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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 것 다 묵어도 나이는 묵을 것이 못 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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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 것 다 묵어도 나이는 묵을 것이 못 돼야"

[섬진강변 두계마을 이야기] 내 밭에 원군이 : 탑골댁 할머니

밭고랑에 무성한 풀을 보다 못해 원군이 나타났다. 탑골댁 할머니다. "놀면 뭣해" 하면서 어디든 필요한 곳에 손 보태기를 좋아하신다.

그 옛날 탑골에서 시집을 왔다하여 탑골댁이라 불리는 이 할머니는 올해 연세가 여든 다섯. 허리가 꼬부라져서 걷는 것도 힘들어 보이는데, 밭에서는 풀매는 솜씨가 어찌 그리 날랜지. 풀뿌리 잡아 뽑는 손힘이 나보다 억세다.

나라면 풀 매느라 사흘은 족히 걸렸을 것을 탑골댁 할머니는 두 세시간만에 말끔하게 해놓으신다. 정자에서 앉아 놀 때도 가만있지를 못하고 주위의 풀을 뽑는 분이다.


"작년부터 사람이 못써져부렀어. 오만 것 다 묵어도 나이는 묵을 것이 못 돼야."


힘들어서 이제 농사도 못하신단다. 그래도 허리만 빼면 비교적 건강하신 편이다. 오랫동안 허리를 구부리고 농사일을 한데다 부실한 영양상태가 허리를 구부러지게 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가만 보면 구부러진 허리로도 졸졸졸졸 걸음이 빠르다.

"예전에는 다들 나보고 빨리 걷는다고 했지. 양다리 안쪽이 당기고 아프더니 그만 허리가 고부라지데."


허망한 듯 웃는다. 몇 년 빨리 내려왔더라면 탑골 할머니의 팔팔한 모습을 볼 수 있었을 텐데 참으로 아쉽다.

일남 삼녀를 두었는데 육십에 혼자 되셨다. 아들은 광주에 살고, 큰딸은 남원에서 농사를 많이 짓고 나머지 딸 둘은 서울 구로구 어디에 산다. 겨울에는 마을회관에 다들 모여서 점심 한 끼는 같이 해먹지만 농사철에는 꼬박 혼자 밥을 해서 드신다.

"그래도 우리 마을이 참 좋은 데여. 여태꺼정은 좋았어. 앞으로도 내내 좋아야 할 텐디."


내 맘이 바로 그 맘이다.

▲ ⓒ김영희

▲ ⓒ김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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