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9 탈핵' 선언으로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과 탈(脫)원전 이슈가 도마 위에 올랐다. 원자력 산업계는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으로 원전 수출길이 막혔고, 수조 원의 매몰 비용과 수많은 일자리를 잃고 경기 하락 등 피해가 상당하다는 볼멘소리다.
단군 이래 가장 큰 20조 원 규모라는 UAE 원전 수출을 자랑하던 우리나라 원전 산업이 어떻게 한순간에 이렇게 되었을까.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목격하고 잔뜩 불안한 국민에게 2012년 하반기부터 원전 산업계에 고질적인 부품 비리가 터졌고, 월성1호기 계속 운전, 신고리 5,6 건설 인허가 과정에서 나타난 부실 논란, 그리고 제반 가동 원전 현안과 함께 무엇보다 아직 최종 처분장 조사조차 못 하고 있는 사용후핵연료를 포함한 핵폐기물 영구 처분 등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안전 현안은 미결 상태로 잔뜩 쌓여있다. 이와 함께 그동안 원전 건설 공정에서 핵심인 원전 설계를 주로 가르치는 원자력 공학과 선후배들에 의해 진흥과 규제의 양단을 통털어 구성된 인적 네트워크는 핵마피아라는 오명을 안고 폐쇄성이 뿌리 깊게 유지되어 왔다. 이런 곳에 과연 어떤 안전문화가 싹틀 수 있을 것인가.
최근 한빛 4호기 격납용기 철판 부식 문제 하나만 들여다봐도 알 수 있다. 지난해 5월 한빛원전에서 초기 발견된 철판 부식 문제에 적극적인 해결 노력이 없었다. 전국 원전을 조사하자 문제가 고리/한울원전에서 추가로 확인되었다. 그래도 당국은 원인 규명이 어렵고 별문제가 아닌 듯 한국형 원전에서는 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답변하였다. 결국 한국형 원전인 한빛 4호기에서 격납용기 내면에 두께의 15% 상당 깊이로 격납용기 원주형 공극이 발생된 사실이 지난 7월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 발표로 공개되었다. 이는 격납용기의 원주형 대형 크랙(균열)으로 간주되어 격납용기 안전기능 자체가 우려된다.
특히 해당 격납용기 부위는 구조적으로 하중이 집중되는 취약한 부위인데, 120센티미터(cm) 벽두께의 85%만이 전 원주 방향으로 유지되어 아찔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또한 1990년대 시공 당시 철판과 콘크리트 사이에 공극이 있다는 작업자 제보가 기록되어 내려온 사실이 최근 확인된 바 있다. 이처럼 주민들이 알고 있었던 사실이고, 책까지 출판하여 공식적으로 문제제기한 사실을 사업자와 규제 당국이 몰랐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주민들의 문제 제기에 대해 외면하고 묵살한 규제 당국은 직무유기를 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원안위 보도자료에 따르면, 발견된 한빛 4호기 콘크리트 벽의 공극 문제에 대하여 '한수원의 안전성평가 결과 허용범위 이내'라고 소개하였는데 사업자를 대변하는 듯하다. 원안위는 단순 사건 경과를 정리해서 발표하거나 사업자 평가 결과를 소개하는 기관이 아니다. 원안위는 원전의 안전 규제를 책임지고 있는 국가기관이다. 사업자가 스스로 한 안전 평가는 이해당사자라는 점에서 불리한 사실은 숨길 수 있고, 평가의 주체라기보다는 평가의 대상이므로 투명하고 공정한 평가는 독립적인 제3자가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막상 보도자료에서는 한빛 4호기 격납용기 공극 문제의 안전성 여부에 대한 원안위 입장을 국민에게 분명히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원안위가 안전성에 대한 객관적인 입장을 국민에게 제시하지 못하면 무용지물 아닌가? 당장 불안한 지역 주민들은 같은 공법을 적용한 한국형 원전을 모두 즉각 정지시키고 전면 조사를 요구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이처럼 원안위가 사업자에게 지시만 했지 안전을 위해 제대로 한 일이 없고, 안전성 여부에 대한 주민과 시민 사회와 소통도 없으니 무용지물론이 나오는 것이다. 규제와 안전이 완전히 따로 노는 지난 정부의 원안위 적폐가 촛불정부에서도 변화 없이 그대로 유지되는 모양이다.
이 문제는 초기부터 제대로 공개하고 안전을 위해 보다 진지한 노력이 필요하였다. 그러나 정보를 제한시키고 은폐하려다 시민 사회 압력으로 마지못해 밀려 조사가 확대되면서 문제가 점점 더 밝혀지고 커지게 되어 또다시 원전산업계 안전문화 수준이 초라하게 드러난 꼴이다. 그동안 원전산업계는 원전기술을 수입/복제하여 이젠 수출도 하게 되었지만, 막상 중요한 원자력 안전문화는 제대로 들여오지 못해 우리나라에 잘 정착되지 못하였다. 이 점이 우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이지만, 원전 산업계가 중요한 안전문화를 제대로 인식조차 못하고 있다는 문제가 있다.
이렇게 은폐가 허다한 안전문화 속에 지금까지 진행되어 온 원자력 산업에는 은폐사실들이 상당히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필자는 모든 안전 관련 은폐 사실을 제보와 함께 전면 조사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2의 원전안전조사 캠페인을 무제한 실시할 것을 제안한다. 지난 원전 비리는 처벌이 목적이었으나, 지금의 조사는 처벌이 목적이 아니고 안전 조치를 위한 점에서 차별화 되어야 한다.
'무엇을 위한 탈원전 정책인가' 다시 되물어 본다. 원전 불안에서 나온 탈원전 정책이므로 과거 어느 정부보다 이번 정부에게 획기적인 안전 대책을 기대함이 클 수밖에 없다. 그러나 탈원전 선언 하나로 원전 불안이 해소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밥그릇 챙기며 조용히 지시만 기다리고 있고, 청와대는 신고리 5,6 건설 중단 관련 사회적 합의에만 매달리는 모습이다. 신고리 5,6 건설 중단 논란 속에 탈원전 반대 측 주장으로 국내 원전 안전성은 어느새 현실과 동떨어지게 슬그머니 세계 최고 수준으로 올라섰다. 현 안전문화 수준으로 낯 뜨거운 주장이 아닐 수 없다.
지난 6월 문재인 대통령이 언급한 국가안보 차원으로 원전 안전대책을 추진하겠다고 했지만, 막상 안전과 국가 재난 방재 대책을 수립하고 이행을 위한 범 부처를 아우르는 컨트롤 타워도 보이지 않고 있으며 새로운 가동 원전 안전대책도 아직 보이지 않고 있다. 진흥 논리가 지배하던 지난 정부처럼 이번 정부도 탈핵 논리에 치중하여 안전은 뒷전이고 마는 것인가. 탈원전이 60년 뒤라면, 원전 안전은 코앞에 닥친 발등의 불이다.
국가 에너지의 획기적인 전환을 다루는 탈원전 정책이 조속히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필자는 '국가안보'를 지킨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모든 것을 기본에서부터 낱낱이 점검하는 안전문화를 조속히 정착시키고 국가 재난에 준한 안전과 방재대책을 수립, 이행하는 '개혁' 또한 한시도 늦출 수 없다고 생각한다. 국민안전을 최고로 생각하는 문재인 정부가 반드시 성공하길 기원하며 원전이 불안한 국민을 위한 국가 안보 차원의 안전 대책이 조속히 나오길 간절히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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