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민주당 비대위 대표조차 최근 기자들과 만나 "뭔가 이슈를 갖고 (후보들이)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고 치고 받아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되는 것 같다"며 흥행 부진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최재성 15대 때 신한국당 공천 신청"
외부 관심은 모아지지 않는데 내부는 진흙탕 싸움 양상이 되고 있다. 28일 MBC가 방영한 민주당 전당대회 후보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상대 흠집 내기에 집중했다.
조배숙 후보는 이날 "최재성 후보가 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국당에 입당하고 공천을 신청했다"며 "당원들이 실망과 배신감을 느끼고 있으며 더욱이 이런 사실을 지금까지 은폐했다면 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공격했다.
이에 최재성 후보는 "조배숙 후보가 지지율이 안 오르니 답답하신 모양"이라는 비아냥으로 답변을 시작했다. 최 후보는 "당시 신한국당에서 먼저 전략공천 제안이 와서 그것을 승낙했다가 철회 요청했을 뿐"이라며 "2004년 총선 때 그 사실에 대해 이미 충분히 소명하고 설명했었다"고 주장했다.
1위 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다투고 있는 이른바 '빅3'도 서로를 향해 칼날을 겨누었다. 정세균 후보는 손학규 후보를 향해 "시작도 안 한 사람과 재수, 삼수를 한 사람을 똑같이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고 공격했다. 손 후보가 대선 후보 경선에서 진 경험이 있음을 꼬집은 것이다.
반면 손 후보 측은 2년 동안 당 대표를 지냈음에도 현저하게 낮은 정세균 후보의 인지도와 지지율을 물고 늘어졌다. 손 후보는 "민주당은 당의 얼굴, 당의 대표가 누구냐에 따라 집권능력, 수권능력을 평가 받는다"며 "'저런 사람이 대표면 집권이 가능하겠다'는 얘기가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 민주당 당 대표 및 최고위원 선거에 나온 이른바 '빅3'. 왼쪽부터 정세균 후보, 손학규 후보, 정동영 후보. ⓒ연합뉴스 |
"정세균 민주당, 한나라가 우습게 본다"
정동영, 박주선, 천정배 후보 등 '민주희망쇄신연대'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후보들도 정세균 후보 공격에 열을 올렸다. 박주선 후보는 무산된 486(40대, 80년대 학번, 6월항쟁 세대) 단일화와 관련해 정세균 후보에게 "486 단일화 불발을 조장했냐"고 따져 물었다. 박주선 후보는 "선배인 정 후보가 후배 정치인들에게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라'고 했어야 하지 않느냐"고 덧붙였다.
이에 정세균 후보는 "안주하거나 사퇴하거나 자신들의 정치적 결정에 따라 하는 것"이라며 '최재성 완주 압박' 의혹을 부인했다.
천정배 후보도 정세균 후보가 대표였던 2008년의 국회 등원을 거론했다. 천 후보는 "당시 민주당이 전면 투쟁에 나섰지만 아무 것도 얻지 못한 채 등원했다"며 "말만 앞세우고 슬그머니 굴복하니까 한나라당이 민주당을 우습게 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같은 공격에 정 후보는 "천 후보는 평당원인가 아니면 당의 책임 있는 사람이냐"고 역공을 펼쳤다.
집단지도체제로의 회귀, 위험보다 안정 택한 '빅3'의 암묵적 동의
막바지로 가면서 후보들 간의 신경전은 조금씩 달아오르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김빠진' 분위기가 된 가장 큰 이유는 누가 뭐래도 선거 방식이다. 민주당이 집단지도체제를 선택함과 동시에 이른바 '빅3'의 무난한 지도부 안착이 뻔히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전당대회 흥행 참패'는 민주당 스스로의 선택이었다.
지난 2년 동안 당 대표가 독보적 리더십을 갖는 단일지도체제로 운영됐던 민주당은 이번 전당대회를 앞두고 열린우리당 시절 운영 방식이었던 순수집단지도체제로 회귀했다. 물론 각각의 장단점은 있다.
단일지도체제를 주장했던 정세균 전 대표 측은 단일지도체제의 장점을 강조했다. 당 대표로 집중된 지도력을 통해 강한 야당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었다. 반면 집단지도체제를 요구한 민주당 내 '반(反) 정세균' 세력 모임인 쇄신연대는 단점을 부각시켰다. 당 대표의 독재가 가능한 구조로 민주적 소통이 되지 않으며, 차기 대선 후보를 키우는 데도 부적합하다는 것이었다.
오랫동안 이어진 이 논쟁은 정동영-손학규 측이 손을 잡으면서 쇄신연대의 승리로 끝났다. 정세균 측도 강력하게 반발하지는 않았다. 이들 '빅3'의 이런 암묵적 동의는 당 대표 선거에서 패배했을 때의 상처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됐다. 집단지도체제는 수익률은 낮으나 안정성이 높은 장점이 있기 때문이었다.
'빅3'의 동거, 민주당과 잠재적 대선 후보에게 득일까, 실일까?
문제는 '빅3'의 동거가 가져올 결과다. 현재로서는 손학규, 정동영, 정세균 후보가 모두 각축전을 벌이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는 누가 당 대표가 되더라도 압도적 1위가 되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가장 지지율이 낮은 정세균 후보조차 대권의 꿈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밝히고 있는 만큼, 세 사람의 내부 경쟁은 새로운 지도부 임기 내내 치열할 수밖에 없다. 민주당 판 '안상수-홍준표 공방'이 매일 아침 지도부 회의에서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반대로 잠재적 대선 후보들의 경쟁이 민주당에 득이 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역대 최약체 야당"이라는 조롱을 받다가 6.2 지방선거 이후 반짝 정국 주도권을 가져 왔던 민주당이 내부 권력 싸움에 골몰하는 기회를 여당이 놓칠 리 없다.
대선 후보자 본인들에게도 유리할 것은 없다. 손에 쥔 권력보다 그로 인해 져야 할 책임이 더 크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 권력은 나눠가졌을지 모르나, 국민의 싸늘한 시선은 그들 모두에게 향한다.
때문에 민주당 한 중진 의원은 "전당대회 이후가 더 문제"라며 "'빅3'가 잘 못하면 정세균 지도부 공백기 동안 민주당을 잘 이끌었던 박지원 대표만 더 띄워주는 결과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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