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살충제 계란 파동, 누가 '분노'를 키웠나?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살충제 계란 파동, 누가 '분노'를 키웠나?

[안종주의 안전사회] 정부는 왜 살충제 계란 파동을 막지 못했나 <下>

(☞바로 가기 : 정부는 왜 살충제 계란 파동을 막지 못했나 <上> - 살충제 계란, 네 차례 경고 있었다)


유럽 발 살충제 계란 파동, 한국은 대응에 굼떴다

유럽에서 피프로닐 살충제 계란 파동이 터진 것은 7월 20일께였다. 벨기에가 유럽연합 사무국에 그 사실을 알리면서 이른바 살충제 계란 파동이 일어났다. 8월 초에는 네덜란드뿐만 아니라 유럽 전역으로 확산돼 엄청난 문제로 번졌다. 한국 언론도 8월초부터 눈에 띄게 이 문제를 다루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는 8월 7일이 되어서야 피프로닐 등 살충제 성분이 계란에 있는지 조사를 시작했다. 물론 전수조사도 아니었다. 그러다가 2곳에서 피프로닐 성분과 비펜트린 성분이 검출되자 부랴부랴 8월 14일 긴급 보도자료를 내고 전수조사에 들어갔다.

필자를 비롯해 이미 일부 언론이 유럽의 살충제 계란 파동이 남의 일이 아니라고 강력 대응을 할 것을 촉구했지만 정부는 위해식품 위기 파동이 올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관련 기사 : 살충제 계란 파동, 남의 일 아니다)

8월 14일부터 긴급대응을 한 것이다. 그나마 주무부처 간 손발이 맞지 않고 엉터리 조사결과를 엉터리로 발표하는 등 혼선을 빚어 국민의 불신을 자초하고 필요 이상으로 불신을 증폭시키는 빌미를 정부 스스로 제공했다.

우리나라 위해식품 파동(이 가운데는 위해식품이 아닌 것을 나중에 드러난 것도 있지만 일단은 여기에 모두 포함해 이야기함)은 여러 원인과 경로에 의해 일어났다. △검찰이나 경찰 수사로 불거진 사건(예를 들면 우지라면 사건, 불량만두사건, 통조림 포르말린 사건 등)이 있고 △소비자단체가 제기한 것(1989년 자몽 농약 알라 사건, 1996년 산분해간장 MCPD 사건 등), △언론 보도로 축발 된 것(1994년 소주 감미료 스테비오사이드 사건, 1995년 고름우유 사건 등), △업체 간 경쟁이 촉발한 것(1993년 화학조미료 유해 논란, 식품포장재 랩의 유해 공방), △외국에서 문제가 된 것이 국내에까지 확산된 것(1989년 자몽 농약 알라 사건, 멜라민 분유 파동, 말라카이트그린의 양식 물고기 사용 등) 등 매우 다양한 원인과 경로가 있다.

이밖에도 다른 여러 원인을 계기로 발생한 경우가 있으며 복합적인 것도 다수 있다. 이 가운데 국내에서 생산한 식품이 문제가 된 것도 있고 수입산 식품 때문에 문제가 된 것(납 꽃게와 기생충알 김치 사건, 낙지 카드뮴 검출 등)도 있다. 이번 살충제 계란 파동은 이 가운데 외국에서 문제가 된 것이 국내로까지 확산된 것으로 보면 된다.

이처럼 외국에서 문제가 된 것이 국내에서도 큰 파문을 일으킨 위해 식품사건으로 이어진 것이 한두 번이 아니므로 이런 위해 식품 파동 사례와 역사를 제대로 이해했다면 8월초에 즉각 전 산란계 농장을 대상으로 전수조사에 들어갔어야 했다. 하지만 정부의 대응은 굼떴다. 역사에서 교훈을 진정으로 얻지 못한 것이다.

총체적 위기관리 실패

정부는 살충제 계란 파동의 위기관리에 실패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처음 겪는 위기여서 더욱 국민에게 각인되고 또 뼈아프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도 인정한 바 있다. 두 번 다시 이와 유사한 실패를 겪지 않기 위해 <백서>를 만들 것을 지시한 것에서도 이미 입증됐다. 어디서 왜 위기관리에 실패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우리는 여러 차례 살충제 계란의 유통·소비 가능성과 위험성과 관련해 여러 단체와 사람들이 여러 시기에 걸쳐 지적 또는 경고한 바 있다. 하지만 이는 정부 관련자들에게 각인되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경고를 무시하거나 별 것 아닌 것으로 치부하게 만들었다.

질병이든, 사고든 예방이 최선이다. 하지만 인간에게 질병과 사고는 피할 수 없는 성격을 띠고 있다. 사고나 사건이 생기더라도, 특히 위해 식품 파동이 생기더라도 정신 차려 조기에 잘 대응하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고 만약 정부가 그런 능력을 발휘한다면 국민의 비판 강도는 그만큼 무뎌진다.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 그 뒤 정부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곧바로 회복된다.

우리가 세월호 참사에 대해 분노하는 것은 꼭 사건 예방을 하지 않아서만이 아니다. 더욱 분노한 것은 학생 등 배 안에 갇힌 승객을 구할 수 있었음에도 허둥대다가 초기구조에 실패해 모두 숨지게 만들었다는 안타까움과 그 시각 대통령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청와대에서 무얼 하고 있었는지조차 밝히지 않으면서 모르쇠와 면피에만 열을 올렸기 때문이다.

국민이 살충제 계란 파동이 터지자 문제가 된 농장의 계란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고 정부가 문제가 없다고 해 유통시킨 계란에 대해서도 소비하기를 꺼려하는 것은 정부에 대한 깊은 불신 때문이다. 정부가 유럽에서 살충제 계란 파동이 날로 확산되고 있을 시점에 식품안전 컨트롤타워인 식약처의 수장이 국내산 계란에 문제가 전혀 없다고 기자간담회에서 밝힌 것이 소비자들이 정부를 불신하게 된 첫 번째이자 가장 큰 빌미가 됐다.

그 뒤 계란에서 살충제가 검출됐음에도 농장의 이름과 난각코드를 정확하게 밝히지 않은 것과 뒤늦게 밝힌 것도 불신의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기준치 이하의 살충제 계란에 대한 처리를 놓고 말 바꾸기를 하고 부처마다 다른 말을 한 것, 난각코드 관리 부실, 친환경인증 농장에서 무더기로 살충제 계란이 나온 것, 가공식품에 쓰인 살충제 계란에 대한 정보를 신속하게 알려주지 않은 점, 살충제 계란의 책임 소재를 놓고 이전 정부 탓으로 돌리거나 현 정부 탓만 하는 여야의 대결 등이 모두 위기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인상을 국민에게 주었다.

시민들은 소소한 사실을 꼼꼼하게 따져 신뢰를 보내거나 위기관리의 성패를 생각하지 않는다. 자그마한 것이라도 혼선을 빚게 하고 말이 달라지고 정보가 바뀌는 일이 잦아지면 나중에는 모든 것을 믿지 않게 된다.

농식품부 장관과 식약처장의 뒤바뀐 역할

각 정부 부처는 나름대로의 고유 권한과 책임이 있다. 자신이 반드시 해야 할 의무도 있다. 축산안전과 관련해 두 부처 모두 책임이 있다. 하지만 농림축산식품부는 지금까지 식품안전보다는 식품진흥에 초점을 맞춰 정책과 행정을 펴왔다. 반면 식약처는 국민의 건강과 생명, 안전을 위해 식품의약품에 대한 규제와 위해 예방 행정을 펼쳐왔다. 물론 농식품부가 축산식품안전을, 식약처도 축산진흥에 때론 관심을 가지고 서로 협력해야 할 부분이 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자신들의 조직이 존재하는 근본 이유에 걸맞게 언행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한데 이번 살충제 계란 파동을 겪으면서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식약처장은 '국내산 계란은 안전하다.' '아무리 살충제 계란을 많이 먹어도 건강에는 해가 없다.' '기준치 이하의 계란은 유통하겠다.' 등 얼핏 보면 국민 안전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축산진흥과 양계농민 입장에서 발언하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반면 농식품부장관은 '기준치 이하의 살충제가 검출됐다 하더라도 이를 소비자들에게 먹으라고 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어서 전량 폐기하겠다.' '메추리와 오리도 조사겠다.' 등 양계농장이 아니라 국민의 심리적 불안까지 배려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역할이 바뀐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에 대해 한 재선의원은 김영록 장관은 오랫동안 국회 농해수위원회에서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면서 축산식품 위해 사건 등에 대한 경험이 많아 국민의 눈높이에 맞춘 발언이나 메시지를 내놓은 반면 류영진 처장은 식품 파동에 대한 경험이나 지식, 위기관리에 대한 식견이 없어 무조건 국민을 안심시키는 게 정부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란 진단을 내놓았다.

이를 축구 경기에 비유하자면 수비수 역할을 해야 할 농식품부는 골키퍼의 역할을, 골키퍼 역할을 해야 할 식약처는 수비수 역할을 자처하는 격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는 원칙적으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삼아야 한다. 그리고 그런 가운데 굳이 농축산인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은 식약처가 아닌 농식품부이다. 서로의 역할에 충실하고 서로 협력할 때 국민은 박수를 보낼 것이다.

리스크 커뮤니케이션의 원칙은 휴지통에

미국 환경청(EPA)는 다음과 같은 7대 원칙을 위해 소통 원칙으로 정했다. 식약처나 농식품부도 이러한 원칙을 토대로 위기나 위해식품 파동에 대응해왔다. 두 부처, 특히 식약처는 정부 부처 가운데 위기관리와 위해소통에 대해 가장 신경을 써온 대표적 부처로 꼽힌다. 10년 전부터 위기관리 또는 위기(위험)소통, 위험 메시지에 관한 매뉴얼과 연구보고서, 간부 실전 교육 등을 꾀해왔다.

특히 식약처로 승격하면서 소통협력과라는 조직까지 정부 부처로서는 처음으로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그동안 식품·의약품, 특히 위해 식품 파동을 너무나 자주 겪었기 때문에 나온 자구책이었다. 농림축산식품부도 식약처보다는 조금 못하지만 다른 부처에 견주어서는 나름대로 위기 대응이나 위해소통에 관심을 기울여 세미나를 하거나 연구프로젝트 등을 진행해왔다.

하지만 막상 두 부처 모두에 해당하는 위해 식품 파동이 생기자 서로 정보 교환도 제때 이루어지지 않았고 발표 내용도 혼선을 빚었다. 위기관리 매뉴얼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던 것인지, 아니면 쓸모가 없었던 것인지, 아예 이번에는 참고도 하지 않았는지 알 수 없다. 이는 앞으로 낱낱이 밝혀내야 할 대목이다. 탁상에서, 그리고 이론도, 실전을 대비한 모의훈련도 아무런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면 위해식품 파동뿐 아니라 앞으로 다른 분야에서 위기가 발생했을 때에도 허둥거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농식품부와 식약처가 살충제 계란 파동을 겪으면서 얼마나 위해 소통 원칙을 잘 지켰는지 세세하게 묻고 따져보자. 앞서 말한 미국 EPA의 소통원칙은 다음과 같다.

<미국 환경청 리스크 커뮤니케이션 7대 원칙>

1. 대중을 정당한 파트너로 인정하기
2. 대중의 구체적 불안 경청하기
3. 솔직하고 투명하게 이야기하기
4. 다른 신뢰성 있는 전문가들과 협력하기
5. 언론의 요구 충족하기
6. 연민을 담아 정확하게 말하기
7. 신중히 계획하고 평가하기
(출처 : <리스크 커뮤니케이션 퀵 가이드>, 식품의약품안전청, 2011)

정부는 소비자들의 불안에 제대로 대처 못해

리스크 커뮤니케이션 원칙은 어쩌면 피해자가 될 수 있는 대중의 불안을 잘 들어주고 설명할 것을 강조한다. 우리 소비자들은 자신들이 먹었거나 사둔, 또는 사려는 계란에 살충제가 들어 있는지, 기준치 이상인지, 문제의 농장에서 생산된 것인지, 먹었으면 얼마나 오랫동안 먹으면 문제가 되는지, 어린아이나 간질환, 콩팥질환자 등 독성물질 취약계층이나 취약자는 어떤지를 알고 싶어 한다. 만약 여기에 대해 명확하게 평가를 하고 정보를 제공한다면 불안은 확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위해성 평가는 더뎠고 그나마 만성위해에 대해서는 안심하라는 정부의 발표와는 달리 대한의사협회와 한국환경보건학회가 안심할 수 없다며 반박하고 나섰다. 이 대목은 4번째, '다른 신뢰성 있는 전문가들과 협력하기' 원칙과 맞지 않는다. 식약처가 위해성 평가를 발표할 때에는 관련된 거의 모든 학회 전문가들과 협의해 해야 하는데 그러질 않았다. 결국 소비자들은 -정확한 여론조사를 해보아야겠지만- 정부의 살충제 계란 무해성 발표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이는 혹을 떼려야 혹을 하나 더 붙인 혹부리영감 꼴이 되는 것이다.

정부는 각종 정보를 솔직하고 투명하게 이야기했는가?

우리는 2015년 메르스 사태 때 환자가 발생하고 감염이 확산된 병원을 감추는데 급급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막지 못한 뼈아픈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메르스 사태를 둘러싸고 여러 비판이 있지만 가장 핵심적인 비판이었다. 이밖에도 환자 가운데 메르스 환자가 발생한 병원 근무 의사가 있었음에도 이를 쉬쉬하고 발표를 미루는 등 일부 환자 발생에 대해 제때 발표하지 않아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런 것이 쌓여 메르스 위기 대응은 병원 의료진 등의 생명을 담보로 한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음에도 총체적 실패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번에도 이와 유사한 일이 벌어졌다. 살충제 계란이 나온 농장이 있으면 즉각 그 농장과 농장에서 생산한 달걀을 소비자 등이 알 수 있도록 하고 계란가공업체들이 식품에 사용하지 않도록 해야 함에도 농림축산식품부는 외면했다. 식약처가 뒤늦게 하루 가까이 지나 홈페이지에 공개하기는 했지만 이미 소비자들의 불신은 뇌리에 각인된 뒤였다. 여기서 우리는 당시 왜 농식품부가 농장을 실명으로 즉각 공개하지 않았는지 밝히도록 촉구해야 한다.

살충제 계란을 먹은 소비자들 마음을 외면

처음 들어본 살충제, 그것도 바퀴벌레를 죽이는데 사용한 살충제를 포함한 ‘맹독성’(일부 언론의 표현, 피프로닐은 보통독성 살충제로 분류돼 있음) 살충제가 계란에 들어 있고 자신과 가족, 특히 어린아이가 먹은 계란이 그 계란임을 알았다면 불안하게 여기는 것이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이다.

한데 식약처는 일부 살충제 계란의 경우 하루에 무려 6000개를 먹어도 유해성이 없다고 밝혔다. 이러한 정보나 메시지를 듣는 소비자들 가운데 안심하는 부류도 있겠지만 자신들의 불안 심리를 헤아리지 못한 발언으로 여기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들은 때론 자신들이 계란을 잘못 구매해 아이들의 건강을 해친 것은 아닌지 죄책감을 느낄 수 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겪은 부모들 가운데 상당수가 실제로 자신들이 사준 가습기살균제 때문에 아이들이 죽거나 크게 손상을 입었다면서 가슴을 쥐어짜기도 했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지금까지도 이로 인해 정신적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 살충제 계란은 가습기살균제까지는 아니더라도 불안한 심리를 지녔을 소비자들에 대해 틈나는 대로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발언과 메시지를 내놓아야 하는 성격의 위해식품 파동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정부의 대응은 분명 문제가 있다.

정부는 언론의 요구에 성실하게 응대했는가?

류영진 식약처장이 사태가 불거진 뒤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의원들의 질타에 일부 언론 탓을 해 부적절한 남 탓이 도마 위에 또 올랐다. 언론은 대중의 불안감을 증폭시키려는 속성이 있다. 매스미디어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상식으로 알고 있는 내용이다. 언론이 사실을 증폭시키는 이유가 무엇인지 파악해야 한다.

한데 식품안전의 사령탑이 언론의 그런 속성, 특히 위기 상황에서 언론이 보이는 속성을 깊이 있게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설혹 언론이 실제 이상으로 과장하는 것이 있더라도 이를 대놓고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위기 상황을 통제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위기 때는 조직의 책임자뿐만 아니라 대변인이나 실무책임자 등 모두가 언론의 속성을 잘 알아야 하고 위기 시 대응 메시지와 소통 전략, 그리고 소통 기술까지 체득화해야 한다. 이런 내용을 포함해 성공적인 리스크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팁이 자세하게 식약청(지금의 식약처)이 국민 세금으로 발주한 영구용역 결과인 <리스크 커뮤니케이션 퀵 가이드>에 자세하게 기술돼 있다. 식약처 간부들은 지금이라도 이 책을 읽어보기 바란다.

살충제 계란의 위험 특성도 모르고, 시민 분노의 중요성도 모르고

미국의 피터 샌드만(Peter Sandman)은 위험(또는 위해) 인식 이론 가운데 분노이론을 주창한 위해소통 전문가이다. 그는 리스크(Risk)=위해(Hazard)+분노(Outrage)란 대중의 위험 인식 공식을 만들어냈다. 이는 위험 커뮤니케이션, 위기관리 교과서에도 나오는 것이다. 두려움과 화남, 분노에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는 자발성, 공평성, 진행과정, 두려움, 도덕성, 익숙함, 기억 등이 있다.

살충제는 익숙한 위험이지만 살충제 계란은 우리 사회가 처음 맞닥뜨리는 유형의 위험이다. 자발성이 낮고 진행과정에 대한 신뢰성이 낮다. 하지만 방사능 누출이나 감염병 등과 견주면 위해 요소가 높은 축에는 끼지 않는다. 살충제 계란을 몇 개 먹고 당장 질병에 걸리거나 사망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시민들이 잘 알고 있다. 이와 관련한 패닉은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나타나지 않았다. 살충제 계란을 장기간 먹고 문제가 생길 위험성에 대해서는 공포까지는 아니지만 찜찜해 하고 어떤 이들은 불안해한다.

하지만 이것도 당장 질병에 걸린 사람이 나타나지 않고 기준치를 심하게 넘은 계란도 많지 않아 이와 관련한 분노도 그리 높지 않은 것으로 판단한다. 하지만 도덕성에 대한 분노는 매우 크다. 정부가 국회와 민간단체, 언론 등의 사전경고가 있었음에도 이를 무시했다는 도덕성과 농장주들이 금지된 살충제를 쓴 사실, 친환경농장들이 살충제를 써 소비자들에게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을 받고 살충제 계란을 먹여온 점, 더구나 그들에게 국민 세금으로 몇 천만 원이라는 거금을 지원해온 사실, 친환경인증 관리가 엉망이었다는 사실 등이 국민의 분노를 더욱 증폭시켰다.

살충제 계란 식품 위해 파동은 피터 샌드만에 따르면 ‘낮은 위험+높은 분노’의 요소를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여기서는 분노 감정을 진정시키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소통 전략도 공포 조절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따라서 이해관계자의 의견과 걱정 파악에 집중해야 한다. 이해관계자, 즉 소비자들과 또 산란계 농장(성실하게 안전한 계란을 만들어온 농장도 많지 않은가. 이들도 이번 사태의 피해자다.)의 의견과 이들의 걱정과 불안을 덜어주고 달래며 잘못한 점을 틈나는 대로 다양하게 피력해주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소통 전략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 책임자의 태도(웃거나, 조직 내부 분란을 들추어내기-직원 탓)는 소비자들의 분노를 돋운다. 이를 포착한 언론은 이런 사실을 비판적으로 내보냄으로써 관심이 없던 소비자들에게까지 분노가 전파된다. 지금이라도 국민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사과하고, 안전한 식품 관리를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분노 상태에서는 아무리 좋은 이야기도 좋게 들리지 않는다. 아무리 맞는 말이라도 맞는 말로 듣지 않는다. 분노 상태는 경청하려는 뇌가 마비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화가 나 격렬한 말다툼을 할 때 상대방의 말과 심지어는 자신이 한말까지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지금 정부는 국민의 분노를 틈나는 대로 달랠 궁리를 해야 할 때이다.

백서는 독립편집위원회를 꾸려 펴내야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살충제 계란 파동의 과정, 즉 사태 발발 전과 발발 후 혼선을 빚은 일 등 공과를 낱낱이 기록해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할 것을 지시했다고 한다. 너무나 당연한 조치이다. 위해 식품 사태든, 안전사고든, 자연재해든, 감염병 창궐 사태든 대형사건·사고에 대해서는 철저한 진상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제대로 이루어져야만 그것을 토대로 재발방지 대책도 만들고 조직과 인력도 보완해 안전한 국가의 초석을 다질 수 있다.

우리는 그동안 많은 사건이나 재난을 겪으면서 백서를 만들어왔다. 민간 백서도 있지만 중앙정부나 지자체의 백서도 있다. 태안기름유출사건과 관련해서는 태안군이 발간한 허베이스피리트호 기름유출 사건 백서가 나와 있다. 메르스 사태를 다룬 백서는 중앙정부와 지자체등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펴냈다. 최근에는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초기 과정을 다룬 백서도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가 국민 세금으로 펴낸 바 있다.

백서는 일종의 역사 기록이다. 있는 그대로 드러내야 한다. 변명과 자화자찬으로 메워져 있으면 국민은 또 한 번 분노한다. 하지만 우리는 자가비판에 익숙지 않다. 어떤 식으로든지 변명을 하려 한다. 따라서 백서 발간을 식약처나 농식품부, 총리실에 맡겨서는 안 된다. 이들은 어디까지나 정보와 자료, 비용만 제공하고 독립적인 편찬위원회를 꾸려 펴내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위원회에는 관련 정부 부처 공무원들은 부처별 간사 격으로 한 명 정도씩 들어오고 나머지는 민간이 다수로 참여해야 한다. 이번 사태에 대해 소상히 알고 이 분야에 대해 지식도 있으며 글도 잘 쓰는 전문가들로 구성하면 국민의 눈높이에 맞춘 백서를 낼 수 있어 금상첨화일 것이다.

위기는 예방이 중요하며 예방에 실패했을 때는 초기 대응이 중요하다. 만약 이마저도 실패했다면 엄정한 평가가 중요하다. 살충제 계란 파동이 바로 여기에 속한다. 살충제 계란 파동은 아직 끝나지 않은 현재진행형이므로 조만간 수습돼 종국으로 치달을 때쯤이면 백서발간위원회를 꾸릴 것을 제안한다.

살충제 계란 파동은 문재인 정부 들어 처음 겪는 위기이다. 이 위기를 조기에 수습하는 데는 실패했다. 하지만 실패가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미국에는 실패박물관이 있어 다른 사람과 기업, 조직이 비슷한 실패를 겪지 않도록 하는, 교육훈련장의 구실을 하고 있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도 이번 실패를 교훈으로 삼아 앞으로 위기 예방과 위기 조기 대응에 훌륭한 전범(典範)으로 삼기 바란다. 위기는 기회다. 1982년 존슨앤존슨사가 타이레놀 청산가리 사망 사건 때 그것을 보여주었다. 위기냐 아니냐는 결국 사람에 달렸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