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기는 검찰의 불법사찰 중간수사결과다. 박영준 국무차장의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못한 검찰의 수사결과 덕에 그는 일단 면죄부를 받았다. '몸통' 의혹에서 일단 벗어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어떨까? 검찰의 수사결과를 발판 삼아 그는 건재를 과시할까?
외양만 놓고 보면 그렇게 단언할 수 없다. 검찰이 수사를 종결한 게 아니라고 하니까, 그에 대해 계속 수사하겠다고 하니까 형식상 그의 '의혹 세탁'은 완결된 게 아니라 보류된 것이다. 게다가 검찰의 수사결과에 반발하는 야당이 국정조사와 특검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하니까 자칫하다간 다시 논란의 한 가운데로 끌려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약하다. 중간 수사결과가 곧 최종 수사결과였던 검찰의 수사 관행, 그리고 특검 도입의 열쇠를 쥐고 있는 거대 여당의 수사결과 '존중' 입장을 봐서는 박영준 국무차장을 끌어내리고자 하는 힘이 그리 강할 것 같지 않다.
▲ 박영준 총리실 국무차장(왼쪽)과 정두언 한나라당 최고위원(오른쪽) ⓒ프레시안 |
바로 이런 점 때문이었을까? 박영준 국무차장과 날카롭게 대립했던 정두언 한나라당 최고위원이 지난 9일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차관급 인사와 관련해 "지금까지 총리·장관이 인사권도 제대로 행사하지 못했고 공직자의 특정인맥 줄대기가 횡행했다"면서 "청와대의 각 부처 인사 개입은 대통령의 뜻을 거스른 국기문란행위인 만큼 되풀이 되지 않아야 한다"고. 듣기에 따라서는 박영준 국무차장을 향한 '견제용 멘트'로 이해할 수 있는 발언을 한 것이다.
헌데 어쩌랴. 정두언 최고위원이 강조한 "대통령의 뜻"이 모호하다. 아니 드러난 것만 놓고 보면 부정적이다.
대통령은 불법사찰 파문이 한창일 때 정인철 기획관리비서관과 이영호 고용노사비서관의 사표를 받으면서도 박영준 국무차장에 대해서는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파문 진화에 고심했으면서도 파문의 근원을 도려낼 생각은 하지 않은 것이다.
이뿐인가. 물러난 정운찬 총리가 전한 내용도 있다. 정 전 총리가 "공직윤리지원관실을 없애야 한다"고 건의했지만 대통령은 "잘 고쳐보라"고만 했단다. 정 전 총리의 표현을 빌리면 "대통령은 심각성을 좀 덜 알았던" 것이다.
그래서 의문을 던진다. 문제의 진원지인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심각성에 대해 "좀 덜 알았던" 대통령이, 게다가 파문의 근원에 대해 손끝 하나 건드리지 않았던 대통령이, 검찰이 일단 면죄부까지 준 박영준 국무차장을 솎아내려 할까 하는 의문 말이다. 박영준 국무차장의 직함과는 별개로 그를 권부에서 완전히 밀어낼까 하는 의문 말이다.
참고 삼아 두 개의 보도내용을 전한다.
"여권 핵심부는 지난달(7월) 중순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사찰 의혹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당시 '박(영준) 차장은 좀 억울하다. 또 그의 사퇴로 마무리될 일이 아니다. 야당은 박 차장이 물러나는 순간부터 SD(이상득)를 겨냥해 퇴진을 요구할 것'이라는 판단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 <동아일보>
"이명박계 핵심 의원은 '대통령은 박 차장을 매우 신뢰한다. 박 차장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여러 곳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통해 정보를 듣고, 대통령을 위해 일을 만들고 처리할 사람이 박 차장밖에 없다는 게 대통령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 <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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