차 등 다양한 방법을 놓고 관광안내센터, JR티켓박스, 파출소에 찾아가 자문을 구했다. 사실 자전거를 기차로 운송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역무원보다 우리가 더 잘 알고 있었다. 역무원들은 운송 규정집을 펴 보고 있지만 우리는 그 규정을 이미 여러 차례 읽어 봤다.

힘겹게 히로시마 역 JR 개찰구를 통과해 200m 정도 이동하자 또 신칸센 개찰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JR과 신칸센의 운영 주체가 서로 달라 개찰구를 별도로 운영한단다.

이곳에서 또 규격이 맞느니 안 맞느니 한참 동안 얘기를 했다. 시간을 넉넉하게 두고 오길 다행이지 하마터면 기차를 놓칠 뻔 했다. 여기서 이럴 거면 조금 전 JR 개찰구에서 왜 엄격한 심사를 한 거야. 어휴, 열 받는다.

결국 이해시키고 신칸센 개찰구를 통과해 승강장으로 이동했다. 박스 두 개와 가방 두 개를 한꺼번에 들 수 없어 박스 한 개를 먼저 저만치 앞에 옮겨 놓고 다시 돌아와 나머지 박스를 들고 갔다.

우리는 좌석이 있는 호실로 바로 들어가는 입구를 찾아갔다. 객실의 앞, 뒷문 중 좌석과 먼 쪽에서 타면 짐을 들고 이동하기가 불편할 것 같아 플랫폼에 서 있는 안내원에게 물어 ‘3호 차량 C, E석’에 가까운 승강장에서 대기했다.

▲히로시마.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히로시마.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히로시마.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히로시마.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히로시마에서 신칸센 열차를 타고 가다가 중간에 오카야마역에서 JR특급열차로 환승했다. 열차를 갈아타는 데 주어진 시간은 23분이었다. 노선도 다르고 대합실 층도 다른데 무거운 짐을 들고 시간 내에 이동하려니 정말 긴장됐다.

갈아탄 특급열차는 맨 앞 칸 운전석 바로 뒤라서 앞이 훤히 내다보였다. 차창 밖 연녹색 들녘엔 추수가 한창이고, 감이 노랗게 익었다. 혼슈 남부에서 북부로 넘어가는 길은 높은 산이 많아 터널이 길었다.

▲히로시마.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히로시마.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히로시마.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오후 4시. 돗토리역에 도착했다. 호텔이 멀지 않아 캐리어를 역으로 끌고 와 자전거 박스를 싣고 덜컹덜컹 대로를 가로질러 갔다. 호텔에 도착해 우선 자전거 조립부터 마쳤다. 이곳부터 해안을 따라 사카이미나토 항구로 가서 배를 타고 강원도 동해항으로 떠날 예정이다.

▲돗토리시.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돗토리시.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돗토리시.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10월 13일.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천 엔 택시를 탔다. 세 시간 동안 우라도메 해안과 모래 미술관, 돗토리 사구를 한 바퀴 도는 코스다.

우라도메 해안 유람선을 탔다가 파고가 높아 배가 뒤집히는 줄 알았다. 추니는 40분 내내 쇠기둥만 꽉 부둥켜안고 있었다. 구멍 뻥뻥 뚫린 암벽에 매달린 앙상한 고목들이 강풍에 아슬아슬하다.

동서로 길이가 16km나 되는 일본 최대 규모의 돗토리 사구는 바닷속의 모래를 해안으로 끌고 오는 조류와 해안선에 쌓인 모래를 육지로 불어 넣는 탁월풍에 의해 형성되었다는데 맨발로 걸으니 촉감이 보드랍다. 사구 높낮이의 차는 90m로, 사구 꼭대기에 올라간 관광객들이 마치 깨알처럼 작아 보였다.

▲돗토리시.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돗토리시.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돗토리시.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다음 날 아침. 쌀쌀해서 긴 바지를 꺼내 입고 국도 9호선 해안 길을 따라 쿠라요시로 향했다. 부딪히는 파도와 높은 구름, 바람과 갈매기들도 우리와 같이 달렸다.
용암이 만든 관망대인 우오미다이에 올라 먼 바다를 내려다봤다. 이 고지는 저 멀리 앞바다까지 내다볼 수 있어 어부들이 물고기가 어디에 있는지 보러 왔던 곳이라 한다.

▲쿠라요시.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쿠라요시.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쿠라요시.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쿠라요시.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10월 15일. 쿠라요시의 온천 딸린 일본식 전통 여관인 ‘양생관’의 아침밥상은 예술 작품이다. 실오라기 같이 썰어 놓은 반찬은 젓가락을 조금만 크게 벌리면 한 번에 다 비울 것 같아 민망하다. 정갈하고 감칠맛이었는데 어쩐지 서운하다. 얼큰 새콤한 김치가 빠져서 그런가 보다.

▲쿠라요시.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쿠라요시.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요나고.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쿠라요시를 떠나 30km 지점, ‘바람의 언덕’이란 곳에 ‘일한우호교류공원’이 자리 잡고 있었다. 1963년 거제도를 출발한 부산항 소속 성진호가 기관 고장을 일으켜 이곳 아카사키에 표류해 왔을 때 주민들의 모금과 도움으로 한 달 동안 머물며 배 수리를 마치고 돌아간 곳이라고 한다.

한국과 일본은 툭하면 정치적 속셈으로 역사 감정을 촉발시켜 관계가 악화되고 있어 큰 문제다. 국민들의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는데 일부 정치인들이 기름을 퍼붓고 있다.

‘화해하려고 해도 오는 말이 고와야지. 쯧쯧.’ 에구, 농담이지만 일한우호교류공원이 ‘바람의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어서 늘 바람 잘 날 없나 보다.

▲요나고.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10월 17일. 일본에서의 마지막 밤을 요나고시 아나 호텔에서 보냈다. 주 1회 사카이미나토항에서 강원도 동해항으로 가는 DBS크루즈는 저녁 7시에 출발해 열네 시간 운항 후 다음 날 아침 먼동이 틀 때 동해항에 도착한다.

배 타러 가는 길에 일본 요괴 만화의 거장인 미즈키시게루의 기념관이 있는 요괴거리에 들렀다. 1km 남짓 ‘미즈키시게루 로드’에는 만화에 등장하는 요괴 동상이 촘촘히 세워져 있고, 기념품 가게와 식당에는 관광객들로 가득 차 있었다.

▲요나고.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요나고.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요나고.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요나고.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두 시간 전인 오후 5시. 항구에 도착해 출국 수속을 마치고 자전거는 분해하지 않고 그대로 승선했다. 침대 옆에 짐을 풀고 나서 선상에 올랐다. 호응해 주는 사람은 없었지만 우리는 양팔을 올려 일본 열도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크루즈선상.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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