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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 복지, 진보진영의 독배인가?

[의제27 '시선'] 보편주의가 진보의 '무덤' 되지 않으려면…

자칭 타칭 진보라 불리는 진영에서 복지국가에 대한 논쟁이 제법 무르익어 가고 있다. 역동적 복지국가를 위시하여 공정한 복지국가, 삼차원 복지국가, 생태적 복지국가, 심지어 보수진영에서까지 따듯한 복지국가를 이야기할 정도이다.

이러한 흐름 가운데는 대담하게 보편주의에 입각한 복지국가를 만든다는 기조가 상당히 깔려있다. 특히 지방선거를 전후하여 펄럭거렸던 무상급식, 그리고 그러한 정책의 골간이라 대중적으로 회자된 보편적 복지의 담론이 상당 정도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사실 보편적 복지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학술적으로는 많은 논란이 있다. 인하대학교의 윤홍식 교수가 정리한 바와 같이, 보편적 복지는 가장 극단적으로는 모든 시민에게 급여가 제공되는 것을 뜻한다는 견해(Raitano)가 있고, 노동시장에 참여하는 사람에 대한 사회보험제도의 포괄 정도로 보편주의를 정의하자는 견해(Scruggs and Allan)도 있다. 아예 특별한 제도를 판별하기 보다는 전체소득이전에서 빈곤층이 받는 이전소득의 비율인 수직적 지출효과성(Vertical Expenditure Efficiency, VEE)을 지표로 하여 보편주의의 정도를 판별하자는 견해(Abe, 2001)도 존재한다.

그러나 좀더 현실 정책에서 갖는 의미를 생각하면, 보편주의는 선별주의(또는 잔여주의)와 구별하여 사용되고 있으며, 반드시 모든 사람을 포괄하는 개념이라기 보다는 "광범위한 인구를 포괄하는 것"(broad population coverage)으로 정의한다고 보겠다.

결국 보편주의는 소득조사(또는 자산조사) 없이 연령, 고용기간 등의 준거와 연동되는 특별한 욕구가 있는 모든 사람에게 복지급여의 자격을 부여하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한편 Gilbert라는 복지학자는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를 다음 표와 같이 명확하게 정리하고 있기도 하다.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보편주의와 선별주의는 뚜렷한 대비점을 가진다. 즉, 보편주의는 사회적 권리에 기저를 두고, 사회구성원 모두가 직면한 문제에 대한 사회 전체의 대응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어 포괄적인 서비스나 광범위한 예방프로그램들이 해당되며, 선별주의는 개개인의 욕구에 의해 급여가 지급되며 특히 자산조사에 기초하고 있고 욕구가 가장 큰 집단에게 가용자원을 집중하게 된다.
▲ 보편주의가 자칫 잘못하면 진보진영의 무덤이 될 수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연합

일반적으로 보편주의는 사회적 효과성에, 선별주의는 비용효과성에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반드시 그렇지만도 아니하여 보편주의는 자산조사 등이 불필요하다는 점에서 비용효과적이며, 선별주의는 표적화된 급여를 통해 사회적 긴장과 적대감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 효과성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서구복지국가들의 경로를 볼 때, 결국 보편적 복지를 주조로 삼게 되는 주원인은 이것이 폭넓은 연대를 형성할 수 있어 정치적인 헤게모니를 획득하는 데에 용이하다는 것이다. 종래의 복지국가 지지계급인 노동자층만이 아니라 농민, 자영자, 여성, 노인층 등 기존의 계급 내의 연대감만이 아니라 계급간 심지어 탈계급적 요소를 갖고 광범위한 지지기반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모든 정책이 보편주의에 기반할 수 없는 것이어서 막대한 재정동원의 부담을 위해 보편주의를 기조로 내세우면서도 사실은 선별주의적 정책들을 결합시켜 정책의 실현가능성과 사회적 목표의 충족도를 높여왔던 것이다.

그런데 최근 한 토론회에서 대구대학교의 주은선 교수로부터 무척 날카로운 지적을 받은 바 있다. 결코 보편주의에 대한 반대론자는 아니라 보이지만, 주 교수는 이론적인 부분과 현실적인 부분으로 나누어 보편주의의 위험성을 지적하였다.

우선 이론적으로 보편주의는 첫째, 이것이 평등한 시민권을 촉진시키는 것이지만 사실은 국가적 가부장주의의 성격을 가진다는 점에서 아이러니한 제도라는 점, 둘째, 정액의 보편주의적 급여는 모든 시민이 노동시장에 참여하는 완전고용사회에서는 유효하지만 오늘날과 같은 만성적 불완전고용시대, 고용 없는 성장의 시대에는 오히려 잔여적 제도의 필요성이 더 높아진다는 현실을 간과한다는 점, 셋째, 이 보편주의는 한부모가구의 증대, 다문화주의 등 새로운 욕구과 다양성에 근거해 차별적인 욕구를 가진 다양한 인간존재를 동일한 집단으로 접근한다는 점에서 문제의 소지가 다분하다는 것이다.

또한 현실적으로도 보편주의는 몇 가지 난점에 직면한다. 첫째 보편주의가 진보진영만의 무기는 아니라는 점이다. 이미 노무현 정부 하에서 한나라당이 기초연금을 이야기하였고, 현재 대담한 보편적 복지정책을 보수진영에서 들고 나올 것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과연 이것이 보수와 진보의 구분점을 만들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둘째, 오늘날과 같은 금융위기 하의 재정적 제약상황에서 보편주의적 정책 구사는 상당한 재정압박에 현실적으로 직면할 수밖에 없고 대중정당으로서의 실제 정책수단이 되기 어려운 점이 있다는 것이다.

셋째, 보편주의의 전략은 전국적 차원의 전략으로서 타당하지만 6.2 지방선거 이후의 상황에서처럼 지방정부 차원의 전략으로 가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다대하다는 점이다.

결국 요약하면 보편주의가 잘못하면 대중에게 실망적인 모습만을 안겨주게 되어 오히려 진보진영의 무덤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독배를 마시는 것이라는 뜻이다.

과연 진보진영은 이런 가능성에 대해 진지한 성찰을 하고 있는가? 사실 최근 지방정부 권력의 장악이 이루어진 곳에서 무상급식을 제외하면 애초의 기대감과는 달리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할 것 같은 분위기도 보편적 복지가 자칫 무덤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심각하게 인식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현재 한국사회에 짙게, 그리고 공고하게 드리워진 잔여주의의 복지정책 기조와 국민인식을 일거에 전환시키는 기제로서 보편주의가 갖는 효력은 상당하다는 점이다. 점증주의에 입각한, 또는 재정의 한계 내라는 현실인식을 수용하는 한 서구가 100년간에 걸쳐 만들어낸 진보정당의 성과를 한국사회가 따라잡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하다는 점에서 여전히 보편주의는 전략적 유용성을 지니고 있다. 특히 2012년을 복지정치의 변곡점으로 상정한다면, 최근의 지방정부에서 하나씩의 보편적 복지 정책사례들을 만들어 가는 것은 현실적으로도 그리 큰 재정제약을 의식하지 않아도 된다.

무상보육, 보호자없는 병원, 도시보건지소의 설치, 농촌복지의 보편적 서비스 체계 확립, 장애인이동권 보장, 실질적 무상교육 등등 거론되는 정책사례를 선택과 집중을 통해 하나씩이라도 관철시켜 나가는 전략은 현실적으로 무리스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현재의 정치권이 이런 정도의 상황인식을 하고 있느냐, 이를 위한 최소한의 의지라도 불태울 수 있겠느냐, 그리고 현실적으로 이를 집행할 역량이 있겠느냐의 문제로 수렴되고 만다. 이마저도 자칭 진보라고 부르는 정치세력과 정치인이 할 수 없다면 보편적 복지는 그야말로 독배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독배(毒杯)냐, 성배(聖杯)냐? 이것은 결국 진보진영의 몫이고 이미 2012년을 생각한다면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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