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샤르드 레구코' 인터뷰 (上) "공산당 '가짜뉴스'에서 벗어났나 했더니 곧…"
3. '1980'과 '1989'
이병한 : 1989년과 1980년의 차이를 강조하십니다. 자유연대노조가 출범했던 1980년 원년과 1989년 이행 간에 아득한 거리가 있다고 말씀하시죠. 한국에도 '1987년 체제'라는 말이 있는데요. 그 원점이 되었던 1980년 광주항쟁과 견주어 보면 1987년 이후의 문제점이 드러나기도 하거든요. 폴란드의 1980년, 민주화의 기원이 궁금해집니다.
레구코 : 제가 가장 창조적으로 사고하고 가장 자유롭게 상상했던 시절은 1989년 이후가 아니라 이행 직전, 즉 공산주의 말기였습니다. 1980년이 기폭제였죠. 제가 발간을 맡았던 잡지를 비롯하여 다양한 무크지들이 발행되면서 백화제방, 백가쟁명이 펼쳐졌습니다. '논쟁의 시대'였다고 할까요. 검열체제를 내파시키는 사상해방의 절정기였습니다. 자유연대노조부터가 공산 치하에서 설립된 최초의 자율적 민간 기구였죠. 그러나 이를 그저 하나의 노동조합으로만 치부해서는 곤란합니다. 노조는 맞아요. 그렇다고 임금 협상만을 위한 조직은 아니었어요. 부의 재분배만 요청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 면모는 차라리 부차적이지요. 요체는 인간적인 요구에 있었습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수호해달라는 준엄한 목소리였습니다. 창조적인 문화를 갈구하는 절실한 외침이었습니다. 진리를 추구했던 것입니다. 더불어 폴란드의 오랜 유산이자 전통 문명인 가톨릭의 복원을 요구했습니다. 그러했기에 자유연대노조가 폭넓은 사회적 동의를 구하고 전폭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마르크스주의에 기반한 계급운동을 펼친 것이 전혀 아니에요. 또한 자유주의에 의탁한 시민운동을 전개한 것도 아닙니다. 폴란드의 민중과 역사와 재결합하는 토착화 운동이었습니다.
이병한 : 그래서 지하잡지의 제호가 <방주>였군요. 성서에서 차용해온 것입니다. 그렇다면 폴란드 민주화를 '역사적 귀향' 운동으로 이해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 근대를 '고향 상실의 시대'라고 말한 것은 하이데거입니다.
레구코 : 토착화에 성공함으로써 비로소 폴란드 공산당도 무너뜨릴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소련이 이식한 외래 정부, 괴뢰국가였으니까요. 나아가 '악의 제국' 소련도 붕괴시킬 수 있었습니다. 소련의 해체를 사회주의에서 자유주의로, 공산주의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이라고 여기는 것도 지극히 외부적이고 표피적인 시각이에요. 미국과 서구 사람들의 일방적인 독법입니다. 당사자로서 말하자면 폴란드인들에게, 또 동유럽인들에게 가장 소중했던 경험은 모두가 인간적인 존재로서 영성적인 자각을 이루었던 것입니다. 진리의 이름으로, 신의 이름으로, 존엄의 이름으로, 문명의 이름으로 '과학적 사회주의'라는 독재와 독단을 해체시킨 것입니다. 우상 숭배를 타개한 것이죠. 근대의 이데올로기에 맞서서 역사와 종교와 문명과 전통을 수호해낸 것입니다. 즉 폴란드의 '민주화'라는 것은 공산주의라는 단일 이념의 독점을 허물어뜨리면서 폴란드의 전통을 복원해가는 과정과 불가분으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구사회의 다양성을 복구해가는 과정과 밀착되어 있었어요. 공산주의 단일 원리가 전 사회를 지배하는 전체주의 사회에서 각 사회의 자율성을 회복해가는 복구 과정과 긴밀하게 연동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민주화 운동이 종교운동과 분리되지 않았던 것이죠. 정치개혁과 종교개혁은 둘이 아니라 하나였습니다.
이병한 : 대단히 중요한 말씀입니다. 좌에서 우로의 방향선회가 아니라, 좌우가 공유하는 성/속의 분리, 고/금의 분단을 극복해가는 과정이 폴란드의 민주화였다? 성/속 합작운동, 고/금 합작운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습니다.
레구코 : 공산주의 붕괴를 이끈 사람들의 구호가 독재 타도, 직선제 쟁취가 아니었어요. 다당제와 선거가 근본 목표가 아니었습니다. 심층적인 차원에서 근원적인 지평에서 인간성의 회복을 갈망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정수는 저의 모국 폴란드에서는 가톨릭이 되지 않을 수 없었고요. 공산주의라는 '프롤레타리아의 아편'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도 영적 갈망, 종교적 심성에 있었습니다. '공산주의적 인간'이라는 레디메이드 인생을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인간이 되고 싶다는 끓어오르는 충동이 폭발적으로 분출했던 것이죠.
이병한 : '타는 목마름'입니다. 최근 한국에서 4.19혁명을 '군자들의 행진'으로 조망하는 신간이 나왔다는 소식을 전해들었습니다. 폴란드의 민주화를 '성자들의 행진'으로 빗댈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저로서는 무척 흥미로운 시각입니다.
레구코 : 자유연대노조 운동에도 종교적 각성이 깊이 각인되어 있었습니다. 전통에 대한 향수, 조국에 대한 사랑, 애국심보다는 애향심에 더 가까운 근원적인 것에 대한 한없는 그리움, 뿌리에 대한 애착심. 그 거대한 뿌리로부터 솟구쳐 올라온 것이 '민주주의'입니다. 서구화를 추구한 게 아니에요. 물론 그 일부로서 자유주의자도 있고, 서구파 지식인들도 있었죠. 그러나 그들이 결코 다수는 아니었습니다. 그랬다면 1989년처럼 거국적인 반체제운동으로 확산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기층 민중 전통과 가톨릭의 유산과 결합함으로써 구체제를 붕괴시킬 수 있었습니다.
이병한 : 인상적인 논평입니다. 그런데 폴란드나 동유럽에 '1989 세대'라는 말이 없지 않습니까? 서구의 68세대, 한국의 86세대처럼 세대론과 체제론은 긴밀하게 연동되기 마련인데, 왜 유독 동유럽에서는 89세대라는 말이 없을까요?
레구코 : 1989년 이행의 주역들이 1980년의 주체들이 아니었으니까요. 폴란드 민주화를 통하여 폴란드인들이 승리한 것이 아닙니다. 서구인들이 승리했어요. 혹은 서구파들이 승자가 되었습니다. 구체제는 우리 스스로 무너뜨렸는데, 정작 신체제는 우리 손으로 만들지 못하더군요. 저항의 주체는 동유럽이었는데, 그 결실은 서유럽이 따갔습니다. 거리에서 들판에서 맨몸으로 싸운 것은 우리들인데, 소파에서 살롱에서 관망하던 저들이 주인공이 되어버렸어요. 냉전에서 자신들이 승리한 것이라며 그들의 체제를 동유럽으로 확산시키고 이식시켜 버렸죠. NATO는 동진하고 EU는 팽창했습니다. 가장 창조적이어야 했을 시기에 가장 순종적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1940년과 1990년, 반세기를 두고 운명이 묘하게 반복된 것입니다. 나치독일에 저항했던 것이 꼭 공산주의를 지향했던 것만은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나치를 동유럽에서 몰아내고 났더니 소련이 자신들이 승리한 것이라며 점령군이 되어서 소비에트체제를 이식해버렸습니다. 나치독일의 괴뢰국을 소련의 위성국으로 바꾸어 버린거에요. 1980년대 동유럽 민주화를 강 건너 불구경 하던 서구 또한 자신들이 해방자라며 이제는 EU의 속국처럼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진보의 전위가 SU(Soviet Union)에서 EU(European Union)로 바뀌었을 뿐이에요. 사회주의 진영에서 후발주자였던 폴란드는 자본주의 진영에서도 후발국가 취급을 받게 되죠. 모스크바를 대신하여 브뤼셀의 명령을 따르고 지시를 이행해야 했습니다. 제도, 교육, 법, 언론, 언어 모든 것이 이번에는 서쪽에서 수입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애당초 1980년의 정신은 휘발되어 버리고 맙니다. 1989년 정치적 승리가 눈앞에 다가왔을 때부터 위험 징후는 역력했습니다. 승리 이후 권력을 노리는 이들이 돌출하기 시작했어요. 혁명의 달성이 목전에 다다를수록 혁명의 동력을 분출시켰던 영성적 자각과 도덕적 고무가 약해져갔습니다. 양심보다는 욕심이 고개를 쳐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권력 정치가 삽시간에 퍼져갑니다. 원대한 이상이 사라지고 현실적인 기술 정치가 횡행합니다. 그 새로운 게임의 법칙 안에서 최종적으로 승리한 것이 왕년의 공산주의자들이었죠. 그들이 과거에 모스크바에 굴종했던 것처럼 이번에는 브뤼셀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작은 권력을 누리는데 안주했던 것입니다.
현재 유럽의 통합역사교과서를 보면 어처구니없는 서술이 너무 많아요. 특히 탈냉전 부분의 서술은 저로서는 거의 동의하기가 힘듭니다. 동유럽의 민주화 운동을 마치 EU 지향인 것처럼 서술해 두었거든요. 1980년대 당시에 EU는 존재조차 하지 않았어요. EU가 지고의 선인 것 마냥 목적론적으로 서술해 둔 것이 현재의 유럽통합역사교과서에요. EU의 프로파간다로서 역사 다시쓰기를 활용하는 것입니다. 현재 동유럽의 청소년들은 그 교과서를 읽으며 자라나고 있습니다. 제가 청소년 시절에 나치독일에 대한 저항이 곧 소련과 사회주의 지향이었다고 서술해 두었던 공산당 역사교과서로 공부했던 것과 비슷한 모습이죠.
이병한 : 재차 <1984>가 연상되지 않을 수 없네요.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하고,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고 했습니다. 새삼 조지 오웰의 예언이 섬뜩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불과 5년차, <1989>라고나 할까요? EU도 세계도 <1989>에 갇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현재를 지배하고 있는 이들이 만들어낸 '가짜 역사'를 주입시키면서 말이죠. 새삼 '다른 미래'를 열어가기 위해서는 '다른 역사'부터 써야 한다는 생각을 더욱 굳히게도 되고요. 혹시 선생님이 유럽역사교과서를 새로이 쓰신다면 동유럽 민주화를 어떻게 기술하고 싶으신지요?
레구코 : 성과 속의 갈등을 주선율로 부각시킬 것입니다. 공산주의자들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어요. 그들의 최대의 적이 부르주아 계급이 아니라 성당과 가톨릭이라는 것을요. 정당과 성당, 공산당과 교회, 성과 속의 대결이었던 것입니다. 영성을 이성으로, 신앙을 과학으로, 종교를 이념으로 대체하기 위해 총력전을 펼친 것이 공산주의 시절이었습니다. 비종교적인 사회, 과학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종교적 열정을 발휘하여 성전을 수행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우리 폴란드인들은 혼과 넋을 공산주의에 내다팔지 않았습니다. 숨어서 몰래몰래 그리스도의 사도들로 살아갔던 것입니다. 공산당원들은 성당을 처분하고 트랙터 보관소로 사용했지만, 우리는 그 트랙터 사이에서도 기도를 올리고 신과 조우했어요. 공산주의자들은 기도하는 시간을 한낱 가치 없는 시간이라고 여겼죠. 그들에게 가치는 오로지 노동에 의해서만 생산되는 것이니까요. 그러나 결코 그러하지 않습니다. 유물론적 가치론은 몰가치적 발상입니다. 기도하고 묵상하는 시간 또한 인간이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부가가치를 창출합니다. 민주화와 근대화를 세속화와 등치시킬 수 없는 것이에요.
이병한 : 폴란드 및 동유럽의 민주화와 '가톨릭의 근대화'를 아울러 생각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 올해 바티칸을 견문하면서 읽은 책으로 <가톨릭 계몽주의>가 있습니다. 퍽 감동적으로 읽었는데요. 가톨릭 계몽주의의 마지막 챕터로 폴란드 민주화를 넣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얼핏 드는군요. 가톨릭 계몽주의의 단절된 전통을 되살려 가톨릭 민주주의로 이행했다?
레구코 : 아니죠. 불행히도 그렇게 되지 못했습니다. 공산주의에서 자유민주주의로 이행했으니까요. 세속화 세력들이 연달아 권력을 차지했던 것입니다. 어제의 공산주의자들이 오늘의 민주주의자가 되어서 재집권한 것입니다. 그리고 '종교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종교를 정치로부터 배제시켜갑니다. 폴란드 민중을 배제시킨 채로 중산층 지식인 중심의 자유민주주의로 이행한 것이죠. 고로 폴란드 민주화의 실상은 서구화였던 것입니다.
이병한 : 민주화와 서구화는 다른 것이다? 1989년 이후 동구의 실상과 본질이 민주화보다는 서구화였다면, 그 서구화의 소산은 무엇입니까?
레구코 : 폴란드에 가시면 대도시만 돌지 마시고 지방과 농촌을 방문해보길 권합니다. 몇몇 도시에 으리으리한 쇼핑센터가 들어서고 화려한 광고판이 도시 야경을 수놓고 있는 것이 우리가 원했던 바가 아닙니다. 교통체증이 늘어나고 밤늦게까지 레스토랑과 바에서 음악소리가 크게 들려오는 것을 바랐던 바도 아닙니다. 매우 기괴한 격차사회가 도래하고 말았어요. 일부 도시는 서구화되어서 여기가 폴란드인지 영국인지 프랑스인지 점차 구별이 안 될 정도로 닮아 버렸습니다. 반면 지방으로 가면 사회주의 시절의 공단이 폐허처럼 남아있어요. 공공주택들도 폐가처럼 되어버렸고요. 마을 인구는 줄고 노령화도 심각하죠. 청년들은 도시로, 기왕이면 서유럽의 도시들로 이주하고 있습니다. 농촌에는 노인뿐이고 지방 산업은 공동화되었죠. 양극화가 극심합니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2009년 옛 동지들과 바르샤바에서 모인 적이 있습니다. 1989년 2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였죠. 그때 새파랬던 청년들이 이제는 중년이 되었습니다. 당시의 환희와 열광은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희미해진 기억이에요. 미래에 대한 자신감은 도리어 줄어들었습니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었던 것인가, 회한과 비애가 심했죠.
이병한 :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요? 나름의 대답이 있으신지요?
레구코 : 만시지탄을 금할 수 없는데, 일방적인 탈냉전이 결정적이었습니다. 서구는 동구의 실패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어요. 동유럽의 민주화 혁명으로부터 서유럽은 무엇을 배울 것인가 하는 발상이 애당초 부재했습니다. 동/서유럽은 통합된 것이 아닙니다. 동유럽이 서유럽에 흡수되고 병합된 것입니다. 거듭 말하지만 동유럽 민주화는 단지 직선제를 요구한 것이 아닙니다. 사회주의의 약속을 실천하지 못한 공산당 정권에 맞서 봉기한 것이죠. 교육과 의료와 복지 등 사회주의가 약속했던 이상을 제대로 실현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상을 공산당이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체제를 변화시켜서라도 실천해 보겠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저는 1988년이 반복되고 있는 듯한 기시감마저 느껴요. 현재의 남유럽 상황이 당시의 동유럽과 몹시 흡사합니다. 당시의 동유럽 못지않은 경제위기가 이제는 유럽 전체를 휩쓸고 있는 것이죠. 공산주의가 왜 무너졌는가에 대한 깊은 천착이 없었기 때문에 그 마주 편에 있던 자유민주주의 사회도 더 이상 진화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체제의 실패가 더더욱 가속화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동서냉전과 체제경쟁이 상호진화를 촉발한 것이 아니라 상호퇴행으로 귀결되고 말았던 것이죠. 한쪽의 조기 퇴장으로 다른 쪽의 성숙도 이끌어내지 못한 것입니다. 오히려 역효과를 내고 말았죠. 서구에서 일정한 성과를 이끌었던 사민주의마저도 후퇴하게 됩니다. 서구의 노동당과 사회당, 사민당이 줄줄이 '제3의 길'이라는 깃발 아래 우경화되죠. 동유럽의 이행과 서유럽의 우경화가 동시에 전개된 것입니다. 유럽 전체가, 세계 전체가 우경화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우경화를 '민주화'니 '자유화'니 선전했던 것입니다. 사회주의권이 사라짐으로써 서유럽의 복지국가도 쇠락하고 미국의 민주당도 신자유주의 일방으로 기울어졌던 것입니다. 그 결과가 현재 유럽의 모습이죠. 이대로라면 혁명 30주년을 맞이하는 2019년은 더욱 우울해질 것 같아요. 1989년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이행하면서 1980년의 해방과 창조와 영감이 죄다 소진되고 말았습니다.
4. Homo Novus
이병한 : 희랍철학 전공자이십니다. 고대인의 삶에 애정이 짙으시더군요. 반면으로 근대인의 존재 양식에 대해서는 무척 회의적이시고요.
레구코 : 기존의 모든 구습과 구속에서 벗어난 인간으로 상정되는 것이 근대인(Homo Novus)입니다. 개인(individual)이라는 말, 독립(independence)이라는 단어가 그런 의미를 함축하죠. 불교식으로 표현하면 '유아독존(唯我獨尊)'입니까? 그런 점에서 근대인의 정신은 사춘기의 정념과 흡사합니다. 내가 이 세상의 주인공이라는 '중2병' 같은 마음. 내가 이 세상을 내 뜻대로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객기와 치기. 이 세상에 내가 존재하는 이유를 내가 나기 전부터 존재했던 세계를 바꾸어내는 것에 있는 것처럼 생각하지요. 엄청난 변화와 변혁의 열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부모에게 반항하고 선생에게 도전하면서 자기만의 별세상을 지어갑니다. 본인이 유한한 존재이고, 이 세계가 무한하다는 점을 자각하지 못합니다. 그 나이 특유의 혈기 탓에 강고하고 비타협적이며 또 자기 충족적이에요. 그만큼 무책임하다고도 하겠습니다. 그 자기만의 세계에서 점차 빠져나오면서 성숙한 인간, 성인이 되어갑니다. 그때 '사회'가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다양한 관계 속에서의 역할 놀이를 수행하면서 어른이 되어갑니다. 개인은 없다. 독립이라는 것도 없다. 만인과 만사가 얽혀 있다. 그러면서 책임감과 도덕성이 배양되는 것입니다. '연기'(緣起)라고 하던가요? 원인과 결과의 인연과 업보 속에서 한 매듭으로 겨우 내가 존재할 뿐임을 배워갑니다.
공산주의 인간형, 자유민주주의 인간형이 꼭 사춘기의 심성과 빼다 박았어요. 용감무쌍하지만 단순하고 빈약합니다.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미래에 쉽게 자극되고, 혁명을 찬미합니다. 과학혁명, 정치혁명, 경제혁명, 의식혁명, 신세계를 건설하고자 합니다. 프롤레타리아트가, 노동계급이 공산주의에 열광한 게 전혀 아닙니다. 10대 학생들이, 20대 청년들이 열광했습니다. 자기 객관화가 모자라고 과대망상에 빠져있는 근대인들이 20세기의 주인공이었습니다. 그래서 본인들은 기존의 모든 종교와 전통과 도덕으로부터 탈피했다고 자부했어요. 기성의 모든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워졌노라 자만했죠.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은 공산주의에 완전히 갇혀서 살았습니다. 자유민주주의자들 또한 자유민주주의에 갇혀서 살아갑니다. 자기 충족적인 세계 안에서, 자기가 만들어 놓은 허상과 환상 속에서 자족적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병한 : 문득 <당신들의 천국>이라는 소설 제목이 떠오릅니다.
레구코 : 이 자기기만적 체제가 작동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전통의 박멸, 기억의 소멸이에요. 공산주의에 도전할 수 있는 모든 원천을 제거하고 박탈시키는 것입니다. 완전무결한 새 인간, 신인류를 창조해내려고 하죠. <1984>나 <멋진 신세계>에 등장하는 기억의 말소와 조작이 현실에서 실천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1989년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이행하면서도 동일한 기억 날조 작업이 단행되더군요. 양쪽 모두 기억에 대한, 전통에 대한 십자군 전쟁을 수행합니다. 그리고 이 전쟁 능력에서 자유민주주의가 더 유능하고 우월해 보여요. 윤리, 가족, 교회, 학교, 대학, 공동체, 마을, 문화, 감수성, 욕망까지도 온통 자유민주주의에 맞게 길들이려고 합니다. 자유민주주의 원리에 어긋나고 위배되는 모든 사회 조직과 인간은 배제되고 배타되고 척결되고 교정시키려고 듭니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 토론과 논쟁이 활발하다는 말은 말짱 허언입니다. 공산주의 시절 폴란드에서도 학교에서, 직장에서 토론과 논쟁은 빈번하게 이루어졌습니다. 다만 모두가 앵무새처럼 똑같은 말만 반복했지요.
이병한 : 흔히 공동체로부터 자립한 개인이 바로서야 개성이 발현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다양한 공동체로 말미암아 비로소 개성이 생겨난다고 말씀하시죠. 공동체가 무너짐으로써 개성 없는 개인이 양산되고 있다고 하시고요.
레구코 : 자유민주주의자도 공산주의자도 그들이 시대착오적이라고 여기는 모든 공동체의 파괴에 앞장섰습니다. 진보에 대한 장애물을 제거하고 개조하려고 했죠. 농촌, 가족, 교회, 학교 등 기존의 공동체들의 해체 없이는 그들의 유토피아를 건설할 수 없다고 여겼습니다. 새마을 만들기, 신여성, 새 가족, 새 학교. 공산주의자들만큼 가부장제와 봉건제 타도에 열성이었던 사람들이 없었어요. 그래서 전통적 가족을 표적으로 삼았죠. 가족관계를 해체시키고 공산주의적 가족을 만들려고 했습니다. 남편으로서, 아내로서, 부모로서 하던 역할을 차례차례 박탈하고 소거해 갑니다. 각자가 수행했던 역할을 당과 국가가 대리 수행하면서 '봉건 가족'을 척결했던 것이죠. 자유민주주의자 역시도 가족의 원리에 적대적입니다. 전통적 도덕과 문화적 권위주의의 보루라고 간주하니까요.
마을 또한 마찬가지죠. 마을 공동체는 전통의 근거지이자 저수지입니다. 농촌과 농민에 대한 마르크스의 혐오를 떠올려 보십시오. 완고하고 편협한 보수주의로 낙인찍습니다. 공산국가 폴란드에서 일어난 가장 큰 변화 또한 마을의 해체일 것입니다. 농촌이 붕괴하고 공동체가 와해되었습니다. 마을에서 작동하던 오래된 생활세계가 무너지면서 국가의 관변 조직들이 기층으로 침투해 들어가죠. 더불어 도시와 공장에서의 노동자 문화도 체계적으로 파괴되어 갔어요. 오로지 진보적 역사의 임무를 수행하는 프롤레타리아 문화로 개조시키려고 했던 것입니다. 농촌에서도 도시에서도, 개별 가족에서도 오로지 ‘공산주의적 인간’만 남았던 것입니다. 저는 지옥이 있다면 이런 모습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와 내 부인과 내 이웃과 내 동료가 똑같이 사고하고 똑같이 행동하고 똑같이 살아가는 모습이요. 그런 진공 속 존재를 이상적인 인간형으로 그렸기 때문에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발화가 가능했을지 몰라요. 공산주의자들이 말하는 노동자란 만국의 고유성, 독자성, 전통성이 상실된 '신인류'들이었으니까요. 즉 공산주의의 프롤레타리아트라던가, 자유민주주의의 세계시민이라는 개념은 실재하는 공동체와 동떨어진 극단적인 추상체입니다. 뿌리가 뽑혀 버린 인조인간들이지 개별적 땅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민중이나 민초가 아닙니다.
개성적인 개인이란 여러 공동체에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면서 총체적인 인격으로서 발현되는 것입니다. 가족에서 작동하는 사랑의 원리가 다르고, 친구간의 우정의 원리가 다르고, 종교생활을 하면서 경험하는 진리의 원리가 또 다르고, 직장에서 작동하는 교환과 계약의 원리가 또 달라야 합니다. 그 다채로운 역할 놀이 속에서 복합적인 인격과 인성이 만들어져가는 거에요. 그런데 그 모든 공동체와 조직을 공산주의나 자유민주주의 같은 단일 이념으로 획일화시켜 버리면 인조인간들만 배출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대화가 있습니까? 대화라는 것은 서로 간에 생각이 다를 때, 말이 통하지 않을 때 비로소 시작되는 것입니다. 각자의 개성이 충돌할 때 대화가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상호존중이라는 미덕도 습득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공산주의 사회에서도,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도 토론은 없어요. 동어반복이 있을 뿐이죠. 애당초 다름을 용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협동 또한 차이에서 발생하는 것입니다. 다름과 다름이 조화로움에 도달하는 것이 협력입니다. 그러나 공산주의도 자유민주주의도 그 체제 내에서 다름을 지워내 버리는 전체주의라는 점에서 협동과 협력이 존재하지 않아요.
이는 왜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이 가장 전투적인 ‘전쟁국가’들인가 와도 직결되죠. 나와 다른 남을 견뎌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나와 다른 남을 보면서 나를 성찰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나와 다른 남을 나처럼 만들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얼마나 완고하고 비타협적인가를 전혀 자각하지 못해요. 그러면서 관용이니, 다문화주의니, 말만 번지르르 합니다. 지금 유럽의 현실을 보십시오. 다름과 차이를 조금도 견뎌내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비유럽적인 요소, 비근대적인 요소들을 조금도 용인해내지 못합니다.
공산주의적 인간이 부박했던 것 또한 다양한 정체성을 획일화시켜버렸기 때문입니다. 인간적 경험의 다양성을 축소시켜 버렸어요. 인간은 여러 형태의 공동체에서 맺는 복수의 관계에 따라 다양한 역할을 수행합니다. 아들일 때, 손자일 때, 삼촌 일 때, 동료일 때, 상사일 때, 부하일 때, 애인일 때, 부부일 때, 풍부한 역할놀이를 하면서 경험의 양과 질이 높아지고 성숙해가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공산체제 아래서는 오로지 공산주의적 아버지와 공산주의적 동지와 공산주의적 동료만 있어요. 척박한 인간 경험과 부박한 삶의 경험이 체제가 주조해낸 인조인간으로, 사회공학으로 빚어낸 부자연스러운 인간으로 전락시키는 것입니다. 미국이 소련을 침공해서 체제를 전환시킨 게 아닙니다. 지레 무너진 것이에요. 자연스럽지 못한 사회, 인공적인 유토피아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갈수록 자유민주주의 체제도 비슷해져가요. 심히 우려스럽습니다. 요즘 나오는 신문이나 잡지, 학술지를 보십시오. 창발적인 에너지가 이미 고갈되었습니다. 이미 완성품 공식에 대입하여 말하고 글 쓰는 방법을 훈련한 것입니다. 기자들의 기사도 학자들의 논문도 점점 차이가 없어져 갑니다. 지배체제에 순응하고 부역하는 어용만 있어요. 마치 공산주의 시절의 지식인들처럼 말이죠. 자유민주주의 아래 지식인들의 처세술은 단순합니다. 대중들에 묻혀 가는 것입니다. 독자적 사상을 연마해가는 것이 아니라, 통용되는 상식적 견해를 대리 진술해주는 것입니다. 정형화된, 표준화된 의견을 되풀이하는 것이죠. 1960~70년대 동유럽 지식인들의 비극이 서유럽에서 복제되고 있습니다.
이병한 : 선생님을 보수주의자(conservatives), 라고 평해도 되겠습니까?
레구코 : 신전통주의자(Neo-Traditionalist)라고 해주시죠.
이병한 : 그런 면모 때문에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하시더군요. 폴란드나 EU 차원에서 진보적인 교육단체나 여성단체 등에서 비판의 표적이 되시던데요. 가령 가족이나 학교의 '민주화'에 반대하신다고?
레구코 : 저는 집집마다 교육 방침이 다르고 저마다 독특한 가풍을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사회적 다양성이 지속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원천이라고 여겨요. 공산주의도 자유민주주의도 어떠한 표준적이고 획일적인 가족상이 있습니다. 그걸 강제시켜요. 저는 부모가 부모로서의 권위와 권한을 행사하지 않는 것이 '민주화'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무책임하다고 보지요. 부모와 자식이 평등한 존재라고도 생각하지 않아요. 부모-자식 관계가 교환과 거래와 협상처럼 되어서야 쓰겠습니까? 회사에서 계약하듯이, 국회에서 법률 만들 듯이. 생물학적 유착을 거세하고 사회적 관계로만 남기는 것이 '진보'입니까? 말랑말랑하고 울퉁불퉁한 관계도 남아 있어야 합니다. 흔히 왕년의 대가족 제도는 무슨 전제주의인 것처럼 비유를 하죠. 그래서 20세기 핵가족화의 결과는 무엇인가요? 평균화와 획일화입니다. 그걸 자꾸 ‘민주화’라고 잘못 말해요. 그 민주화된 가족에서 아이들의 경험 세계가 점점 더 일천해지고 있음을 직시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엄마 아빠는 물론이요 할아버지 할머니, 증조할아버지 증조할머니, 삼촌과 고모와 이모 등등 두루두루 사람을 만나는 유년기의 경험이야말로 다양성의 축복입니다. 그 다채로운 인간관계 속에서 감성이 풍부한 인격체가 만들어지는 것이에요. 핵가족 아래서 자라나는 아이들의 경험 폭을 보십시오. 세계관이 협소해지고 감수성이 메마르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현상입니다.
학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설픈 민주화와 자유화로 말미암아 사제관계가 증발해버리고 있습니다. 개별 교육 현장에서의 다채로운 사제관계가 해체되고 국가가 직접 교육에 개입해 들어갑니다. 선생(teacher)이 스승(mentor)이 되지 못하도록 만듭니다. 사제관계의 다양성이 말소되면서 교육을 통한 창조성 역시도 사라져버리죠. 학교에서도 똑같이 인조인간들을 양성해 내는 것이에요. 어떤 학교를 나와도 엇비슷한 수준의 평균적인 인간만 양산하는 것입니다. 그 교육의 꼭대기에 있는 대학도 갈수록 퇴행하고 있습니다. 요즘 나오는 논문들을 보십시오. 초록이 동색입니다. 모름지기 대학이라는 곳은 괴짜들이 넘쳐나야 하는 곳입니다. 비정상성과 예외성을 허용해 주어야 하는 곳이 아카데미입니다. 괴팍한 전설적 교수들이 마음껏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는 전면적 자유를 허가해 주어야 하는 곳입니다. 그래야 창조적이고 독보적인 교육이 가능하고 독창적인 학생들이 자라날 수 있어요. 그런데 갈수록 교육 과정, 학사 행정, 학점 부여까지 규제합니다. 평균적 인간들만 길러내는 것입니다. 비범치 않은,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도 수용할 수 있는 곳이 대학이어야 하건만, 아카데미조차도 '민주화'되어버린 것이죠. 그런데 이런 모습 또한 역설적으로 제가 폴란드에서 다녔던 공산주의 시절의 대학과 너무나도 유사해요. 교수 개개인의 독창성과 개성이 조금도 용납되지 않았습니다. 당의 논리에 충실한 교육만이 진행되었죠.
궁극적으로 정치 또한 이러한 평균화의 함정을 피해가지 못하죠. 자유민주주의 아래 다당제라고 하지만 점점 더 다양한 성격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정당마다 비슷비슷하게 수렴되어 가요. 극단적인 중도주의로 획일화되어 갑니다. 차이가 없기에 이미지 정치, 광고로 승부하는 것이고요. 의회는 비슷비슷한 사람들이 장악하는 다수자 전제로 귀결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병한 : 매우 흥미로운 관점인 동시에 매우 논쟁적인 견해입니다. 유럽의회에서 점점 더 유럽인의 인격적 수준이 떨어지고 있다고 발언하셔서 또 논란이 되셨죠? 인권 옹호보다 우선되어야 할 것은 인격 함양이라고도 하셨습니다. 자유주의 교육은 철저하게 실패했다고도 하셨고요. 일국의 교육부 수장까지 역임하셨던 인물의 발언이라 더더욱 화제가 되었던 것 같은데요. 해명 겸 보충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레구코 : 자유주의를 대표하는 사상가 쓴 존 스튜어트 밀이 그의 저서에서 사용한 재미난 비유가 있죠. 배고픈 소크라테스와 배부른 돼지입니다. 그가 이런 수사를 구사한 것에는 자고로 인간이라면 배부른 돼지를 선택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전제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소크라테스의 삶이 고귀하다는 묵시적 합의가 여전히 가동되던 고전적 세계의 지식인이었던 거에요. 그러나 자유주의가 유럽의 지배사상으로 등극한 이후 100년이 지나면서 이런 전망은 실패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종교의 요청과 고전적 윤리의 요구로부터 자유로워진 근대인들은 더 높은 인격적 상태에 도달하는 힘겹고도 고통스런 수련의 과정을 방기하고 있습니다. 실용성과 유용성, 편리함과 안락함을 추구합니다. 그리고 '자유'라는 이름으로 합리화하죠. 가족이, 교회가, 공동체가, 전통이 부가해왔던 모든 구속과 의무로부터 자유로워졌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평등'이라고도 해요. 고귀한 인간과 그러하지 못한 인간을 평등하게 대접하는 것을 마땅한 것이라고 간주합니다. 더 높은 인간적 경지를 향하여 절차탁마하는 인간도,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오늘을 반복하는 인간도 동등하게 대우해야 한다고 말해요. 그것을 '인권 존중'이라고 포장하지요. 그래서 소크라테스형 인간은 졸지에 엘리트주의로, 권위주의로 치부됩니다. 심지어 민주주의적 심성에 위배된다고 비판받습니다. 어느새 배부른 돼지가 배고픈 소크라테스의 강력한 도전자 지위까지 올라선 것입니다. 아니 이미 이겨버린 것 같아요. 이 평균화 과정을 '민주화'인양 호도하는 것입니다. 실로 '보통사람'들이 승리한 시대이죠.
1948년 공표된 UN 인권 선언이 그 상징적인 사례입니다. 선천적으로 인간은 존엄하다, 그리하여 후천적인 노력을 방기해버린 공식 문헌입니다. 사람다운 사람을 만든다, 인간부터 되어라, 하는 오랜 가르침들이 한 순간에 무용해져 버렸어요. 그런 가르침을 설파하던 종교교육과 전통교육이 무력해져 버렸습니다. 위엄과 존엄은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타고난 것이 되어버렸죠. 의무는 없고 권리만 주어진 것입니다. 인권헌장은 인간에게 그 어떠한 도덕적 의무도 부가하지 않은 그야말로 기괴한 문서입니다. <성서>를 보십시오. 혹은 <코란>을 읽어 보세요. 불경도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유교 경전도 마찬가지라고 여겨요. 하나같이 인권이 아니라 인성 도야, 인격 함양을 먼저 강조하고 있습니다. 더 높은 덕성을 쌓고 더 도덕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인간적 분발심을 고취시키는 가르침부터 담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의 삶이 하나님의 뜻에 더욱 더 가깝게 닿고자 했던 수백, 수천 년의 노력을 일순에 기각해 버린 것입니다. 배부른 돼지와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평등한 존재로 대우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어떤 삶이 좋은 삶인가 하는 질문은 개개인의 독립적 판단에 맡겨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판단은 이미 존엄한 개인들이 내린 것이기 때문에 마땅히 동등하게 존중받아야 한다고 간주됩니다. 저는 이런 근대적 인권 담론에 전혀 동의할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도착적 인권 담론이 민주주의 사회의 질적 저하를 초래하기 때문입니다. 누구도 더 이상 개개인이 추구하는 욕망을 원리적으로 부정하지 못합니다. 내가 어떠한 욕망을 추구하더라도 나의 존엄이 훼손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신인류’가 등장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신인류들이 원하는 지도자의 선택 기준도 딱 그만큼으로 타락해 가고 있습니다. 잘 살게 해 달라, 더 잘살게 해 달라, 그 잘 사는 삶의 기준이 겨우 물질적인 욕망 충족이죠. 인류가 최고 지도자에게 이런 욕망을 노골적으로 요청한 것은 극히 예외적이고 최신의 현상입니다. 고대의 정치도, 중세의 정치도 그러하지 않았어요.
이병한 : 고대 희랍철학 전공자라는 면이 이런데서 잘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행복과 쾌락도 엄밀하게 분리하시죠? ‘행복한 고대인의 평정’과 ‘불행한 근대인의 쾌락’이라는 표현도 사용하시더군요.
레구코 : 고전적 윤리학에서 행복은 총체적인 삶과 결부되어 있었습니다. 순간순간 찰나의 기쁨이 행복이 아닙니다. 잠시의 일시적인 쾌락을 행복이라고 간주하지 않았습니다. 행복을 추구한다는 것은 전체적인 삶을 기획하고 연출하고 실행하며 음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필히 도덕성의 추구를 견지하게 되어 있습니다. 조화와 중용, 수련과 수양으로써 행복은 연마해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쾌락을 행복의 중심에 두면서 인간 본성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가 만연하게 됩니다. 더 이상 총체적 삶의 견지에서 행복을 사고하지 않아요. 쾌락과 쾌락이 누적된다고 해서 행복한 삶이 영위되는 게 아니에요. 인간을 '개인'으로 분리시켜낸 것처럼, 행복 또한 ‘쾌락’으로 분리시켜 낸 것입니다. 유쾌와 불쾌는 단속적인 것에 불과할 뿐이에요. 행복과 불행은 지속적인 것입니다. 유쾌와 불쾌를 조율하고 중화시킴으로써 행복의 경지에 이르고 이 행복한 상태를 지속시키는 방법을 연마해야 하는 것입니다. 유쾌는 +이고 불쾌는 -여서 양쪽을 합한 총량이 행복인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순간과 순간일 뿐이지만, 그 순간과 순간의 산술적 합이 곧 인생은 아닌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순간과 순간을 일생으로 꿰어내는 통합성이 핵심이죠. 그러하기에 더더욱 '행복의 기술', 그 테크네를 습득하고 훈련하는 것을 강조했던 것입니다.
68혁명은 또 다른 의미에서 성 혁명이기도 했습니다. 성 혁명은 인간을 개인으로 축소시킨 자유민주주의가 도달한 가장 단속적인 쾌락 추구로 그치고 말았습니다. 고대의 현자들이 쾌락의 절제로부터 행복을 추구했던 삶의 지혜를 폄하해 버립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명백하게 1960년대 이래 부상하고 있던 소비자본주의와의 결탁이 작동합니다. 절제가 최대의 적이 되죠. 소비와 낭비, 탐닉과 중독이 미덕이 됩니다. 더 많은 쾌락과 더 새로운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 행복인 마냥 도착이 일어납니다. 자유연애는 여성해방이 아니라 사랑을 영혼이 없는 기술로 전락시켰습니다. 차별 없는, 지배 없는 관계를 추구했던 성 혁명은 인간을 섹스하는 기계로 타락시켰습니다. 쾌락을 추구하면 할수록 행복과 멀어지고 있는 인조인간들을 대량으로 양산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극단적으로 말하고 있는 걸까요? 동시대 문학과 최신 영화에서 그려지는 현대인의 자화상을 보십시오. 성적으로 해방되고, 전통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었으되, 더더욱 우울해지고 무감각해진 공허한 인간들이 주인공 자리를 꿰차고 있습니다.
이병한 : 1960년대부터 이미 스노비즘, 속물주의라는 말도 있었죠. 그런데 유독 선생님 발언이 논쟁거리가 되는 것은 그러한 현상을 공산주의와 민주주의, 자유주의와 결부시켜 설명하기 때문인 듯 보입니다. 근대인은 죄다 하류인간인 듯 묘사하신다고 할까요? 제가 오독한 것입니까?
레구코 : 인간적인 욕망의 수준이 대폭 떨어졌음이 사실입니다. 원대한 목표, 위대한 이상을 추구하던 고대적 인간으로부터 전혀 멀어졌습니다. 중세적 인간 또한 훌륭한 면모가 여전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인간은 그저 소소하고 사소한 것을 추구합니다. 시시한 삶을 옹호합니다. 의미 없는 삶이 만연합니다. 자유와 평등이라는 인간해방이 야기한 거대한 역설입니다. 모두가 위대한 인간,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와 평등과 민주와 공산의 이름으로 사소하고 시시해져가요. 인간다움의 최소주의로 뒷걸음친 것입니다. 인간으로서 성취할 수 있는 가장 낮은 것들에만 연연합니다. 너무 이상이 높다, 비실용적이다, 불필요하다 등등 구실은 많죠. 도리어 그런 인간다움의 길을 우습게 여기기까지 하죠. 오늘날 일국의 최고 지도자로 등극하는 사람들의 수준과 질을 보십시오. 평균주의가 횡행합니다. 나와 비슷한 사람을 좋아해요. 성인을 속인으로, 속인을 속물로, 속물을 동물로 점점 더 하향평준화 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회개하는 시간은 무가치하지만, 헬스클럽에서 성적 매력을 가꾸는 것은 가치 있는 시간이 되어버렸죠. 저속화와 통속화에 브레이크가 없습니다.
이병한 : 그래서 재차 종교의 귀환을 주장하시나요? 1980년대 자유연대노조의 원천에도 가톨릭이 있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레구코 : 종교는 사적이고, 정치는 공적이라는 허위적인 이분법을 버려야 한다는 뜻입니다. 종교적 삶과 정치적 삶이 분리될 수 있습니까? 좋은 신자가 되겠다는 마음과 좋은 유권자가 되겠다는 다짐이 따로 갈 수가 있나요? 종교가 사라진 1주일을 되돌아보십시오. 일요일은 더 이상 주일이 아니라 휴일이 되었습니다. 경건한 마음으로 예수의 말씀을 되새기는 날이 아니라 세속적인 욕망을 최고조로 발산시키는 날이 되었습니다. 교회보다는 쇼핑몰로 달려가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죠. 금요일은 또 어떻습니까? 밤새 흥청망청 떠들고 마시는 날이 되었습니다. 수요일은 더 이상 기념되지도 않습니다. 수요일의 본디 의미를 기억하는 이들이 몇이나 될까요? 매 요일마다 종교적 각성을 요청하는 의미가 담겨져 있던거에요. 매일 매일 인간의 욕심에 휘둘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신의 말씀을 전하는 장치로서 요일이 기능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근대화와 세속화가 진행되면서 요일은 그저 일하는 날과 쉬는 날로, 노동하는 날과 소비하는 날로 분화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난 날 풍경이 어떻습니까? 인류의 영원한 성인이 탄생하신 그 날이 한 해 중 소비자본주의가 절정에 이르는 날로 변질되고 말았습니다. 크리스마스 이브의 풍경이 지난 백년 사이에 얼마나 달라졌는가 돌아보면 참으로 기이할 정도이죠. 브뤼셀에서 성탄절을 보내다가 보면 공산주의자들이 원했던 사회의 모습이 마침내 자유민주주의에서 완성되었구나 하는 착각이 들 때가 있어요. 철저하게 유물론적인 세상, 비종교적인 사회, 비영성적인 삶이 영위되고 있으니까요. 공산국가 폴란드의 추악함이 채 가시기도 전에 새로운 조악함이 덕지덕지 덧붙어 버린 꼴입니다.
이병한 : 굉장히 설득력 있는 말씀 같다가도 선뜻 동의하기도 망설여집니다.
레구코 :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성찰과 숙고가 절실합니다. 그 숙고의 지혜가 농축된 유산이 바로 종교고요. 공산주의와 자유민주주의 100년, 현 체제에 부역하는 어용들은 미신이다, 퇴행적이다, 시대착오다, 라고 말하겠지만 정체된 것은 바로 그들이에요. 150년 전 자유주의로부터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막다른 곳에 이르러서야 새로운 출로가 열립니다. 근대인이 ‘생각하는 인간’이었다면, 중세인은 ‘기도하는 인간’이었습니다. 고대인은 ‘수련하는 인간’이었고요. 수련하는 인간과 기도하는 인간과 재회하고 해후해야 합니다. 그래야 근대인의 탈출구가 열립니다. 수련과 기도와 생각(비판)이 조화를 이루는 인간이 미래형 인간이고 미지의 인간일 것입니다.
이병한 : 고대인과 근대인의 만남이기도 하겠고요, 이성적 인간과 영성적 인간의 (재)결합이기도 하겠군요. 수련하는 인간과 기도하는 인간과 생각하는 인간을 분별하는 것이 아니라 통합적으로 사고하는 방식은 정치를 논의하는 데에서도 이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플라톤의 <공화국>에 대한 선생님의 독해가 몹시 흥미롭더군요. 흔히 민주정을 공화정과 등치시키고는 하는데 민주정 독점체제는 공화정의 원리에 위배된다고 말씀하시죠? 군주정, 귀족정, 민주정의 성격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야말로 공화주의적이라고 주장하십니다.
5. Res Publica
레구코 :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를 다시 읽어보십시오. 그는 민주주의의 미래에 대하여 부정적인 전망으로 책을 마쳤습니다. 해결책이라기보다는 문제를 일으키는 체제가 되기 십상이라고 보았죠. 민주주의의 끝에서 새로운 전체주의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기왕의 전제 정치와는 전혀 다른,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래서 더더욱 위험한 전제주의를 간파했습니다. 사람들의 정신을 노예화시키는 자발적 전체주의죠.
그런데 토크빌의 통찰도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어요. 고대 희랍철학에서 이미 논구되고 논파되었던 주제입니다. 민주주의가 가장 덜 나쁜 정치제도라는 처칠의 평가 또한 몰역사적인 판단입니다. 전혀 그러하지 않아요. 민주주의보다 더 나은 체제는 이미 오래 전에 발명되었습니다. 최상의 정치체제를 구현하고자 했던 그리스와 로마에서 이미 도출되었던 것이에요. 플라톤 후기에서부터 그 맹아를 드러내어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더욱 발전되었습니다. 그들은 크게 세 가지 형태로 정체를 나누었죠. 1인 통치의 군주정, 소수 통치의 귀족정, 다수 통치의 민주정입니다. 그리고 지금처럼 민주정을 일방으로 긍정만 한 것이 아니라 각 정체의 장단점을 골고루 살펴보았습니다. 민주 만능주의에 빠져들지 않고 정확하게 관찰하고 정치적 실험과 결과에 바탕하여 숙고했습니다. 그러하지 않을 수 없는 명백한 이유가 있었죠. 소크라테스가 왜 독배를 들이켜야 했습니까? 민주주의가 최고의 현인을 죽음으로 몰고 간 어처구니없는 사태를 직접 목도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민주정을 무턱대고 찬미하지 않은 것만큼이나 군주정 또한 무조건 나쁜 것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선험적으로 재단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적으로 판단했습니다. 군주정의 장점은 무엇일까요? 의사결정 과정을 단순하고 신속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관성과 지속성에서도 유리한 측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제와 독재의 위험성도 내장하고 있죠. 귀족정에도 장점이 있습니다. 충분히 교육받고 숙련된 엘리트의 통치가 이루어질 수가 있습니다. 반면에 소수가 다수의 이익을 가로챌 수 있는 약점도 가지고 있죠. 민주정의 장점은 그 대표성과 대의성에 있습니다. 그러나 무질서와 분파주의가 만연하기 쉽다는 치명적인 단점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와 로마의 현자들이 내린 결론이 무엇이었을까요? 민주주의 만세!가 아니었습니다. 세 가지 정체를 융합시키는 혼합정을 만들자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흔히 사용하고 있는 '그리스 민주주의'라는 말 자체가 '그리스 신화'입니다. 그리스는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었습니다. 공화정이었죠. 군주정의 속성과 귀족정의 특징과 민주정의 성격이 상호 견제와 균형을 이루는 시스템을 마련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각 체제의 장점을 발현시키고, 단점은 서로 중화시켜가는 방법을 궁리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민주주의적 대의기구를 지속해가면서도 동시에 고도의 엘리트주의를 제도화한 기구도 병존시킬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조합의 형태 또한 단일해야 할 이유가 없어요. 각 나라의 문화와 역사와 환경에 따라서 여러 가지 형태의 혼합정이 가능합니다. 다양한 모습의 하이브리드 정치 실험이 가능한 것이죠. 그 천차만별로 다채로운 혼합정의 세계가 바로 공화주의입니다. 로마의 키케로가 말한 "Res Publica"의 본뜻이기도 하고요. 서구문명의 장구한 공화주의 전통 또한 여기서부터 비롯한 것입니다. 즉 공화정은 결코 민주정의 독점체제가 아닙니다. 공화정은 민주주의를 견제할 수 있는 또 다른 정치적 제도를 아울러 가지고 있어야 구현되는 것입니다. 프랑스혁명과 러시아혁명을 거치면서 공화주의의 참뜻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고작 군주정의 반대말이 공화정인 것처럼 축소되었어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인들은 전혀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공산주의자도 아니고 자유민주주의자도 아닙니다. 공화주의자입니다. '전통적인 공화주의자'(a Traditional Republican)로서 과거에는 공산주의에 저항했고, 지금은 자유민주주의에 회의하는 것입니다.
이병한 : 흥미롭습니다. 그렇다면 공화주의에 대한 왜곡된 이해는 왜 일어나게 된 것이라고 보시나요?
레구코 : 냉전의 효과이죠. 공산주의의 대척점으로 자유민주주의를 우상화하면서 복합정체, 즉 공화정마저도 비민주적인 것으로 간주하게 된 것입니다. 혼합정의 창조성을 가로막고 민주정 일극체제로 달려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민주주의와 공화주의에 대한 일천한 이해가 일상적인 담론은 물론이요 사회과학에까지도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오늘날 Res Publica는 그저 정부의 한 형태로만 이해되고 있어요. 왕이 없는 국가가 곧 공화국인 것처럼 말합니다. 고전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도착입니다. 근본을 천착하지 않기 때문에 말단의 오류가 거듭되고 있는 것입니다.
냉전기를 거치며 서구의 정치인들도 공화주의보다는 민주주의라는 말을 더 선호하게 되었죠. 민주라는 말과 자유, 개방, 다양성 등과 결합되어 갑니다. 공화는 조금 더 무겁고 권위적인 느낌을 주죠. 그러나 이 또한 본말이 뒤집힌 이해입니다. 공화정이야말로 개방적이고 다양한 것입니다. 민주정 독재가 아니라 비민주정도 아우르는 폭넓은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 국가에 다양성이 어디 있습니까? 귀족정과 군주정이 구현했던 가치관과 세계관을 조금도 용인하지 않습니다. 공적 생활에는 다양한 층위가 있고 그 단위마다 필요한 조직의 속성과 논리가 다름에도 만사를 민주주의 단일 원리로 처리해야 한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양성을 옹호한다고 말하면서 정작 정반대의 결과로 이 세계를 획일화, 균일화, 단일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놀라운 획일성을 '진보'라고 합리화시키지요. 전제주의를 전제주의로 극복할 수 있습니까? 공산주의의 위기를 공산주의로 해소할 수 있습니까? 민주주의의 오작동을 민주주의로 해결할 수가 있나요? 30년 전 공산주의자들의 자가당착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자유'라는 관념 하나만 보더라도 민주주의의 독점물이 아닙니다. 공화주의는 물론이요 보수주의, 낭만주의 나아가 기독교까지도 부단하게 '자유'를 추구해 왔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빛나는 성취를 일구어 왔습니다. 자유주의가 추구해온 '자유'는 여럿 중의 하나일 뿐이에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조류였다고 단정적으로 말하기도 어려워요. 고대 그리스 철학의 '자유'와 기독교 사상의 '자유'와 스콜라주의와 여타 정치철학의 '자유' 없이 서구문명의 자유를 온전히 설명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이런 식으로 의견을 개진하면 '민주주의의 적'이라도 되는 냥 비판(난)을 퍼붓습니다. 아량을 베풀기보다는 철저한 굴복을 요구하지요. 고대 그리스 사상에서, 중세의 기독교 신학으로부터,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단서를 구할 수 있다고 해도 시쿤둥 할뿐입니다. 종교는 종교, 정치는 정치라는 낡은 이분법만 반복하죠.
저는 그들이야말로 서구문명의 전통과 정통에서 벗어난 이단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유럽에서 기독교는 그저 여러 종교 가운데 하나로 그치는 게 아니에요. 서구의 정체성, 서구적 영혼의 근본이고 근원입니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전수되는 지속성과 역사성의 원천이에요. 기독교를 거부함으로써 혹은 주변화시킴으로써 서구는 문화의 불모지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동구는 동구대로, 서구는 서구대로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득세하고 독점하는 전체주의 사회로 변질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2017년은 러시아혁명 100주년이자 종교개혁 50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개혁(Reformation)과 혁명(Revolution)과 더불어 계시(Revelation)를 재발견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영성의 근대화, 근대적 영성의 재발명이 절실합니다. 근대인의 심성에 영혼을 불어넣어주어야 합니다. 새로운 영적 각성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그것이 공산주의 40년, 자유민주주의 30년을 경험한 제가 지난 20세기를 회고하며 내린 결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병한 :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으로 시작해서 사도 바울이 되어 말씀을 마치신 것 같습니다. 이성을 촉발하고 영성을 고무시키는 특별한 인터뷰였습니다. 깊이 감사드립니다.
6. <방주> : 타는 목마름으로
말을 섞고 눈빛을 나누었던 시간은 세 시간 정도였다. 지난 3년, 많은 사람과 여러 장소가 떠올랐다. 인권보다 인성이 우선해야 한다는 교육론과 군주정/귀족정/민주정을 아우르는 혼합정이야말로 공화주의에 합당하다는 정치론은 중국에서 뵈었던 민간 유학자 장칭을 떠올리게 한다. 그 또한 천부인권을 거부했던 바, 인간의 권리만을 보장하는 대의민주주의에 심각한 우려를 표했던 바이다. 천지인(天地人), 하늘과 땅과 사람의 목소리를 골고루 반영하는 삼원제를 대안으로 제안했다. 그래야 현재의 인류만이 아니라 과거의 선조와 미래의 후세, 나아가 인간만이 아닌 만물의 목소리를 정치에 반영할 수 있다고도 했다. 올해로 독립 70주년을 맞이한 인도 견문의 기억도 되살아났다. 지난 8월 15일 모디 총리는 '인도가 원하는 것은 근대화이지, 서구화가 아니다.'라는 멘트를 트윗으로 날렸다. 간디와 네루가 주도했던 국민회의의 '영국형 민주국가'가 아니라 '인도형 힌두국가' 만들기에 더욱 박차를 가하겠다는 다짐이다. 올 8월을 기점으로 대양제국이 남기고 간 콜카타의 빅토리아메모리얼은 식민지 박물관으로 재탄생했다. 탈세속화와 탈서구화가 병진하고 있는 것이다. 인도네시아의 이슬람 민주주의부터 이란의 이슬람 공화정까지, 이슬람문명의 모험도 거듭 연상되었다. 레구코 선생이 절절하게 희구하는 고/금 합작과 성/속 합작을 이미 앞장서 실천하고 있는 전위국가들인지도 모른다.
돌아보니 올해 유럽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모더니티의 수도, 파리에서 만났던 한 지식인은 목하 프랑스와 유럽의 대혼란을 '세속화의 위기'로 진단했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의 수도 모스크바에서도 흡사한 조류를 목도한다. 러시아 체류 다섯 달째, 나는 푸틴 집권 이후 새천년 러시아의 변화를 '탈세속화'로 정리해가고 있는 중이다. 혁명국가, 공산국가의 최전선에 섰던 소련에서 탈피하여 정교회 대국으로 귀환/귀향하고 있는 것이다. 이 흐름은 비단 러시아만으로 그치지도 않는다. 소련에 포함되어 있었던 발트해와 흑해 연안 소국들부터 중앙아시아의 이슬람국가들을 지나 북극해의 마을 공동체에 이르기까지 탈세속화의 물결은 도저하게 진행 중이었다. 이 거대한 반전의 흐름, 메가 트렌드(大勢)를 착목하지 않는 국제정치 분석은 죄다 맹탕이고 허탕이라고 여긴다.
나아가 한국의 민주화 대서사 또한 새롭게 고쳐 써야 한다는 영감도 촉발시켰다. 1987년을 토막 내서 ‘민주화’라고 언명하는 것은 1987년 이후 이행을 주도했던 특정 세력과 세대들의 정파적 이익에 복무하고 마는 시대구분법 같다. 1980년을 원점으로 삼는 것 또한 시야가 좁다. 100년 이상 사고의 축을 대폭 확장시킬 필요가 크다. 1894년 동학운동부터 2016년 촛불항쟁까지를 일이관지하는 민주주의 대서사를 확립해야 할 것이다. 다시금 성과 속의 공진화, 성/속 합작이라는 관점은 유력한 대안을 제시한다. 인터뷰를 마치고 기념 선물로 받은 <방주>의 창간호가 오묘했다. 노아의 방주로부터 자유연대노조가 출발했음이, '의로운 사람' 노아의 환기로부터 폴란드 민주화 운동이 시작되었음이 의미심장하다. 폴란드 천년 문명의 터전이었던 가톨릭과 20세기 후반의 '민주화'가 전혀 무관하지 않았던 것이다. 아니 깊숙이 연결되고 긴밀하게 연동되고 있었다. 거대한 뿌리에서 타고 오른 찬란한 불꽃이었다.
한국의 민주화라고 다를쏘냐. 천오백년 불교와 천년 유교와 이백년 기독교와 결부된 '장기적 민주화'라는 시점을 벼리어 가려고 한다. 좀 더 과감하게 말해 '축의 시대' 이래 민주화에 대한 충동은 항상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19세기 이래 국지의 경험을 민주화의 전부인양 삼아서는 심히 곤란할 것이다. 서구화가 곧 근대화가 아니었던 것처럼, 민주화 또한 서구화가 등치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서구화로부터 민주화를 구출하기. 단수의 민주주의를 복수로 민주화시키기. 불교의 보살되기와 유교의 군자되기와 기독교의 성자되기와 결합된 민주시민의 존재론 탐구하기. 그래야 오늘날 가난하고 척박하고 빈곤해져버린 민주주의 담론을 더욱 풍성하고 풍요롭게 가꾸어가는 데도 일조할 수 있을 것이다. 1894년 횃불부터 2016년 촛불까지, 그 줄기차게 타오르는 갈증에 대한 올바른 이름(正名)을 지어주고 싶다. 1000일 견문을 매듭짓는 무렵까지는 나름의 관점을 제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점에서 동유럽의 포스트-이행은 여전히 흥미롭다. 폴란드 이웃에는 헝가리가 자리한다. 역시 한때는 이행의 모범으로 간주되었던 나라이다. 그러나 목하 탈-이행의 몸부림이 가열차게 일어난다. '자유민주주의'에 심각한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급진적 결별을 꾀하고 있다.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라는 신조어가 가장 먼저 등장한 나라가 헝가리이다. 갈수록 EU와 불화가 깊어진다. 연신 브뤼셀과 거친 언사를 주고받는다. 1989년과는 정반대로 재차 러시아와 유라시아로 방향을 되돌리려는 움직임마저 있다. 대체 헝가리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또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 것인가. 주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부다페스트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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