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도민의 눈물 위에 만들어진 채무제로는 홍준표가 결코 자랑할 일이 아니다. 개인 치적을 자랑하기 위해 심은 기념식수 나무를 당장 정리하라!”
경남의 시민사회단체가 5일 경남도청 입구 ‘채무제로 기념식수’ 화단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요구했다. 경남도청 측은 당장 철거할 계획은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적폐청산과 민주사회 건설 경남운동본부는 ‘채무제로 기념식수’가 철거될 때까지 1인 시위 등을 지속한다는 방침이어서 마찰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홍준표 ‘채무제로’의 허와 실
경남도는 홍 전 지사가 부임하기 전 1조3,488억 원 규모의 채무가 있었다. 홍 전 도지사는 취임 후 경남도의 빚을 갚겠다고 공언하고 나섰고, 지난해 6월 1일 도청 대강당에서 ‘채무제로 선포식’을 열었다.
이날 홍 전 지사는 “지난 3년 반 동안 뼈를 깎는 노력으로 이자까지 포함해 1조5,000억 원을 다 갚았다”며 “빚이 한 푼도 없는, 채무로부터 해방된 날”이라고 선포했다. 그리고 도청 입구 화단에 기념식수로 ‘사과나무’를 심으며 후대에 희망을 준다는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하지만, 경남도의 빚을 다 갚은 과정과 의미를 들여다보면 ‘채무제로 달성’이 결코 자랑할 만한 일이 아님을 확연히 알 수 있다.
“선출직들은 거의 선심성 사업을 하는데, 그러면 빚을 지게 된다. 예컨대 경남에는 18개 시·군이 있는데, 전임 지사(김두관)가 일률적으로 200억 원씩 주겠다고 약속했다. 이 예산만 하더라도 3,600억 원이다. 나는 이 예산을 집행하지 않았다.”
홍 전 지사가 채무제로 선포식을 한 당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자신의 공적을 자랑하며 한 말이다.
당시 경남도는 각 시·군에 지급해야 할 조정교부금 1,877억원을 주지 않고 있었다. 따라서 시·군에 지원해야 할 예산을 주지 않거나 비율을 줄여 경남의 빚을 갚는 데 보탰다는 것이다.
여기서 홍 전 지사가 간과한 것이 있다. 시·군에 지원해야 할 조정교부금을 주지 않으면 그것도 ‘부채’가 된다는 사실이다. 즉, 홍 전 지사는 경남의 빚을 갚기 위해 시·군 조정교부금으로 ‘돌려막기’를 한 셈이다. 빚은 그만큼 남아 있기 마련이다.
또 서부경남의 공공의료기관인 진주의료원을 폐쇄하고 학교 무상급식 지원을 중단했을 뿐만 아니라 성평등기금, 환경보존기금, 통일협력기금 등 각종 기금 지원을 끊어 빚 갚는 데 사용했다.
이 같은 홍 전 지사의 ‘빚 갚기 노력’과 ‘공치사’는 정부를 포함해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정책 기본에서 한참 벗어난 것이다.
정부나 지자체의 재정정책은 결코 채무제로나 흑자만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식이다. 경기부양이나 경기침체기 극복 등을 위해 정부는 국채를, 지자체는 지방채를 발행해 예산집행을 활발하게 한다. 이때 발생한 ‘적자 재정’은 ‘빚도 재산’이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결국, 빚을 갚겠다고 허리띠만 졸라매자고 강요하며 줄 돈 주지 않고 풀어야 할 돈 풀지 않은 홍 전 지사의 ‘채무제로’ 자랑은 오롯이 경남도민의 피와 땀을 강요한 것이고, 불편하기 짝이 없는 개인적 공치사에 불과하다.
■“채무제로 기념식수 나무 당장 정리하라!”
적폐청산 경남운동본부는 지난달 24일 한경호 도지사 권한대행과의 비공개 면담 자리에서 도청 입구 화분과 채무제로 기념식수 나무 철거도 요구했다. 한 권한대행은 이에 대해 “그게(기념식수) 정문에 있다는 건 조경의 관점에서도 좀 그렇다. 도청 상징탑을 가리고 있는 것도 좀 그렇다”라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높이 3.5m가량인 이 기념식수 나무는 지난해 6월 1일 사과나무를 심은 뒤 3번째 나무이다. 첫 나무는 무더위에 열해를 입어 넉달 가량 후인 10월 15일 ‘주목’으로 교체됐고, 홍 전 지사가 대선 출마를 위해 ‘꼼수 사퇴’를 한 날로부터 3일 후인 지난 4월 12일 새로운 주목으로 교체됐다.
첫 번째와 세 번째 나무는 개인으로부터 기증받았으며, 두 번째 나무는 도 예산 120만 원을 들여 구입했다. 또 현재의 주목을 심을 때 뿌리에 물을 공급하기 위한 유공관 설치와 인건비, 장비 사용료, 이전식재 등 비용으로 330만 원 가량의 예산이 투입된 것으로 도청 청사관리담당은 밝혔다.
홍 전 지사의 개인적 공치사를 위해 심은 나무가 이처럼 수차례에 걸쳐 고사하고 새로 심어진 데는 수종에 대한 전문적 지식도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추진한 행정의 탓도 크다. 또 그로 인해 예산이 추가로 투입되는 등 세금 낭비도 뒤따랐다.
한 조경업자는 “고산지대에 서식하는 상록침엽교목인 주목은 한라산이나 지리산 등 700~800m 고지대에 많이 분포하기 때문에 남부지방의 낮은 지대에는 맞지 않는 수종”이라며 “최대 17~20m까지 자라지만, 음지가 없는 도청 입구 광장 화단에 심었으니 시름시름 말라죽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세 번째 심은 주목에 차양막을 설치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도청 측은 한 권한대행과 시민사회단체의 면담 이후 화분을 철거하면서 차양막도 함께 철거했다.
하지만, 기념식수 나무 철거 여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한 권한대행은 시민사회단체의 요구에 대해 “그 또한 도민 의사 표현이다. 일단, 추이를 살펴보자”는 유보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도청 청사관리담당은 전했다. 새로 부임한 권한대행이지만, 전임 도지사의 치적 상징물까지 함부로 처리하기에는 부담스럽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에 대해 적폐청산 경남운동본부는 이 기념식수 나무가 ‘홍준표 경남도정 적폐의 상징’이라고 지적했다. 또 경남의 상징인 ‘낙도의 탑’을 가린 채 도청 얼굴격인 정문에 버젓이 버티고 선 것은 도민을 무시하고 홍 전 도지사 자신을 과시하기 위한 ‘홍준표 적폐의 연장’이기에 하루빨리 철거를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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