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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티끌 하나에도 손길이 닿은 듯 정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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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티끌 하나에도 손길이 닿은 듯 정갈하다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의 수상한 여행 2] ㉔몸이 부들부들 떨려요

10월 4일. 기분 전환도 할 겸 오카야마에서 하루 쉬며 일본의 3대 정원 중 하나라고 하는 고라쿠엔을 찾았다. 녹차 밭과 노랗게 익은 벼, 굽이도는 물길, 이름 모를 조경수들이 2만여 평의 정원에 아기자기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자리하고 있었다.

티끌 하나에도 손길이 닿은 듯 정갈하다.

너무 고요해서 내 숨소리가 낯설다. 추니와 얘기를 하다가 깜짝 놀라 뒤돌아보니 바로 뒤에 숨죽인 듯 누군가가 있었다. 우리가 소란스레 폐를 끼쳤나 보다.
“녹차 라떼 두 잔 주세요.”

특별한 이유 없이 갈증이 나고 목이 탔다. 별일 없이 갑자기 가슴이 쿵쿵 뛴다.

고라쿠엔은 에도 시대를 대표하는 다이묘의 정원이라고 한다. 오카야마성과 한 뼘 울타리로 구분되어 있는데 성주의 후원(後苑)인 셈이다.

역대 영주들의 아련한 추억들이 배어 있는 곳인 ‘고라쿠엔’은 ‘근심을 먼저하고 나중에 즐거움을 누린다’는 의미에서 지어진 이름이란다.

▲고라쿠엔.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고라쿠엔.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고라쿠엔.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10월 5일. 오카야마를 떠나 후쿠야마로 향했다. 자전거 여행을 하는 건지 길 찾기 게임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거미줄 같이 얽혀 있어 신호 대기 중인 운전기사에게, 벼 베는 아저씨에게, 시장바구니를 든 아주머니에게 닥치는 대로 길을 물었다.

▲후쿠야마.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후쿠야마.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후쿠야마.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후쿠야마에 도착해 다음 날 도착지인 히가시(東) 히로시마에 호텔 예약을 하려고 ‘호텔스닷컴’ 앱을 활용했다.

엊그제 TV에서 올해 중국인 관광객의 일본 방문이 두 배 이상 늘어났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었는데 이렇게 숙박 시설이 동이 날 줄은 몰랐다.

프런트에 내려가 도움을 청해 봤지만 직원들도 결국 해결해 주지 못했다.

이곳 후쿠야마에서 히가시 히로시마까지는 70km 떨어진 곳이고, 거기서 목적지인 히로시마까지 가려면 40km를 더 달려 총 110km를 가야 한다.

그렇다면 아예 무리를 해서라도 목적지인 히로시마까지 가 보려고 숙소 예약을 시도했으나 역시 헛수고였다.

“히가시 히로시마는 물론 히로시마에도 호텔이 모두 만실인가 보다.”
“앞으로 3일 동안 숙소가 없다니, 이럴 수가.”

“이곳 후쿠야마에 묵으면서 숙소가 날 때까지 계속 기다려 볼까?”
“아니야. 설마 사람 사는 곳에, 그 많은 호텔 중에 빈방 하나 없을까? 그냥 가 보자고.”

“막상 현지에 도착했는데 방이 없으면 어떡하려고요?”
나의 대책 없는 제안에 추니가 걱정을 한다.
“그럴 수도 있지.”

“이곳에서 며칠 더 묵으며 수소문해 보면 혹시 빈방이 나오지 않을까요?”
추니의 현실적인 판단이다.

“파출소에서 자든지 역전에서 자든지, 어쨌든 가 보자고.”
“좋아요. 가요. 그보다 더한 상황도 있었는데 뭐.”
추니가 결심을 굳혔다.

10월 6일 07시 50분. 아침 일찍 출발을 서둘렀다. 사실 오늘이 66일 째 일본 종단의 마지막 날이다. 떠나기 전 준비 체조를 하는데 온몸이 뻐근하다.

후쿠야마에서 국도 2호선을 따라 미하라시까지는 작은 부락들을 들르면서 해안선을 따라 순조롭게 달렸다.

그러나 출발 35km 지점에서부터 급경사가 시작돼 산속 터널을 들락거리는 고속철 신칸센과 만났다가 헤어지기를 반복했다. 인도를 겸한 갓길이 있는데 노면이 좋지 않아 과속하는 대형 트럭들과 함께 차도를 달리느라 신경전을 벌여야 했다.

▲히로시마.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히로시마.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히로시마.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이 길은 교통량이 많고 조금 더 가면 긴 터널이 나오니, 한적한 도로로 가시는 게 좋을 겁니다.”

히가시 히로시마를 20km 앞두고 ‘Eneos TS’라는 주유소 옆에서 잠깐 쉬고 있는데 어떤 신사가 다가와 우리에게 조언을 해줬다.
“어느 길로요?”

“바로 저기 왼쪽 330번 지방도를 타면 차량이 거의 없어요.”
그렇지 않아도 터널을 통과하느라 몹시 신경이 예민해져 있는 상황이었는데 좋은 정보였다.
“네, 고맙습니다.”

즉시 핸들을 돌려 지방도로 접어드니 정말 차량을 거의 볼 수 없었다. 평지를 잠시 지나 니카 부락에 다다르자 엄청 가파른 고개가 나타났다.

“헉! 이거 어쩌지? 다시 되돌아갈 수도 없고.”
도저히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기도 힘든 고개였다. 하지만 할 수 없이 오르기 시작했다. 몸은 지칠 대로 지쳐있고, 배도 고픈데 간식거리도 떨어졌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려요.”
뒤따라오는 추니의 말이다. 너무 힘들고 배가 고파 나타나는 증상이었다. 니카댐이 있는 산 정상에 오르니 거의 탈진이 됐다.

▲히로시마.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히가시 히로시마까지는 아직 멀었는데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오후 5시. 세 명의 페이스북 친구들로부터 지인들을 통해 히로시마에 숙소를 예약했다는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와우! 이럴 수가.”
후쿠야마에서 온갖 수소문을 해도 빈방이 없었는데 친구들은 도대체 어떻게 방을 구했을까? 하여튼 그중에서 며칠 전 아카시를 지날 때 맛있는 점심을 대접해줬던 친구 김종희 씨가 예약해 준 방을 택하고 나머지 두 개는 취소를 요청했다. 미안하고 감사했다.

사실은 길 찾으랴 고갯길 넘으랴 정신이 없어 숙박 걱정은 잊어버린 상태였다. 이제 급한 일은 어둡기 전에 히로시마에 도착하는 것이다.

오후 6시 반. 서서히 날은 어두워지는데 목적지 히로시마 전방 40km에 위치한 히가시 히로시마에 도착했다. 이제부터 330번 지방도 고갯길을 벗어나 국도로 다시 들어서서 차량들과 함께 히로시마를 향해 달려야 한다.

우린 전조등을 켜고 헬멧과 가방에 부착된 깜빡이 여덟 개를 모두 점등했다. 마치 화려한 네온사인이 반짝이는 이동식 단란주점 같았다.

히가시 히로시마에서 10km정도 달려 하치혼마쓰에 다다르자 가파른 내리막길이 시작됐다.

“야호! 야호!”
어디까지인 줄은 모르지만 한 시간을 넘게 핸들만 꽉 쥐고 브레이크를 계속 밟아댔다. 이렇게 내리막길만 계속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마침내 내리막길 끝에서 히로시마를 만났다.

▲히로시마.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국도 2호선이여, 안녕!
정말 힘들었지만 안전하게 도착했어. 감사해.

숙소는 바로 히로시마 JR기차역과 붙어 있는 비아 인 호텔이었다. 지배인에게 양해를 구해 방까지 자전거를 갖고 들어왔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우린 서로 부둥켜안은 채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수많은 장면들이 뇌리에 스쳐 지나갔다. 눈물을 글썽였다.

추니, 너무 고생했다.
추니, 정말 사랑한다.

▲히로시마.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히로시마.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히로시마.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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