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무더운 날, 가로수 한 그루 없는 길을 걸어야 한다면
너무 무더운 나날이다. 이 더위에 한 그루 가로수도 없는 길을 걸어야 한다면… 참으로 아찔하다. 가로수가 한 줄로 서있기만 해도 사람 체온을 2, 3도까지 낮춰준다는 보도도 있었다. 실제 가로수 한 그루는 무려 에어컨 20대에 상당하는 시원함을 제공한다.
내가 오가는 출퇴근길에 회화나무 가로수들이 줄지어 서 있다. 그 가로수들은 길가에서 '인간을 위해' 매캐한 자동차 매연을 견디며 사시사철, 혹한과 혹서의 나날을 힘겹게 버틴다. 그런데 올 여름에 이곳에 심어진 회화나무 가로수 다섯 그루가 죽어갔다.
창덕궁과 정동길 그리고 천 원 지폐의 '지체 높은' 회화나무
회화나무는 우리 선조들이 최고의 길상목(吉祥木)으로 손꼽아 온 '지체 높은' 나무다. 이 나무를 집 안에 심으면 가문이 번창하고 큰 학자나 큰 인물이 난다고 했다.
회화나무는 자라면서 쭉쭉 뻗어나는 그 모습이 학자처럼 그 기상이 자유롭다고 해 '학자수(Scholar Tree)'라는 명성을 지녔다. 중국에서는 옛날 재판관이 송사를 할 때 반드시 회화나무 가지를 들고 재판에 임했다. 우리의 창덕궁에도 수백 년 된 회화나무가 자라고 있고, 정동길에는 6백 년이나 된 회화나무가 멋들어진 위용을 뽐내고 있다.
회화나무는 잎 모양이 아카시나무 잎과 비슷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은 회화나무를 알아보지 못하고 아카시나무로 생각한다. 회화나무는 콩과 식물이라서 뿌리혹박테리아가 질소를 만들어내므로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란다. 특히 공해에도 강하기 때문에 가로수로 널리 심어져왔다.
예로부터 장사하는 사람의 집 앞에 회화나무를 심으면 손님이 끊이지 않으며(그러니 가게 앞 회화나무 가로수는 오히려 받들어 모셔야 할 일이다!), 공부하는 사람의 집 앞에 심으면 문리(文理)가 트이게 된다고 전해져 왔다. 유학(儒學)의 유적지에는 회화나무가 심어져 있는데, 우리 천 원짜리 지폐 뒷면의 도산서원을 둘러싼 무성한 나무들이 바로 회화나무다.
내가 근무하는 국회 경내에는 씨로 날려져 여기저기서 싹이 튼 어린 회화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1, 2년 내 국회 경내의 정원 관리를 위해 뽑히거나 사라질 운명이다. 10여 년 전에 그 중 한 그루 작은 회화나무를 캐다가 화분에 심었다가 지금은 집 뜰에 심어놨더니 이미 밑동이 제법 튼실해지고 키도 훤칠해졌다.
인간의 탐욕으로 죽어가는 가로수들
7, 8년 전에 여의도 한강변 포플러 나무가 몇 그루 죽어서 필자가 민원을 제기한 적이 있었다. 당시 누군가 나무에 약물을 투입하는 CCTV 화면이 발견되었다는 회신이 왔었다. 무슨 이유에선지 모르지만 그 뒤 진척은 없었다. 어쨌든 당시 필자도 나무가 간판이나 가게를 가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약물을 투입해 나무를 죽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모두 내가 오가는 도로에서 모두 다섯 그루의 회화나무 가로수가 죽어있는 사실을 두 차례에 걸쳐 구청에 신고하고 조치를 요구했다. 구청에서도 의혹이 있을 수 있다며 조치를 취하고 있다는 회신을 했다.
물론 이들 가로수의 고사(枯死)에는 다른 요인이 있을 수 있다. 본래 플라타너스 가로수 외의 활엽수 가로수는 가지치기(전지)를 하지 않았었다. 그러던 것이 플라타너스 가로수가 상대적으로 적어지자 이제 은행나무나 회화나무와 같은 활엽수 가로수도 무자비하게 가지치기를 하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적지 않은 가로수가 후유증으로 죽었다(내가 이 문제를 서울시에 제기하자 담당자는 이제 플라타너스 외의 활엽수 가로수 가지치기를 하지 않겠다고 답변했다).
인간과 나무 그리고 우리의 푸르른 환경
인간의 탐욕으로 다섯 그루의 회화나무 가로수가 죽었다. 이제 그들의 떠남으로 다른 회화나무 가로수가 다시는 희생되지 않았으면 한다. 그리고 지금 내가 쓰는 이 글이 단 한 사람이라도 더 나무와 환경의 소중함을 생각할 수 있게 해 '환경 파괴'의 우리 시대에 가로수들도 시달림을 당하지 않고 인간과 함께 푸르른 공존이 가능하게 되기를 이 무더운 날에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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